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완등은 논쟁 중, 변함 없는 홀리.

오은선의 칸첸중가 정상 사진은 어디에서든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카트만두 외곽에서 촬영한
것일 수도 있다.”(8월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는 ‘논쟁 중’이라고 기록된 등정을 모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3일 연합뉴스 인터뷰) 오은선의 칸첸중가 미등정 논란에 대해
엘리자베스 홀리 씨(86·사진)가 최근 언급한 내용이다. 1963년부터 네팔에 머물며 히말라야 고봉 등정 기록을 정리해온 홀리 씨의 한마디는
산악인들 사이에서 높은 신뢰도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홀리 씨가 국내 두 언론에 한 발언은 언뜻 상반되게 들린다. 괜히 혼란만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홀리 씨는 변한 적이 없다. ‘오은선의 사진은 어디에서나 찍을
수 있다’는 말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귀에는 확 들어올 만하겠지만 정상 사진이 불명확하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언급하며 빗댄 말에
불과하다. ‘논쟁 중’인 기록도 성공한 것으로 친다고 말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홀리 씨의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는 논쟁 중 표시뿐
아니라 등정에 대한 ‘True/False(참/거짓)’에서 ‘False’로 기록된 사람도 등정자로 집계한다. 홀리는 5월 3일 네팔에서 기자를
만나 “논쟁 중이기 때문에 논쟁 중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쪽이 의혹을 철회하지 않는 한 논쟁 중 표시를 지울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홀리 씨가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했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게
알려졌다. ‘홀리 씨가 인정했다’는 말이 국내에 퍼진 건 오은선이 안나푸르나를 등정한 후인
5월부터다. 이때도 “14좌 완등을 축하한다”는 홀리 씨의 말을 일부 언론이 ‘14좌 완등 인정’으로 제목 붙이며 퍼져 나갔다. 하지만 홀리
씨의 말은 14좌 완등을 했다면 축하한다는 인사였다. 이후 오은선이 홀리 씨에게 인정받았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잘못이지만 홀리 씨의 말과 오은선의 반응 모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집중적으로 내보낸 지난해 12월 기자회견 때 발언은 홀리 씨가 칸첸중가 논란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이전의 일이다. 일부에서는 누가 홀리 씨에게 그런 권위를 준 것이냐며 홀리 씨에게 매달리는 분위기를 비판한다. 하지만 홀리 씨는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다. 적어도 칸첸중가 미등정 논란에 대해 “나는 기록자일 뿐”이라고 말한 현재로선 그렇다. 권위를 부여한 것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산악인과 언론이었다. 아전인수식의 해석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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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첸중가의 진실, 최면수사라도 해야 하나

 대한산악연맹은 26일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에 대해 ‘정상에 오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필귀정이라는 반응과 방송에 떠밀려 급하게 결정했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오은선은 “칸첸중가를 포함해 26일 연맹 회의에 모인 산악인들이 예전에 오른 모든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의 정상 사진을 공개해 비교하자”고 요구했다.  국내 산악인들의 다툼이 해외 산악계에 좋게 비칠 리 없다. 한국 산악계
전체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게 뻔하다. 오은선의 요구를 두고 물귀신 작전이라 비난할 수도
있다.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등정 논란이 터진 뒤 8개월을 침묵했던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을 참석시키지도 않고 결론을 내린 건 분명 성급했다. 오은선이 ‘한 번 다 까보자’는 식으로 대응한 것도 사람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니 ‘한국 산악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한숨이 곳곳에서 들린다. ‘자연을 우러러보는 산악인들은
순수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기에 더욱 안타깝다. 칸첸중가 등정 의혹은 정상 사진이 불명확하고 등정 루트가 번복되는 등
많은 문제가 꼬여 있다. 여기에 속도 경쟁을 하듯이 산을 오르는 것이 ‘진정한 등정인가’ 하는 고산 등반에 대한 철학의 차이까지 합쳐졌다. 커져
버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사안의 핵심부터 풀어야 할 듯하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이나 해명하는 쪽 모두 후보가 될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양측 중 누군가는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럼 최면 수사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최면 수사는 의도적으로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히 그럴 일은 없다. 우리가 아는 그들은 모두 분명히 강조했다. 히말라야 신 앞에 당당하다고. 부처님께 부끄럼이 없다고. 양심을 걸고
확신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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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오은선 결론 속전속결 논란

 오은선(44)이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여성’의 타이틀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당분간 ‘14좌 완등자’ 대접을 못 받게 됐다. 대한산악연맹은 26일 “오은선의 칸첸중가(8586m) 등정 의혹과 관련해 오은선은 정상에 올랐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오은선은 “결정에 참여한 산악인 7명이 이전에 오른 8000m 이상 모든 봉우리의 등정 자료와 내
자료를 놓고 공개 심판을 받겠다”고 맞섰다. 대한산악연맹은 “이인정 연맹 회장 주재로 칸첸중가 등정자 6명인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김웅식 김재수 김창호가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정상 등정이라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오은선이 지난해 5월 오른 칸첸중가는 국내
산악인들의 등정 의혹 제기와 해명이 수개월째 반복됐다. 올해 4월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였던 안나푸르나 등정을 전후해서는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히말라야 완등의 공인 기관처럼 여겨졌던 엘리자베스 홀리 씨가 “나는 기록자일 뿐”이라고 한
발 뺀 상황에서 세계 최초 14좌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가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은 맞다”고 말했고 파사반도 “내가 두 번째임을 인정한다”고 하며 일단락되는 듯했다. 주요 해외 산악 사이트에도 오은선은 21번째이자 여성 첫 번째 14좌 완등자로 올려져 있다. 하지만 6월 오은선과 칸첸중가를 같이 오른 셰르파 중 한 명이 ‘오은선은 정상에 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또 이달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칸첸중가 등정 의혹을 다시 거론하면서 논란은 극에 달했다.  결국 대한산악연맹은 국내에서 칸첸중가를 오른 7명(불참한
서성호는 전화로 의견 표명)을 모아놓고 ‘미등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의혹이 공개적으로 터진 이후 8개월간 대한산악연맹이 명확한 태도를 밝힌 적은 없다. 이에 오은선은 “‘그것이 알고 싶다’로 논란이 재점화된 지 5일 만에 내가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서 결론을
내고 발표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오은선은 “준비 중인
자료가 확보되면 언제든지 모임에 응하겠다고 말했는데 지금 결론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은선은 칸첸중가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석한 산악인이
오른 히말라야 8000m급 모든 고봉의 정상 사진을 갖고 비교하자고 공개 요구했기 때문이다. 7명이 등정한 모든 봉우리의 정상
사진이 완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제로 국내 14좌 완등자 중 한 명은 하산 도중 카메라를 잃어버려 정상 사진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과거 국내 산악인의 많은 등정이 의혹을 받고 14좌 완등자 3명의 기록에 대한 재검토가 잇따르는 최악의 상황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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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다른 스포츠카페]의혹 자초한 오은선, 의혹 부풀린 SBS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논란 중인 1등, 비난에 시달리지 않는 2등 어느 쪽도 쉽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떳떳한 1등이 되는 것이지만 현재로선 그게 제일 어려워 보인다.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상의 증거는 신(神)만이 아는가-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편에서 산악인 오은선의 칸첸중가 의혹을 다시 제기하면서 미등정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또 한 번 불거졌다. 논란의 강도는 어느 때보다 심하다.

  칸첸중가 미등정 논란의 근본적 원인은 ‘정상 사진은 처음부터 불명확했고 당시 등반에 대한 오은선의 기억도 자세하지 않은 상황’에서 ‘왜 정상 사진을 이렇게 밖에 못 찍고 설명도 못하느냐’고 묻는 데에 있다. 기억이 안 나는 사람한테 자꾸 기억을 해내라고 하니까 문제가 자꾸 꼬이는 것이다.

  오은선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때 앞장서서 등반 루트를 뚫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니지 않았다. 정상 사진이나 등반 기록 등에 대해서도 프로답지 못했고 철저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반성한다고 누차 밝혔다. 그렇다고 등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날씨가 안 좋아 제대로 된 정상 사진이 없다면 결국 정황 증거로 등정 여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쪽과 오은선의 주장은 엇갈리고 의혹과 해명이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오은선의 감정적 대응도 논란을 부채질한 측면이 크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은선이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SBS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퉁명스럽게 반응한 것 등을 편집해 보여줬다. 사실 오은선의 화법은 원래 직설적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적잖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만하다. 그리고 원래 잘 운다. 결국 오은선이 전하고자 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소통하는 방법이 거칠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번 방송을 통해서 새롭게 제기된 의혹은 한 가지다. 정상 가는 길에 잃어버렸다고 말한 수원대(오은선의 모교) 깃발이 사실은 오은선의 품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수원대 깃발은 애초에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낳은 시발점이었지만 정작 결정적 논란거리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네 개의 돌로 눌러져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사람 중 어느 한 쪽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혹에 대해 오은선은 설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논란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오은선이 ‘정상을 오르는 도중에 깃발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실상 오은선은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게 많다. ‘오은선은 정상을 밟지 않았다’고 말한 셰르파 누르부를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에두르네 파사반이 하필 14좌 완등을 마치고 만났다는 사실은 간과해도 되는지, 4월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였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기자를 만나 ‘미등정 의혹은 터무니없다’며 분노한 페마 츠링 셰르파와 방송 제작 기간 중에 인터뷰를 못했다고 해서 그가 침묵하고 있다고 못 박을 수 있는지 등이다.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오은선과 동행 취재를 갔기 때문에 시각이 균형 잡히지 못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르부의 발언은 본보(6월 11일자)를 통해 가장 먼저 보도됐다. 기자 역시 진실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적어도 이번 방송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사람보다야 칸첸중가 때문에 1년 가까이 골치 아픈 기자가 진실에 대한 욕망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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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페]의혹 자초한 오은선, 의혹 부풀린 SBS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산악인 오은선(44)의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다시 다뤘다.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은 정상 사진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오은선에게 자꾸 기억해 보라고 물으면서 점점 꼬였다. 오은선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때 앞장서서 등반 루트를 뚫지 않았다. 등정 기록을
철저히 관리하지도 못했다. 그는 프로답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반성한다고 누차 밝혔다. 그렇다고 등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악천후 때문에 제대로 된 등정 사진이 없다면 정황 증거로 등정 여부를 판가름한다. 이번 방송에선
오은선의 감정적 대응이 논란을 부채질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은선이 과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퉁명스럽게 반응한 것 등을 편집해
보여줬다. 내용의 진위를 떠나 소통하는 방법이 거칠었기에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번 방송을 통해
새롭게 제기된 의혹은 딱 한 가지다. 이전 기자회견에서 오은선이 “확실치는 않지만 정상에
오르는 도중 잃어버린 것 같다”고 밝힌 수원대 깃발(오은선의 모교)이 그의 정상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오은선의 품속에서 약간 삐져나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오은선보다 12일 늦게 칸첸중가를 등정한 김재수는 “등반 중
수원대 깃발이 네 개의 돌로 눌려 있는 것을 목격했고 그 지점부터 2시간이 더 걸려 정상에 올랐다”며 오은선의 미등정 의혹을 제기했다. 새로운 의혹에 대해 오은선은 설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논란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오은선이 ‘정상을 오르는 도중에 깃발을 흘린 것 같다’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실상 그는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게 있다. “오은선은 정상을 밟지 않았다”고 말한 셰르파 누르부를 오은선의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이 하필이면 14좌 완등을 끝낸 뒤 만났다는 사실은 간과해도 되는지. 또
4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기자를 만나 “오은선의 미등정 의혹은 터무니없다”며 분노한
셰르파 페마 츠링을 SBS 취재팀이 못 만났다고 해서 그가 침묵하고 있다고 단정해도 되는 것인지. 기자는 지난해와 올해 오은선의 안나푸르나 등정을 수개월씩 현장 취재했다. 1년 가까이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으로 골치 아팠던
기자 역시 누구보다 진실이 궁금하다.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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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쓰지 않은 히말라야 통신2(산을 내려와서)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 원정을 끝내고 귀국을 앞두고 있다. 그는 26일 카트만두에 위치한 네팔 관광청에서 원정 정리 브리핑을 했다. 로이터 통신 소속으로 1962년부터 네팔 히말라야에 오르는 산악인들을 인터뷰하며 자료를 수집한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측과도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30일 한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내년 봄 안나푸르나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오 대장과 원정대원 그리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 방송 취재진들이 안나푸르나에 머무르는 동안 ‘미디어오늘’이라는 곳에서는 오은선과 현지 취재에 나선 언론들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좋지 않은 통신 환경 탓에 뒤늦게 기사를 확인한 원정대원들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안나푸르나에 있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기사를 쓴 사람이 취재가 주업인 ‘기자’라는 사실은 동아일보 기자를 비롯해 여럿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미디어오늘은 오 대장의 후원업체와 현지 취재에 나선 언론들이 이해 관계가 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하지만 취재가 너무 부족한 듯하다. 기사 어디를 살펴봐도 후원업체와 언론사가 이해 관계에 놓여있다는 구체적 근거가 없다. 해당 기관의 입장도 나와 있지 않다. 기자는 미디어오늘로부터 이메일 한 통 받지 못했다.

  특히 동아일보에 관련해서는 더욱 내용이 부족하다. 14일자의 ‘오은선 영웅화 왜?’ 기사에서는 동아일보도 현장에 기자를 파견했다는 것, 이후 기사에서는 동아일보에 후원 업체 광고가 실렸다는 것이 관련 내용의 전부다. 미디어오늘이 지목한 그 언론사들이 수많은 아웃도어 업체 중 한 회사의 광고 몇 개를 얻고자 취재진을 두 달 가까이 일교차 30℃의 히말라야로 내몰 만큼 비효율적일까.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광고할 언론을 선택하는 건 자체 판단의 문제다. 미디어오늘은 취재진의 체재비용을 후원 업체가 지원한 부분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기업 혹은 기관의 후원으로 출장을 가는 것은 특정 언론사, 특정 부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올해 들어서 갑자기 생겨난 일도 아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취재 기자들은 안나푸르나 현지에서 여러 어려움을 견뎠다. 매일 밤 얇은 텐트 속에 누워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저려오는 추위와 고소 증세와 싸웠다. 7일 내린 폭설과 이어진 강풍으로 등정이 미뤄질 때는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현지 셰르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m 높이 눈에 묻힌 전진 베이스캠프(5100m)에 오르기도 했다.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잘 봐달라는 게 아니다.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굳이 현장까지 가서 취재를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잘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기사 곳곳에서는 산악인의 순수한 열정이 정치, 상업적으로 이용된다고 비난했다. 산에 오르고픈 산악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다. 주목 받는 산악인이 늘어날수록 후원도 늘어나고 산악계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끝으로 이번 원정을 비난한 미디어오늘과 해당 기자는 산악인들의 순수한 열정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돈이 많지도 않고 정치권에 인맥도 없다. 다만 취재가 주업이다 보니 소중한 후배를 잃고도 다시 산에 오르려는 山사람의 눈물을 봤고 새로운 길을 가려는 젊은 산악인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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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쓰지 않은 히말라야 통신1(최종 철수 결정 후)

  오은선 씨가 안나푸르나 정상을 앞에 두고 돌아왔다. 철수를 결정한 그는 내년 봄에 다시 안나푸르나에 도전한다. 이로써 그는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우리를 오르는 영광도 잠시 미루게 됐다. 그와 원정을 함께한 한 사람으로서 그의 도전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가 안나푸르나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국민들이 등정 성공을 기원했다. 여러 언론들도 역사적 도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도전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의 도전을 둘러싼 관심과 논란은 오 대장이 ‘여성 세계 최초’라는 1등을 향해 뛰고 있는데 기인한다. 1등은 분명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그만한 책임도 따른다. 사람들은 선거에서 이긴 당선자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마련이다.

  산악도 예외일 수 없다. 히말라야 8000m 14봉을 모두 등정한 산악인들은 명성을 얻기까지 크고 작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오 대장이 여성 최초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한다면 국내외의 집중 관심은 더해질 것이다.

  현재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오은선 대장의 14봉우리 등정을 두고 일부 논란이 있다. 오 대장이 올해 5월 등정한 칸첸중가 정상을 밟지 않았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오 대장은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47년동안 로이터 통신 소속으로 히말라야에 오르는 산악인들을 인터뷰하며 자료를 수집한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와 칸첸중가 관련 인터뷰를 2번이나 해야 했다. 홀리 여사는 오 대장의 등정을 최종 인정한 상태다.

  산악 관련 해외 사이트인 ‘MountEverest’는 9월 4일 오 대장과의 인터뷰를 게재하며 오 대장이 등정한 몇몇 봉우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시아 최초 14좌 완등을 놓고 경쟁한 한국 산악인 박영석과 엄홍길도 검증 과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기술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꼭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산 꼭대기에 심판을 세워 놓고 오르는 게 아닌 이상 산악인들의 사후 검증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세계 산악인과 언론들이 기록을 인정하기 까지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오은선의 도전에 비판적이거나 과거 등정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오 대장 역시 성실하게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1등의 책임이다. 오 대장은 이제 그럴 수 있는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역사의 1등을 만드는 것은 당사자와 주변 사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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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랑은 조금 다른 히말라야 통신-13(오은선의 편지)

 

 

   안녕하세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있는 오은선입니다.

  한국에서 많은 국민 분들이 특히 여성 분들이 관심을 갖고 제 도전을 응원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우선 추석 때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라 추석 선물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지 기상 등을 고려했을 때 하산을 결정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요, 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10일 이후에 있을 재시도 때는 꼭 성공해서 기쁜 소식 전해 드릴게요.

  많은 여성분들이 저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겐 너무 과분한 칭찬이라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집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노력했던 게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산 인수봉을 본 후 산을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교 때 산악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주말에 산을 가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살아야 했습니다.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 원정대에 참가할 기회가 왔을 때는 이거구나 싶었죠. 그 때 비록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히말라야 하얀 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산에 가기 위해 참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컴퓨터 학원 강사, 전산직 공무원, 학습지 교사. 돈을 빨리 모으겠단 마음에 스파게티 집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갖은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건 ‘산’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 20대들을 꿈을 잃은 세대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 산이 있었듯이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각자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겁니다. 젊은 여성 여러분,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물론 무작정 하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산이 좋다고 일 팽개치고 산만 다녔다면 얼마 못 갔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게 중요해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걸 한다면 그 속에서 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찾으세요. 남과 비교하면서 돈, 명예 등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좌절하기 쉽습니다. 좋아하는 것 자체에 자기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제가 많은 주목을 받는 데에는 제가 여자이기 때문인 걸 알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산악계도 마찬가지고요. 여자라고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한다면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 ‘혼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본인이 중심을 잡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자가 30,40대가 되면 점점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산악인이든 가정주부든 어떤 삶이든 값지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종종 아줌마 팬들을 만나면 ‘몸집도 조그만 양반이 어쩜 그리도 대단한 일을 하느냐’고 많이 놀라세요. 맞아요. 저처럼 생긴 사람도 하고 싶은 일 다 합니다. 여러분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요. 용기를 갖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세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꿈도 이제 시작인 걸요.

- 안나푸르나에서, 산악인 오은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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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랑은 조금 다른 히말라야 통신-12(공부하는 산악인 김창호)

 

  국내 최고의 등반 실력 보유자. 현역 최고의 알피니스트. 박영석, 엄홍길의 뒤를 이를 차세대 산악인. 산악인 김창호(40)를 일컫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공부하는 탐험가’일 듯하다.

  그는 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 소속으로 ‘부산 다이내믹 안나푸르나 원정대’를 꾸려 지난달 18일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그와 같이 온 사람들은 홍보성 대장(53)과 서성호 대원(30) 둘뿐이었다. 셰르파 없이 정상 도전에 나선 그야말로 소수 정예 부대였다.

  김창호는 3일 정상 도전에 이어 2차 도전 모두 오은선 원정대와 합동 등반을 했다. K2(8611m), 브로드피크(8047m), 마칼루(8463m), 로체(8516m), 다울라기리(8172m)에 이어 안나푸르나까지 오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에 도전한 것만 6번째다. 현역 최고 알피니스트와 용기 넘치는 여성 산악인의 만남은 시너지 효과를 내곤 했다. 이번에도 비록 안나푸르나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두 산악인은 서로를 의지하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창호가 주목 받는 이유는 문무(文武)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등정 후 자세한 보고서를 내기로 유명하다. 그동안 많은 산악인들이 정상을 밟는 데만 급급해 등정 후 정리 작업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창호는 “산에 오르는 것보다 등정 후 보고서를 내는 것이 더 큰 인내와 고통을 요구한다. 내가 경험한 것을 젊은 산악인들에게 잘 전해주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나푸르나 원정 기간에도 틈날 때마다 산 곳곳을 찾아다니며 보고 들은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다. 정상에 오른다면 1시간 이상 머물며 안나푸르나 산군을 살필 예정이었다. 예전에도 8000m 넘는 정상에서 2시간 가까이 있곤 했다. 기존 산악인들이 사진 찍고 빨리 내려오는 데에만 급급한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는 지금까지 히말라야 8000m 고봉 14개 중 9개를 무산소로 올랐다.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이 유력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르는 것뿐이다. 14좌 무산소 등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으레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등정 기록을 보면 유난히 세계 최초 등정 기록이 많다.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파키스탄 곳곳을 다니며 6000,7000m대의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많은 산을 올랐다. 그는 ‘높이’보다는 ‘남이 안 간 곳, 안 한 것’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그는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생각하는 탐험 중 하나는 동물 원정대를 꾸려 아프리카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다. ‘닭을 통해 달걀을 얻고 소를 통해 우유를 얻는 식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동물 원정대를 꾸려 사막을 여행하겠다’는 구상이다. 파키스탄의 빙하 지대도 여전히 그를 유혹하고 있다.

  미개척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 산 하나를 올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오르겠다는 의지. 한국 산악인들이 공부하는 탐험가 김창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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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랑은 조금 다른 히말라야 통신-11(철수하기까지)

  

 

 “아쉽지만 안전하게 내려오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19일 오후 1시(이하 현지 시간) 베이스캠프로 내려온 오은선 대장(43·블랙야크)은 담담했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함께한 대원들에게는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응원해준 국민들께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텐트에 배낭을 내려놓고 아직 하얀 눈이 묻어있는 장비를 정리했다.

  19일 오전 7시반 전진 베이스캠프(5100m)에 있는 오 대장은 정상을 바라봤다. 여느 때처럼 정상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상 부근 바람은 여전히 하얀 눈을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밤새 바람이 잦아들길 기도했지만 안나푸르나는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열흘 만에 다시 눈을 내렸다. 한동안 실패를 몰랐던 작은 거인에게 또 한 번의 기다림을 바라는 듯했다. 오 대장은 “철수하겠다. 내년 봄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18일 오전 11시 오 대장의 목소리는 분명 좀 전과는 달랐다. 그는 “철수 아직 안 했다. 날씨 상황 등을 보며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 계속해야 하는지 하루 더 고민하겠다”고 했다. 눈 속에 묻힌 그의 등산화는 여전히 아래 쪽이 아닌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등반은 끝났다고 봐야 합니까?”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18일 오전 9시20분 무전기에서는 오은선 대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원정이 시작된 이후 가장 무거운 음이었다. 하루 전 전진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후 그는 꼼짝하지 못했다. 한 일이라곤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정상 부근의 강한 바람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는 등정을 포기하는 듯 한 무전을 보낸 후 셰르파들을 캠프1(5600m) 철수를 위해 올려보냈다.

  18일 오전 9시 오 대장의 셰르파 중 리더인 다와 옹추 셰르파가 전진베이스캠프를 떠나 베이스캠프(4190m)로 돌아왔다. 지난달 말 나타난 위염 증세가 다시 도진 그는 곧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그는 지난해 10월 마나슬루(8163m)부터 올해 8월 가셰르브룸Ⅰ(8068m)까지 오 대장과 히말라야 5개 봉우리에 함께 올랐다. 셰르파 중의 핵심인 그가 떠나자 오 대장의 표정은 한결 어두워졌다.

  17일 오전 8시 베이스캠프를 출발하기 전 오 대장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모습이었다. 자켓 주머니 하나하나 살피며 장비를 점검했다. 평소 같았으면 현지 스태프들에게 맡겼을 텐트 주변 정리도 직접 챙겼다. 그는 “정상 등정을 위해 떠날 때는 차분한 심정으로 주변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정상 부근 바람이 앞으로 열흘 동안 초속 25m 이상일 거라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초속 15m 이상만 돼도 등반은 어렵다.

  그는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하늘을 바라봤지만 끝내 바람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4일 원정대 발대식에서 “걱정하지 마세요. 힘들면 내려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약속이었다. 그는 아쉽지만 약속을 지키며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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