세상을 향한 강력한 로켓펀치—–더블유앤웨일②

 

"세상에 대한 부채의식, 노래에 담고 싶었다"

 

 

 

무기력의 힘으로 튼튼한 미래

소리치며 우는 너는 Too young to die

아무도 모르게 먼지로 날아갈

너는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中

 

건조한 눈및, 쓰디쓴 그대의 혀

항상 말만 앞서고 행동하진 못해,

나는 좀처럼 스스로 판단하라 수 없어

필요한 건 Rocket Punch

 

<R.P.G. Shine>中

 

 

W&Whale은 지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잠실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가졌다. 플럭서스 소속 뮤지션 기획 콘서트로 참여한 이날 공연은 최근 W&Whale 인기를 반영하듯 진작에 매진됐다고 한다. 90년대 오빠들의 화려하게 돌아온 셈이다.

 

명백한 90년대 일렉트로니카 밴드 <코나>가 2008년에도 맹활약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대중들의 입장에서 이들은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밴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꾸준하게 음악 작업을 계속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음악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우선 영화

< 뜨거운 것이 좋아 >, 시트콤

< 크크섬의 비밀 >이 이들 세 며의 프로듀서의 대표작이 됐다. 뿐만이 아니다. 2005년의 < 내 이름은 김삼순 >을 필두로, 2006년의 < 불량가족 >, 2007년의 < 케세라세라 >의 O.S.T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단지 무대에서 이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을 뿐이지 이들은 자신의 음악색깔을 꾸준하게 대중들에게 전파해왔던 것이다.

 

     

더블유(W)의 멤버인

배영준(39), 한재원(35), 김상훈(34)

90년대 오빠들의 화려한 복귀(?) 코나가 90년대를 관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들의 음악적 역량을 쉼없이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프로듀싱 능력까지 더해 각자 독립적인 음악 기업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Whale양의 영입은 이런 기본 바탕 위에서 가능한 모험이었다.

 

 

 

"(배) 저희같은 밴드는 정말 잘돼야 돼요. 정말 돈이 많이 필요한 음악이에요. 전자음악은 유행이 빠르거든요. 게다가 많은 자료를 음악을 들어야 되고, 또 악기도 바꿔야 되고.. 사실 저희같은 밴드는 돈이 많이 들어요. 속내를 다 꺼내놓고 말 하자면, 사실 만장 팔려서는 택도 없어요.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_몇 장이면 택이 되나요?

 

" 일단 그래스톤 배리 가서 공연할 수 있을만큼? "

 

_웨일양에게 질문 하나 드리자면, 광고를 본 사람들이 자우림같다, 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어떤 기분인가요?

 

" 김윤아 선배 닮았다는 말 많이 듣는데요, 신인으로서 너무 좋아요, 워낙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신인인 제게 비교해 주시는것만 해도 ..어떻게 보면 좋은 홍보효과가 되니까요. 제겐 좋은 칭찬이고 수단이에요. 하지만 제겐 저만의 감성과 목소리가 있으니까요. "

 

(배) 제가 알기론 호란이 나왔을 때도 김윤아를 닮았다고 했죠. 웨일양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난데, 부르는 노래마다 다 다른 분위기와 감정을 내요. 그런데 광고에 나오는 그 노래는 우연찮게 김윤아씨가 기존에 가진 이미지와 일정부분 겹치는거죠. 앨범에 있는 다른곡들도 들어보시면..김윤아씨와 닮은 노래는 별로 없어요.

 

" 호란 언니도 나왔을 때도 김윤아 선배랑 비교들 하시고.. 항상 여성 싱어송 라이터가 나오면 사람들은 김윤아 선배를 롤모델로 비교들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거엔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것도 있구요."

 

_ 웨일씨는 나중에 독집 앨범을 내게 되면.. 음악 성격이 지금보다는 포크적인 느낌이 더 많이 나겠네요.

 

" 저는 예전부터 블루스와 포크를 좋아했어요 예전부터. 그런 음악을 원래는 지향했는데, 멤버분들을 만나면서 일렉트로닉을 처음 접하게 됏어요. 아, 일렉트로닉이라는게 있구나 라는것도 솔직히 그 때 처음 알게 됏거든요. 여기서 노랠 한다는게, 첨엔 소화할 수 잇을까 하는 걱정을 햇는게 새로운 장르를 하다 보니까 새로운 색깔을 낼 수 있다는걸 알게 돼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이런 음악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폭도 넓어져서 이젠 구지 ”다음 앨범엔 포크만 해야지. 포크 성격을 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있지 않아요."

 

"(멤버 일동) 아.. 우리도 이 얘기 첨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구나!"

 

_그럼 이전에는 어떻게 알고 계셨던건가요?

 

"우리는 당연히 (웨일이) 모던포크 계열의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하긴, 저도 뭐 엣날엔 "죽을 때 까지 락만 해야지" 라고 했는데 (웃음)"

 

"(웨일) 기본적으로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요."

 

_기타와 피아노 가운데 어떤게 더 좋아요?

 

" (웨일)저는 노래하는거 보다도 기타치는 걸 더 좋아요. "

 

_좋아하는거 말고 더 잘하는 거요?

 

" 더 잘하는 건 노랠 잘하지만, 앞으로는 기타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_기타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 기타 소리를 워낙 좋아하는데요,  배운 건.. 영준이 오빠한테 1년 전 부터… "

 

_오빠라고요?…  아무튼… 어릴때 배운게 아니라요?

 

"(일동) 습득 속도가 엄청 빨라서, 장난이 아니에요. 좀 있으면 저희보다 더 ..(잘 칠거 같아요) (느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정말이에요. : 첨 산 어쿠스틱 기타를 제가 봤는데, 계약금 받아서 산.. 아니다, 용돈 모아서 삿지?

 

"(김) 사실 "왜들 이렇게 입을 모아서 웨일이 칭찬을 하고 잇을까" 하며 의아하시겠지만 라이브를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거에요. 특히 티비가 아닌 실제 무대를 보시면 저처럼 팸이 될거에요."

 

_저는 아직 라이브를 못 봤는데 라이브를 들어본 네티즌들의 평을 보면 보면 가창력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더라구요..

 

"(한) 솔직히 웨일양의 노래는요, 반주를 많이 안 할 수록 좋아요. 저희가 개입을 안해야 하는 거죠."

 

_아, 참 분위기 그러네요. ㅎㅎ 모두가 좀 팔불출 같아요. 완전 "내새끼 어디 내놔도 안 빠져" 분위긴데요

 

"(일동) 아, 팔불출 되도 괜찮아요.. 실제 어디가도 안 빠져요."

 

"(웨일) 처음엔 저도 몸둘바를 모르고 그랬는데 어딜 가도 다 이런 분위기니까, 저도 그냥 그러나보다 하고 가만있게 되는데 다른 기자분들은 "쟤는 지 칭찬이 맞다고 생각하나보다" 고 생각할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항상 몸둘바 몰라하다 이젠 지쳤어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어요.(웃음)"

 

"(한) 기회 되시면 꼭 들어 보세요. 저희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여가수들이랑 작업도 해보고 녹음도 해봤는데 그거와는 다른 특별하밍 있기 때문에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느끼며

이슬이 스며든 런던을 느끼지

기타를 튕기는 내 손이 너무좋아

굳은 살 투성이지 나는 Rock N Roll star~  

 

—–Whale Song 중

 

인터뷰 중인 더블유&웨일,

개성강한 네 명이 함께 모였음에도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_전 곡을 다 안돌아 봤는데,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조화와 균형이 잘 이뤄진 것 같아요.

 

"오히려 감사는 제가 야죠. 정말로 이질적인 느낌이 잘 녹아있고 서로 매칭되서 세련되 보입니다. 실제 많은 부분에서 양보라는 , 배려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알고 보면 초창기에는 트러블도 많았거든요."

 

"(한) 전 초반에 이런 보컬 못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문제가 많았다. 그간 서로 길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김) 단순히 밴드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우리 세 명이 모두 프로듀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사실 이 런 양보가 우리가 해야할 역할인 셈이에요".

 

_이 조합이 얼마나 갈까요?

 

"(한) 우리가 하고 싶다고 끝가지 가는게 아니다. 회사의 시스템이 있으니. 하지만 가고 싶어요. 배경이 화려해서 취미로 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래요. 더블류 앤 웨일 2집 보다 웨일 솔로집이 먼저 나올 수 있는 일이고 미래는 알 수가 없는 거죠."

 

_90년대 음악의 힘겨운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데…생존이 얼마나 힘드셨나요? 즐겁게 하셨나요?

 

" 생활이니 즐겁게 견뎠죠."

 

_어떤 힘인가요?

 

"지극히 사적인 얘긴데, 그건 제가 결혼을 안했고, 더군다나 좋은 차도 없었고, 심지어 운전면허도 없어요. 싱글남자가 쓸 범위는 많지 않거든요. 딸린 식솔이 없었기 때문이죠. 만약 저에게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었다면 못견뎠을 거에요. 이런 음악 해서는 힘들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김훈인데. 남자는 밥에 대해서 경건해 져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말은 내 식구들 내 아내 자식에 대해서 부양의 의무를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부양할 가족이 없었어요. 부모님에게 이제는 용돈을 드리지만 전 제가 번 돈 저만 먹고 살면 됐거든요. 그래서 철도 없고, 세상사는 일에 대해 밝지 않아요.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_혹시 멤버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게 있나요?

 

"(한) 그건 아니에요. 개념이 다르죠. 우리가 어린 사람도 아니고. 리더라고 생각하는 건 음악의 리더지. 생활의 리더는 아니거든요.

생활은 알아서 해야 하는 문제다. 10년을 같이 생활하는 이유는, 서로 참견하지 않는거다 생활면에서. 사이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서브잡. 다 개별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가능한거에요. 음악적으로 의지했다면 금방 해체했을지 모른다."

 

 

_웨일양은 아까 W선배들을 오빠라고 부르던데, 강요인가요?

 

" 100% 강요에요.(웃음)"

 

_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호란이나 김유다 닮았다는 거세 대해서…싫지 않나요?

 

"전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

 

_그거 싫어하셔야 해요. 난 난데요. 그런 조바심이 안나는데, 언젠가는 아시게 될 거에요. 저랑 다르다는 것을. 건방진 생각을 해요.

 

"(일동)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분. 노력의 천재. 제가 볼때 음악적으로 다른사람과 월등한 재능은 아니다. 세상의 여러 유형의 천재가 있지만 노력의 천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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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집안에서 음악을 들었다는 얘기가 기사에 나왔던데…선망한 가수나 좋아했던 뮤지션은 누구죠?

 

"(웨일) 비비큐 음악을 듣었고, 주로 포크음악을 좋아했어요. 제 어머니가 청소하면서도 라디오 들었던 분이에요. 어릴적 전 그 노래 듣고 싶어서 학교에서 뛰어왔을 정도에요. 라디오 헤드음악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중 2때 정도엿고요. 제 생각에는 가사를 몰라도 그 사람의 소리만 들어도 무엇을 표현하려는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가사도 보게 됐고요."

 

 

_배 선생님은 혹시 학생운동을 안 해봤나요? 대학을 한양대 독문과를 나오셨던데 그 과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엄청난 운동권을 배출하지 않았나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어요. 그 때 저는 그런 분위기가 강했죠. 제가 부산에서 자라서 서울에 왔거든요. 부모님들도 제가 운동할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실제 저는 알게 모르게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할 처지는 못됐어요. 워낙 경계인이었던 탓에 그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이 생기기도 했어요."

 

_데뷔를 준비하던 91,92년이라면 운동권 가요가 나올 때인데 코나의 몽환적인 음악과는 천양지차이거든요

 

"맞아요. 전 그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음반을 발표했던 거였거든요, 어떻게 하면 (음악으로) 먹고 살 수있을까가 전부였죠. 하지만 가사에는 그런 부채의식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문제와 세대의 고민이 들어가 있거든요. 요즘 세대의 루저들의 입장을 함께 고민하기도 했어요.  이런 가사를 지원해준 멤버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_가사를 그렇게 쓰시는지 이해가 되는군요. 실패한 청춘들의 밝은 얘기를 쓸 수 있는 것 말이죠.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죠. 제 얘기니까요."

 

 

 

웨일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예 뮤지션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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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만한 대어(大漁), 일찍이 본 적 없다"—–더블유앤웨일①

 

90년대 음악의 마지막 생존자, 고래 만나 비상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는 다양성과 실험성이 시장과 함께 공존할 수 있었던 천국의 땅이었다. 수 많은 뮤지션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고, 이 같은 모험은 X세대라 불렸는 신세대들에 의해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모순덩어리였다. TV를 틀면 90년대는 자유와 아름다움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거리에는 언제나 정치구호와 먹고살기 힘들겠다는 구호가 가득 메웠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한국 대중음악의 활황도 90년대말 21세기 초를 거치며 급속히 위축됐다. 그리하여 쉽게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은 더 쉽게 음악판을 떠나고 말았다. 밥의 무거움을 간과했던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음악판에서 생존 자체가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90년대 초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몽환적인 일렉 사운드로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밴그가 바로 <코나>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들은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해 가며 90년대를 관통해 2008년까지 자신들의 음악적 성취를 자신들의 팬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올해 여름에 발표한 W&Whale <하드보일드>는 최악의 음반불황기에 1만5000장 매출을 기록하며 최고 히트앨범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야말로 90년대 음악의 마지막 생존자로 기록된 것이다.

 

 

1993 년 1집 앨범 [Knock On Neutral Affection]으로 데뷔한 그룹 <코나>.

리더 배영준(39,가운데) 한재원(35,오른쪽) 김태영(34)으로 구성된 이들은 그룹명을

잠시 <웨어 더 스토리 엔즈>로 바꿨다가 다시 <W>로 개명했다.

  

*특별히 표기하지 않은 발언은 리더 배영준 씨의 멘트 입니다 

 

 

_한 눈에 웨일씨가 참 어려보이는 군요.

 

"그럼요! 10년차가 더 나는데요. 실제로도 확 어려요."(일동)

 

_ 공연이나 MV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뭔가요? 안 쓰셔도 될거 같은데.(혹시 나이 때문에?)"

 

" 마스크는 저희 나이가 많거나 얼굴이 딸려서가 아니라.. 그 자동차 충돌 실험 할 때 안에 넣는…. 더미잖아요. .음악을 변화시키고 진보시키는게 뮤지션의 의무인데, 그래서 끊임없이 다음 앨범을 위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은유가 있어요 그래서 더미를 쓰는거구요, 다음 앨범에서는 다른 디자인의 더미를좀 더 편하게 만들어서  만들어서 그런데 이번앨범이 좀 더 잘되야 더 좋은 더미를 제작할 수 있겠죠."

 

_ 편하고 싶으시면 아예 블루맨 그룹처럼 직접 칠하시는 방법도 있을텐데

 

" 그건 피부에 너무 위험해서요 (웃음) "

 

_ 일단 가볍게 시작해 보면.. 더블유란 이름은 의도가 있었잖아요?

 

" 네.. 웨어 더 스토리 엔즈. 그때는 뭐랄까 저희가 한참 동아기획이라는 대형 회사에 있다가 인디로 시작할 때 였잖아요. 어떡게든 메이저랑 거리를 두고 싶었고, 그런 부분에서 밴드이름도 한몫을 한다고 봤죠. 어떡하면 메에저스럽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웨어 더 스토리 엔즈.. 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그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얘기의 끝 처럼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라는 부분이 영어권에서는 <웨어 더 스토리 엔즈>라고 끝나거든요. <잘 먹고 잘 살았댄다> 라는 이자체가 매우 제게 큰 울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이름을 골랐는데,  그걸 더블유로 줄인 건.. 다시 메이저 시장에 편입해야 하는데, 웨어 더 스토리 엔즈는 너무 기억하기 어렵잖아요 (음)"

 

"(한재원) 누가 팀이름을 물어보면 저희조차 살짝 버벅거릴때가 있구요, 부모님이 물어 보실 때 <저희 웨어 더 스토리 엔즈 하는데요> 라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 하기도 하시고..그런 문제도 있죠"

 

_ 우리 화는 아니죠(웃음) 그런데 우연찮게 웨일과 더블유는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인데요.

 

"(웨일) 의도한 건 아니구요, 제가 워낙 고래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예전부터 <나중에 내가 예명을 쓰게 되면 웨일이라고 해야겠다> 라고 생각해 왔었어요. 그런데 진짜로 음악을 하게 되서. 고래의 이미지같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악을 만들고싶어서 웨일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더블유라는 팀 이름과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

 

_ 암튼 검색하기가 쉽지 않아요. 영어로 검색해야 하니까요.

 

"(한) 맞아요. 저희도 힘들어요.

"(김태원) 저희가 웨어더 스토리엔즈에서 더블유로 줄인것도 검색하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졌어요."

 

 

 

인터뷰 중인 W와 Whale. 85년생인 Whale과 나이가 10년차를 훌쩍 뛰어넘는 W 멤버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Whale의 팬이라고 입을 모았다(팔불출임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_ 만화나 소설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 오시는 것 같던데요. <최종병기 그녀>는 아예 그대로 가져오신 경우고

 

" 꼭 집어서 일본 대중문화만 가져온 건 아니구요, 저는 사실 제3세계 문화를 더 좋아해요.브라질이나 라틴쪽의.. 마르께스 같은 사람을 더 선호합니다. 그런데 뭐랄까 곡을 만든다는 건 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가 가진 가장 사적인 취미와 영향을 받는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그런 게 <최종병기 그녀> 같은 만화책이 된거겠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무인도에선 천재가 나올 수 없다>가 있는데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문화적인 섬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는..특히 누군가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은 문화적으로 섬이 되어선 안된다고 봐요. 저는 노골적으로 제가 영향을 받은것에 대해서 친구에게 무엇을 보여주듯이 제가 재미있게 본 만화나 영화를 얘기해 주듯,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

 

_ 게임도 좋아하시나요?

 

" 네, 그럼요.

 

_ 요즘 뜬 <로켓 펀치 제네레이션>을 줄이면 알피지(R.P.G)가 되는데요.

 

" 아니, 그건 아니구요. 그건 지어놓고 보니까 그렇게도 읽을 수 있더군요 (웃음)"

 

 

_더블유엔 웨일의 음악에는 동화적인 초현실의 감흥이 있죠. 아까 예를 들으셨던 마르께스도 <그래서 그랬구나> 라는 느낌이었는데,  더블유엔 웨일의 음악을 꼭 <동화적인 초현실주의> 라고 정의해 본다면…. 이 정의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 더블유를 하면서 부터인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가 대형사에 있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메이저 지향적인 음악이어야 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다룰 수 있는 소재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대중가요에서 흔히 다루는 익숙한 소재들을 많이 했는데,  웨어더 스토리엔즈에서부터는 바뀌어야 했죠."

 

 

_멤버들은 어떻게 모이게 된거죠? 웨일씨의 경우엔 잘 알려져 있지만요.

 

"(한): 제 경우엔 배영준씨가 코나 5집 전에 신인가수 프로듀싱을 하던중에 작곡, 편곡자로 만났어요. 그런데 겪어보니끼.. 당시엔 ..지금도 그렇지만 대선배님 이셨잖아요."

 

"그런데 전 별로 대선배 대접 같은거 못 받았어요 (웃음)"

 

"(한) 아니요, 그땐 깍듯하게 했는데 (웃음) 되게 친절하고 배울게 많은 분이더라구요. 지금 웨일양의 입장이랑 비슷했을거 같은데,. 문제는 제가 가지지 않은 부분을 주입하고 시켜요 (웃음)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게 제게 다른 방향성과 가능성을 제시하더라구요. 그게 재미있었고 확신이 생겼죠. 그렇게 마음이 맞았죠."

 

" 저로선 당시 코나 5집의 작업 파트너가 필요했던거죠. 편곡하고 음악을 만들..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참 좋아서.. 물론 코나 5집이 상업적으로 완전 실패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라요. 만약 잘됐으면 제가 웨어더 스토리 엔즈를 만들 생각을 안했을지도 모르죠.

 

"(김, 한) 그렇죠."

 

" 그렇다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걸 하자 .어차피 우린 뭘 해도 안되는구나.(웃음) 라는 생각에.. 차라리 그냥 우 마음대로 음악을 해보자 해서 만든게 웨어더 스토리 엔즈였던거죠."

 

_ 그런데, 주류에 편입되자 하지 않으셨는데, 최근에 생각이 바뀌셨잖아요.

 

" 아뇨, 그건 꽤 됐죠."

   

_언제였나요?

 

"웨어더 스토리엔즈 1집을 내고..2003년쯤에 저희가 플럭서스를 찾아갔거든요."

 

_찾아 간겁니까 찾아 온겁니까?

 

" 저희가 찾아 간거에요. 메이저에 편입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던거죠."

 

_심경의 변화를 가지게 된 계기라면요?

 

"(잠시 생각하다가) .. 생활의 어려움? (웃음)"

 

_ㅎㅎ 솔직하시네요

 

"(한) 아, 그게 맞아요.. 아무리 좋은 음악도 지원이 없으면 힘든게 맞죠. 배영준씨 경우엔 메이저 기획사에서도 하셨다가, 저희랑 같이 최저의 보장조차 없는 인디에서도 했단 말이에요. 해보니까 아.. 이게 지원을 받고 나오는 음악과의 차이를 느끼는거죠."</span

 

_그런데 왜 하필 플럭서스였나요.

 

"(한) 플럭서스만 고집한건 아니에요. 여기저기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플럭서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김) 그 당시엔 그리 큰 회사는 아니었죠. 막 시작하는 러브홀릭만 있었죠. 그 당시엔 클래지 콰이의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죠."

   

_ 아티스트분들 인터뷰 하다보면 쟝르 문제가 피곤한데요. 이들을 어떤 장르로 묶어야 하나가 그래요. 쉽게 쉽게 일렉트로닉이다, 락이다 펑키다 말하죠. 그런데.. 사실 한가지만이 아닌 경우가 많고 모든 음악이 혼재된 음악이 많잖아요. 본인의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 맞아요. 저희만해도 이번 앨범의 경우엔 듣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별로 일렉트로닉 할 의지가 없구나> 라고 느낄 곡들이 있어요."

 

 

_ 네, <일렉트로닉하지> 않아요. 포크 냄새도 좀 나구요.

 

"맞아요. 더구나 이번앨범 경우엔.. 솔직히 음악 하면서 가장 힘든 결정을 내렸던게 이번 앨범이에요. 여자 멤버를 영입했단 거 자체가 모험이었고, 특히나 웨일양처럼 큰 물고기를 잡았다(?) 표현이 좀 이상한데."

 

_낚았다는 어때요 (웃음)

 

"마자요. 이렇게 큰 물고기를 만난적이 없었어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그래서 어떡게 하면 웨일양이 가진 목소리를 빛나게 할까.. 이런 고민은 그동안 더블유를 통해서 했던것과는 다른거였죠. 저희는 목소리를 음악의 소스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보컬은 그저 악기소리와 같은 것 중 하나였죠."

 

"(한) 그래서 예전엔 보컬을 위해 악기소리를 희생하는 경우가 없었어요. 하지만 웨일씨는 연기로 치면 주연배우랄까. 저희가 음악적으로 서로 역할분담이 확실하달까."

 

 

_다들 조직적으로 웨일씨를 띄우시는데요 (웃음)

 

" 띄우려는게 아니라, 저희 멤버들이 다들 웨일양의 팬이기 때문이죠."

 

_ 김상훈씨에게..  <김상훈씨 보컬이 더 좋았어> 라는 글도 인터넷상에 있고, 반대로(?) <웨일언니 목소리 너무 이뻐요> 라는 글도있곤 한데, 솔직히 질투는 안 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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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오히려 여기서 보컬을 맡게 된 계기도 모험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한계를 많이 느꼈죠. 저는 곡을 쓰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무대 한가운데 서본적이 없었어요. 그 와중에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주인공역을 맡을 주인공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에 오디션을 통해 보컬을 구한거죠.

 

_오디션 경쟁률이 500대 1이라고 들었는데 진짜 그런가요?

 

"(일동) (두런대며) 오백..? 오백까진 안되지 않앗나. 400은 넘었고… 씨디 듣고 실제 오디션 본 사람다 치면.. 500은 안되도 400은 확실히 넘었어요. 뽑는데 저희 정말 힘들었어요."

 

   

_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요, 밴드에 여자 보컬 들어오고 하면 <이사람들 이제 돈벌고 싶은가 보구나> 라는 생각을 다들 하잖아요. 그런거 치곤 이번 결과물이 진짜 잘나왔는데요.

 

 " 저희도 그런 부분을 너무너무 경계 했어요. 그리고 꼭 여자 보컬이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구요. 지난 앨범에서 김상훈군의 보컬에 매우 만족했어요. 저희가 가장 시급했던 건 다른 음악을 해야 한다는거였죠. 냉면을 만들어 봤으니 이젠 짜장면을 만들어야겠는데, 그러자면 짜장면을 만들 재료를 구해야죠. 그래서 보컬을 새로 구해야 했는데. 그런데 여자 보컬을 내세운 유닛은 기존에도 너무 많았고… 말씀하신거같은 그런 의혹을 사기도 정말 싫었구요. 게다가 저희는 미리 점찍어놓은 남자 보컬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멤버를 구했는데 웨일양이 보낸 데모씨디가 맨 끝에 도착했죠. 그걸 듣고 (잠시 멈칫 하다가) 인간적으로 그렇잖아요. 같이 하기로 해놓은 보컬한테는…"

 

_ 원수졌겠는데요 (웃음)

 

" 아니, 그정돈 아니고 (웃음) 이해 하더라구요."

 

"(웨일) 저도 더블유와 같이 하게 될줄은 몰랐어요. 전 플럭서스에 데모씨디를 낸거였는데.. 더블유 분들이 그걸 마음에 들어하셔서 하게 된건데요 꼭 제가 여성멤버로 들어가서 더블유를 대중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같은 걸 했던게 아니에요. 많은분들이 여자멤버 들어왔으니 이제 좀 벌어보겠다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어요. 되게 우연의 만남이었는데."

 

"(김) 다분히 그런 오해를 살만하죠. ㅎㅎ

 

일동 : 웃음

 

"(한) 웨일양에 대해 진짜 자랑할 만한 건, 진짜 음악성이 있어요. 저희 앨범에서는 저희가 더블유이기 때문에 웨일양의 모습을 다 못보여 주는데, 라디오 방송이나 공연에서는 일부러 웨일이한테 혼자 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데뷰 1년도 안됐는데도 저희가 <너 혼자 기타치고 노래 불러> 하는 그만큼 얘 혼자 보야줄수 있는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어요. 그래서 자랑해주고 싶고.

   

_ 그런데 웨일씨의 영입이 완전한 영이 아니잖아요. 완 영입이었다면 팀 이름이 <더블유엔 웨일>이 아니라 그냥 <더블유> 그대로라야 하는데.. 마치 예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니코의 관계처럼.. 일의 객원보컬 형태인거 같은데요. 실제로 객원보컬은..아닌거죠?

 

" 아뇨,. 객원보컬 맞아요."

"(김) 프로젝트라고 보시면 되죠."

"(한) 이건 저희 3집이 아니라 프로젝트 앨범이라고 봐야죠." 

 

_그럼 다음 앨범에도 같이 하게 될 확률은..?

 

"(김) 같이 할 수도 있고, 웨일양이 솔로 앨범을 낼 수도 있고 역량이 되니까요. 아니면저희끼리 3집을 낼 수도 있는거구요."

 

_ 실례되는 질문이겠지만, 만약에 이대로 웨일양이 공중파를 많이 타게 되면서 인기를 얻고, 나중에 따로 혼자 독립해서..멤버들을 패대기 치고 나간다면?

 

"(일동) ㅎㅎㅎㅎ"

 

_물론 가정이지만 그 때의 배신감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지.

 

"(한) 어, 그거 배신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저희 멤버들끼리 있을 때 그래요. <야, 너 빨리 독집앨범 내라. 솔로 독립해서 나가라> 그래요.

   

_그 때가 되면 곡은 써주실겁니까?

 

"(일동) 웨일양이 곡을 써요. 굉장히 잘 써요."

 

"이번 앨범에 웨일양 곡을 하나밖에 못 넣었는데, 사실 이번 <하드 보일드> 앨범에 컨셉이 매우 잘 맞는곡이 하다 더 있었는데, 너무 헤비한 곡이라 트랙수 때문에 못 넣었죠. 그 후에도 본인이 만든곡 중에 정말 좋은곡이 많은데.. 나중에 본인 솔로앨범때 쓰겠다 그러더라구요 (웃음)"

 

_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는데요. 1만장이 얼마전에 넘었고.. 요즘 가요계 상황에선 상당히 선전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저는 그런데 앨범이 100만장 200만장 나가던 시대를 지나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요즘 주변에선 만장이 나가면 잘됐다고 하는데 사실 실감이 되질 않아요.. 그게.. (한숨..)"

 

 

_드라마나 오에스티면 몰라도, 씨에프에 곡을 사용한다데 거리낌은 없으셨나요?

 

"물론 조금 있었어요."

 

_그걸 덜컥 승낙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승낙하고 어쩌고 할 시간적인, 상황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저희가 당시 시트콤 작업 한창이었어요. 그런데 시에프에 곡이 쓰인다는 연락이 들어왔죠. 그런데 다들 다른일로 바빳고 정신없이 막 했었죠. 그 때만해도 에스케이 브로드밴드가 뭐하는덴지도 몰랐고.지금도 모른다는(움읏) 그 때만해도 이렇게 많이 나올지도 몰랐고."

 

_ 이렇게 물량공세를 펼칠줄은 몰랐어요. 이게 적당히 하면 좋은데, 너무 많이 나오지까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것도 같아요.

 

"맞아요 어떤 분들은 벌써 지겹다고도 하세요."

 

  (인터뷰 2부는 내일 계속 이어집니다)

 

 

<모 통신사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R.P.G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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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했으면 성공했을 법한 개그맨 김대범—②

 

"언제나 꿈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김대범씨 인터뷰가

<스포츠 동아>에 나간 이후 몇몇 분들이

"왜 안상태나 황현희가 아닌 김대범을 인터뷰 했는지" 물어왔다. 실제 기획사 쪽에서도 김대범을 인터뷰 한다는 것에 대해 좀 의아하게 생각하고, 대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황현희”를 인터뷰 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꿈적도 하지 않고 김대범을 만나길 고집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한게 김대범은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던 개그맨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개그맨을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요즘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개그맨 동기생인 안상태와 황현희씨가 대표적이다. 이 둘은 유머러스한 표정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유행어를 탄생시켜 인기를 모았지만, 그것을 빼고는 달리 대화를 나눌 건지가 별로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김대범은 커다란 히트작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사회성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 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등장하는 미디어 자체를 비틀줄 아는 영리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직 폭발하지 않았을 뿐이다.

 

김대범씨가 2007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 화제를 모았던 <인간 냉동육> 사진. 그는 개콘 밖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실험하는 흔치 않은 개그맨이다. 더구나 그런 그의 노력은 매우 진지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매력이 있다. 그가 낮은 대중적 인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_사실 당신 자체는 재밌거나 웃기지 않는다. 당신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웃길 뿐이다. 아 이거 머지, 하는 의문을 던져줄 때가 많지만 당신의 연기가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찌보면 개그맨이라기 보다는

행위예술가 같은 퍼포먼스에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요. 저는 개그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이해해요. 지금은 제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이 많지 않지만 언젠가 절 알아봐줄 거라고 믿어요."

 

_요즘 당신이 출연하고 있는 도움상회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저와 박성호 선배 아이디어가 50대 50이 됐다고 보면 됩니다. 2004년인가 처음 상조회 광고를 접하고 배꼽을 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만든 분께 죄송하지만 어떻게 TV-CF로 ” 마지막 가시는길 편안하게..”라는 문구가 광고로 나올 수 있는지 놀랬고 그 상황이 웃겼다. 꼭 이것을 개그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박성호 선배가 매우 천재적이다. 어느날 개콘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박 선배가 이 광고를 패러디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개콘에서 코너를 내리는 것을 염을 치룬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박 선배가 퇴출되는 코너를 두고 ”마지막 가시는길 편안하게…”라고 못 웃기는 개그맨들을 응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박 선배를 붙잡고 꼭 같이 한번 하자고 졸랐다.

 

그런데 박 무 바빴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서 이 문구를 잡고 씨름을 했는데, 혼자 하니 주변에서 너무 4차원 스럽다고 핀잔을 주더라. 다시 박 선배가 결합되고 나서야 현재의 포맷이 나올 수 있었다. 군대에서 대드는 사람이나 비리 정치임들을 시원하게 때려주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_보험사 광고를 비꼬는 등 패러디가 매우 복합적인데…문제는 더 쎄게 할 수 없었냐는 거다. 사회적 비꼼이 들어다가 만 것 처럼 비친다. 문제가 생긴 상황도 비리 국회의원 처럼 너무 추상적이고 우리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건데.

 

"맞다.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 아쉽게 생각한다. 2% 정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_개그에 유달리 사회 비리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우리 느낌으로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인다

 

"어릴적부터 엄청나게 많은 불만을 품었다.

어렸을 대 부터 잘못된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는 부정비리 선생님이 많았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런데 내 관점에서는 그러한 비리와 부정들이 너무나 웃기다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그래도 배웠다는 사람이 그런 부정을 저지르는 심리가 얼마나 웃긴가?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학창 시절에도 촌지를 밝히는 선생님을 패러디 해서 ”촌지 받는 사진” 퍼포먼스로 친구들을 웃겨준 적이 있다. 그 선생님도 사실인 지 아니까 아무말 못하더라."

 

 _사회부 기자를 했으면 잘했겄군요.

 

 "실제 학교에서 선생님의 구타, 아니 체벌 현장을 몰래 찍기도 했다. 그 사진을 찍으니 선생님이 내게 쩔쩔 매더라. 사회비판적인 개그를 하는 이유는 멋있게 보이고 싶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비판할 능력도 없다. 그저 재미있기 때문인데, 고위 공직자들이 뇌물 받았으면서 안받았다고 우기는 표정도 재밌고 심리도 흥미롭다. 사실 <도움상회>에서 그들의 실명을 까면서 시원하게 욕하고 싶은데, 역시 공중파의 한계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다."

 

_뉴스를 자주 볼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뉴스를 보기 시작한 것은 아주 근래에 들어서다. 뉴스를 보는게 너무 재밌어 졌고, 특히 토론회는 너무 재미있다. 그 정도 되는 높은 분들이 아주 유치한 것을 놓고 싸우는 장면이 흥미롭다. 그래서 대선 토론회를 관심을 갖고 집중했다."

 

_특히 관심을 가진 정치인이 누구인가?

 

"아. 난 허경영씨를 이미 고3때 발견했다. 그는 진짜 줄기차게 대선에 나왔는데 알아봐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더라. 그런데 그 때도 이미 군대 제대하는 사람에게 3000만원을 준다는 공약을 내세웠었는데,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고 관심을 갖고 지켜본 기억이 있다."

 

 

_이제 개그맨 얘기로 들어가 보자. 당신은 성실하게 대본을 짜오는 개그맨으로 알려졌다. 이게 어떤 뜻인가?

 

"개그맨의 역할은 대개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연기를 잘해서 다른 개그맨에게 캐스팅 당하는 그룹이다. 강유미나 안상태가 표인부류. 그리고 나 같이 아이디어가 많아서 아이디어가 팔려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개그맨이라고 생각한다.(웃음)"

 

_올해 29살인데, 이 나이라면 개그콘서트에서 어느정도 짬밥인가?

 

"딱 중간 정도다. 군대 내무반으로 따지면 막 상병을 단 정도일까?"

 

_개그맨 사회, 특히 개콘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소문났는데, 어떤가?

 

"실제 엄격하다. 그러나 난 이 문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그 엄격함이 선배의 권위나 위계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개그를 위해서 그렇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의 개성이 얼마나 다양하겠? 그런데 위계질서가 없으면 하나의 질서로 방송에서 질서있게 코너를 진행해 나갈 수가 없다. 각종 소품도 챙겨야 하고, 웃길 때 숨을 죽여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 이게 없으면 서로 웃길려고 먼서 애드립을 치기 시작하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개콘에는 질서가 멋있게 잘 잡혀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_비교적 장수 하는 편인데, 이등병이나 일병 정도에서 관두는 개그맨들은 밀려나는 건가? 아니면 자발적으로 나가는 건가?

 

"단적으로 말해 자연도태다. 왜냐하면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 역할이 없거나 대사가 줄게 되면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 개콘은 시스템 자체가 새코너를 스스로 짜서 자기 역할을 따내는 시스템인데, 그 것을 만드는 과정이 절대 만만한 게 아니다. 좋은 코너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20개의 코너를 짜서 엎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견대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하는 셈이다.

 

실제로 자기 코너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코너보다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_본인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아이디어가 많다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됐겠군요.

 

"제 머리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_앞서도 아이디어는 강한데 연기가 잘 안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연기는 아예 포기한 건가?

 

"아니다. 난 연기도 잘하고 싶다. 최근에 연기 배우기도 했다. 게다가 남들이 딱딱하다고 해서 이를 풀기 위해 재즈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내 아이디어를 스스로 살릴 줄 아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름 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아서 행복할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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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좋다. 최근에 사업을 시작했던데 조금 어색하다. 연예인 섭외 기획사던데 주위에서 비난은 없나? 조심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한데…

 

"좋은 분을 만아서 같이 시작했다. 그런데 욕을 들어도 좋다."

 

_왜?

 

"왜냐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업으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사실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능하면 더 많이 벌고 싶다."

 

_솔직하군요. 비난을 듣더라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예술(감히예술이라고 한다면) 제작비 많이 들어가는 장난이다. 내 머리속의 장난을 세상으로 꺼집어 내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필요하고 그 돈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_지금 버는 것으로 충분치 않나요?

 

"하하. 사실 생활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왜냐하면 현재 영등포구 신길동 옥탑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_왜 하필 옥탑방인가?  적잖은 돈을 벌고 있을 텐데…

 

"옥탑방에 매료됐다. 개그맨 시험 보기 전에는 고시원에 살았는데 너무 좁아서 방에서 팔굽혀 펴기를 못하겠더라. 그래서 방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반지하는 체질에 맞지 않더라. 그런데 옥탑방에 가보니 이건 완전히 선진국형 주거형태인 거다. 마당이 주어지고 거기서 고기도 구워먹을 수가 있다. 특히 전망이 너무 좋아서 거기 있으면 마치 왕이 된것 같다. 현재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에 살고 있다."

 

_ 공채에 합격한 시기가 2004년이었는데 당시 기분이 어땠나?

 

"말 그대로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개그맨 공채 시험을 준비할 때 제 인생에 가장 멋있는 순간으로 기억이 남는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고가 되자는 일등 마인드로 치열하게 연습했다. 단 한 명을 뽑더라도 거기에 내가 포함되자는 심정으로 연습했다."

 

_실제 어떤 연습을 했나, 개그맨 공채 시험이라는게 엇인가?/b>

 

"20대 초반에 개그맨 시험에서 많이 떨어져봤다.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실제 너무 자만했다. 개그맨이라는 건 불특정 다수를 웃겨야 하는 직업이다. 같은 반 친구를 웃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개그맨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탁월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친구들이 웃긴다고 하길래 내가 정말 웃긴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26살이 되자 난 꼭 개그맨이 되어야 했다. 비장한 각오로 가상 개그맨 시험을 준비했다. 친구를 심사위원으로 부탁하면 객관적으로 평가가 안할 것 같아서. 처음 보는 사람 5명을 소개 받아서 예상 질문을 모두 뽑아서 면접 시험과 개그시험을 준비했다. 평가를 부탁받은 친구들의 도움도 컸다. 밤을 새워 연습하고 평가 받다 보니 100명 중에는 뽑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불안해서 세세한 디테일까지 다 잡아서 연습했다. 황현희 안상태 나 까지 누구 하나 나태해 지면 이러면 안된다고 다그쳐 가면서 서로를 채찍질 했다. 그정도 연습하니 10명 정도 안에는 들어갈 자신이 생기더라.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말 태능 선수촌에 들어간 운동선수 처럼 1명을 뽑아도 뽑혀야 한다는 심정으로 매일 새로운 콘티 짜면서 노력했다."

 

_안상태 황현희와 같은 팀이었는데

지금 관계는 혹시 시기와 질투하는 관계 아닌가?

 

"개그맨 공채 시험을 하던 당시 황현희는 공익 요원이었고, 상태형은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전유성 코메디 극단에 들어온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이들과 오장육부라는 팀을 만들어 대학로 길거릴 공연을 하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 개그맨 데뷔를 위해 서로 민감하게 반응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것 다 잊었다.(실제 대판 싸운 적도 있다) 그러나 한 명씩 성공할 때마다 서로 성공을 축하해 주고 있다. 같은 팀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개그맨 못됐을 것이다."

 

_내년이 만 서른인데? 언제까지 개그맨 하고 싶나? 아니 솔직하게 꿈이 무엇인가?

 

"사실 예전에는 꿈에 대해서 더 거창하게 얘기하고도 싶었다. 주성치 같이 영화도 찍고 더 큰 개그를 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이 내 꿈이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게 있다. 최근에 어릴적 학교도 가보니 선생님들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더라. ”너 어릴적에 장난이 그렇게 심하더니 결국은 꿈을 이뤘구나"”라고 내 꿈에 대해서 감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 꿈을 유지할 수 있게 더 열심이 살아야 겠구나. 거창한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간 김대범이 제일 웃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현재 내 꿈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대빡이 냉수마찰 동영상. 그의 키워드는 미디어를 통한 실천의 확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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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이 아닌 통렬한 퍼포먼스 꿈꾼다" ①—-개그콘서트 김대범

 

김대범? 순간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되지 않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이럴 연예인의 경우 이름 앞에 수식어가 필수적이다.

  

”개그콘서트” 김대범! 이제서야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이 몇 생긴다. 이 마저도 충분치 않다면 그가 히트시켰던 유행어 ”사실이야 진짜야~!”, 관객들이 메모지를 무대위로 던졌던 ”애드리브스” 혹은 박성호와 함께 하는 ”도움상회” 등을 출연작을 줄줄이 꺼내야 한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왜 거 있잖아, 마빡이 삼형제 가운데 막내 대빡이"라고 소리치면 된다. 역시 유명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김대범(29)과 박성호(36)은 대한민국의 ”천재형” 개그맨으로 통한다. 물론  ”4차원 개그”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박성호가 이룬 게 많은 개그맨이라면 김대범은 아직은 미완의 대기다. 시청자들은 그의 포텐셜이 언젠가 터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범을 제2회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했다.   

 

현재 개콘에서 ”도움상회”라는 코너에 박성호씨와 함께 등장하는 김대범(29)씨는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는 개그맨이 아니다. 유별나게 웃기는 스타일도 그렇다고 탁월하게 잘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멀쩡하게 생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사회성 짙은 개그멘트와 상당히 엉뚱한 행동은 김대범이란 개그맨을 남들과 조금 다른 독창적인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조금은 지적이면서도 확 깨는 그 무엇 말이다.

  

_설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지금 출연중인 ”도움상회”도 큰 대박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사실 그것 때문에 속 상한 적이 많아요. 춤추는 대수사선때도 그랬고. 지금 도움상회도 박성호 선배가 낸 아이디어라고 알려졌잖아요. 게다가 제 아이디어가 아닌 마빡이 막내 대빡이로 떴잖아요. 솔직히 제 스타일의 개그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많이 속상했어요."

  

_사실 전 가발쓰고 대빡이로 나온 사람이 김대범씨라는 것도 몰랐어요.

  

"(-_-)"

   

_대머리 가발을 써서 얼굴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

   

"실제 제가 했던 코너를 나열하고 나면 제가 출연했는지, 혹은 제 아이디어 인지 모르는 분도 적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픈 거죠."

   

_최근에는 비교적 이름을 크게 나오고 있잖아요? 개콘에서 얼굴 비친 것도 한 두해가 아니고. 그러고 보니 박성호씨와 짝을 이뤄 출연한 경우가 많군요.

  

"그렇죠. 제겐 너무 고마운 분이죠.

신인시절에 춤추는 대수사선, ”사실이야? 진짜야?”로 제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죠. 사실 그 때만 해도 한 주를 길자신은 있었는데 정규 코너를 장기간 이어갈 능력은 없었거든요. 신인시절 안상태(안어벙) 황현(황회장)과 함께 오장육부 라는 팀으로 나름 아마추어판에서 유명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불과 2~3주도 못버티겠더군요. 그 때 박 선배가 제시해 주는 방향성을 따라해보며 많이 배웠어요."

 

_지금은 이제 김대범씨를 수식하는 표현도 있잖아요. 4차원 개그라고.

 

"그렇죠. 박성호 선배와 박휘순과 함께 나왔던 제3세계”의 스타일을 ”4차원 개그”라고 표현했더랬죠. 저도 그게 저랑 맞다고 생각하고 대중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4차원 개그를 앞으로 해나가는 게 꿈이에요."

 

_결국 그것은 개그가 어렵다는 평이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언제나 제 주변에는 열광하는 대중은 없지만 제 매니아들은 꼭 있었어요. 저 자신도 제 개그의 열렬한 팬이구요."

 

_언젠가 인터뷰에서 일본만화 <멋지다 마사루>의 주인공을 존경한다고 표현했더군요

  

"맞습니다. 사실 그런 스타일이 제가 추구하는 캐릭터죠."

  

_마사루는 만화 속에서 엉뚱하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그런 존재로 나오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제가 늘 학창시절 살던 방식입니다. 제 멋대로고 밑도 끝도 없는 것. 그런 무의미한 삶을 좋아합니다."

  

_좋아요. 어떤 면이 마사루를 닮았다는 거죠? 주변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김대범씨에게 말려들어간건가요?

  

"그래요. 저는 실재 그렇게 살았어요.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숙제를 안해오면 엉덩이를 때리잖아요.

그 분은 언제나 다 섯때식 때렸어요. 그러면 저는 늘상 이에 대응하는 퍼포먼스를 펼쳐보였죠. 선생님이 뺨(싸대기)를 때리면 학생은 그 압력에 의해 스윙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잖아요. 하지만 전 의식적으로 반대로 돌리는 거죠.

 

이것도 부족해서 언젠가 맞을 때 피켓을 준비했어요. 다섯대라고 모두 알고 있으니까, 제가 5-4-3-2-1, 이런 식으로 카운트를 센 거죠.

그 다음주에는 선생님이 때릴 때 저도 다른 친구를 때리고…정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피켓에 ”이번주는 한주 쉽니다”고 공지까지 했어요. 의외로 선생님이 이런 저를 가만히 놔두시더군요."

  

_개그 콘서트 팀 내에서 아이디어 뱅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요?

  

"저는 언제나 풍부한 제 아이디어는 무기라고 생각해 왔어요. 사실 저는 저 스스로 제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요. 어릴적에는 제가 굉장히 웃긴놈인줄 알았는데, 공개코메디에 있어 대중을 열광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부족하더군요.  한때는 이것 때문에 열등감에 빠진 적도 있어요.

  

제 개그입문 동기인 안상태씨만 해도 그래요. 그가 단지 ”OO했을 뿐이고…”이 한마디에 사람들이 쓰러지잖아요. 바로 안상태가 했기 때문에 웃긴거지요. 저도 김대범이 하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은데 잘 안되더군요. 때문에 전 아이디어라도 풍부하지 않았다면 이 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에요."

 

대빡이로 널리 알려진 김대범(오른쪽)과 인터뷰 중인 안진홍씨. 그러나 그는 대빡이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김대범 / 1979년생/ 독서 사진, 무언가 새로운 것에 관심/

KBS공채 19기 / 2006 KBS 연예대상 우수상 / 강연활동 경험 다수

 

_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만족하는 편인가요?

 

"자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아직도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에요. 제 아이디어의 스스로 팬인 셈이죠. 어떻게 그런생각했을까, 스스로 놀래고 스스로를 웃기는 게 좋았어요. 솔직하게 말해 저보다 더 웃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실제 다른 개그를 보고 제대로 웃어보지도 않았고요. 어릴적부터 개그맨이 꿈이었고 개그맨이나 예술가가 아니면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_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엄청난 생각을 했던 건가요?

 

"아마도 4~5살때 가 아닐까요? 그 때부터 제 부모님게 개그를 쳤으니까요. 어른들로부터 웃긴다는 표현을 아주 영광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말도 안되는 인물이었죠. 대신 누구나 할 수 있는 장난 안한다고 다짐했어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장난을 쳐보자"

 

_어릴적 주위에 웃기는 친구들 참많았는데,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거든요. 방송 소품만드는 차원을 넘어 일상의 장난에 까지도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앞서 설명드린 고등학교 시절 피켓을 하나 만들더라도 전 도화지에 찍찍 쓰는게 아니라 제작의 개념을 도입했어요. 제대로 만든 거죠.

 

언젠가 개콘 대기실에서 후배들에게 인사 받는 장난을 친 적이 있거든요. 후배들이 늘어나니까 인사 받을 일이 많더라구요. 조금은 개성있게 후배들 인사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죠. 첫 주는 ”그래 안녕~”이라는 피켓을 준비해 왔어요. 다음주에는 인사할 후배들에게 ”그래 안녕?”이라는 문자를 미리 보내기도 했죠. 그리고 피켓에 ”핸드폰을 보시오”라고 써놓는 거예요.

 

그 다음주에는 미리 카드를 만들어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죠. 후배들이 굉장히 재밌어 하더군요. 이것도 지겨워지니까 아예 인터넷으로 공모를 해서 일일 알바를 고용했어요. 오디션을 봐서 김대범 복제인간을 만든 거죠. 저랑 똑같이 옷을 입히고 대신 인사를 받게 한거에요. 하다하다 지쳐서 ”김대범의 인사개그 시즌1 종료” 피켓을 내걸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개그를 하나 하더라도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 게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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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곰곰히 당신의 개그성향을 살펴보면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해 선수를 칠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미디어 개그” 성향이 짙어 보인다

  

"그렇군요. 간판이나 피켓, 사진이나 동영상, 인터넷 댓글까지. 실제로 전 그런 것을 좋아해요"

  

_머리가 좋다고 생각하? 개그맨들은 지능지수가 높다고 하던데…

  

"학창시절에 높은 편이었다. 공부도 잘한적도 있었죠.(웃음) 실제 초등하교 6학년, 중1때 잘했어요. 맘 먹고 하니까 잘되더군요.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는데 ”공부는 수많은 사람이 가진 재능일 뿐이고 나는 개그맨을 하고 싶은데 왜 부를 해야 할까?” 지금생각해 보면 잘못된 건데…(웃음) 그래서 중2때 개그노트를 만들고, 개그맨이 되면 어떻게 웃길 것이라는 것을 적어가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그 노트를 만들고 있는데 두께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이만하죠."

  

_집안 환경도 도움이 됐나요? 어땠어요?

  

"그야말로 평범한 중산층 출신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그게 마음에 안들었을 정도니까요.(웃음) 솔직히 사연이 있는 집안이길 바랬던 것 같아요. 부모님들도 제가 개그하는 것을 마음에 안들어 했어요. 어릴적에 너무나 민폐끼치는 장난을 많이 해서 그런면도 있죠. 어릴 적에는 장난의 한계를 모르고 개그 하겠다고 나댄거 아니겠어요."

  

_도대체 멀 어떻게 장난을 쳤길래 그래요? 공소시효 다 지났을 테니 좀 풀어보시죠

  

"어휴 말도 못해요. 학원에 있는 긴 의자를 다 묶어 논다던지. 여자들 쫓아다니며 해꼬지 하고, 학원 애들부추겨 데모대 조직하고. 별 미친짓을 다 했다니까요. 장난 전화는 또 얼마나 했는지…"

 

_장난 전화야 다들 하는 거 아네요?

 

"저는 좀 남달랐죠. 장난전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친구를 속이는 목표였거든요. 일단 친구와 함께 장난 전화를 할 것을 모의하죠.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여자가 받으면 무조건 욕을 지껄이는 거죠.(죄송) 그리고 내가 했으니 너가 할 차례다고 암시를 주는 거죠. 그리고 전 그 친구 몰래 걔네 집에 전화를 거는 거죠. 그러면 친구 엄마가 받을 거 아네요? 그런데 그 친구는 그것을 모르니 다짜고짜 욕을 하는 거죠"

  

_(조금 어의 없지만) 창의적인 장난을 즐긴셈인가요?

 

"제가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 때가 고등학교 시절이에요. 제 자신을 최근 범람하고 있는 UCC의 선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니까요. 당시는 디카가 나오기 전인데, 제의 생각을 미디어에 담고 싶었는데 캠코더를 살 배짱이나 능력은 없고, 겨우 카메라를 하나 샀을 때죠. 친구들은 제 생각을 미친짓이라고 비난했지만 제가 친구들을 모아 굉장한 작품들을 찍어냈거든요.

  

예를들어 UFO를 사진을 찍는 거죠. 솥뚜껑 같은 것을 허공에 매달아 놓고, 전 맨인블랙 검옷 착용하고, 사진에 유에프오 발견현장이라고 적는 거에요. 그럴싸한 사진이 나오더군요. 이후 우리가 직접 연기를 해가며 ”마약 밀매현장” 같은 창의적인 사진들을 어 냈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을까 싶어요."

 

_대학을 강원도에서 나왔는데 말투는 조금 달라 보여요

 

". 경남 진해에서 나고 자랐는데 이후 강원도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녀서 그래요. 말투가 조금 섞였어요. 다시 고등학교는 부산 근처에서 다녔다가 대학은 강원도로 갔고 20살 이후부터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어요. 이 세지역 말투가 섞인 거죠.

 

_군 생활도 정신 없었겠군요.

  

"취사병으로 일했는데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 못해서 말 막내때 진짜 혼났죠. 그렇다고 개념 없다기 보다는 엉뚱했다고나 할까요?"

  

_외모는 군인 같이 생겼잖아요. 마치 헌병 같은데…군대에서는 어떻게 놀았나요?

  

"말 그대로 퍼포먼스를 많이 했어요. 취사병이었다. 일명 군대리아라고 불리는 군대 햄버거 있잖아요. 하루는 시내에 가서 롯데리아를 찾아갔죠. 정말 사정사정해서 롯데리아 햄버거 포장지 300개하고 모자와 앞치마를 사왔어요. 그리고 햄버거가 메뉴인만 기다렸다가. 취사병들에게 롯데리아 모자와 앞치마를 입힌거죠. 그리고 군대리아를 일일히 포장지로 다 쌌어요. 부대원들이 식당에 들어오는 순간 다들 깜짝 놀라고 박장대소 하더군요. 간부도 어이가 없어 웃는 거죠.

  

돈까스가 메뉴인 날은 레스토랑처럼 쟁반접시를 구해와서 식판이 아닌 진짜 레스토랑 처럼 먹게 만들었어요. 파격적으로 취사장을 운영한거죠."

  

_이런 건 독특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그맨을 위한 수행이나 연습으로 보여요. 실제 의식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 삶하나하나가 영화로 만들어질거다는, 일종의 과대망상을 가지고 살아온 거죠. 선생님에게 혼나면 ”아, 그는 혼이 난거였다”라고 혼잣말로 나레이션을 하는 거죠. 한마디로 미친거죠.흐흐"

  

_이순간을 재미있게을 재미있게, 그리고 이야기 거리를 미리 만들어 놓자라는 생각도 있었겠군요

  

"재밌다고 생각이 뇌리에 꽂히며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거죠. 군대 있을때 한 겨울에, 다들 추워서 방한복 입고 아침 점호 나올 때, 전 웃통 벗고 팬티만 고 나와서 사진 찍고 도망가는 식이었어요. 재미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거죠. 실천하는 행위가의 삶을 살자는 의지가 있었는데, 저의 그런 행동이 실제로 방송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대빡이가 3000빡을 약속하고 그것을 온라인 UCC를 통해서 지킨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한거지 특별한 의도는 없었어요. 대신 시청자들이 제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고 감동하는 것을 보고, 저도 눈물이 나기도 했죠." 

 

_ 언젠가 식품마트에서 온몸을 랩으로 칭칭 감은 냉동육 사진도 있었죠?

  

"제가 사진찍는 것을 즐겼어요. 동기인 황현희와 안상태와 함께 독특한 사진을 많이 찍었죠. 지하철에서 자살특공대라는 제목으로 지하 난간에 목만 내밀고 있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한 번은 대형 마트에 갔다가 닭이나 소고기를 부위별로 쪼개 팔잖아요. 그런데 그건 닭의 시점에서 보면 너무나 끔찍하더군요. 만약 우리 인간보다 강한 종족이 생긴다면 우리 인간도 푸라이드 휴먼이라는 제목으로 갈가리 찢겨 시장에 나오지 않겠어요?그게 바로 인간 냉동육 사진이죠.

 

대형마트 가서 사진좀 찍겠다니까 모두 거절하더군요. 그래도 아이디어 썪히기 싫어 동네 마트에 가서 사장님 설득해서 결국은 찍었어요. 제 몸을 칭칭 랩으로 감고 찍은거죠. 사진의 결과물에 전 대만족했지만 인터넷에 올리니 욕하는 분 30% 재밌다고 70& 은 혐오스럽다고 하더군요. 제가 늘상 그런 식이에요."

  

_행위예술가, 그러니까 개그라기 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깝군요

  

"맞습니다. 전 개그라는 장르가 큰 틀로 보면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인터뷰2 내일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 한국 젊은들의 개그 마인드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 만화 <멋지다 마사루-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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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딴따라 추구하는 '장기하와 얼굴들'—②

 

"토킹헤즈처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으면…"

 

 

장기하(26)씨는 붕가붕가 레코드라는 괴이한 이름의 신생 음반사 소속이다.그런데 이 음반사가 걸물이다. 2005년 서울대 안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벤처회사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학생들이 무슨 음반사를 만드냐고? 물론 기존의 음반사란 대규모 녹음장비와 방송국 인맥을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구상은 기존 회사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적게 쓰고 적게 벌자!"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아예 무자본 레이블을 선언한다. 녹음실은 빌리면 그만이고, CD는 있는 장비(컴퓨터)로 음반을 찍어 낸다는 생각이였다. 이른바 국내 최초로 시행되는 가내수공업적인 음악생산. 이는 대학생 스스로가 문화의 생산자이자 제작자임을 선언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런 구상이 실현 된다면 대학생들이 자신이 꿈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 레코드사는 2002년 건설된 ”관악포크협의회”를 모태로 시작했는데,  장기하는 자연스럽게 이 협의회의 멤버로 활동하며 독립음반사 소속이 된 것이다.  

 

 

 

_어째서 이렇게 이번 싱글앨범 사기가 힘들죠?

 

"수공업 음반이라서요."

 

_허허, 소문대로 직접 굽고 있는 건가요?

 

"네 실제 그래요. 100개씩 돌려서, 나오면 빼서 넣고 다른 사람이 분업해서 스티커 붙이고, 그렇게 직접 만들어요."

 

_하!(놀람) 실례지만 원가가 얼마나 되나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좀, 아는 분들은 대충 견적이 나오죠. 그렇다고 대량 생산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싸지는 않아요."

 

_많이 싸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하는죠?

 

"(대량생산에 비해) 싸지는 않을지 몰라도 초기 투자비용이 거의 없거든요. 지금은 씨디를 팔았기 때문에 회사 자산이 생기고 있지만 처음에는 무자본 레이블을 천명했어요. 우리는 그렇게 가겠다. 그 어떤 자본이 없어도 음악의 시동을 걸 수 있다. 그런 것을 실천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것의 시작은 붕가붕가 레코드였고, 그런 내용을 대표하는 말이 ”지속 가능한 딴따라” 예요."

 

_지속 가능한 딴따라라…의미심장하군요.

 

"이제까지는 음악을 하기 위해 투자를 받아야 하고, 프로덕션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그대로, 인지도도 없는 그대로, 통기타 하나 들고서 음악 할 수 있고 이어나갈 수 있는거죠."

 

&ap;ap;ap;ap;ap;l;b_멋있네요. 매력적이에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프린터로 이미지 복사해서 자켓 끼워넣어 공씨디로 구워팔면서 음악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라.

 

"네, 그런 방식이요. 저희는 사원이고 사장이고 다 같이 공정에 참여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즉석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죠. 씨디를 구워와서 케이스에 넣고, 스티커 붙이고, 바코드는 없어요. 그렇게 만들어 앨범 가격이 4000원이 가능한 거죠."

 

_이번 싱글을 파는곳이 향뮤직이랑 퍼플레코드 두 곳이죠?

 

"예스24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_어쨌건, 현재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간다는 건데요.

 

"그런 문제가 생겼어요. 인디에서 100장 찍으면 그거 파는 것도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지금은 수요가 많아져서 손으로 만드는 게 한계가 있어요."

 

_하루에 몇 장이나 만들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500장 만드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500장 만들어도 바로바로 다 나가고, 하지만 컨셉이 수공업이다 보니, 공장에 맡긴다는 것도 웃기고. 정규 앨범으로 가는 전초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대로 가려구요".

 

_정규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싱글의 3곡은 전부 수록 되나요?

 

"내년 초에 나올 것 같구요, 다 수록할 거에요. 편곡이나 사운드 메이킹은 손질을 할거구요."

 

_조금 주제를 바꿔서 음악산업의 대변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음악 산업에 대한 건, 저작권에 대한 얘기죠? 저는 불법음원은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다고 봐요. 인디쪽 사람들은 조금은 메인 스트림과는 이해관계가 다르잖아요. 주로 메이저 음반사분들이 이 얘기를 들고 나와서 저작권 사수를 하잖아요. 조금 다른 측면이 있어요. 블로그에 마음대로 올리는 건 안 되지만, 사실 그게 방송 출연이라는 키가 없는 인디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 건 부정적이지 않아요. 그러나 상업적 활동에 공짜로 써먹으면서 ”얘네는 인디니까 써 주는 것 만도 고맙게 생각하겠지”고 그냥 쓰는 건 별로예요.

 

_”달이 차오른다…”라는 가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던데요. 달이라는 게 성적인 것을 암시한다는 얘기들도 있어요.

 

"아…….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게 정답이겠죠."

 

_이 곡도 직접 쓰신거죠?

 

"노래는 2년 전에 만들었고 계속 편곡을 생각하다가 어떤 리듬이 좋을까 하다가, 작년 말에 편곡이 나왔어요.

 

_마음에 드나요?

 

"제가 싫었다면 공연을 안했겠죠."

 

_안무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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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골자를 짜오면 미미시스터즈와 디테일을 잡아요."

 

_안무를 담당한 ”미미시스터즈”가 요즘 화제인데. 미도리와 미역에서 <미미>를 따왔다는 글을 봤어요. 사실인가요?

 

"그에 대해서 저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라는 거에요. 그분들은 이름이 없어요. 둘이 합쳐서 미미 시스터즈죠. 미도리 미역은 낭설이에요."

 

_요즘 디씨에서 합성한 장기하씨의 이미지들을 보면 우스다 교스케의 만화 <멋지다 마사루>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책 제목은 들어 봤는데 실제 보지는 못 했어요."

 

_본인의 라이브 동영상을 보면 어때요?

 

"재밌는 거 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_그런데 어떻게 안무를 그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거죠?

 

"당연하게 제가 하는 건데요. 이왕 하는 것 태연하게 해야죠(웃음). 특이한 것 한다는 표정 지으면 멋도 없고 재미도 없고…."

 

_”…얼굴들” 그룹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제가 지었어요. 별 뜻은 없어요. 그 어감이 좋았어요. 그냥 떠올랐어요. 그런데 붕가붕가의 다른 사람들은 다 반대했어요. 이상하다고."

 

_”붕가붕가 레코드”보다는 훨씬 덜 이상한데요(웃음)

 

"하하. 그래요.제가한번 그 이름을 접었다가 첫 공연 포스터 만들기 전에 그냥 얼굴들로 적자. 그래서 확정됐죠."

 

_인터넷 평들을 살펴보면 공연 퍼포먼스에 대한 얘기들이 많아요. 춤이라던지, 미미 시스터즈의 유래던지, ”…얼굴들”의 명칭이라던지. 이런 음악 외적인 가쉽성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고 인기몰이의 한 이유가 된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계산을 한 건가요?

 

"계산이라기보다는 계획을 그렇게 한 거죠. 저는 밴드가 4~5인조 나와서 연주만 하고 가는 게 식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춤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시각적인 효나 청각적인 효과, 시너지 효과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_지금 하는 음악을 들어보면 어 음악을 들어왔을지 짐작이 가는데, 그래도 참 많이 들었을 질문일텐데…, 누구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역시 항상 배철수 선배를 먼저 거론해요. 제일 먼저, 왜냐하면 ”그” 니까요. 그렇다고 노래를 만들 때 꼭 ”배철수 같이 불러야지” 생각 하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그의 이름이 가장 떠올라요. 명곡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분 자체가 좋아요.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듣다보면, 음악 깔리며 그 분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잖아요. 그러면 내용이 안 들어 와요. 그의 목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는 거죠. 얼마 전에 배철수 선배님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했더니 그냥 ”고맙네” 하시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네요."

 

_배철수씨 이외에는요?
 

"당연히 ”산울림”의 주옥같은 노래 좋아하고요. ”신중현”도 좋아하고 ”비틀즈”. 비틀즈는 제 하나의 기둥이죠. 그리고 ”블러”도 있고, 특히 ”토킹헤즈”가 중요하고요."

 

_토킹헤즈라고요?

 

"저는 제 음악이 어떤 정도의 위상이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아주 건방진 발언일 수 있는데, 어느 정도 급이이라기 보다 토킹헤즈처럼 사람들에게 즐거움 주는존재였으면 좋겠어요. 토킹헤즈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팝의 모델이에요. 그리고 요즘은 킹크스 음반도 많이 듣습니다."

 

_킹크스라뇨? 당신 음악에서 킹크스의 그림자도 안보이던데….

 

"왜냐하면, 킹크스는 싸구려 커피 앨범을 만든 다음에 들었거든요(웃음)"

 

_아까 배철수씨에 대한 "한국적 락" 얘기를 했는데… 장기하씨 음악에도 비슷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걸 단순히 블루스 스케일만으로는 설명 할 수가 없는데요, 본인이 ”난 조선락을 하겠다” 는 결심을 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의도는 있어요. 애국심이 발로인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엔, 아무튼 이 세계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제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한국말이고, 그 한국말로 무엇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했죠. 그 답은 이미 많이 제시됐던 것 같아요. 7~80년대에 이미 ”이렇게 하면 된다” 는 노하우 리스트가 만들어졌잖아요. 근데 많은 분들이 그거대로 안 하잖아요. 이미 정립이 되어 있는 건데 말이죠. 저는 이 방법을 차용하고 싶은 거죠. 이게 아주 효과적이니까요. 음악으로 무엇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_그렇게 말 하면 그렇긴 한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들어왔던 음악의 상당부분은 백인들의 락 음악 아닌가요?

 

"그런데, 그 백인들의 락음악을 우리가 다시 한다고 했을 때 어느 방식으로 할 것인지…, 신중현 선생부터 해서 우리 선배들이 제시 했다는거죠. 저는 당시 뮤지션들을.. 유명한 분들 위주로만 들었지만 가끔 들어보면 그 당시에는 그게 상식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말의 음율을 보존해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 아무리 사이키델릭을 해도, 가사가 다르더라구요. 옛날음악 들어보면 그래요."

 

_1982년도에 태어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참 놀랍군요.

 

"운이 좋은 게 ”눈뜨고 코베인” 을 하게 됐다는 거에요. 제겐 가장 중요한 사건이죠."

 

_그 멤버들이 산울림을 주구장창 들었나요?

 

"까막귀라는 멤버가 노래를 만드는데 있어 영향을 받은 게 김창완이고, 그렇게 해서 결과물에 반해서 그쪽으로 완전히 선회한 사람들이 기타치고 베이스 치는 사람들이죠. 그 후에 저랑 키보드가 들어간 겁니다."

 

_자 앞으로 이 앨범이 얼마나 팔릴까요?

 

"그걸 제가 말 하면 우습죠."

 

_그럼 다시 물을까요. 얼마나 팔리고 싶어요?

 

"최대한 많이 팔리고 싶어요."

 

_100만장 팔린다면 커트코베인처럼 (존재에 대한)고민을 안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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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잠깐 머뭇거리며)그 때 가서 생각해 봐도 늦지 않을 거 같아요. 솔직히 현실성도 없잖아요.(웃음)"

 

_돈이란 매우 중요하잖아요?

 

"맞아요. 돈이 있으면 알바를 안 해도 되잖아요."

 

_지금 팔리는 걸로 대충 생활이 될 것 같은데… 알바를 해요?

 

"용돈을 안 받으려고 알바를 해요. 부모님께 얹혀사는 것도 감사하고 죄송한데, 서른이 다 되서 용돈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결례인거 같아요. 음악활동을 해서 경제적인 입신양명도 늦어진 감도 있으니까. 다른 일을 해서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용돈은 안 받아야 될 것 같아요."

 

그렇다. 그는 음악을 위해서 기꺼이 88만원 세대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수줍은 사랑을 기대하며 그리고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이 차오르는 그 날을 기다리는 20대 후반의 대한민국의 풋풋한 청년. 아, 그를 만나고 나니 다시 기타를 잡고 싶다.

 

 

 


 

송창식의 재림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를 받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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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고 CD굽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①

 

"지속 가능한 딴따라 하고 싶다"

 

 

첫 인터뷰는 최근 ”달이 차오른다, 가자!” ”싸구려 커피” 등의 도발적인 노래와 퍼포먼스로 폭발적인 인기(?),아니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장기하(26)씨다. 그는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노래를 두고 ”도발적이다”고 표현한 이유는 실제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혹감”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견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한국 포크”의 계보를 잇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락”의 전통이 흐른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전혀 새롭고, 그렇기 때문에 충격적이고 알싸하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읊조리면서도 때론 고혹적인 음성은 피로에 지친 청춘들에게 일종의 청량감을 안긴다. 그의 노래를 들어본 누리꾼들이 "그의 음악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수 장기하 / 출생 1982년 2월 20일 / 소속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 소속사 붕가붕가레코드 / 학력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 경력 2008년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멤버 / 2002년 그룹 ”눈뜨고코베인” 멤버

 

 

_독특한 음악이란 말 많이 들었죠? 인터넷에선 천재라는 얘기들도 많이 나돌아요.

 

"(헛웃음을 터뜨리며) 절대 그렇진 않습니다."

 

_그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항상 제가 하는 걸 대중가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길 바라죠."

 

_소위 말하는 음악성을 고집하겠다든가 하는 사명감이나 아티스트로서의 자각 같은 건 없다는 뜻인가요?

 

"음악이라면 다 음악성이 있잖아요. 어떤 음악인가가 중요하죠. 하나마나 한 것을 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실험적인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가요를 부르고 싶다는 욕심 뿐이에요."

 

실례일진 몰라도, 그리 대중성은 안 느껴집니다 

 

"지금 시점에서 대부분 분들이 생각하는 대중가요의 이미지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가요의 이미지가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겠죠."

 

_저는 장기하씨를 몰랐어요. 정 기자가 ”장기하 요즘 뜨고 있는데 인터뷰 한 번 해보자”고 하길래 어떤가 싶어서 음악을 들어봤죠. 솔직히 놀랐어요. 2008년에 이런 음악을 하는 가수가 인디쪽에 있구나 싶어서요. 두근거리더군요. 뭐랄까. 2008년판 80년대 대학가요제스럽달까. <싸구려 커피>를 들은 많은 블로거들이 ”이건 랩도 아니고 나레이션도 아니고" 라는 말을 하던데. 제가 들어도 그래요. 프리토킹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몇 번 들어보니 타령이나 창 쪽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전통음계라고 말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전통음계라…? 그걸 의식한건 아니고, 블루스 펜타토닉 스케일이 궁상각치우랑 비슷한 면이 있으니 그렇게 느끼신 거 같네요."

 

_”싸구려 커피”에서의 기타 프레이즈는 지미 핸드릭스 필도 납니다.

 

"지미 헨드릭스가 펜타토닉 스케일로 연주하곤 했으니까요… (꾸벅) 영광입니다."

 

_본인의 인터뷰를 보니 산울림이나, 신중현 씨 음악을 좋아했다고 말했더군요.

 

"어릴 적에는 아니에요. ”눈뜨고 코베인”이란 밴드를 시작하면서부터 접했어요. 대학 들어온 지 3년째 되는 때 시작한 밴드인데, 주축 멤버들이 산울림, 송골매등과 비슷한 음악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 쪽에 문외한이던 제게 그런 음악적 세뇌를 했어요."

 

_그 때는 드럼을 쳤는데 지금은 기타를 치네요?

 

"거기서는 드럼을 치고 있고, 지금 밴드는 제가 싱어송 라이터 역할이 메인이고 또 필요한 악기를 스스로 하고 있어요. 필요한 노래에서는 드럼도 치고. 춤도 추고…"

 

_악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통기타를 처음 배운 것 중1때였어요. 배웠다기보다는 그 때 무슨 이유였는지 부모님이 통기타와 교본을 사주셨죠. 그 때 보고 물어물어 통기타 코드 잡는 것부터 배웠어요. 전자기타를 산 시기는 수능 시험을 본 이후였어요."

 

_혹시 그 때의 장기하씨는 악보 펼쳐놓고 잉베이를 연주하던 소년이었나요?

 

"잉베이는 아니고…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핏은 따라했었죠(웃음)"

 

_이야기를 얼추 맞추어 보면요, 대학 3학년 전 까지는 그냥 통기타치고, 전자기타로 타브악보 따는, 그저 음악 좀 챙겨듣는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얘긴데요."

 

"밴드를 하긴 했어요. 지금은 교회를 안다니는데, 당시에는 교회를 다녔거든요. 교회 다니는 학생들은 중고등부에서 많이들 악기를 접하잖습니까. 저도 그런 케이스구요. 기타도 처음엔 다 교회 전도사 형에게 배웠어요. 어릴 땐 피아노 바이엘 떼고 체르니 시작하자마자 접었고…"

 

_눈뜨고 코베인에서는 드럼을 맡고 있다는데, 드럼은 언제…?

 

"고1때 처음 배웠죠. 교회에서 복음성가 자작곡을 만들기도 했구요."

 

_보통 밴드를 하는 사람들의 꿈은 ”언젠가는 원맨밴드를 해보고 싶다” 인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꿈은 없나요?

 

"확실히 그 꿈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하고 있는 거구요. <싸구려 커피>에 수록된 싱글 3곡의 연주를 제가 다 만들고 연주했으니까요."

 

_밴드의 편곡은 보통..  작곡된 곡을 함께 합해보서 이리저리 합하고 빼고 하며 완성하는 패턴이죠?

 

"우리 밴드는 제가 다 편곡까지 완성해서 가져가 같이 연습하는 편이에요. 녹음은 그 친구들이 직접 하구요."

 

_허헛. ”교회 다니다 보니 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뭐, 그렇다” 말을 참 쉽게쉽게 하시는군요.

 

"(하하) 실제로 그랬거든요."

 

_연주는 밴드하면서 배운다 쳐도, 작곡과 편곡은 그렇게 쉽게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요… 생각보다 그렇게 되더군요. 예를들어 고등학교 시절 HOT의 ”행복” 을 자연스럽게 음계로 따라 던 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랬던 적이 있어요. ”미파솔 라시라쏠…”하구요.

 

_청음 훈련도 따로 받은 적 없는데 말이죠? 일종의 상대음감이군요. 아주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악기를 배웠다면 몰라도…"

 

"어릴 적에 바이올린 학원도 좀 다녔어요. 피아노도 조금. 바이올린으로 ”나비야”를 켰던 기억이 나긴합니다."

 

_그 이후에 대위나 화성은 따로 안 배웠구요?

 

"그렇죠. 안배웠어요."

 

_안배운 것 치고는 펜타토닉 스케일 바깥쪽에 있는 곡을 많이 만들었다는 느낌이 나는데.

 

"그러고 보니 군대 있을 때 화성학 책을 뒤적이기도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처음에 노래 만들 때에는 몰랐죠. 일단 기타 코드 보고 연주 하 보니 그 흐름이 보이더라구요. C로 시작하고 Am이나 G가 나오고, 그게 A로 치환하면 머가 되고, 그런 것을 중심으로 F 에는 파라도가 있고. 그렇게 계속 했어요. 노래를 발견하다 보니 설명안되는게 있어요. 그래서 이론을 책 사서 보기도 했죠. 피아노를 악보보면서 치다 보니, 한계가 보이더라구요."

 

_거봐요. 화성학 공부한 거 맞네요.

 

장기하 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초에 이뤄졌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동안(童顔)이었고, 생각은 더욱 건강한 젊은이였다.

 

 

_곡들이 특이해요. 본인의 마인드는 ”내 능력껏, 스타일대로 곡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면 좋겠다” 같은데,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길 바라는 것” 치고는 예사롭지가 않아요.

 

"감사합니다."

 

_꼭 좋은 의미만은 아닙니다(웃음). 장기하씨 블로그에 실린 배철수씨의 인터뷰를 봤어요. 개인적으로 송골매 초기 곡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송골매가 팀이 가진 역량에 비해서 평단에서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은 팀이라고도 생각하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활주로 시절부터… 특히 ”탈춤” 아… 이런건 정말 죽~이죠 ."

 

_당시의 배철수씨는 딱히 한국적인 락을 하겠다는 사명감은 없었다고 하죠. 단지, 외국 것을 무작정 따라가지는 말자는 생각은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게 너무 감동적이에요. 저도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분 인터뷰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는 평범한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특별한 스스로를 평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물론 후자는 별로 없는데…, 배철수 선배님이 딱 그런 분 같아요. 배철수 님의 말씀 중에 정말 좋던 부분이 ”송골매는 좀 괜찮은 밴드였던 것 같습니다” 에요. 정말 그렇게 덤덤하게 말씀하시더군요."

 

_아까 인터뷰하기 전에, 매니저 분께 물어봤어요. ”장기하씨는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관심이 있느냐” 라구요. 근데 딱히 제대로 답을 못 들었네요.

 

"사회적 현상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정치적인 현상을 말하시는건가요?"

 

_예를 들자면 그럴수도 있구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보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럴 것 같으면 노래 안만들었다” 라는 시니컬한 대답을 하셨던데요.

 

"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 때 ”그거를 말로 하면 노래로 안 만들지 않았을까요?” 라고 진짜 담담하게 답한거였는데 기자분이 좀 시니컬하게 쓰셨더라구요. 제 의도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멋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_사회학과에 간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지금의 저랑은 많이 다른, 고3때의 장기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성적이 잘나왔는데, 학교 공부와 학문적 소질과 연관이 있다는 착각을 했어요.. 근데 실제로는 되게 없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하는 건 근성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고. 참을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_다른 과를 갔으면 하는 생각은 안 해 봤나요?

 

"대학 생활 하면서 얻은 게 많아요. 수업보다도 그 커뮤니티에 있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만난 사람들이 있으니 후회는 없어요. 하지만 사회학자가 되려는 생각은 버렸죠.

 

_뮤지션이나 아티스트의 길을 가겠다는 뜻 인가요?

 

"저는 항상 그 시기에 가장 재밌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게 음악이고, 지금 예상으로는 가수활동이 오래 이어질 것 같아요. 언젠가 (음악이)재미없으면 다른 것을 해야죠."

 

_조금 끈질긴 얘긴데요, 역시 이 얘기가 결정나야 인터뷰가 앞으로 나아갈 것 같아요. 정말 본인의 음악적 메시지나 사회성에 관심이 없다는 건가요?

 

"메시지라기보다는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마나한 말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골백번 한 말을 또 하면 피곤하잖아요. 사랑타령이라 해도 어떤 방식인지, 어떤 내용인가 중요하니까.

 

_그건 사회적 메세지와는 다른 개념의 얘긴 것 같은데요.

 

"메세지라기보다는 존재 가치나 이유, 그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거에요."

 

_포크나 락은 저항의 상징이었죠. 몇몇 선배 아티스트들은 ”시대에 영합한 채 사랑타령만하며 저항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어요. ”포크싱어는 이래야 한다, 락커라면 이래야 한다”는 정형성이 일부 존재하죠. 그런 메시지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사명감은 없나요.

 

"(단호하게) 전혀 없어요. 뭐가 원래 이래야 한다는 류에 대한 생각에 관심이 없어요. 역사상 한 시점에서 특정 장르가 특정 역할을 맡는거죠. 저항을 해야 한다. 해야 된다는 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저항하고 싶으면 하는거고, 불평하고 싶으면, 또한 찬사를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거고. 그렇게 표현하는 말이 존재의미가 있으면 그렇게 하는거죠."

 

 

_뮤지션들에게 ”쟝르” 얘기하면 다들 싫어라 하던데, 굳이 기존의 쟝르에 끼워 맞추면 무엇일까요?

 

"포크 락이라고 생각해요. 통키타 중심에 록밴드 편성을 갖췄으니까요. 실제 다들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_네, 누가 봐도 포크락에 가깝겠죠. 하지만 그런 분류에 만족하고, 또 수긍하시나요?

 

"글쎄요. 저 혼자 시작했고, 노래를 만든 이후에 밴드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 혼자 녹음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건반을 잘 다룰 수 없어서 건반 활용도가 낮아요. 익숙한 건 통기타죠. 드럼은 다룰 줄 알고. 베이스도 어느 정도 아니까요. 그 정도 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하면서 제 곡의 그림을 보니까 포크락 정도로 묶이겠다 싶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멤버가 짜여졌으니까 부탁할 수 있게 됐죠. 생각만 했던 걸 실현 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이제는 포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포크락이 중심이구요. 적어도 1집은 그런데 그 다음은 알 수 없는 일이죠."  

 

(인터뷰2편은 내일 계속 이어집니다)

 

 

<인터넷에서 선풍적인 패러디 열풍을 몰고왔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차오른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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