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음식- 칭기즈칸 신화를 만든 육포 이야기

본문이미지

 

 

 

 

 
 

 

 

 

 

 

 


                

 
 
세상을 바꾼 음식- 칭기즈칸 신화를 만든 육포 이야기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칭기즈칸 신화를 만든 육포 
 
문명이 발달하면서 식문화도 다양해졌는데요, 음식 하나하나에도 역사를 움직인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칭기즈칸의 신화를 이루게 한 육포이야기입니다. 
 
13세기에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 일대를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출귀몰한 기동력 덕분이었습니다.
 
 
본문이미지
 ▲ 몽골 제국과 칭기즈칸
보통 몽골 기병 한 명이 서너 마리의 말을 끌고 다니며 하루 이동 거리가 200Km에 달할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습니다.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습니다.
 
 
고대로부터 대규모 부대가 움직일 때는 그 뒤를 따라가는 보급부대가 있어야 했습니다. 식량과 보급품들을 지원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전투병 보다 이러한 보급부대 인원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보급부대와 같이 움직이는 전투부대는 기동력이 빠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이러한 보급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몽골군은 보급부대 없이 장병 스스로 자기 먹을 걸 안장 밑에 갖고 다니며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육포였습니다.
 
본문이미지
 

육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몽골군은 겨울에 소를 잡아 살코기 부분만을 결을 따라 두께 2~3cm, 폭 5~7cm 정도로 찢어서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립니다. 건조한 기후라 고기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무게와 부피가 크게 줄어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포를 절구에 넣고 갈거나 망치나 돌멩이로 두들겨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보르츠’라 불렀습니다. 몽골군은 보르츠를 소의 위나 오줌보를 깨끗이 씻어 그 안에다 보관하여 이를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물에 불려 먹었습니다.  

 
육포가루만 물에 타 먹어도 한 끼 식사로 충분했습니다. 바짝 말라있던 육포가루가 뱃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올라 공복을 채워주기 때문에 한 봉지의 육포만 있어도 일주일치 비상식량이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 중에 불을 피워 조리를 할 필요도 없어 부대가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몽골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육포가루 곧 보르츠는 간편하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운반이 쉽고 2~3년 동안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보르츠 재료는 주로 쇠고기가 많았지만 양고기, 말고기, 물고기 등으로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육포와 햄의 지리적 팽창 
 
이제는 육포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그 지리적 팽창을 살펴보겠습니다. 칭기즈칸이 태어난 흑룡강 일대 몽골에서 시작된 육포는 몽골 제국의 팽창과 함께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으로 넓게 퍼져나갑니다. 이어 러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가던 중 칭기즈칸의 사망으로 몽골군이 급히 퇴각하면서 육포 역시 그 이상 더 퍼져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육포는 보관이 용이한 최상의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육포 대신 생선과 돼지고기를 이용한 절임고기가 개발됩니다.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 지역에서는 고대로부터 생선을 햇볕에 말린 마른대구와 소금에 절인 절임대구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들은 대구를 잡기 위해 콜럼버스 이전에 이미 신대륙의 포틀랜드까지 진출해 대구를 잡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후 절임대구는 포르투갈과 북해로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바칼라우(Bacalhau, 대구) 요리입니다.
 
 
본문이미지
하몽, Jamon
 
또 스페인에서는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였다가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 오랫동안 말려 기름기를 뺀 ‘하몽’이 개발됩니다. 이렇게 스페인에서 개발된 절임대구와 하몽은 이후 오랜 기간 항해해야 하는 대항해에 건빵과 더불어 긴요한 주식이 되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케 한 일등공신이 됩니다.  
 
이후 이 절임대구는 네덜란드로 퍼져나가 절임청어로 변신하고 하몽은 이탈리아로 퍼져 나가 일명 ‘프로슈트’(Prosciutto)가 됩니다. 이것이 서양 각국으로 퍼져나간 햄(Ham)의 기원입니다. 
 
신대륙 발견 뒤에는 절임대구가 북아메리카로 퍼져나갔습니다. 미동부 로드아일랜드 해안 ‘케이프 코드’(대구 곶)에 거대한 대구 어장이 발견되어 물 반 대구 반이라 하여 아예 ‘대구 곶’이라고 명명됩니다.
 
유대인들이 인근 뉴포트에 정착하여 대규모 대구 잡이와 조선업을 일으킵니다. 그 무렵 뉴포트는 미국에서 가장 큰 유대인 커뮤니티를 이루어 이를 기반으로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햄버거의 기원도 몽골
 
본문이미지
 

 햄버거에 들어가는 다진 고기 ‘패티’(patty) 역시 몽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는 패티 자체를 버거(burger)라 부릅니다. 

 
유목민이던 몽골인들은 양고기나 쇠고기를 적당히 잘라 이를 잘게 썰거나 이를 덩어리 만들어 안장 밑에 넣고 다녔는데, 안장의 무게 등으로 눌려진 고기는 날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육질이 연해집니다. 
 
썰어서 다진 고기는 먹기도 좋고 말이 뛸 때마다 그 충격으로 고기가 다져져 부드러워지고 말의 체온으로 숙성까지 가능했습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망아지 한 마리의 살코기가 있으면 몽골전사 100명이 하루 세끼 식량으로 삼을 수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습관 때문에 몽골군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동력이 유난히 빨랐던 이유였습니다. 
 
몽골이 러시아를 침공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몽골인들은 안장 밑에 고기를 넣고 다니며 말 위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몽골이 침략한 이후 러시아에서는 지금의 햄버그스테이크와 비슷한 이 고기 요리를 ‘스테이크 따르타레’(steak tartare)라고 불렀는데 이는 ‘몽골 스테이크’라는 뜻입니다.  
 
이후 이 요리는 14~15세기에 독일의 함부르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 뒤 함부르크에서 뉴욕으로 건너간 이 요리를 미국인들은 함부르크에서 왔다 하여 ‘햄버그스테이크’(Hamburg steak)라고 불렀습니다.

 

원문보기
 
[문화재방송 캠페인]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와 함께 하여 민족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카테고리 : 문화유산 답사기

댓글(1) 세상을 바꾼 음식- 칭기즈칸 신화를 만든 육포 이야기

  1. 파도 says:

    타르타르 스테이크의 기원이 타타르족이란은건 이견이 없지만 타타르가 몽골족인지는 논란이 많습니다. 타타르족은 중앙아시아일대의 유목민을 통칭한 것인데 몽골족도 타타르의 일족이긴 하죠. 그렇지만 생고기 육회인 타르타르스테이크가 함부르크에서 변형되어 이를 익혀 먹게 된건 수백년 시차가 있는 한참 후의 일이고, 실지로 몽골군사의 전투식량은 말린 고기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무거운 생고기를 말에 싣고 다니는게 말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타타르족은 유럽과 인접한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일대의 유목민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유럽을 가장 괴롭힌건 이들 타타르족이고 그들 입장에서 동방의 오랑캐는 모두 타타르로 불렀습니다.

    음식 역사를 논하는 전문가들이 몇 가지 단서를 모아 사실인것 처럼 확정한다는 점에서 좀 실망입니다. 음식의 전달과정에 무슨 기록이 있는게 아니니 모든 것은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특히나 논란이 있는 것도 목적에 끼워 맞추면 무슨 결론이든 못 내릴까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