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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에서
▶ 걸쭉한 입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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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에 사는 이웃집 좀비"
10 평 남짓한 옥탑방을 주 배경으로촬영한 영화 ‘이웃집 좀비’. 순 제작비 2천 만 원이 든 초저예산 인디영화다. |
영화
‘이웃집 좀비’(2월18일 개봉)는 한국에서 흔치 않은 좀비영화다. 순수 제작비 2000만 원의 초저예산 영화임에도 지난해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일찍이 영화전문지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영화제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오영두, 류훈, 장윤정, 홍영근 씨 네 명이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옥수동 옥탑방으로 향했다. 동네사람들에게
‘영화 하는 집’으로 불리는 이들의 옥탑방은 동종업계 동료이자 부부이기도 한 오영두, 장윤정 씨의 살림집이자 키노망고스틴의 사무실 겸 영화
제작공간이기도 하다. 10여 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영화 ‘이웃집 좀비’의 8할이 촬영됐다. "금호역 ○번 출구에서 나오면 왼쪽에 카센터가 보이는데요, 그 카센터 뒤로 난 길로 20m 더 가면 Y자 길이
나오고, 또 거기서… (중략) 그러면 계단이 보이는데, 그 길을
올라오시면 됩니다." "계단 끝까지 올라가면 될까요?"(기자)"네, 계단 오르시다가 ‘좀 힘들다’
느끼는 지점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저희 작업실이 나옵니다."설명대로 몇 개 갈림길을 통과한 후 돌계단에 다다랐다.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가 ‘좀 힘들다’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진짜로 누군가 옥상에서 "여기요!" 외친다.
영화제작집단 키노망고스톤. 오른쪽부터류훈, 오영두, 장윤정, 홍영근. |
▶ 등장인물
소개오영두 : 35세, 남. 대학 재수 준비 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1995년 영화 ‘꼬리치는 남자’ 연출부로 영화판에 입문했다. 이후 10여 편의 상업영화에 미술팀과 연출팀으로 참여하고 4편의
단편 연출했다. 한 때 잠깐 영화일에 회의를 느끼고 호주 이민을 계획했으나 영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 아내 장윤정, 영화판에서
알게 된 류훈, 군대 후배 홍영근 등과
키노망고스틴을 만들었다. 첫 장편옴니버스영화 ‘이웃집 좀비’에서는 ‘틈사이’와 ‘도망가자’의 각본과 연출을 맡고, 전체 영화의 촬영과 미술,
편집을 담당했다.
류훈 : 37세, 남. 키노망고스틴의 최고령자이자
아이디어뱅크. 국내 유명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영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서울예대 재입학 해 영화 ‘텔미썸딩’의 제작부로 첫 현장경험을
쌓았다. 이후 시나리오 각색 작업 등에 참여하다 ‘작품이 엎어지는’ 불운을 몇 차례 경험한다. 4년간 훌쩍 해외 선교봉사를 떠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했고, 만화스토리작가 등을 겸업했다. ‘이웃집 좀비’ 에서는 ‘백신의 시대’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자신의 전 재산인 카메라와 편집장비를 동료
영화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장윤정 : 36세, 여. 영화 전문 메이크업아티스트. 1993년 처음 영화
분장일을 시작해, ‘정사’ ‘번지점프를 하다’ ‘가을로’ ‘집행자’ 등 20여 편이 넘는 장편영화의 분장을 맡았다. 남편 오영두 등과
키노망고스틴을 만들고 이사자금으로 쓰려던 곗돈을 깨 ‘이웃집 좀비’의 제작비를 지원하던 차, 감독으로도 참여하게 됐다. ‘이웃집 좀비’의
에피소드 ‘그 이후… 미안해요’는 그의 첫 연출 작품.
홍영근 : 33세, 남.
키노망고스틴의 막내이자 오영두의 군대 1년 차 후임. 청소년기 동네 비디오가게 비디오를 모두 섭렵하면서 영화인을 동경하게 됐다. 꿈을 잊고
생활인으로 살던 20대 후반의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열정으로 뒤늦게 동아방송대에 입학했다. 연기를 전공했지만 그 못지않게 연출에 대한 욕심도
크다. ‘이웃집 좀비’에서는 ‘뼈를 깎는 사랑’ ‘페인킬러’의 감독을 맡고, 무술감독을 겸했다.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지 않을 땐 배우와촬영스태프 역을 맡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 ‘틈사이’의 주연을 맡은 홍영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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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무엇이든 찍어야 한다"네 사람은 영화일을 하게 된 계기가 각기 다다르다. 예컨대
장윤정씨가 스무 살 무렵 메이크업아티스트 일을 시작해 우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영화 분장을 하게 됐다면, 오영두씨는- 마치 야구장 외야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공을 보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하루키처럼-재수학원에서 강의를 듣다 "어느날 갑자기 영화를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물한 살부터 영화 일을 하게 됐다.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오타쿠 기질이 다분하다"고 표현하는 류훈씨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마니아로 지내던 중 "대학 졸업 무렵 진짜 좋아하는 일을 고민하다" 영화판에 입문했고, 홍영근씨는 막연하게 영화 일을 동경하던 중 군대에서
오영두씨를 만나면서 실체적인 꿈을 꾸게 됐다. 각기 다른 계기로 영화에 입문했지만 어쨌건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꿈을 꿨던 네 사람은 한 때 영화판에 회의를 느끼고 해외에 나가거나 꿈을 포기하고 생활인으로 지내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하지만 "가족 혹은 종교와 같은"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왔다. 같은 꿈을 품었기에 죽이 잘 맞은 이들은 자주 옥탑방에 모여 꿍꿍이를 나누고 꿍짝을 맞추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어느 여름날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고민하기 보단) 현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든 찍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영화 제작을 위해 키노망고스틴이라는 영화제작집단을 만든다. 당시 류훈씨가 전 재산을 털어 HD 카메라를 비롯해 편집기기를 구입한 덕에
장비 걱정은 덜한 상황. 여기에 장윤정씨는 이사비용으로 마련했던 곗돈을
제작비로 내놓았다."곗돈을 1700만원 받았는데 사실 처음에 그 돈을 다 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쓰다
보니, 결국엔 그 돈도 모자라서 다시 일을 할 정도가 됐죠.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어떻게든 들인 비용만큼 남길 거라고 믿었으니까(웃음)."
(장윤정)
적은 제작비에 되도록 외부촬영을줄이고자 좀비 바이러스 설정을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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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바이러스 걸린 좀비여야만
했던 이유‘이웃집 좀비’는 키노망고스틴의 첫 번째 장편 옴니버스 영화다. 2010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초토화된 서울에서 숨어살고 있는 좀비들의 무척 인간적인 이야기를 6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담았다. 좀비인 남자와 숨어사는 여자의
러브스토리(‘도망가자’)나 백신이 필요한 좀비와 거대제약회사 싸움(‘백신의 시대’), 과거 좀비였던 남자와 좀비에게 부모를 잃은 여자의
이야기(‘그 이후…미안해요’), 본인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모른 채 마감시간과 싸우는 한 작가 이야기(‘페인킬러’) 등… 이들의 영화 속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졌지만 늘 숨어 지내고 쫓기는 사회의 약자다. 혹자는 이들의 영화를 ‘한국형 좀비물’이라고 칭했다.
- 한국영화 중에 좀비영화로는 최초인가요?"아니요. 80년대 ‘괴시’라는 영화가 있어요,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또 2006년 옴니버스 영화 ‘어느 날 갑자기’의 한 에피소드로 좀비 얘기고요. 다만 좀비를 전면에 내세워 알려진 영화는 우리가 처음인 것
같아요."(홍영근)- 좀비영화를 원래 좋아했나요?"사실, 영근이만
좋아해요. 단편 소재로만 생각했다가, 좀비와 관련해서 아이디어가 여러 개 나오다 보니 에피소드를 엮어 옴니버스 식으로 잇기로 한 거죠. 윤정이가
분장 전문가니까 특수 분장도 가능하고,
한국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은 소재니까 왠지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또, 가능한 한 외부촬영을 줄이려고 좀비 바이러스가 있다고 설정
했어요."(오영두)- 영화 보면서 좀비 바이러스 얘기에서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떠올랐어요. 영화 촬영 할 때는 아직
신종플루가 출현하기 전일텐데…."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저희도 엄청 놀랐어요. 훈이 오빠가 생물학과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해 많이 알긴 했어요."(장윤정)
‘이웃집 좀비’는 좀비를 영화 전면에내세운 흔치 않은 한국형 좀비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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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모든 길은 DIY(Do It
Yourself)로 통한다이들은 2008년 9월 말 촬영을 시작해 2009년 1월1일 새벽 서울 명동거리를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촬영을 마쳤다. 외부에서 촬영한 ‘백신의 시대’를 제외하고 각 에피소드들의 평균 촬영 기간은 이틀에서 사흘. 촬영 기간
동안에는 배우들과 함께 숙식을 했다."눈뜨면 하는 말이 ‘카메라 충전됐어?’ 였어요. 잠옷 입은 상태에서 찍을 분량을 점검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틈에도 촬영을 했죠."(류훈)자신의 작품에 감독 뿐 아니라 서로의 작품의 배우이자, 스태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카메라를 잡으면, 다른 사람이 옆에서 보조하고, 다른 사람은 붐 마이크를 들고… 심지어 배우도 그냥 놀 수 없어요.
손이 부족하니까."(홍영근) - 카메라 말고 다른 장비들은 어떻게 조달했나요?"많은 경우 DIY,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어요. 예컨대 전문 조명 대신 형광등 몇 개 분리하거나 공사장 작업등을 이용했고, 마이크 붐대가 없어서 청소용 막대를 따로 떼서 만들기도
했어요. 심지어 와이어 같은 스턴트 장비가 없어서 카메라를 배우에게 묶고 뛰게 했는데 너무 위험한 짓이라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사고 안 나서
너무 다행이죠."(류훈)- 제작비 중에 가장 많이 들어간 비용은?"밥값하고, 배우 비용이요. 한번 모이면 70만원
정도 깨져요. 특히 외부 촬영이 많은 ‘백신의 시대’ 때는 밖에서 2주간 먹고 자고 촬영까지 하느라 돈이 많이
깨졌죠."(장윤정)- 조금 불안한 생활인데, 주변에서 걱정하진 않나요? "걱정은 많이 하죠. 대신 저희는 재미있는
일을 하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더라도 남들과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벤츠를
몰고 가는 것과 내가 마티즈 몰고 가는 것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거죠. 명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삶이 즐거워지는 건
아니니까."(오영두) ▶ 절정: 좀비, 일본까지 떴다네 사람은 ‘이웃집
좀비’를 비롯해 자신들이 만드는 영화가 철저한 상업영화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웃집 좀비’ 역시 대중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 편집을 하는
데만 4개월 가까이 걸렸다. 당시 지인을 비롯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여기에 10여 년 간 영화판서 쌓아온
인맥을 통해 디지털 후반작업과 영화음악, 사운드 문제 등을 해결했다. 최근 인디스토리와 배급계약을 맺기 전까지 이들은 ‘이웃집
좀비’의 홍보와 마케팅도 DIY 방식으로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예고편 영상을 만드는 것부터 전단지 디자인까지 모두 네 명의 감독과
주변 지인들의 힘을 빌려 해냈다(예컨대, 이웃집 좀비 1차 예고편에 등장했던 개그맨 김경진의 경우 홍영근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섭외했다고).
영화 ‘이웃집 좀비’는 최근 경사가 겹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의 영화 배급사인 엑설런트 필름스(excellent
films)에 선판매해 개봉 전 실제작비를 뛰어넘는 수익을 거둬들였고, 25일 개막하는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도 초청된 만큼 북미시장
수출도 기대되고 있다. "우리끼리 자주 하는 얘긴데, 마치 영화가 생명력이 있어서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갈 길을 가고 있는 거
같아요."(장윤정)
‘이웃집 좀비’는 키노망고스톤이 제작한첫 번째 장편영화다. |
▶ 결말: 이웃집 좀비는
현재도 진화 중영화가 좋아 20대와 30대를 고스란히 바쳤고 "매년 1년에 한번씩, 죽기 전까지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키노망고스틴 네 사람은 요즘 그래서 살맛이 난다. 좀 더 일찍 기회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5년 늦게 하고 10년 더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을 거 같다"고 말한 이들의 뚝심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나요?"글쎄 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치밀하게 계획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에요. 이웃집
좀비에 이어 이웃집 외계인이 될 수도 있고…(웃음). 확실한 건 저희는 영화를 찍는 그 순간순간 너무 행복했다는 거에요. 그 이유로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거죠."(오영두)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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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와 독립영화가 사랑하는
여배우● “‘요가학원’의 실패 ‘까페
느와르’로 반전 노려”● 순진한 모범생에서 독한 연기자로…“와인처럼 살고
싶어요”
김혜나는 쉽사리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배우다.
|
시나브로 포근해졌다. 입춘이 지나고 설을 앞둔 어느 날, 그녀는 상긋한 봄처럼 다가왔다.
김혜나라는 ‘봄의 여신’은 어떤 존재일까? 봄의 색깔이 하나가 아니라 다채로운 꽃밭이듯 그녀 또한 팔색조 같은
마력을 뿜어냈다. 카메라를 향해 몸으로 이야기할 때는 도발적인 분위기를, 대화를 나눌 때는 분명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뜨거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누구라도 여배우를 바라보면 ‘몇 살일까?’ 하는 생물학적 의문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서른 둘인 그녀의 내면에선 10대 소녀와 20대 숙녀, 그리고 30대 여인의 영혼이 복합적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이미
15편의 영화와 두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아직도 김혜나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하는 신중함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올해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와 김대승 감독의 ‘연인’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일찍이 적잖은 예술영화 출연으로 동료들로부터
‘독립영화의 여왕’이란 영예로운 칭호까지 받은 그녀다. 김혜나가 맡았던 캐릭터에서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그녀는
작품마다 녹아들어 본연의 자신을 감춰왔다. 장미인가 하면 백합 같고, 진달래인가 하면 유채꽃 같은 배우 김혜나의 참 모습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김혜나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성격까지 싹싹한 도시형
미인이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 먼저 시작된 사진촬영 광경을 구경하노라니, 어떤 패션이라도 눈도 깜짝 않고 능숙하게 소화할 것 같은 도전적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실물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게다가 언뜻 포털사이트에서 본 프로필 사진에 불만이
생겼다.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여배우를… 인터넷은 왜 실물의 미학을 반영하지 못하나."
그녀는 한국 영화계가 숨겨놓은 보석 같은존재다. |
▶ 동료
배우들이 인정한 독립영화의 여왕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녀의 이미지는 시시각각
변했다. 진짜 얼굴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마치 중국의 변검술사처럼 김혜나라는 인물은 한두 가지 컨셉트로
정리하기 힘들었다. 결국 ‘설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자 김혜나는 물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0년 가을에 태어난 그녀는 2001년 독립영화 ‘꽃섬’에 주연으로 데뷔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극중 인물의
이름도 ‘혜나’.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출연한 상업영화는 적지 않다. 2003년 ‘거울 속으로’를 비롯해 ‘아는
여자’ ‘신부수업’ ‘레드아이’ ‘역전의 명수’ 등을 두루 거쳤다. 2008년에는 엄마 봉순(김해숙 분)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축! 우리사랑’에서 봉순의 딸을, 지난해 개봉작 ‘요가학원’에서는 얽히고설키는 여성의 욕망을 연기했다. 개봉을 앞둔
‘카페 느와르’와 ‘연인’까지 치면 매년 평균 한 편의 작품에 출연한 셈이다. 대중이 잘 모르는 다양한 독립영화까지 합치면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더욱 풍성해진다. 10년간 15편에 출연한 강행군이었다. 그 사이사이 쉬지 않고 연극무대에도 섰으며 KBS 드라마 ‘못 말리는
결혼’(2007~2008년)에도 얼굴을 비쳤다. 지금은 안방극장에서 주부들을 울리고 웃기는 KBS 아침드라마 ‘다 줄 거야’에서 열연 중이다.
무슨 연기를 뽑아내는 기계도 아니고. 이쯤 되면 인터뷰 장소에 진한 다크 서클을 눈가에 드리우고 피로에 찌든 히스테리를 달고
나타날 만도 한데 눈앞의 그녀는 밝게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올해 ‘까페 느와르’로 관객을찾을 예정이다. |
▶
"김혜나는 카멜레온이다"- 김혜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한 단어로 표현해주세요."어? 첫 질문부터
너무 센데요? 어렵다. 음, 좋아요. 카멜레온? 저는 계속 변해왔어요. 지금도 변하고 있고요." - ‘천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그렇다고 말씀드리긴 쑥스럽고. 결국 자기자랑으로 시작했네요.(웃음) 10년 넘게 활동했고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
일반 관객이 저를 쉽게 못 알아봐요. 저는 어떤 작품에서든 캐릭터에 녹아들어요. 그래서 제가 나오는 영화를 여러 편 본 분들도 등장인물이 모두
저라는 걸 연결짓지 못하시더라고요. 제가 봐도 신기할 따름이죠." - 그래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첫 작품부터 징조가 있었어요.(웃음) 데뷔작 ‘꽃섬’ 시사회 때 제 모습이 담긴 엄청나게 큰 포스터 앞에 감독님과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관객분이 와서 감독님께 사인을 받더니 이 여배우는 왜 함께 안 왔느냐고 묻는 거예요. 제가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여배우가 ‘이게 저예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김혜나는 극중 캐릭터와 실제인물이 대중의 인식에서 분리되는 이런
기현상이 10년 동안 줄곧 이어져왔다고 토로했다.▶ "될성부른 떡잎?"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내 청춘에게고함’ |
- 카멜레온의 끼를 감지한
건 몇 살 때쯤이었나요? 성장기 얘기를 들려주세요."그게 말이죠…,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요. 학창생활 내내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하고
말도 별로 없고, 친구들과 나가 놀지도 않고, 조용한 아이였지요. 틈나면 책이나 읽고. 연기를 한다는 건 주변에서나 저 스스로나 생각도
못해봤어요."- 끼를 늦게 발견했군요."아, 생각난다. 다섯 살, 여섯 살 땐가 찍은
사진이 있어요. 제 여동생과 둘이 찍은 사진인데 멋진 소파에 제 동생이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고 저는 옆에 서서 울고 있어요. 엄마한테 ‘이게
무슨 사진이야?’ 물었더니 서로 의자에 앉겠다고 싸웠는데 제가 동생한테 얻어맞고 졌대요. 여동생에게도 지는 순진한
애였어요.(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연기를 전공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진학하게 된 건가요?"고등학교
때 전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결사반대를 하셨어요. 평범한 거 하라고, 그래서 국문학과를 갈까도 생각하다가 고3 때 본능적으로
예체능반에 갔죠. 대학 지원 때까지 진로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도 아닌 생물선생님이 불러서 한예종이란 대학이
있는데 원서를 내보라고 알려주셨죠. 그래서 내봤는데 덜컥 합격한 거죠." - 그렇다면 나중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게 되면 생물선생님을? "당연하죠!" - 지원은 그렇게 했다 치고 어떻게 합격을 했나요? 경쟁률도
엄청났을 텐데…."우연의 연속이죠. 제가 그때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날티 나게 입었어요.(웃음) 다 선발하고 저와 미모의
한 여학생이 남았는데 교수님들이 한예종에 날라리도 하나 있어야 한다고, 저를 뽑았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날라리는커녕 숫기 없는 아이였던 거죠.
어찌됐건 한예종의 창립 정신과 잘 맞아떨어지는 합격생이었던 셈이에요."
그녀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출신교인‘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
▶
"김혜나의 변신은 무죄"- 그런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요?"대학 첫 학기도 고등학생처럼
생활했어요. 시키는 것 얌전하게 하고, 친구나 선배가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그런데 스스로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한 아이로
고마워하기보다는 이용하기 좋은 아이? 그런데 한 학기 지켜본 교수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 잘해야 돼. 네가 잘못되면 널 선택한 내가
잘려’, 그래서 첫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 개강하자 전 강의실 앞에 나가 선언했어요. ‘나 이제부터 싸가지 없어질 테다!’(웃음)"
- 반응은? "친구들은 피식 웃었죠. 하지만 졸업할 때 다들 ‘너 그때 못돼 지겠다고 하더니 진짜
못돼졌다’고요, 저는 인정했죠.(웃음)"- 이젠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나요?"아뇨. 전 천성이 내성적이고
차분한가 봐요. 하지만 연기자로선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거죠. 독립영화 배역들이 아시겠지만 뭐 낙태한 젊은 여성, 열악한 환경에서
몸부림치는 터프한 역에 독한 인물, 이런 거잖아요? 배우가 극중에서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촬영 내내 그 캐릭터를 가슴속에 담고
생활해야 해요. 처음엔 역할을 소화해내기 힘들어 진짜 많이 울었어요."▶ 개봉 대기 중인 ‘카페
느와르’- 지난해 개봉된’요가학원’이 흥행에 실패했어요. 배우 입장에선 안타까울 텐데…."흥행에
연연하지 않아요. 전 주로 대본을 읽고 출연작을 결정하는 편인데 제가 함께한 작품들은 다 대본이 좋았어요. 캐릭터도 살아있고. 초기에 1년을
기다려 출연한 ‘거울 속으로’도 그랬고, ‘요가학원’도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소름이 돋았어요. 개봉 후 반응에 전 별로 신경 안 썼는데 동료들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대박 났다고 한숨을 쉬더군요."(여기서의 ‘대박’은 흥행이 바닥을 쳤다는 반어법이다) - ‘거울
속으로’ ‘레드아이’ ‘요가학원’ 등 공포물 출연이 많은데 혹시 호러퀸을 꿈꿨던 건가요?"그런 건 아니고요. 공포영화
촬영이 재밌어요. 특수 분장에 피도 튀어있고, 뭔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높아요. 귀신 분장하고 감독님 놀래주는 것도 신나고.(웃음) 코믹영화는
볼 땐 재미있지만 현장은 반대로 지겹거든요. 호러는 재미있어서 해요. 연기의 생동감과 만족도도 높고요."- 이제 개봉을 앞둔
‘카페 느와르’ 얘긴데요. 걱정이 많아요. 몇 분짜리 필름이죠?"2시간 78분요." - 네?
"2시간78분. 그러니까 3시간18분이요.(웃음)" - 큰일이네요. ‘아바타’보다 길군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아요. 감독님은 딱 맞게 찍었다고 하셔요. 여운이 오래가고 곱씹어볼수록 좋은
작품이에요. 잘될 거라고 믿어요. 꼭 보세요."’카페 느와르’는 한국 영화평론가 1세대인 정성일씨가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한 것이다. 김혜나는 신하균, 문정희 등과 함께 이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정성일씨의 평론으로 난도질당했던 한국 영화제작자와 감독들이 일전을 벼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씹기만 해온 당신은 얼마나 잘 만드는지 보자’라는 심리이리라.▶ 김혜나의 컴플렉스
영화 ‘요가학원’에서 유경 역으로 출연한김혜나 |
-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넘나들고, 무대에도 서고 전문배우로서는 행복한 삶이네요.이 대목에서 김혜나는 잔뜩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모르시죠? 저 뮤지컬도 했어요."
- 엇, 노래까지? "그런데 말이죠. 제가 노래가 안돼요.(웃음)" -
뭡니까 그럼, 어떻게 뮤지컬을 하세요? "뮤지컬 ‘그리스’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었는데 연출자께서 제 노래를 들으시곤 노래가
별로 없는 역할로 빼시더라고요.(웃음)" - 그럼 앞으로 뮤지컬은 안 하시겠네요. "도전해야죠. 제가
노래가 꽤 늘었어요." - 노래방 애창곡은요? "이은미씨 노래들. ‘헤어지는 중입니다’ 같은 신곡도
좋아하고 ‘애인 있어요’도 부르고요."김혜나는 ‘이해할께’를 부른 가수 김현성과 커플로 알려져 있다. 남자친구가 가수여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고 답한다. 국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배우는 배종옥, 해외 배우로는 메릴 스트립이라고
했다. 역시 인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연기의 도를 틔우는 지향을 드러낸다. 배우 김혜나는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데뷔작 ‘꽃섬’으로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그녀를 슬럼프에서 끌어내준 작품 ‘내 청춘에게 고함’과 ‘허스(Hers)’로 전주국제영화제
JJ 스타상을 받고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2009년에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단편영화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흥행하기
쉽지 않은 영화 ‘카페 느와르’를 꼭 보라기에 "왜 꼭 봐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제가 연기를 너무 잘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혜나.
그녀는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에 몰입해 즐기는 것이 바로 ‘행운을 만드는 법’이라고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더 맛과
빛을 발하는 ‘와인’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단다. "저는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과는 안 친한 것 같아요. 대신 천천히 오래
성장해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지켜봐주세요."
최영일/ 문화평론가
vincent2013@gmail.com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와 MBC 시트콤에 캐스팅● "골미다 너무 재미있게 촬영, 망가지는 게 뭐
어때서…"● "제가 40대에 추는 춤은 비노쉬보다 더 나을
것"꽁꽁 얼어붙은 회색 빌딩 사이로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걸어온다.
그녀만큼 붉은색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주위 공기까지 생기발랄하게 만들
정도로 화사하다.
일견 농염한 매력의 소유자(영화 ‘생활의 발견’)이지만 뒤돌아보면 아이 같은 천진함(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을
지닌 배우.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를 통해 칸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녀를
만났다. ▶"임권택 감독의 캐스팅 제안에 눈물 흘렸다" 천년 세월을 견디는 한지(韓紙) 장인들의 얘기를 담을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
예지원(37)은 주인공 박중훈의 부인 역으로 캐스팅됐다. 선천적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한지 복원 과정에서 점차 치유되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여인이다. - 임권택 감독과는 첫 만남일 텐데…."얼마 전(1월12일) 출연이 확정됐고 20일에 촬영이
시작돼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니까요. 한때 ‘독특한 역할 전문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내 생애 최고의 역을 맡은
것 같아 흥분을 감추기 어렵네요."- 올해 ‘일복’이 있으세요. MBC 시트콤에도 출연하신다면서요.
"네. ‘지붕 뚫고 하이킥’ 후속작으로 3월부터 촬영할 예정이에요. 2006년 KBS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대중성을 갖게 됐기에 이렇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 직업배우로서 성취하고 싶은 게
있다면…."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웃음). 사실 오랫동안 개런티 낮은 예술영화를 해왔잖아요. 그런데
어느새 제가 배고픈 후배들을 챙겨야 하는 위치가 됐더군요. 제 욕심껏 밥과 술을 사고
싶은데…(웃음)."- 만일 ‘칸 레드카펫’과 ’10억 받기’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면…."당연히 칸이죠. 영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할 때 저는 프랑스 진출을 준비할 정도였어요."▶ "돈 많이 벌어 후배들 밥 사고
술 사는게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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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5℃ 혹한이었다. 야외가 아닌 게 천만다행. 명품브랜드 본사의 지하카페에 나타난 예지원은 날씨에 아랑곳 않고
당당했다. 자태는 자못 도도한데…, 자리에 앉자마자 매니저 언니와 나누는 수다는 영 딴판이다. "나 변장 괜찮게 먹었어?"
"응, 오늘 괜찮다, 얘." 예지원다운 분위기였다. 그녀가 누구던가? 바로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골드미스 다이어리’의 그
예지원이 아닌가. 그녀는 두 얼굴을 지녔다. 한 꺼풀 벗겨보면 더 많은 모습이 나올 것만 같다.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나이를 잊은 4차원
소녀가 있는가 하면 예의 바르고 배려심 많은, 한없이 이타적인 천사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자, 그럼 이제 아이스크림을 얹은 바나나 크레페와
얼그레이 티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대화를 시작해보자. # 프랑스?- 프랑스통으로
알려져 있는데요."방송가에서 유명해졌는데 특별하게 메이킹된 경우도 있지만 제
성향도 반영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기 위해 샹송을 연습했던 거예요. 그런데 누구나 프랑스 좋아하지 않나요? 왠지
공기부터 다르잖아요. 자유로운데다 특히 여성이 당당하잖아요. 어떤 차림을 하고 다녀도 별로 눈길을 받지 않지요. 게이건 레즈비언이건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존중하고요.
거리를 오가며 어느 장면을 봐도 그림이 나와요. 그런 거 있죠? 다니는 사람들이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생생한 캐릭터들.
불어로는 아니마시옹. 한번 다녀오면 눈이 바뀌어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는 좀 다르죠. 전 어릴 때부터 특이한
패션으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자랐어요. 그런데 ‘빠롤레~’만 부르면 제가 4차원이라니. 어, 내가 왜 4차원이지?"이런, 그녀가 먼저
4차원이라는 말을 꺼내버렸다.# 4차원예지원만의 4차원 끼는 대중에게 익숙하다. 그녀가 영화와 방송에서
맡았던 캐릭터들, 예를 들어 ‘생활의 발견’에 등장하는 명숙은 남편이 있으면서도 여행 중인 주인공 경수를 유혹하고, 진심이 모호한 헷갈리는
여인이다. 시트콤과 극장판 영화로 예지원을 가장 널리 알린 ‘올드미스 다이어리(올미다)’에서도 자신만의 판타지에 빠져 사는 노처녀였고,
‘귀여워’의 순이는 아스팔트 위의 집시로 콩가루 삼부자 집 단칸방에 끼어드는 이상한 여자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녀는 노래를 시키면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샹송을 부르고, 시시때때로 전공인 무용을 펼치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무드에 빠진다.-
4차원 이미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진실과 설정의 경계는 어디인가요?"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튀었나봐요. 전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다들 반응이…." - 어땠는데요? "뭐,
눈살 찌푸리고, 경악하고, 그러다가 서서히 무시당하고 외면당했죠. 그래도 전 별로 신경 안 썼어요." - 도대체 어떻게
입으셨기에? "특별히 고수한 스타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날그날 느낌에 따라 빨강바지가 입고 싶으면 그냥 입고, 반짝반짝
액세서리를 걸고 싶으면 주렁주렁 걸고 그런 거죠 뭐."(특유의 쾌활한 웃음)그녀는 자신이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이라고, 맹한 구석이
많다고 말하면서 계속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아니 ‘추구’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만의 본성이 내숭 없이 솔직하고,
한없는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의례적인 인터뷰 질문에 연신 틀을 깨버리는 답변으로 자신을 열어보였다. 그녀의 4차원성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만연해 있는 근엄주의와 관습,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야만 하는 타성을 마치 무중력 외계인처럼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근원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쩌면 그녀가 걸려있다는 4차원 병은 하나는 자유지향, 또 하나는 예술지향이라는 성향의 바이러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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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예술병?그녀가 또 예의 그 몸짓을 하며 속삭인다. "제가요, 예술병에 심하게 걸렸었거든요."-
예술병? 그건 또 뭡니까?"제가 예술에 미쳐요. 프랑스를 좋아하는 것도 거기서 나온 거죠. 예전엔 예술영화만 찾아 봤어요.
신기하죠? 예술에 미쳐서 예술가들 많이 따라다니고. 그런데 예술의 ‘예(藝)’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뭐라고 답해야 할까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녀가 먼저 말해버린다. "저도 몰라요.(웃음) 제가 지식과 별로 안
친하다고 얘기했죠? 그렇다고 교수도 아니고요."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느낌으로 예술에 미쳐 스스로 예술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하는 여자. 그런 그녀에게도 동경하는 아이콘은 있을까. "줄리엣 비노쉬요. 제일 좋아하는 배우. 요즘은 좀 사그라졌는데
작년에 그 공연 보셨어요?"그녀가 말한 줄리엣 비노쉬의 내한공연은 2009년 초 안무가 아크람 칸 연출로 무대 공연된 무용극
‘In-I’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비노쉬는 전문무용수가 아님에도 1년간 아크람 칸과 땀을 흘리며 호흡을 맞춘 결과 세계 순회공연에 나선 바
있다. "네! 정말 감명 받았어요. 나이는 상관없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그 노력. 그리고 그 표현.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고선 다시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나의 오만함으로 감히 말씀드린다면 제가 40대에 추는 춤은
비노쉬보다 더 나을 거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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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그녀는 예고시절부터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서울예대에 진학해서는 방송연예학과에서 연기를 배웠지만 무용은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무용뿐 아니라 재즈댄스와 현대무용까지 그녀는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문법에 심취해 있는 듯했다. "이 대목에도 저를
4차원으로 말씀하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이들 헬스에 다니시잖아요? 헬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좋은 운동이지만. 무용은
또 다른 차원이랍니다. 몸을 풀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죠. 그런데 연예인들이 헬스에 다니는 것은
당연하고, 무용을 하는 것은 특이하다? 전 절대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요."- 무용이 배우란 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물론이죠. 같이 몸을 쓰는 직업이잖아요. 스트레칭 하면 아이도 잘 낳고요(웃음). 또 몸이 말을 해주기도 하고
기억하기도 해요. 그래서 몸을 따라서 감정이 움직이기도 하죠. 그런데 춤을 춘다면 다들 이상하게 봐서. 한때 외국에 가려는 생각까지
했어요."그녀의 생각을 지지한다는 의도로 기자의 어머니도 오십이 넘어 무용을 배우셨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갑자기
대화 주제가 춤이론에서 여성론으로 옮아갔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는데 그렇게 됐다. 대화 주제는 그렇게 통통 튀었다. 분명한 건 그녀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빼놓지 않고 봤다고 고백하면서 그렇게 됐다는 점이다. "미실 역에 푹 빠졌어요. 신라시대가 여성이 중심이 되는
모계사회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미실과 선덕여왕…, 생각해보면 우리 여성들이 그간 너무 억압돼 있던 것이 아닐까요? 현대에 들어
여성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나라도 다시 융성해졌잖아요.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요?(웃음)"# 예능 그리고
2010년그녀는 2009년 SBS 예능 프로그램인 ‘골드미스가 간다(골미다)’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특유의 끼를 맘껏
펼쳐 보였다.- 영화배우가 버라이어티 프로를 한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요."예능이 대세잖아요(웃음).
사실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데뷔 초기부터 일본문화를 부러워했어요. 일본에선 톱배우들도 예능프로에 나와서 대머리 가발 쓰고
망가지거든요. 배우이고 연예인이니까 대중도 그것을 재능으로 인정하고 함께 즐겨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예능 한다고 하면 ‘쟤는 배우로서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 주눅 들게 만들어요."- 주눅 들지 않던데…. "그럼요. 전 똑똑한
편은 아니지만 주변에 재능 있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보는 재능을 가졌어요. 아마 그런 재주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을 수도 있죠. ‘골미다’에서 만난
송은이 신봉선에게 홀딱 반해버렸어요. 제가 TV를 잘 안 봐서 몰랐는데 세상에 그런 천재들이 없는 거예요. 높은 시청률 기록하며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죠."그녀에게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인터뷰가 있기 하루 전 점심을 먹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올해 연극을 하나 하려고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화가 와서 영화에 캐스팅되었다고…, 너무 기뻤죠. 임권택 감독님
작품이에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이 ‘천년학’에 이어 101번째로 만드는 영화다. 전통한지를 만드는 장인에
얽힌 이야기로 박중훈, 강수연의 출연이 알려졌고, 드디어 예지원은 한지 장인 박중훈의 부인 역으로 주요 배역에 낙점됐다. 최근 예지원은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후속작에도 출연이 확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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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엔 생산(生産)곧 40대인
그녀, 40대를 맞이한 꿈이 뭐냐고 물으니 고개를 낮추고 이렇게 속삭였다. "생산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생산’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책무라는 것이다. 참 당황스러운 얘기, 얼떨결에 물었다. - 남편이 있어야 아이를 가지실 것 아닙니까? 어떤 타입을
좋아하세요? 역시 예술가?"예전엔 그랬죠. 하지만 이젠 싫어요. 그렇게 되면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재능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서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화가는 절대 아니고요, 시인은 저의 모자란 머리를 채워줄 것 같고, 음악가라면 삶이
즐거울 것 같고…." 사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역할을 한 사진기자였다. 인터뷰 중 그녀와
사진기자의 시간은 인터뷰어가 지켜보기엔 서로 몸으로 대화하는 교감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사진기자에게 살짝 질투심이 생겼다.
최영일 vicent2013@gmail.com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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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하트’로 유명한 강영민(38)은 TV나 인터넷 매체보다는 화랑이나 미술전문지에 더 많이 등장하는,
그래서 ‘대중문화전문’ 카테고리로 다루기엔 조금 어색한 예술인이다.
그러나 그는 일상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 ‘젠체하지 않는’ 팝아티스트며, 자신의 작업을 캔버스 뿐 아니라 전시기획과
애니메이션, 아트디렉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시킨 꽤 대중친화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루저 스피릿’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전파한 인물이란 점에서 동명의 인터뷰 시리즈에 언젠가는
한번 등장했어야 할 ‘문제적 작가’다. 다만 그를 이처럼 ‘다소 이른 시점’에 소개하는 것은, ‘루저 스피릿’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인터뷰할만한
사람을 섭외하기가 꽤나 어려웠기
때문이다.인터뷰 섭외를 위해 접촉한 이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제가 루저인건
맞지만, 그런 인터뷰까지 하면서 떠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강영민, 루저에 대한 개념을 세우다또,
다른 이들은 이렇게 물었다. "제목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사실 무척 성공하고 싶은데요…." 강영민을 만나야
했다. 그는 기자에게 "루저와 루저 스피릿은 엄밀히 다른 것"이며 "인터뷰를 통해 확실히 개념 탑재를 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홍대의 곱창집으로 갔다. 다섯 테이블에
스무 명 남짓한 손님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곱창집에는 용케도 한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가게의 10년 단골이라는 강영민이 미리 전화예약을 했기
때문이다(그는 떡볶이 집을 갈 때도 예약을 한다고 했다). 알곱창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강영민은 인터뷰 내내 반말 같은 존댓말, 존댓말 같은 반말을 어색하지 않게 넘나들며 두 시간 가까이 루저론과 루저스피릿을
설파(?)했다. - 루저 스피릿이라는 말, 직접 지은 건가요?"그럼, 다른 데서 들어봤어요? 뭔가
괜찮죠?!" - 저는 느낌이 좋아서 인터뷰 제목으로도 붙였잖아요. 근데, 그 뜻이 좀 모호해요."루저
정신이지. 의식 있는 루저. 소위 아웃사이더의 미학 그러잖아요. 같은 얘기야. 요즘 시대에 맞는 신상 어휘로 바꾼거지."-
‘미수다 사건’ 때문에 루저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어요."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우리 사회 루저의 척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준 거니까. 근데 사실, 루저 얘길 하려면 실존적인 얘기부터 해야 해. 자,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 루저야. 기성사회
시스템에 진입하려 하면 누구나 다 루저가 될 수밖에 없어. 예컨대 기성의 기준을 들이대면, 대학입시에서 떨어지면 루저고, SKY 못가면 루저,
그 중에서 서울대 못가면 루저고, 거기에서도 또 좋은 과 가야하고, 좋은 과에서도 또 수석이 있잖아? 또, 원초적으로… 실연
안당해본 사람 있어? 짝사랑 안 해본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루저일 수밖에 없어요. 인정을 안 해서 그렇지. 직업이 없는 백수들에만 한정시켜서
루저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지."▶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선 모두가 루저가 된다, 그러나…"
- 그럼, 의식 있는 루저라는 ‘루저 스피릿’과 그냥 루저의 차이는 뭐예요?"그냥 루저는
자기부정을 해. 여기서 벗어날 거라면서… 그런데 루저 스피릿은 자기 긍정을 하지."- 뜬구름 잡는 것 같은데, 좀
구체적으로?"우선 내가 이 사회의 루저란 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죠. 그러면 나는
왜 루저인가라는 물음이 생겨요. 그리고, 답은 기성사회의 룰, 일종의 스펙을 못 맞췄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결국엔 7전8기 기성사회에 편입하게 되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는 남겨져서 더 고민을 해. 난 왜 이렇게 될까,
이러면서 오기 같은 것도 생기고…. 나아가서 자기 철학이 생기는 거야. 사실
기성의 잣대에 맞추려면 자기 철학은 없을수록 좋아. 틀을 따라야 하니까. 하지만 루저로서 의식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살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런 루저 스피릿이 새로운 철학을 만들고, 예술이 되지."- 스스로 루저 스피릿이
충만하다고 생각하세요?"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루저
스피릿을 가질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뻐. 내 철학을 가질 기회가 됐으니까."그는 "라이센스를 취득 못한 것"을 자신의
대표적인 실패로 꼽았다. 재수를 해서 대학(홍익대 회화과)에 들어갔지만 졸업을 못했고, 이후 유학에도 실패한다. 대신, 강영민은 1990년대부터 동료 젊은 예술가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지금의 홍대 문화가 일궈진 시기도 당시 강영민과 또래의 예술가들이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순부터다. 72년생인 강영민은 자신의 세대를
개인과 일상을 발견한 세대라고 정의한다. "우린 하루키 세대야. 대학 때 상실의 시대가 그 때 나왔어요. 민주화 후
공허함이 밀려올 때 하루키가 왕림하셨어. 하루키 소설은 드라마틱하기 보단 순간이 반짝거리잖아. 다들, 그래서 좋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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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란 자기 부정, 루저 스피릿은 자기 긍정"일상에서 특별함을 찾는 성향은 그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지난
2008년 개인전 ‘사랑하면 진다’에서 그의 그림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감성적인 면, 약한 면을 이야기했다. 앤디워홀의 그것처럼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거나 감정이 배제되기 보단, 상투적인 하트를 소재로 내면의 깊숙한 감정을 보여준다. "인간의 약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제 작업의 테마에요. 약한 마음은 굉장히 인간적인 특성 중에 하난데… 근대화가 되고 그런 약한 마음이 거추장스럽게 돼 버렸잖아요?
약한 마음을 가지면 진다, 탈락한다고. 루저 스피릿은 그런 약한 마음을 지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약한 마음을 긍정하는 태도랄까."
한편, 강영민은 낸시 랭과 함께 1세대 팝아티스트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2000년 대 중반부터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 - 한국에서도 팝아트가 대중적으로 인기있죠."낸시 랭 때문에 많이 알게
됐지."-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는데, 일부에서는 ‘낸시 랭을 키운 사람’ ‘낸시 랭의 성공에 일조한 사람’ 식으로
말하던데요? (낸시 랭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영민에 대해 "여러 작업에서 많이 가르쳐준 선배"라고 한 바
있다.)"키웠다기보다.. 같이 일을 많이 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좋은 동료 아티스트야."- 그
정도?"그 정도면 엄청난 거지(웃음). 한국 미술계는 낸시
랭을 싫어해. 왜냐면, (낸시 랭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미술계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중에도 싫어하는
사람 많던데…."개념 있는 대중들이 싫어해요.(웃음)"- 낸시 랭이 아티스트라면, 장사하는 제품이 좀
아티스틱 해야 하지 않나요? 홈쇼핑에서 파는 속옷은 그저 비X안과 똑같던데?"제품 하나만 보면 비X안을 팔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왕 속옷도 아티스트가 파는 걸 원해. 간단해, 똑 같은 커피라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다르잖아. 낸시는 그걸 빨리 캐치한 거
같은데. 사실 낸시 랭이 미스터리 한 면이 많긴 한데, 그런 게 바로… 개념 없음에서 온 거야. 무개념! 개념 있는 사람들에 그건 완전
신대륙이거든. Terra incognita(미지의 땅)!" - 무개념이 예술? 예술가는 개념을 세우는 사람 아닌가요?
"낸시는 무개념을 개념화 시키면서 살고 있어요. 그 계산을 내가 많이 도와줬다는 거지. 그러니까, 한국 문화계의 개념 있는
지식인들이 무개념 영역에 관심이 있다면 낸시 랭이라는 아이콘은 최고 접점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낸시랭과
소통, "그녀가 개념 있는 이들에게 욕먹는 이유는…" - 도왔다는 건, 아이디어를 제공한
건가요?"아니, 대화를 하는 거죠. 디렉터가 아무리 연출을 잘해도 연기를 잘못하면 꽝이야. 심지어 배우에 따라 감독의
역할도 바뀌잖아요. 나는 그저 실험적으로 무개념에 관심 있는 거지. 예컨대, 이런 얘길 하죠. 내게 캐릭터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조는 하트’고
하나는 ‘낸시 랭’이죠." - 낸시 랭의 행동 일부를 본인의 작품이라고 생각 하는
거?"그럼요."- 낸시 랭도 동의할까요?"글쎄,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웃음). 내가 참 부러운 게, 낸시는 현상을 만들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아티스트라는 거에요. 누가 얘기해도 관심을 안 보이다가, 낸시
랭이 얘기하면 관심을 보여. 왜? 욕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낸시가 백수 얘길 하니까 반응이 폭발적이잖아(편집자 : 낸시 랭은 ‘악플러들은
백수’라는 이야기를 해서 백수연대의 항의와 함께 일부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강영민과 낸시 랭이 프로젝트를 함께 한 것은 2004년 ‘싱싱’ 퍼포먼스부터다. 예술의 전당 1층 로비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한 뒤
핑크색 비키니를 입고 ‘보랏빛 향기’를 불렀던 낸시 랭은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강영민은
올해도 낸시 랭과 세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할 예정이다. 런던에서 ‘United Kingdom of 낸시 랭’이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한편,
또 강영민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음반도 낼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올 상반기에는 예술가로서 연예인을 부각시키는 ‘셀러브리티 아트’라는 전시를
열 예정이다. "난 대표적인 우리 문화 가운데 하나가 연예인 문화라고 봐. 일본의 오타쿠 문화처럼 한국에 문화가 있다면 그건
연예인 문화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국내 포털을 장식하는 건 80% 이상이 연예인 얘기잖아요." - 그러면 낸시 랭도 그런 걸
의식하고 전시를 하는 건가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잘 모르겠지만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다만 낸시는
연예인을 패러디 하는 예술가 정도로 봐도 될 거 같아요."- 낸시 랭 외에 요즘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흐흐,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은 아티스트가 아니잖아요?"요즘 서구
지식인들의 테마 가운데 하나가 정치가 어떻게 미학이 되고, 미학이 어떻게 정치가 될 수 있는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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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저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하긴, 모든 분야에서 미학이 중요해지고 있더군요."맞아요,
아이폰이 왜 뜨겠어? 다 미학이랑 관련이 있어요. 사실 한국이 시스템 효율적으로 돌리는 거는 지금 너무 잘하잖아? 아이돌만 봐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리는지, 소녀시대는 공백이 없어(웃음). 시스템은 과학의 부분인데, 이미 효율의 생기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지. 아, 또 루저 스피릿과 연결되잖아."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루저 스피릿으로 돌아왔다. "루저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그에게 ‘의식 있는, 그리고 행복한’ 루저가 되기 위한 실용적인 행동 강령을 물었다. 그는 루저 스피릿을 가진 예술가가
될 것을 제안했다. 그에게 예술가란 창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예컨대, 무기력하다면… 그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하면 됩니다. 블로그든, 사진이든. 어떻게든 표현한다는 건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돈도 좀 벌어서 품위 있는 루저가 돼야죠.
그렇게 살다보면 사실 나는 보통 루저와는 좀 다르다는걸 깨달게 되요. 누구와 비교해 못한 게 아니라, 기준이 다른
것뿐이죠."- 올해가 30대의 마지막인데, 마흔이 되면 스피릿이 꺾이진 않을까요?
"스피릿은 비 물질 적인 거라 나이들 수록 더 세지죠. 살기위해(웃음)."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좋아서 하는 밴드와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좋아밴’은 2009년 ‘헬로루키’인기상을 수상했다 |
이름에
먼저 낚였다. 밴드 이름이 ‘좋아서 하는 밴드’라니 어쩐지 재밌는 노래만 부르는 ‘좋은’ 아이들 같다고나 할까. 지난 2년 간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좋아서 하는 밴드’(이하 좋아밴)은 젬베를 비롯한 타악기를 치는 조준호(26)와 베이스의 황수정(26), 미모의
베이시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베이스 대신 기타를 치게 된 손현(28), 피아노 대신 아코디언을 선택한 막내 안복진(23)으로 이뤄진 4인조
밴드다. 좋아밴은 요즘 이래저래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인디밴드라면 누구나 꿈꾸는 ‘헬로 루키’로 꼽혔을 뿐 아니라,
연말결선에서는 인기상(2008년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수상했다!)을 탔고, 조만간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좋아서 만든 영화’가
개봉한다.▶EBS ‘헬로루키’ 올해의 인기상 수상팀- ‘좋아서하는 밴드’란 이름은 누가 지었어?
"언젠가 공연을 하다가 누군가 ‘밴드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 그때 별다른 이름이 없어서 ‘저희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든데요’라고 대답했는데 ‘좋은 이름이네요’ 하시더라고. 결국
그게 이름이 됐어. 괜찮은 이름 같지 않아?"- 응, 근데… 정말 좋아서 해? 좋아서 한다는 건 뭘 말하는
거야?"지금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그게 좋아서 하는 일 아닐까. 최소한 우린
지금까지 좋아서 하는 일을 했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밴드 이름을 바꿔야겠지.
이름 없이 활동하던 밴드는 "그냥 좋아서하는 밴드"라고 말한게 그대로 이름이 됐다. |
- 너흰
어떻게 만났어?"솔직히 말하면… 우린 좀 생각 없이 만들어진 밴드야. 준호가
어쿠스틱 브라더스라는 팀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상도 타고 했는데 팀이 해체됐거든. 그런데 행사는 들어오고 용돈벌이를
놓치긴 아까워서, 같은 과 친구인 손현과 대학가요제에서 알게 된 복진을 급히 영입한 거지. 그게 밴드의 시작이야. 그렇게 셋이 거리공연을 하다가
지난해 6월에 수정이가 합류하게 됐어. 넷이 버스킹을 한 지 1년 반 정도 됐네."-
버스킹?"버스킹은 거리서 하는 공연이야.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거리에 나가서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해. 서울에선 홍대와 대학로에서 하고, 지난해엔 거리공연해서 번 돈으로 중고차를 사서 전국투어도 했어. 강원도와
제주도 빼곤 거의 다 가봤을 걸. 처음엔 무작정 축제를 찾아 가서 묻지도 않고
공연을 했는데, 이젠 초청을 더 많이 받아. 그런
식으로 200번 정도 거리공연을 한 거 같아."- 그러니까 너흰 길 위가 무대구나. 그런데, 길에서 공연을 하는
건 좀 힘들지 않아?"가끔 힘들 때가 있긴 해. 때로 주변 상가들의 적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이젠 우리가 알아서 눈치를
보고 잘 대처하지. ‘여기에서 하면 괜찮겠다’는 감도 생겼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방법도 터득했고…. 이젠 쫓겨날 것을 미리 걱정하진 않아.
항의가 들어오면 자리를 옮기면 되니까." - 그런데, 왜 계속 길 위를 고집하는 거야? 홍대 클럽 같은데 설 수 있지
않을까."(발끈!)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우린 홍대 클럽에 설 수 없어서 거리로 나간 게 아니야. 홍대 클럽은 우리를 아는
사람들만 모이겠지만 거리에서는 우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 우리는 음악으로 그 사람들을 붙잡아야해. 더 난이도 높은 도전이라는 거지."
▶거리공연 ‘버스킹’만 200회
언젠가 싫으면 음악을 관두겠지만 지금은그냥 음악이 좋단다 |
좋아밴은 "음악만
하고 싶었다면 버스킹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을 매개로 길에서 친구가 되는 경험은 버스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버스킹은 좋아밴의 생계수단이자 여타 인디밴드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전략이기도 하다. ‘난이도 높은’ 거리공연에서 관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연주실력
못지않게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들은 공연 중 멘트나 표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 매 거리공연에서 "음악만 하면서도 먹고 살수
있다는 걸 증명하게 도와달라"고 외치고, 실제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거리 공연하면서 우리가 배운 건 최악의 무대는 없다는
거야. 관중 호응이 없다면, 우리 공연을 보고 돈을 안냈다면 그건 우리가 별로이기 때문이야. 우리는 거리공연으로 먹고 살수 있도록 그만큼의
노력을 해." - 너희 음악의 특징은 뭐야? 사람들이 너희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글쎄, 공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될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거든. 여기에 마이크나 스피커 같은 장비 없이 길 위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니까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아.좋아밴은 팬들이 키우는, 이른바 ‘부양밴드’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나온 첫 싱글 앨범은 팬들의 700장 선주문 덕에 제작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된" 팬들은 좋아밴의 홍보는 물론 행사 섭외도
해준다. 감사의 표시로 첫 싱글 앨범이 나왔을 때는 서울에 사는 팬들에 한해 멤버들이 직접 팬들을 찾아가 앨범 전달식을 했다.
좋아밴은 팬들이 소중하게 키워 가꾸는‘부양밴드’이디고 하다. |
-
앨범은 많이 팔려? "아까 공연 끝난 후에 우리 앨범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선거
봤지? 앨범은 주로 공연에서 많이 팔려. 한 번 공연하고, 많을 땐 백 장 넘게 팔 때도 있어. 우리 앨범은 일종의 기념품 같은 거야. 요즘엔
어차피 CD 보다는 mp3나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듣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시중에서 판매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물론 공연 때 못
사고 집에서 후회하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 주문은 가능해."- 근데, 돈은 충분히 버는
거야?"충분히? 충분한 게 어느 정도지? 한 10억 이상 벌면 충분한건가? 돈을 충분히 번다고 할 순 없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우린 우리 학비를 스스로 낼만큼, 사고 싶은 악기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 - 불안하진 않아?
남들처럼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불안한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직장을 가졌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내 친구들이 토익을 치르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름의 노력을 해. 미래는 불확실한 거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팬을 만들어가고, 힘을 비축하는 거지. 다들 왜 음악을
하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우린 밥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지, 밥을 굶으면서 음악을 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언젠가 음악이 싫으면
관둘 거야. 다만, 현재 가장 행복한 거… 그걸 쫓는 거지."▶"좋아서 하는 건데, 계획이나 목표는 묻지
마"- 앞으로 꿈은 뭐야? 미래의 목표? 계획이랄까…."글쎄, 이거 뭐 무릎팍도 아니고… 사실
우리가 인터뷰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거야. 글쎄 내게 계획을 묻는다면, 내일까지 팀플 과제를 내야하는 거
정도?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단기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이뤄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렇게 얘기하지만 난 헛소리라고 봐. 장기 목표가 생기는 순간, 목표의 노예가 되는 거야. 거기에 인생 같은 건 있을 수 없잖아. 장기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당장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은 너무 많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일들도 많아.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들을 골라서 최선을
다해 한다면 그게 진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닐까?"
거리에서 하는 공연 ‘버스킹’을 통해내공을 쌓고 생존력을 갖췄다 |
-성공을
위해서 계획을 짜기도 하지만,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기도
하잖아. 너흰 자신감이 넘치는 거 같아.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거리에서 1년 반 동안 버틴
뚝심이랄까. 사실 실패는 누구나 하지. 그런데 잘 생각해봐. 뭔가를 하려다 실패했을 때 어떤 경우에 그게 문제가 되고 어떨 때 별 일 아니게
되는지. 간단해, 큰 것을 욕심 부리고 그 일이 실패 했을 때 힘들어 지는 거고 작고 소소한 일들이라면 그 실패는 그냥 에피소드가 되는 거야.
우리는 큰 욕심 부린 게 없으니까 이렇다 할 실패도 없어. 거리 공연하러 나간 자리에 다른 팀이 공연하고 있으면 실팬가? 그냥 다른데서 하면
되잖아. 언젠가 누가 우리를 보면서 ‘역시 되는 밴드는 뭘 해도 된다. 비도 피해가는 밴드!’라고 한 적이 있어. 근데, 비가 오는 날 비 안
맞고 거리 공연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 바로 비가 그칠 때 까지 기다리면 돼. 작은 생각의 차이야. 우린 많은 경험을 했을 뿐 실패한 적은
없다, 랄까? - 좋아서 하는 밴드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은 뭐야?"적자! 지방에 내려가면 꼭 그
지방에 맛 집에 가는데 그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거든. 그러면 우리는 그 비용을 버스킹으로 메우곤 해. 우리 사전에 적자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린 맛없는 음식을 매우 비싼 값에 먹는 걸 무척 싫어하지."- 너희의 음악이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잖아. 그러면
좋아서 하는 일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좋아서 하는 일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좋아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사실 우리도 요즘 조금씩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 최대한
모든 멤버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이 의논하려고 하고. 우리가 좋아서 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좋아서 하는 밴드가 아니잖아."
좋아밴은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간다 |
-
소속사를 구할 생각은 없어? 한결 편할 텐데…. "글쎄 아직은. 지금 상태에서는 소속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스스로 키운 밴드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거든.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한번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고 싶어. 물론 이러다 힘들어 지치게 되면 회사에 들어가겠지." 날이 추워진 후부터 좋아밴은 거리공연
대신 새 앨범 녹음을 시작했다. 여기에, 좋아서 만든 영화가 나온 요즘은 시사회장에 찾아가 공연을 하느라 더 바빠졌다. 때문에 인터뷰는 미루고
미뤄져, 늦은 밤 진행됐다. 반복된 인터뷰에 네 명의 멤버가 조금은 지쳐보였다고 할까. 아니면 인터뷰를 하는 기자가 먼저 지쳤기 때문인 걸까.
좋아서 섭외를 하긴 했는데 이걸 좋아서 하는 인터뷰라고 할 수 있으런지…. 그런데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지?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장 필요한 건, 열정. 그리고 돈? 돈은 생활을 할 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수정)"자신을 믿는 마음. 남들이 생각하기엔 자만이지만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행복하기는 힘들 거 같아." (복진)"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은 싫어하진 않을까, 또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겐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손현)"끊임없는 노력이야.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그 원인들을 없애야 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늘 되물어야 하니까."(준호)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붕가붕가레코드의 딴따라질은 별일 없이
계속된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아는가.
그렇다면, 붕가붕가레코드의 곰 사장은?
붕가붕가레코드는 1년 전 ‘싸구려 커피’ ‘별일 없이
산다’ 등으로 파란을 일으켰던 ‘인디계의 서태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소속사다. 그리고 고건혁(29)이라는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익숙한 곰 사장은
그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다. 장기하와 같은 대학, 동갑내기인(서울대 심리학과 00학번)
곰 사장은 아주 잠깐 뮤지션을 꿈꾸기도 했지만
스스로 음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를 바꿨다. 대신 특유의 "사람 꼬드기는 기술"을 이용해 대학시절 학내 음악 동아리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2005년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를
차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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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2~3년을 인디씬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붕가붕가레코드는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를
업고 급부상했다. 2009년 붕가붕가레코드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50배가 넘게 성장했으며, 레이블의 규모도 커져서 소속 팀도 늘었다(현재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장기하와 얼굴들 외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치즈스테레오, 아마도 이자람 밴드, 불나방스타 쏘세지 클럽,
아침, 상상의 여름 등이 포함돼 있다). ▶ ‘사람 꼬드기는 기술’로 시작한 인디
레이블장기하의 인기에 대해 곰 사장 본인은 "도라지인줄 알고 키웠는데 산삼이 난 격"이며, "소속사가 한 역할은 1할이 채
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 성공과정에서 곰 사장이 이끄는 붕가붕가레코드의 기획과 마케팅 능력도 적잖은 관심을
받았다.본래 개와 고양이의 자위행위를 칭하는 말이었지만 "혼자 힘으로 사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심오한(!) 철학이 더해진 ‘붕가붕가’라는 독특한 이름, 그리고 이들이 내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모토(‘지속가능한 성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최저 제작비를 위해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을 하고 직접 CD를 구워 포장을 하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수공업 소형음반 제작방식’ 등은 장기하의 노래 못지않게 신선한 것이었다.곰 사장과의 인터뷰는 장기하의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인 2009년 초 이후 두 번째다. 곰 사장이라는 호칭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외모와 달리, 조금은 높은 톤에 빠른 말투,
달변은 여전했다. 다만, 예전보다는 조금 피곤해보였다. - 어떻게 지내나? "농한기라
한가하다."- 농한기?"사업이 해보니까 농사랑 비슷하더라. 결과가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거."- 조금 지쳐 보인다. 요즘 어려운가?"어렵고 말고 할
건 아니다. 아직 어려운 시기를 거치진 않았으니까.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 이전에는 취미로 해서 한 푼도 들어간 게 없다. 예전엔 잃을 게 없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장기하 얼굴들이 잘 되니까 조금씩 잃을 것들이 생겼다. 소박하지만 녹음실과 합주실도 생기고 상근 스태프도 생겼다. 그
사람들 먹여 살려야 하는데 현재 마땅한 수입원은 없는 상태다. 사실 올해 하반기부터 장기하를 제외한 소속 뮤지션들의 공연이 적자를 보거나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었다. 이제부터 어려울 일이 생겼다."▶ 장기하라는 ‘인디계의 서태지’ 등장시킨
장본인‘혼자 힘으로 사랑하자’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등을 모토로 내 건 붕가붕가레코드의 목표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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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사장은 종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십대 쯤 됐을 때 18평 정도의 아파트에 살면서 보험 두세 개 들 수 있으면 만족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어찌
보면 소박해보이지만, 한국 인디 음악시장에서 그 정도의 ‘건전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붕가붕가 레코드 구성원은
생업으로 몸담는 상근 스태프와 "빡센 취미생활"로서 활동하는 스태프로 나뉜다. 곰 사장은 후자다. 그는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주 5일은 대전에서, 나머지 이틀은 서울에서 바쁘게 취미생활을 하며 보낸다."8명 중 5명 정도를 상근 스태프로 두려면
매출이 10억~20억 나와야 되는데 올해 우리 예상매출은 1억 되면 성공이다. 극소수 핵심인력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일로 먹고
살아야한다. 게다가, 내 경우엔 이 일만 하고 살고 싶진 않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악에 잡아먹히고 싶진 않다."-
회사를 계속 가지고 가긴 할 건가?"망하기 전까진.(웃음)"- 포기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책임감
때문인가?"그건 책임감 이전에… 이 일이 내가 아는 것 중엔 가장 재미가 있는 것 같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다."- 하긴 키우는 뮤지션들이 주목받고 인기를 얻으면 보람될 것 같다."한땐 그랬다.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이 알려지고 음반 판매 올라가는 것…
근데 한두 달 지나니까 시들해졌다. 기본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가 우리 회사가 일궈낸 게 아니라 더 그렇다. 그 팀이 좋은 음악을 했기 때문이고, 외부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성공이었다. 2009년 정규 1집 나왔을 즈음엔 재미가 시들해졌다." - 그럼 어떤 게
재미있나?"장기하와 얼굴들이 인기를 얻은 후부터는 그를 계기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레이블의 규모가 커지고, 그들과 새로운
음반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치즈스테레오, 아침, 불나방스타쏘세지 클럽 등이 이 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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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라는 간판은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다"-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 뮤지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영입할 팀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대표
취향에 따르나?"그건 아니지만, 대표의 취향이 많이 작용하긴 한다. 공통점이라면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로 조립하는 게 많은 거
같다. 예컨대, 장기하 음악도 거칠게 말하면 산울림, 송골매 음악을 베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따라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정서를 담으니까
다른 거다. 또, 뜬 구름 잡는 얘기 싫어하는 것도 비슷하다. 가사도 생활 밀착 적이고 구어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편이다."-
장기하도 그렇고, 곰 사장도 그렇고…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서울대 출신이 많다. 서울대라는 간판은 음악사업(?)에서 혹은 인디씬에서 활동하는데
이득인가 손해인가."이득이라면 한 번 더 주목받는다는 점(어, 서울대야?)이고, 손해라면 음악 외적인 점을 더 본다는 점(아,
서울대로군)이다. 그래서 어느 쪽인지는 잘 판단이 안 선다. 가능하면 사업에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
그나저나, 장기하와 얼굴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11월 단독공연 마지막으로 끝냈다."- 활동중단?
언제 다시 나오나?"하고 싶을 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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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계속 하는 건가?"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할 거다. 앞으로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에 대해) 회사차원에서 왈가왈부
할 건 없을 거다." - 솔직히, 장기하가 계속 활동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나?"물론 없진 않다.
반반? 30% 정도? 특히나 요즘엔 현금줄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 한다. 또 30%는 (장기하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착취한다고 할까.
그리고 30%는 장기하와 얼굴들 없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팀이 여덟 팀인데 나머지 일곱 팀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머지 팀을 끌어올리고 싶다. 물론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해도 최소한 인디음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어느 정도 음악을 하면서 기본적인 수입은 보장받을 수 있는 위치로."- 기획이나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 뮤지션들과
갈등도 있을 것 같다."갈등이 없지 않은데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해결한다. 회사가 조언은 하지만 결국 아티스트가 뭘
원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정의가 ‘음악인의 표현의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건전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제공’하는 거다. 즉, 생계가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표현의지가 더 중요하다. 그걸 버리고 가고 싶진 않다." ▶ "음악에
잡혀 먹히기도 싫지만 사업에 잡혀 먹혀도 안 된다"붕가붕가레코드에서는 수공업 소형음반과 공장제 대형음반 두 종류로 나눠
음반이 나온다. 공장제 대형음반은 일반 음반처럼 공장에서 1000장 이상 찍지만 수공업 소형음반은 3, 4곡 정도만 녹음하고 직접 CD로 구워
제작한 후 포장도 전 직원들이 손으로 직접 한다. 주로 처음 음반을 내는 뮤지션의 경우 대부분 비용부담이 적은 수공업 소형음반을 낸다.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팔리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 하지만 무리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하니까 자꾸 무리한 것을 강요하게 되는데, 그럴 바엔 다른 데서 돈을 벌어 충당하는 게 낫다. 음악에 잡혀
먹히는 것도 싫지만, 사업에 잡혀 먹히면 안 된다." 곰 사장을 비롯해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뮤지션이나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소위 88만원 세대에 해당한다. - 한참 장기하 노래가 화제가 됐을 때,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담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기하 본인은 해석은 자유지만, 관심 없다고 한다." - 당신은
어떤가?"내 경우, 사회운동 측면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면이 있다. 20대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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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 초창기 나왔던 청년실업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앨범인가?"아니, 그건 오해다. 그 제목은 즉흥적으로 지은
거다. 팬들이 와서 이런 거 팔아먹지 말라고 지적한 적 있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누구누구의 대변자 입장에서 사회적인 의식 혹은
이데올로기를 정의하고 비평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데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극복하려 하는데 또 이런 방식이 있다는 걸 하나의 모델로서 보여주는 거다.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사회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대, 또래의 사람들에 대한 애착 같은 게 있나?"학생운동을 해서인지 연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점차 외부에 배타적으로 변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도 그렇긴 하다. 그런데 연대의 대상이 세대처럼 넓은
범주로 묶이는 건 싫다. 배짱이랄까, 센스가 맞는 사람과의 연대? 식사로 따지면 같은 입맛을 가진, 술자리로 하면 같은 주량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에 관심이 있다." ▶"그만두는 것보다는 타협하는 게 낫다. 오래가야 하기에…"붕가붕가레코드는
2010년 "포스트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즌을 맞았다. 소속뮤지션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아마도 이자람 밴드, 눈뜨고 코베인 등이 올 상반기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혹여 예전만큼 화려하고 큰 히트를 내지 못할지라도, 붕가붕가레코드의 딴따라질은 "별일 없이" 계속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한국나이로 서른이 된 곰 사장은 요즘 앨범제작이나 공연에 시큰둥해진 자신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재미가 없을 때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 앞으로 큰 재미가 계속 있을 순 없을 텐데, 작은 재미도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어야
오래 계속 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걸 시도해야겠지. 그렇게 계속 5년, 10년을 가다보면 우리 딴따라질도 조금 넓어지고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오래오래 이뤄내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나 정신? 뭐, 그런 걸 ‘짧게’
정리한다면…"잘 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타협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그만두는 것보다는
타협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잘 되든 안 되든 적당한 평정심을 갖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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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도
그녀와
결코 |
*
살짝 궁금한건데, 저작권과는 문제 없나
화보로
판다거나, 이름을 건다거나, 상업화시 주의를 요하죠. 그러나 직접 만들어 입는건
전혀 문제 안되요. 2D를 3D로 구현하는 건데 (일종의 창작이죠) 적잖은 스킬이 필요하죠.
*
실제 작가가 2D로 그린 모든 그림은 3D로 재현 가능한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여기 있는 게토레이로 페트병을 갖고도 코스튬 플레이를 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이 코스튬 플레이의 세계랍니다.
*
모든 캐릭터들은 다 재현된다니…
못할게
없다. 안되는게 없다. 모든 게 되 게 돼있다.
*
홈페이지 보다 보니, 마치 프로젝트 <런웨이>처럼 밤새 잠 안자고 만드시더라
ㅜㅜ
방법이 없어요. 공장에 맡길 수도 없으니 다 손으로 하는 거죠. 독일이나, 일본 플레이어들은 돈을
들여서 멋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실전에 유용하게
이용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한국인들이 임기응변은 뛰어난 것 같다
*
캐릭터 기획단꼐에서 관여한다고 했는데, 만화업계든 게임 업계든 미리 언질을 주고
받는 관계인가
실제
작품 나올때 거래처들은 주고 준비하라고 주문한다. 물론 처음에는 안그랬죠. 길어야
한 달 간혹 2주에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서로 노하우가 쌓이니 나올
때 준비해라고 자료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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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색 논 란, 노 출 논 란 *
*
왜색 논란에 대해 언젠가 재패니메이션 양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게
아니다. 코스튬 플레이는 일제가 아니다. 특히 한국은 일본풍과 미국풍이 혼재돼
있다. 일례로 할로윈 파티도 코스튬이다. 록키호러픽쳐쇼 마니아들. 당초 미국 문화를
일본애들이 가져다가 받아온거다. 여기서 자체콘텐츠가 풍성한 저패니메이션에
기댄 오타쿠 문화 일환으로 자리매김한거다.
그러나
오타쿠 문화는 최악이다. 일본 내부에서조차 저열하게 판단하다. 서브컬처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냥 막된 애들 취급이다. 심지어 나에게 "그거
벗는거죠? 기모이!" 특이한 애들이 하니 미친짓거리라 할 정도다. 하지만 남이
하는거니, 관여안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한국은 둘 다 받아들여 있다. 그러나
할로윈의 놀이문화와 코스튬 구분 못한다. 혼재되서 사용될 뿐이다 .
국내
마니아들은 일본문화에 대한 친근감과 적대감이란 모순된 양태를 지닌다. 실제 자기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 한국인이고 애국자란 점을 강력하게
인식한다. 저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다.
이런
상태에서 왜색 논란에 솔직히 짜증난다.
일본
것 아니고 그런 전통도 없다. 그런데 일본 애들은 지네들 거라고 빡빡 우긴다.
요미우리 NHN 방송 신문에서 취재와서 "왜 일본문화를 따라하냐?"고 묻는다.
듣는 저는 어이가 없는 거죠. 한국 게임 캐릭터를 한국 사람이 코스튬하면 그거 일본거냐?
고 맞 받아 친다.
*
좋다. 그렇다면 한국화하려는 노력은 있었나
한국의
캐릭터 컨텐츠와 연계하고 한국의 마니아씬 육성해왔다. 이런 일은 일본애들은 절대 못한다.
앞으로 예술화 작업을 더해 문화 허브화 하겠다. 따지고 보면 코스튬 플레이에는
사진 패현 영화 게임 영화 만화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예술이건 포용할
수 있다. 일례로 낸시랭도 코스프레다. 그것과 우리 스타일 다르지 않다.
*
낸시랭도 노출을 예술로 포장하기도 하는데, 노출에 대해서는 어떤가
나 자신은
좋아한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성이 상업적으로 팔릴때는
아름답고 섹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정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섹시라는
면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물론
이 바닥에도 아이들을 상업화의 관점에서 완전 AV로 포장해 파는 이들도 없지
않다. 몇몇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관건은 정도껏 하자는 거다. 사실 제가 생산하는
이미지들은 성인용으로 봤을 때 논란 거리도 안된다. 얼마나 심한게 많은데, 팔 수도
없는 수위 완전하게 합법적인 수위다.
토플리스(Topless)까지
가야 한다라는 말도 있다. 누드 찍짜는 제의도 수억번 받았다. 한 성인 케이블에서
상반신까지만 노출할 후배들 보내주면 1년에 6000 주겠다고 제안도 들어왔다. 물론
난 그런 것 거절한다. 정도의 선이라는게 있다. 법의 테두리 벗어나지
않고 15금 수준으로 가면 좋겠다. 15금이라면 완전 청소년 관람가 아닌가

*
낸시랭 비교가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전
짜증난다. 사실 똑같은건데 그녀는 예술이고 우리는 때론 이런 멸시를
받아야 한다. 낸시랭의 퍼포먼스에 사실 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절대
폄하가 아니다) 단지 포장과 잘 파는 것 뿐이다. 때문에 우리도 빨리 예술의 계열로
나가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본인이 생각하는
섹시미란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거다. 좋고 나쁘다는 것을 떠나서. 한미 FTA 안할 수 있는 방법 있으면 안하겠다.
그러나 필요하다. 섹시한 모습 드러내고 싶어하는 분들. 많다. 그런 욕망때문에 미니스커트가
잘 팔리는 것 아니겠나. 왜 그런 벗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못보여주게 하고, 싫다는
여자들 벗기냐, 왜 장자연은 성추행하고 벗고 놀고 싶다는 애들을 탄압하는지. 성적인
자기결정권에 대해선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질문을 많이 받으셨나 보다
아니
전 처음부터 이런 생각 갖고 시작한것이다.
다른
노출은 봐주면서 왜 코스튬 플레이는 이상하게 보는지. 솔직히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보다 우리 노출이 더 쎄다고 생각 안한다. 이중잣대라는 거에요. 이건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단지 여자가 성적인 자기결정권 행사하면 사회가 싫어하는 거에요.
여기선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다.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기 결정권 존중하면
되는거다.
*
체샤란 닉은 어디어서 유래했나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다. 웃음만 남기고 사라졌다. 계속 웃고있다 그런 느낌이
좋아서 따왔다
*
얼굴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점점
편해지면서 이렇게 바뀌었다. 아마도 이를 세게 물지 않으면서 턱이 줄어든
것 같다. 하하. 살도 많이 뺐죠. 10kg까지 뺐으니. 참 많이 예버진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평범한 애였다면 지금은 전과는 다르다.
*
이제 코스튬 플레이와 외모 얘기를 들려줄 차례다
ㅎㅎ사람에겐
여러가지 자아가 있어요. 그런데 얼굴은 내가 모르는 자아다. 자기 얼굴을
안다고 생각하세요? 거울은 거울일 뿐이다. 목소리도 얼굴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나의 자아랑 다른거에요. 코스튬은 남이 보는 나에 대한 자각을 한다. 남이
바라보는 나,에 대해서 객관화 과정을 한는 셈이다. 남이 보기엔 괴물, 뚱보 일 수도
있다. 그런 표현에 상처를 받는다. 악플을 받고 좌절하기도 한다.
*
상처를 받으면 포기하게 되나
잘
모르겠다. 엄두를 못내는 사람은 봤지만 그러나 시작하면 나아지려면 애쓴다.
타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게 쾌감이다. 맛보면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좋다.
*
무대기질이 생기는 건가
그렇다.
실제 많은 분들이 그걸 갖고 있다. 코스튬 플레이는 욕망을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다.
*
성격도 변하나
그럼요.
많아 봤어요. 전 오히려 차분해 졌는데. 전 센사람이었는데. 이거 하면서 부드러워졌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인격을 닦아야 겠다는 생각도 하고. 가릴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실제 자기가 쓰는 페르소나에 닮아간다는 거에요. 10년전 제
얼굴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
실제로 자기가 닮아하고 싶은 캐릭터를 깊게 연구하나
그렇긴
하는데, 아니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옷이 예뻐서 하는 사람도 있다.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옷이 이뻐서 하면 어떠나 자기돈
주고 자기가 한다는 데…
*
체샤님은 어떻게 무엇으로 데뷔했나
전,
하기 쉬운 캐릭터라 했다. 처음에 할려던 캐릭터가 네오타드였는데 만들면서 수 억(십만원) 날리고
실패했다. 아, 이게 아니구나 절감하고 쉬운걸 찾았다. 전 비교적 늦게 입문했다.
20살이 무슨 코스튬 하냐고 무시도 당했다. 걔네들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거겠죠.
그리고 블루 마리(킹오프파이터즈) 여전사 캐릭터 등 싸우는 캐릭터 좋아했다.
*
실제 플레이더들은 자기 캐릭터를 모두 기억하더라.
왜
기억 못하겠어요. 그 옷을 만들 때 겪었던 사연 줄줄이 기억난다. 난 100개
세고 안셌다. 2년전에 환골탈태 오픈하면서 50 개 정도만 역사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묻어버렸다. 저라고 다 잘 하진 못하고 부끄러운 작품도 있었다
*
1년에 보통 몇 개나 하는가
1년에
12개 15개 정도. 전 미쳤을 때 1주일에 3개씩 만들었다. 난 이거 하느라 학교 휴학도
했다. 토요일 하나 일요일 2개. 촬영회 매주 나갔다. 옷 만드는 시간은 하루면 된다.
총 작업 시간은 6시간 정도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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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튬 플레이를 서브컬처(하위문화)로 보면 되는건가
당장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예술가 지식인들로 부터 ‘서브컬처가 먼데?’라는 공격이 들어
온다. 그래서 함부러 말 못하겠다. 사실 전 서브컬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로가 개념도 모르면서 말한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상하게 변방이기
때문에 개념들이 혼용되고 막 사용되곤 한다.
*
문화이론을 억지로 공부했나. 코스튬 플레이 관련 체샤님 글 읽어보면 먹물 티가
난다
대학
시절 공부했다. 전 책벌레에요. 전 공부만 잘했다.
*
왜 역사학과를 택했나
특차
과수석으로 경희대 진학했다. 무조건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문과 중에 골라
간 셈이다. 난 부산에서 주로 성장했는데 원서 내려고 서울 쪽 캠퍼스를 돌아보니
경희대가 제일 예쁘더라. 그런데 문과대는 건물이 별로였다.
*
졸업은 했나
한학기
남기고 제적당했다. 올 F를 맞기도 했다. (살짝 가슴아픈 개인사연) 죽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휴학을 반복하다가
졸업은
일단 유보했다. 그러나 언젠가 복학해서 졸업할 예정이다.
*
결론을 내자.
전
코스튬 플레이로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을 준비중이다.
*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비오는
날 멀리까지 찾아와 줘서 역시 감사합니다.

취재후기
근래 보기 드물게 매우 진지하고 도전적인 주제였음을 밝힌다.
그보다 체샤님의 공격적인 답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당 백은 거뜬할 것 같은
내공에 흠칫 놀라다.
여장부는 부족하고 대장부라는 수식어를 붙여드리고 싶었다.
이상.
[딴따라 스피릿 인터뷰]
"단지 마니아들의 세계에
그치지 않겠다"
국내 코스튬 플레이계의 새
길 모색하는 체샤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지난 7월 16일
동대문 의류시장 근처에서, 국내 1호 프로(pro) ‘코스튬 플레이어’ 하신아 님(29)을 만났다.
|
*닉네임 : 체샤
(처음 하고싶었던 캐릭터의 이름 – 이상한
생년월일 : 1월 7일 신체사이즈 : 165cm 36-26-36 블로그 : http://blog.naver.com/cheshire98
*좋아하는 것들: 연극 및 공연 관람
*싫어하는것들 : 어린여자 등쳐먹는 사람
*선호하는 캐릭터 : DOA 카스미, 철권의 아스카,
*경력:
2005년 오사카 덴덴타운 스트리트 페스티벌 초청 2006년 중국 CICAF 초청 2006년 지스타 ‘카스미’플레이로 화제가 됨 2007년 펜타비전 디제이맥스 포터블 2 공식 광고모델 코스프레 토탈 브랜드 ‘날으는 바늘’ 디자이너 2007년 올림픽공원내 국제e스포츠행사 코스프레 2007 그라나도 에스파다 일본 내 유저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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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내귀에도청장치’팀과 2008 엑스박스 인비테이셔널 코스프레패션쇼 2008 국제게임쇼 지스타 몬스터헌터 코스프레 2009 엑스박스 3주년 기념식 행사 ‘카스미’ C-note,날으는바늘 의상관련 총괄 디자이너 |
2000년초
처음 가본 일본 여행. 도쿄의 한 공원에서 그간 소문으로만 접했던 일본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일명 코스튬 플레이. 일본식 표현으로 코스프레.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묘한 캐릭터들의 실제 현실에 튀어나온 모습은 생경하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든 생각은 "자신만의
세계에 갖힌 답답한 청춘" 혹은 "저런 식으로라도 비현실적인 현실을 탈피하려는
청춘들의 노력"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했던 듯 싶다.
1~2년뒤.
대한민국 양재동 근처에서 국내 코스튬 플레이어들을 처음 접했다. 어허!? 이건 일본
따라하기 문화인가?
그리고
2009년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체샤’라는 닉의 여성을 접했다. 그녀는 마치 마녀처럼
옷을 차려입었고, 지식인 처럼 발언하고 있었다. 조금은 뜬금없이 그녀를 만나서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국내 코스튬
플레이계의 거물로 알려졌다. 실제 거물처럼 행동하신다는데…
이 작은 세계에서만 그렇죠.
아주 평범합니다.
* 몇몇 인터뷰를
찾아보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종이 인터뷰가 몇개 없길래 용기내 찾았다.
실제 인터뷰는 적지
않았어요. 스포츠 신문들은 거의 다 했고, 2004년 경에는 오마이뉴스에도 크게 다뤘고요.
최근에는 의상대여업 전문 분야로 경제분야에서 몇번인가 다뤘다. 여성지들은 열정을
가진 여성 사업가로 보도하기도 한다.
* 블로그와 여러
커뮤니티에 가보니 직접 쓴 글이 적지 않더라. 글을 잘쓰시던데…
전 역사학 전공이에요.
* 특이하다.
좀 특이합니다.
이 전에는 평범하다고 우기고 살았는데, 이젠 특이하다고 인정하고 살려고요.
* 국내 코스프레계에서 가장 고참이신건가요?
실질적으로 그래요.
물론 저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은분이 없는 것은 아네요. 국내 도입이 1997년경이라면
전 2000년 이후에 데뷔를 했으니. 그럼에도 저도 1세대고 현재 1급 모델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무방합니다.

그녀의 어지러운
사무실을 배경으로 한 체샤. 이론과 실전으로 똘똘 무장한 견고한 차돌을 닮아
보였다.
* 운영중인 회사
‘날으는 바늘’과 유사한 회사가 많나
물론 많죠. 그러나
사업을 하는데라기 보다는 쇼핑몰 수준 혹은 주문판매샵에 그치죠. 저희는
예술로의 발걸음을 시작한 회사 입니다. 전문 플레이어 육성과 자체 컨텐츠 제작과
겸해서 대여업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쪽과는 달라요. 저희가 특수의상 분야의 대한민국 1호였다. 우리가 성공을 하니 난립해서 저희보다
큰 회사도 많죠.
* 동호회 인구를 가늠하실 수 있나
실질적으로 15만이라고 추산
됩니다. 한 번은 해봤고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거죠. 축제나 파티
분야까지 넓게
보면 30만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한달에 한번 하는 활발하게 하는 분은 2000~3000명 정도라고
봐요.
실질적 활동하는 분이죠
* 사실 사업가로
인터뷰 하려 한건 아니다.
사업가론 부족하다. 사업가라기 보다는 진지한 사람이다. 매사에
그럴려고 노력한다
* 혹시 코스튬 플레이를
퍼포먼스 쪽으로 접근하려 한건 아닌가
좋은 지적이다. 퍼포먼스란
일종의 콘텐츠인데 그 방향을 지향중이다. 코스튬+플레이. 무언가 옷을 입고 하는
플레이인데, 무엇을 한다는 얘기가 없다. 옷을 어떻게 플레이 하냐는 거죠. 무언가 해야
하는데 그 상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자
강점이죠.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요. 음악을 해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스포츠를 해도 되요. 무엇을 플레이 하고 놀 것인지, 여기서 희망을 발견하고 이 문화를 허브로 키웠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 비보이와 유사한
성장과정을 염두에 둔 건가
비보이는 춤이라는게 딱 정해져 있죠.
그러나 코스튬 플레이는 아직은 상이 없어요. 특이한 옷을 입고 있다 이외에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기존에 춤을 추던 분들에게 특이한
옷을 입히면 무언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더군요. 이 점을 이해
시키는게 가장 큰 어려움이에요. 기존의 퍼포먼스는 자신의 벽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레퍼토리만 고집한다.
우리는 자유자재 변화무쌍이 매력인데 그 부분을 이해 못하는거죠.
* 코스튬 플레이의
총괄 기획자인 셈인가
그렇죠. 지금 우리는
처음 게임산업 나올때와 비슷해요. 씨드 마이어라는 분이 계시다. 프로그래머이자 게이머인데
이 분 시대에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만들었어요. 그래픽도 하고 스토리도 짜고 프로그래밍도 했죠.
그러나 나중엔 서서히 분업화가 됐다. 기획 은 기획자가, 프로그래머도 여러 분야가
생겼어요.
PM도 생겼고 마케팅 전문가도…. 저도 1세대이지만 점점 코스튬 플레이가 산업화 되면 분업화되리가 믿어요.
* 혹시 게임업계 근무한 적 있나
개인적으로도 잘 알
수 밖에 없다. 10년전에는 게임제작자와 매니아와 만화가들과
일러스레이터가 분화가 안됐다. 그 물이 그 물이었다. 하이텔 게임제작자 분들이 현재
NC로 가고 리니지로 갔다. 코스튬 플레이가 서브컬처가 자리잡을 때, 그들과 같이
어울려 시작한 것이다. 분명 하이텔 시절에는
함께 활동했다. 10년이 흐르면서 옥석이 가려졌다. 회사에 간 사랍도 있고, 스튜디어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찌그러기드은 찌질하게
오타쿠로 살고 있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당수가 메이저로 갔다는 점이다.
* 게임업계와 친할
수 밖에 없겠다
실제 코스튬을 이용할 산업이 게임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만화와 영화에서 이용하지만 우리나라는 만화업계가 다 죽었다. 원래
코스튬의 원조는 미국에서는 록키호러, 스타워즈 등 영화계에서 시작됐다. 물론 파티와 클럽에서도 활용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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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코스튬
플레이가 도입된지 10년이 됐는데 프로로 활동하는 인물(업체)가 유일하다는 건가
유일하죠. 다 망했고 망할 수 밖에 없었고. 마니아가 사업하려면 자기를 희생하고 틀을 버려야 하는데, 욕먹는거 감수 안한다.
마니아 틀에만 갇힌다. 자신의 방식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퀄리티와 비주얼의 차이를 인정 안하려고 해요. 누구의 눈에든 멋지게 보여야
하는데. 매니아와 프로의 차이를 우습게 보면 안돼요. 자기의 퀄리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자의식 과잉이죠.저도 그거 깨부수기 힘들었죠.
물론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전 문화사업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있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내부에서 저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해요
* 내부에 안티가
많아 보인다
좋아할 이유가 없다.
저는 제 라이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씬이 커져야 하는데 왜 이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
* 몇 년 생인가?
80년생이다. 명실상부하게
서른살이 됐다. 전 서름이 좋다. 20대가 지옥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에게나 20대는
고통스럽겠지만 저도 방황을 많이 하고
아둥바둥하게 살았다. 서른되니 편하고 좋아요.
* 아무래도
여성이 많겠다
물론 80~90%가 젊은
여성이다. 어쩔 수 없다.
* 남자들하곤 소통 잘하나
물론 함께 잘 놀죠.
그런데 남자들은 이 업계에서 프로로 활동하기 힘드니 여러가지로 접근 방식이 달라요.
숫자도 적고.

인터뷰 분위기는 대략 이랬다
* 당신은 코스튬 플레이 내부세계와 외부세계의 마찰에 대해서
글을 쓴적이 있다. 나도 인식하고 있는 건데, 밖에서 이 세계를 조금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음.
먼저 제가 생각하는 것부터 말씀드릴께요.
일반적으로
캐릭터가 먼저 존재하고 플레이어들이 따라하는 것, 즉 모방을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꼭 그게 아니더군요. 2000년에 깨달은 코스튬 플레이어의 세계는 전혀 달랐어요.
원작을 모방했다. 좋아요. 그런데 모방 자체가 수용자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하더군요.
이를테면 이 복제품을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러면서 (독자적인) 작품의 기능을 하는거죠.
우리가
독자적으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흑백 만화를 빨간색으로 해석했고, 그것이
만일 멋지다면 앞으로 수용자들은 그 흑백 만화를 빨간색으로 보게 됩니다. 나아가
이를 다시 사진사가 찍고, 이게 또 그럴싸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 따라하게
됩니다. 즉 원작에 대한 이미지가 모방에 대한 영향을 받아 바귄다. 심지어 이제는
원작자가 코스튬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기도 합니다. 원작 단계에서 코스튬프레이랑 같이
간다는 거죠.
즉,
총체적으로 피드백이 매우 왕성한 문화집단이 바로 여깁니다.
전 역사를 전공했는데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선형적으로 진화해온
것이 아네요. 보다 대중에 의한. 보다
다중에 의한. 복합적인 발전이었죠. 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것을 갖고 놀 수 있는 풍조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UCC가 대표적이고, 유비쿼터스적인 것들도 그렇고. 연결되고. 이런게 포스트머더니즘이
아닐까요. 원작 영향을 미치는 상호 텍스트적인 것, 그런 물결로서 코스튬 플레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모든 문화의 물결이고, 가장 최전방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거다.
책으로 상호텍스트는 복잡하다.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직관적이다. 다중이 접하기
쉽고 이용하기 쉽고 재미있다. 그런 문화장르다.
가능성이 있어서 전 대단한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
멋지세요) 저도 실제 하루히 보다보니 그 교복을 입고 춤을 추고 싶었다. 이
나이에도.
그렇죠.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 그런 욕망들이 미래로 가면 갈 수록 발달하게
될테고 그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컨텐츠다.
자기가 혼자 표현하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 어디가서 하지? 개인에게는 문제지만 별거 아니다.
산업화 하면 외부의 시선이 문제가 된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인데,
결국은 익숙해 질거다. 그러나 지금은 모른다. 내부세계 이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과,
밖에서 보는건 다르다.
단적인 예가 외모다. 못생인 애가 왜 하냐? 머 이런거죠.(웃음)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1진이라고 자처하는 내가, 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사회의 눈에 맞춰가야 했거든요. 사람들이 "우와 멋지다"
이런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들끼리 재밌는거 하면 안된다. 외부 사람들도 놀라게 해야 하는데,
10년이면 무언가 나왔어야 했는데 안타깝죠.
제가 이거 시도하기 전에 안나왔다. 2008년에 에이전시 열었어요. 이벤트 기획을 하면서
예술을 추구하는 창작집단을 갖고 있는데, 1년 반이 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소화해 내는 곳이 없었거든요. 답답해서 내가 나섰다. 커뮤니티
환골탈퇴 2007년에 열었다. 진작에 커뮤니티에서 큰 판을 만들었다면 제가 나설 필요가 없었죠.
*
일단 10년간 프로화가 살짝 진행 된건데
제가 추구
한거죠. 저는 다른 코스튬플레이로 동호회들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어요. 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된거라고 자부해요. 그간
마니아들은 퀄리티 증진에 관시 없었거든요. 애들 통해 쉽게 하고 싶고. 애들은 재밌는 것만 하려했고.
*
그 퀄리티, 실력이란 건 무엇인가
옷만드는 실력. 끼, 기획력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되는 거에요. 사실 외모는중요하지 않아요. 코스튬 플레이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사람이면 되요. 어떻게 분장하고, 조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예술성에
중요 포인트가 되겠죠. 워킹을 하나 하더라도 그냥 나갔다 들어오는게 아니라. 두
캐릭터가, 포즈를 취하고, 크로스로 겹치면 더 재밌는거죠. 그냥 걷는 위치조차 바꾸면 재밌다. 그
이전에는 아이들의 통솔이 안되고 기획이 안되고 음악이 안되니 당연하게
그런 역량이 부족했던거죠.
(인터뷰-2편은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