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고 있어 한국 사정에 그리 밝지 않다. 뉴스 포털을 통해 스쳐가듯 기사를 읽는 것이 내가 오늘날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모르고, 그냥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다.
요즘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 사안과 쟁점, 찬반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는 모른다. 다만 강기갑 의원의 일명 분노의 하이킥은 그 이미지가 하도 쇼킹해 한 번 보고도 오랫동안 그 잔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먼저 사진을 본 후 당시 상황이 궁금해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책상 위로 올라가 두 번 크게 발을 구른 것이 사진으로는 굉장한 액션활극처럼 포착됐다. 그리고 문짝을 두 세번 발로 차고 딱히 반응이 없자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언의 시위를 벌인 것이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코믹한 장면이었다. 비장한 배경음악도 실감나는 효과음도 없는 시니컬한 독립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주인공의 도사같은 외모–연분홍빛 두루마기에 긴 턱수염–가 흡사 시공을 넘나드는 액션 판타지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강기갑 의원을 희화화할 생각은 없다. 단순히 영상만 놓고 봤을 때 갖게 된 나의 어줍잖은 소감일 뿐이다. 그리고 본인으로서는 얼마나 절박했으면 다소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됐을까,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말로는 안되니까 몸으로 보여준 것일 게다.
많은 이들이 그의 하이킥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는 이도 있었다. 물론 불편해하는 이도 많았다. 이민가고 싶다며 창피해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반응이야 각 개인의 성향에 따른 것이니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강기갑 의원은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의 입장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에서 그리 한 것인가, 아니면 화도 나고 열도 받고 해서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인가. 전자의 경우라도, 후자의 경우라도 문제는 크다.
우선 발차기 두어번에 상대방이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유치한 발상이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폭발한 경우라면 그것 역시 심각한 아마추어리즘이다. 전자도 후자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발상에서 그의 행동이 연유한 것일까.
혹시라도 약자, 소수자들의 억압된 분노를 대신해 십자가를 져준 것일 뿐이라는, 정의의 사도같은 이야기는 제발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는 약자계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더욱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세상의 편견에 희생되는 것은 주로 약자의 몫이다. 강자에 대한 편견도 물론 존재하지만, 강자는 편견을 견뎌낼 힘이 있다. 그러나 약자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소위 소수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가난하면 무조건 무식하고 교양이 없을 것이라는 시선인데, 그런 편견은 강기갑 의원의 ”분노의 하이킥”과 같은 사건을 통해 더 증폭될 위험이 크다. 그가 대변하고 있는 집단도 그들의 이익이 이런 식으로 옹호되길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그가 좀 더 지능적이었으면 좋겠다. 사진에 찍힐 것을 뻔히 알면서 책상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는, 그리고 그 사진이 보도되면 많은 이들이 통쾌함을 느끼겠지,라고 생각하는 그런 순진함이 나는 싫다. 나는 그의 폭력보다 아마추어리즘이 더 싫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강기갑 의원의 하이킥이 참 기겁스럽다. 자신이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일종의 영웅심리의 발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까지 대국민 퍼포먼스를 안해주셔도 이미 시민사회가 여러 법안들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고 비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