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31st wedding anniversary…

3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매년 이 날이면 전전긍긍해 한다.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른다.

남들처럼 하면 욕은 안 듣겠지 해도,

막상 그렇게 하려면 마누라가 손사래를 친다.

 

지난 해가 30주년이었다.

소위 ‘銀婚’이다.

작년 1월 12일, 그날 뭘 해줬던가.

소고기 국밥을 손수 끓였다.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소고기국.

마누라는 맛있다면서 만족해 했다.

 

한 해가 지나고 또 찾아온 결혼 기념일.

뭘 할까, 혹은 뭘 해줄까. 묻기도 쑥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거시기하다.

아이들과 같이 밥이나 먹자.

안 그래도 작은 아이가 일로 고생을 하니,

그런 자리나마 마련해 위로나 해주자.

엊저녁 전화로 그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이고, 아이들이 시간이 있을까 한다.

그렇다. 큰 아이는 토.일요일 빼고는 시간이 없고,

작은 아이는 야간 근무라 저녁에 시간을 낼 수가 더더욱
어렵다.

언제 한번 맞춰보자. 단,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고리로
걸자.

 

그 걸로 대충 넘기기가 아쉽다.

맛있는 케잌을 하나 장만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자.

아내는 싫다고 했다.

지금 배가 불러 죽겠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케잌을 당장 저녁에 먹을 것도 아닌데,

지금 배 부른 것으로 왜 질색을 할까.

 

할 수 없다.

저녁에 또 소고기국이나 끓이자. 마누라가 좋아하는.

대파와 무, 양파를 성성 썰어넣고,

콩나물과 마늘, 고추가루를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이자.

이번에는 부드러운 고사리까지 넣자. 국물이 담뿍해질 것이다.

31년 전 눈오던 날,

그 때나 지금이나 추운 겨울 날이다.

뜨끈하고 얼큰하고 시원한 소고기국이 당기는 날이다.

같이 후후 불면서 땀흘리며 먹는 것,

그 것도 늘그막의 결혼 기념일에 제격 아닌가.

 

그 날은 몹씨 추웠다.

눈도 많이 내려 길이고 뭐고 깡깡 얼어붙은 날,

새벽에 머리를 ‘빨았다.’

작취머성 상태에서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그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부천서 광화문까지.

지금은 헐어 없어진, 시청 뒷편의 ‘프레스 센터’

 

결혼날이다.

식장에 도착해도 술이 깨질 않는다.

어떻게 식이 진행됐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생각은 또렷했다.

‘해 치우고 말자’

10.26때 김 재규가 한 말이다.

12.12사태가 나고 암울했던 시절이다.

나라의 앞날도, 나의 앞날도 그에 연계돼

어떻게 될지 모를 시절이었다.

그러니 결혼이고 뭐고 무덤덤했다.

 

결혼을 그런 식으로 했다.  아니 ‘해 치운’ 것이다.

새벽 5시에 찬물에 ‘빤’ 머리가 온전할리 있겠는가.

머리털이 도시 죽을 줄 모르고 부풀어 올라있었다.

그날의 그 몰골이 담긴 사진앨범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Un Sospiro – Franz Lis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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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咸陽의 명물 '순대국밥'

군수가 비서에게 하는 말을 곁에서 들었다.

거, 와 시장 안에 있는 병곡식당 순대 어떻노…

군수가 기억하는 식당이라면 그 맛이야 오죽 할까.

아침, 칠선계곡 산행을 끝내고 내려와 함양으로 내달린다.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선배와 친구가 그 점에 합의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엊 저녁에 마신 여러 술들로 속은 복닥거린다.

이 속을 풀어야 할텐데, 뭘 먹어야 이 속이 풀릴까.

근데 순대식당이란다.

그저 그러려니 했다.

 

함양읍은 모두들 초행이다.

그러나 병곡식당은 찾기가 수월했다.

읍내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

중앙시장 안, 한 귀퉁이에 허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앉았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술국을 마주한 채 소주 잔을 기울이고 있다.

순대국밥과 모듬순대 중짜 하나, 그리고 소주 한병.

 

 

 

 

 

 

 

 모듬순대가 먼저 나온다.

어라, 그런데 순대 모양이 좀 이상하다.

다른 곳의 것과는 달리 크고 붉은 색을 띤 순대다.

퍼뜩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이 집 순대가 ‘피순대’구나.

병곡식당은 ‘피순대’로 유명한 곳이다.

함양 흑돼지이 대창, 소창을 손질해 당면 같은 것 없이

옛 방식으로 돼지선지와 당근, 부추 등 야채로만 손을 채운 순대.

한 점 먹으니 또 어라, 싶었다. 아주 부드럽고 맛이 깊다.

기존 순대 특유의 냄새가 없다. 그러니 맛이 깊고 깔끔하다.

순대와 함께 나온 머릿고기도 우선 보기에 색깔이 좋다.

우유빛이다. 색깔이 그러니 먹음직스럽다. 먹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역시다.

예전엔 머릿고기를 시키면 오돌뼈 부분도 가끔씩 얹어주곤 했는데,

요즘엔 그 게 잘 없다.

병곡식당 머릿고기엔 오돌뼈 고기도 몇점 나왔다. 반갑다. 

이빨이 시원치 않으니 오돌뼈를 대해도 부담감이 있다. 혹여 이빨이라도 다칠까봐.

그러나 이 집 오돌뼈는 부드럽기 짝이 없다. 몇번 씹으니 그냥 술술 넘어갈 정도다.

소주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순대국밥의 맛은 어디에다 포인트를 줘야할까.

나는 국물에 둔다. 국물이 좋아야 한다.

좋은 돼지뼈가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좋은 돼지뼈를 푹 고우면 정말 고소한 맛이 난다.

부산 서면에 가면 돼지국밥 잘 하는 집이 있는데,

시원하고 고소한 맛으로는 그 집 돼지국밥 국물이 일품이다.

순대국밥을 들고오는 주인 아줌마의 표정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한번 묵어보소. 얼마나 맛나고 고소한가하는 득의의 미소와 함께.

병곡식당 순대국밥에 100점을 주고 싶다.

정말 간만에 고소하고 개운하고 맛난 순대국밥을 먹었다.

국물이 뽀얗고 걸죽한게 부추를 듬뿍 넣고 먹으니 정말 맛있다.

간밤 술로 찌든 속이 시원하게 가라않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아니다.

우리 일행 여섯명이 모두들 맞장구를 친다. 맛있다. 맛있다.

그 맛에 소주 한병을 더 추가해 마셨다.

 

 

 

 

이 집은 2대째, 50년을 이어오는 순대식당이라고 한다.

그러면 주인장도 좀 늙수래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중년의 아름다운 아줌마가 주인이다.

손, 그러니까 음식 인심도 크다. 뭘 추가하면 그냥 듬뿍 갖다 준다.

아줌마더러 이름을 물어 봤더니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순대 맛있으모 됐지. 이름 알아 뭐 할라꼬.

앞으로 함양엘 다시 오게 된다면,

아마도 병곡식당 순대와 순대국밥을 먹기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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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잘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잘 모르는 것.

멀리 있는,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하지만,

어느 때,

골육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

 

아침 밥상머리.

간밤의 헝클어진 생각들은 그대로다.

허기?

좀 유치 찬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때,

눈에 들어오는 한편의 詩,

가슴을 때린다.

 

삶은 유치하지만 그래도 찬란하다.

문득 커밍 아웃이 하고 싶은 아침,

그리고 이 한편의 詩…

 

 

 

 

바구니 속의 계란 -  최영숙 (1960
- 2003)

 

나는 아름다운 장기수 탈출을 꿈꾸지 결혼해 일년 반,
임신 육개월의 배를 끌어안고서 주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장막 저 찬란한 가을햇살을 찢고 달아나는 탈출을 꿈꾸지

 

꿈꾸는 성 꿈꾸는 태아 문지방에 기대앉아 대문 밖을
보노라면 나가자고, 자꾸만 머얼리 저어가자고 뱃속의 태아가 툭툭 발을 차네 소싯적 내 젊은 어머니, 가을 마당 햇빛 속에
물끄러미 서 계시네

 

나는 치밀한 탈옥수 냉정을 가장하네 뒷덜미를 끄는 햇살,
파도를 밀고 나가면 어디가 될까 갈대방석 위에 양팔 벌리고 누워 두웅-둥 나 누더기 되어 난바다로 떠내려가네 파란 하늘
파아란 구름 힘껏 들이마시며 뱃속의 아이에게 들릴 만큼 놀랄 만큼 소리질러야지 “계란 사시오, 계란 사시오오-”

 

깨지는 건 순간이야 앞뒤 구멍 내서 날계란 후루룩 마실 때의
비릿한 뒷맛 손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인 껍질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
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였나 미끈,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한꺼번에 계란프라이 해먹어도 좋을 잘 달구어진
가을햇살, 햇살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중에서

 

 

 

 

 

 

“만두처럼 빚어져 순해지리라”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이제 내게 허락된 시공간을 받아들여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미리 써보는 이 후기가 수정되길 바라면서 두번째 시집은 내 손으로 엮기를
바랐으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한다.

살아,많은 게 슬펐지만 또한 기쁘고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이들이여,이제는 안녕.”시집 뒤에 붙어있는 ‘미리
쓰는 후기’가 아리다.

2001년 심장병에 더해 루프스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3년 10월 29일 합병증으로 43세의 생을 마감한
최영숙(1960∼2003) 시인.

3주기에 맞춰 출간된 유고 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창비)은

자신의 몸에 차오른 죽음을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던 동행(同行)의 기록이다.

죽음과의 동행이라고 했지만,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에 대한 기록은 그 고통으로
인해 과잉되게 마련인데

최영숙의 시가 뛰어난 지점은 그 과잉을 절제하면서 삶과 생활을 다독이고
있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좁은 분식집의 고요한 풍경을 그린 ‘옛날 손만두집’은 만두집 여자의 손에서

만두가 빚어지고 김이 펄펄나는 솥에서 익어가는 과정을 통해 탄생과 죽음의
문제를 직관하는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어쩐지 말이 없는 그녀는 내가 김밥을 다 먹도록 하나 하나 만두를
빚어나가는 것이,

저 먼 누이나 오라비쯤 되어 안 보는 듯 나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 또한 암말 않고 부어주는 오뎅국물을 마시며 나의 오랜 出이 여기서
끝나주었으면 하였고”만두집 여자와 시적 화자 ‘나’는 서로를 슬쩍슬쩍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여자는 “둥글고 얇아진 만두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꾹꾹 소를 눌러넣고”

‘나’는 그때마다 김밥을 하나씩 먹는다. 시는 이렇게 종결된다.

“솥단지 안에 얌전히 들어앉은 만두꽃이 꿈인 듯 만개한지라,이마가 뜨거운
만두를 집어내고

다시 새 만두를 올려놓으니,내가 그녀의 손안에서 빚어졌을 때

다만 만두로서 순해져서는//가리라,저 화엄의 거리로 지금 난 익어가는
중이니”죽음을 목전에 두고 ‘익어가는 중’이라고 쓴 의미 전환 방식이야말로

처연한 부활 의지 앞에 죽음의 무릎을 꿇게하는 득의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은 최영숙의 몸을 관통해 시가 되었다. 삶은 때로 죽음에 의해 견인되기도
하는 것이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할머니에게 한끼 아침 식사를 차려준 시인은

자신에게 ‘애기 엄마,복받으시우’라는 말을 남기고 간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렇게 읊조린다.

 

“꽃 같은 시절,달랑 신랑 사진 한장 들고 찾아간 시집살이부터

/씨앗 보고 집 나와 서울 공장으로 다시 시골로,

/아들 낳아 지금은 며느리와 함께 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마지막 식사’
일부).

 

이렇듯 시에 등장하는 것은 할머니 어머니 딸 며느리 수양어머니 아줌마 소녀로
호명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여성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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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twitter) 만화경

트윗(tweet)이 대세다.

인터넷 시대, 현대 민주사회의 화두가 소통인 만큼

그에 걸맞는 사회적 현상이다.

트위터(twitter)에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정치인, 예술인 등 유명한 사람부터 장삼이사들까지의 개개인들로 붐빈다.

서로들 저마다 자신들의 주장이나 얘기들을 올리고

팔로잉과 팔로워를 하면서 다른 트위터들과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

 

트위터들의 행태도 다양하다.

트윗은 쌍방향 통신을 기반으로 한다.

즉, 얘기들을 주고 받는 곳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기 얘기만 늘어 놓는다.

어떤 주장이나 얘기에 대해 견해를 보내도 막무가내다.

자기 얘기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는데,

내용은 ‘공자 가운데 토막’ 류의 수신제가的인 것이다.

예전에 좀 안면이 있는 어떤 분이 트위터에 떴다.

언론인 생활을 접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사람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지만, ‘무시’ 당하고 있다.

그저 정기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공자 가운데 토막’ 같은 얘기만 계속 싣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몇몇 있다.

영어로 글을 올리는 뮤명한 모 여자 바이얼리니스트,

그리고 최 모씨라고, 잘 알려진 여자 대학교수도 그 부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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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선전만 일삼는 트위터들도 있다.

정치인들이 이에 속한다.

물론 이들은 트위터들의 반응에 민감하다.

대답도 성의껏 잘 해준다.

그러나 올리는 글들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자기 과시의 내용들이라 좀 역겨울 때가 많다.

그런 코멘트를 보내면 당연히 싫어한다.

야당의원들이 주로 많은데, 입담 좋기로 유명한 전 모 의원,

그리고 역시 전 씨 성을 가진 한 여성의원이 특히 그렇다.

여성 의원, 이 분은 지지자들에 대한 인사로 아예 트위터를 도배를 한다.

남자 전 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과 일상을 실시간으로 올리는데,

내용은 무조건적인 정부비판과 자기 자랑이다.

몇 차례, 그 걸 꼬집었다가 팔로워에서 잘렸다.

하기야 싫은 소리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트윗에서도 예절은 있게 마련이다.

생각이나 얘기에 동조나 비판을 하는데,

사람마다 생각이나 이념이 다르니 그 게 좀 애매해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트윗 예절의 경계도 애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비판을 하다보면 다툼이 생기면서

팔로워에서 스토커 비슷한 처지로 몰리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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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남희석의 트위터) 

 

 

재미있는 트위터들도 많다.

개그맨 남 희석은 트윗에 정말 열중이다.

거의 매일, 매시간 트윗을 하는데, 지방공연 가서도 그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방의 맛 있는 집도 소개해주고,

공연 중 일어났던 해프닝 등도 들려주는데, 팔로워들의 반응도 대단하다.

개그우먼 박지선은 얼마 전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게 참 개그적이다.

그러니까 박지선은 트위터를 자신의 개그 소재의 창고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개그맨 중에서도 개그맨답지 않은 트위터들도 있다.

김제동의 트윗은 그의 직업, 혹은 정체성을 의심케할 정도로 시사적이고 무겁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다. 김미화의 그 것도 좀 그런 면이 많다.

시사방송인으로 활동해서 그런 모양인데, 그닥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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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박지선의 트위터)

 

 

바깥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유용하고 재미있는 트위터들이 많다.

영국의 요리전문가인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의 트위터를 즐겨 찾는다.

제이미를 안지는 꽤 됐다. 우리나라에도 푸드TV에 소개되면서 그의 팬이 많다.

제이미는 트위터에 요리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하기야 일상이 요리인데, 트위터에 까지 그 걸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요리하는 틈틈히 느끼는 생각들을 올리는데 그 게 재미있고,

개인적으로 요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적잖은 도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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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의 트위터)

 

 

오바마 미국대통령도 트윗을 즐긴다.

정책의 설명이나 결정과정의 고단함 등을 올리는데, 그를 통해

거대한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하는 의미를 준다.

 

"It’s up to you to show that

you care too much about this country to let it fall
backward…"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4시간 전에 올린 트윗인데,

그 내용이 국민의 국가에 대한 권리보다,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 케네디 대통령의 명 연설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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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아들 것은 아들에게?…

 

우리 친구들,

자식들이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나이들이다.

걔중에는 가정을 꾸려 독립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은 부모들과 함께 사는 자식들도 많을 것이다.

자식 잘 키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

공부 잘 하는 것.

부모 속 섞이지 않는 것.

좋은 회사 취직하는 것.

 

대충 이 범주에 속하면 자식 잘 키웠다는 소릴 듣는다.

이런 범주를 놓고보면, 자식 잘 키운 우리 동기들 많다.

얘기들 들어보면 대부분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엘 다닌다.

학교를 나와 취직을 하고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기까지가 부모의 최소한의 역할이고,

‘잘 큰 자식’으로서의 도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거기까지일까.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 만 하면

그 것으로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끝나는 것일까.

그랬으면 좋을 것이다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한 친구가 물었다.

야, 네 같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어본즉슨 이렇다.

아이가 취직을, 그 것도 국내 굴지의 기업에 취직을 했다.

지난 연말에 그 회사 실적이 나와 성과급이 나왔다.

자그마치 2천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엄마와 그 아들이 거실에 앉아 말씨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들었다.

엄마는 아들더러 그 성과급 가운데 반을 달라는 것이었고,

아들은 줄 수 없다는 실랑이였다는 것.

친구는 어떻게 아무런 짓도 할 수가 없었다.

나가서 마누라를 거들 수도 없고, 아들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내가 아들한테 지은 죄가 너무 많다.

해준 것도 없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줬다.

다니던 회사를 IMF 외환위기 무렵 나오면서 가세가 기울어,

한창 사춘기였던 아들에게 적잖은 고생을 시켰다는 것이다.

 

뭐라 할 것인가.

생각 같아서는 자식을 나무라고 싶지만, 듣고보니 꼭 그럴 수도 없다.

그 아들은 대학 다닐 때 락 음악을 했다.

인디밴드를 꾸려 작곡도 하고 연주도 했다는 것이다.

모처럼 생긴 목돈으로 장만 못했던 악기 등을 사겠다는 것이다.

친구도 자식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냥 내 버려 두어라. 손 벌리지 말고.

자식이 언젠가는 알 것이다. 

스스로 알고 느끼는 시간이 올 것이다.

대신 집에서 생활을 하니까 최소한의 생활비는 받아라.

생활비를 왜 내야하는가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어라.

 

해 준 말은 이 게 전부다.

그 친구는 내 말에 가타부타 코멘트가 없었다.

아들 것은 아들 것이다.

그렇다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고 설파한

예수님의 경구를 부모.자식 간에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친구는 그래도 아들을 믿고있는 마음이 돈독했다.

그 친구는 아들을 잘 키웠는가,

아니면 잘못 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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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가 좋다

 

영화를 좋아한다.

지금은 예전보단 못하다.

개봉관에서 보는 영화는 근자엔 드물다.

대신 테입이나 DVD로 많이 본다.

지난 해,

큰 아이가 텔리비전을 큰 것으로 바꿔주면서

새삼 영화보기가 더 즐거워졌다.

큰 화면에 HD로 보니까 영화관에서 보는 기분이다.

테입 등은 좀 갖고 있었다.

좀 오래된 것이 대분분이다.

스필버그의 ‘클로우즈 인카운터”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과

‘일 포스티노”파고(Fargo)’ 등 구하기 힘든 테입들도 그 중의 하나다.

DVD도 꽤 오래 된 것들이 많다.

셀지오 레오네의 마피아 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역시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는 보관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좀 아껴가며 가끔씩 보고 있는데, 대 여섯번 씩 이상은 봤을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의 일생을 다룬 넌픽션 DVD도 마음이 좀 울적할 때면 보곤 한다.

 

그러고보니 갖고있는 영화들 중 신작이나 근래의 것은 없다.

모두 옛 영화들이다.

영화 취향도 나이를 따라 가는지, 나이를 먹으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요즘 영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가끔 유선방송으로도 접한다.

그러나 왜 그럴까. 재미가 없다. 떠들썩한 광고에 꾀여 유료로도 몇 번 봤는데,

도중에서 꺼버린 게 한 두어 편이 아니다.

남들 다들 재미있다는 ‘해리포터’ 시리즈도 보는 도중에 잠이 와 보다가 그만 뒀다.

그에 비해 옛 영화들은 재미있게 본다.

옛 영화들이라도 처음 보는 것은 드물다. 대부분 본 영화들이다.

갖고 있는 옛 영화들도 대부분 몇 번씩 본 것들을 다시 구해놓은 것들이다.

왜 옛 영화들을 좋아하고 집착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우선 영화 내용이 깊이가 있다. 다루는 주제가 무거운 것이 아니더라도

느껴지는 것에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뭐랄까, 스탭이나 배우들의 정성과 노력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요즘 나온 영화들은 현란하다.

장비가 좋고 블록버스트 형식을 취하는 게 대부분이니까 시각적으로만 요란하다.

대신 내용은 빈 깡통같은 느낌만 준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추억’이란 요소도 옛 영화를 즐겨보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기,

나도 그 시기를 함께 한 동시대인으로서 여러 추억에 침잠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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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중에 교보문고를 찾았다.

마음 먹었던 영화를 사기 위한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벌써부터 벼르고 있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가 나오는

‘좋은 친구들(GoodFellas)’, 그리고 ‘카지노(Casino).’

여러 번 검색을 한 후에 찾을 수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가 연합군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 잡았던

노래 ‘릴리 마를렌’을 다룬 ‘릴리 마를렌(Lili Marlene)’은 우연히 발견한
영화다.

그리고 음울한 분위기와 숀 펜, 케빈 베이컨 등의 배역에 반해 몇 번씩 본

‘미스틱 리버(Mistic River’와 나찌 독일치하 한 피아니스트의 처절한 생존기를
담은

‘피아니스트(Pianist)도 샀다.

하나 더. 나의 블로거에도 다뤘던 ‘바베트의 만찬’도 눈에 띄길래 얼른 주워
담았다.

그러나 못 구한 게 있다.

갖고있는 ‘파고(Fargo’는 테입이다.

DVD로 만들어진 이 것을 구하려했는데, 오래 전에 품절돼 없었다.

‘일 포스티노’도 마찬가지고 ‘뮤직 박스’ 그랬다.

광화문 지하도서 교보문고 들어가는 입구에 DVD를 파는 좌판이 있다.

거기서 물어봐도 없었다. 

‘일 포스티노’가 한 개 있긴 한데, 가격이 생각보다 엄청 비쌌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구상 중이다. 테입을 DVD로 어떻게 구울 수가 없을까 하는
것.

요즘 기술이 좋으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회현동 지하에 그렇게 제작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언제 나가는 길에 한번 들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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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香과 추억, 마산 龍馬山

용마산(龍馬山)은 마산에 있는 산입니다.

오래 된 동네들인 오동동, 산호동의 구마산 지역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얼마 안 되는 뒷동산 같은 곳이지요.

그래서일까, 이즈음은 용마산이라고 부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번에 내려가 보니 언제부터인가 용마산 대신 ‘산호공원’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우리들 어릴 적에는 그 이름도 우람한
‘용마산’이었습니다.

산 이름에 용과 말이 들어갔으니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느껴졌었겠지만,

기실 마음 한 구석에는 크고 높은 산 이미지 보다는

뒷동산 정도의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떤 게 용마산의 실체일까요.

 

용마산에 대한 첫 기억은 국민학교 입학을
전후한 것으로,

떠올리기에 그리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 산에서 있은 해괴망칙한 사건 때문지요.

그 게 유언비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해괴망칙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동네 사람 신고로 그 산 숲 속에서
발견됐는데,

두 사람이 달라 붙어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남자가 여자 몸 위에서 죽었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 소문이 당시 마산에 쫙 퍼졌습니다.

나중에 좀 커서 우리들끼리 킥킥대면서 좀 유식한 말로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하던 말, 그 게 바로 ‘복상사’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학교와 부모님들로부터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해지고는 올라가지 말라는 것.

그리고 봐도 못 본체 하라는 것.

그 짓을 하다 놀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봐도 그냥 못 본체 지나치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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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詩의 거리’에 조성된 시비들)

 

 

용마산은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각종 비석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석들 중에서도 시비(詩碑)가 단연 많았습니다.

노산 이 은상을 비롯해 화인 김 수돈 선생, 권 환 선생, 천 상병 선생,

정 진업, 박 재호 선생 등 주옥 같은 글로

마산과 마산사람의 심성을 달래고 어루만져 주었던 선배들이 비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 선생의 시비들은 한 곳에 함께 모여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였습디다. ‘詩의 거리’라고.

정 진업 선생과 박 재호 선생이 기억납니다.

1980년대 초, 막걸리 집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었지요.

두 선생들 중 한 분은 당시 혼사를 앞둔 저의 결혼식 주례를 자청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그 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구요.

정 진업 선생은 용마산 ‘詩의 거리’에서 ‘갈 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박 재호 선생은 ‘간이역’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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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人 김 수돈 선생의 대표시 ‘우수의 황제’가 새겨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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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환 선생의 대표시 ‘고향’이 새겨져있는 시비)

 

용마산의 시비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이 원수 선생이 고향 마산을 노래한 시로,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향의 봄’ 시비입니다.

1968년 가을 무렵이었습니다.

용마산에 이 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시비(詩碑)가 세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것을 ‘취재’하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원수 선생을 그 때 처음 뵈었습니다.

가녀린 몸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썼던 모습.

엷은 가을 볕, 그리고 소슬바람에 팔랑이던 억세풀 사이에

드문드문 서서 함께 부르던 ‘고향의 봄’이 생각납니다.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이 몇 장 있습니다. 코니카 사진기로 찍었던
흑백사진들이지요.

 

1977년 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 곳 신문사에 견습으로 들어간지 몇 날 안 되었을
때였었지요.

그 때 무슨 마음으로 용마산을 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무에 기대서서 호수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소년이 내 앞에서 나랑같은 모습으로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안면이 좀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신문사 윤전부 사환을 하던 고학생이었습니다.

이름이 나와 같았습니다. 무슨 영철…

왜 산에 올라와 여기에 있느냐.

그냥요.

두 눈에 궁기가 느껴졌습니다.

배 고프제?

공자 가운데 토막 같은 소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아라.

고난 끝에 낙이 온다.

열심히 공부해라.

가끔 톨스토이, 푸쉬킨 등의 말도 섞었을 것입니다.

누런 궁기에 근심 가득한 얼굴의 그 소년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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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시비)

 

 

다른 한 분의 비석은 좀 특이한 것입니다.

‘불망비(不忘碑)’이지요.

고인의 생전 업적과 정신을 잊지말고 계승하자는 뜻에서 세우는 것인가 봅니다.

그 불망비는 김 형윤 선생을 위한 것입니다.

김 형윤 선생은 그 분 생전에 뵌 적은 없습니다만,

그 분의 행적과 사상 등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마산이 낳은 훌륭한 언론인이지요.

그 분을 빼고 마산 언론사를 운위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그 분이 남긴 족적은 큽니다.

그 분의 호가 뭔지 아시는지요.

‘목발’입니다. 한문으로 ‘目拔’, 즉 눈을 뺀다라는 뜻이지요.

왜 ‘목발’인가.

일제강점당시, 왜놈 순사의 눈을 두 손가락으로 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선생은 언론인이자 강점된 식민지 조국의 아픔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 애국지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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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윤 선생 ‘불망비’) 

 

 

‘김형윤 불망비’를 지나 충혼탑 쪽으로 올라가니 눈에 익은 비석이 하나 나옵니다.

 ’대마산 항도제 선언문 碑’가 그 것입니다.

1966년이었지요. 문학과 예술의 도시,

마산의 전통을 이어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로 마련된 게 ‘마산 항도제’입니다.

그 축제의 정신을 되새겨 후세 마산사람들에게 남기기 위해 세운 게 이 비석입니다.

그 때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제 1회 항도제 전야제 때 밤 세워 마산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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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산 항도제 선언문 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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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 憲祖 옹의 명복을 빕니다

 

며칠 전 텔리비전을 보다가 문득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북 봉화에 사시던 權 헌조 옹이 별세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별세 소식은 마지막 선비로서의 그 분의 일생을

전하는 텔리비전의 다큐멘터리 속에서 전해진 것으로,

지난 12월 13일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프로를 중간부터 봤습니다.

우연히 틀었는데, 그 분이 나오시길래 참 반가웠습니다.

노구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계시면서도 후학을 가르치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시는 모습들은 여전하셔서 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것은 생의 마지막 부분들이었고,

그 분은 이미 고인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권 옹은 평생을 봉화의 3백년 된 집을 지키면서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을 모셨습니다.

 

권 옹을 알게된 것은 오래 전이지요.

1993년이었지요. 청와대에서 비디오 테입을 하나 받았습니다.

‘부자유친’이라는 제목의 것이었습니다.

권 헌조 옹이 명문 儒家의 자손으로서, 일신의 영달은 멀리한 채,

효와 정성을 다해 부모님을 수발하면서 그 분들의 마지막까지 유교전통에 따라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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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부자유친’ 이란 제목으로 나온 비디오 테이프에 소개되었던 권 헌조
옹의 모습입니다)

 

당시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많은 감동을 줬습니다.

그런 연유로 나의 손에 들어온 게 바로 ‘부자유친’입니다.

그 것을 다시 한번 틀어놓고 보니 새삼 권 옹에 대한 추모의 정이 깊어 집니다.

조상들 잘 모셨으니, 하늘나라에서 그 분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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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 떡 심

 

우리는 갈치보쌈 김치를 먹고 있었다.

25일, 매우 추운 날이다.

북한산은 말 그대로 냉동고 그 자체였다.

보통 때 같으면 요기를 산에서 하고 오지만,

이날은 너무 추워 그냥 내려왔다.

시장기가 목에 걸렸다.

구기동 ‘삼각산’은 갈치보쌈 김치로 유명하다.

우리는 그 김치 맛에 익숙해져 있다.

다닌지가 3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알맞게 숙성돼 있어야 한다.

너무 익어도 그렇고, 풋 익어도 그렇다.

모처럼 시킨 그 김치는 아주 잘 익었다.

네명이 먹는데, 갈치는 몇 젖가락 만에 가고 없다.

 

옆 자리에 늙수레한 분들이 앉았다.

주인 할머니가 같이 자리하시는 것을 보니 이 가계 단골인 것 같다.

그 분들이 뭘 꺼낸다. 먹을 거리다.

할머니가 일하는 아주머니더러 뭘 시키는 등 부산하다.

뭔가 싶어 봤더니, 홍어다. 얼린 홍어회다.

차가운 날씨라 얼음이 살풋 맺혔는데, 붉으스레한 것이 맛나 보인다.

20년도 넘었다. 과천 살 적이다.

선배 언론인 한분과 새벽에 겨울 관악산을 올랐다.

무척 추웠다. 연주대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을 정도로 추웠다.

바로 하산을 하면서 대피소에서 요기를 했다.

그 무렵, 관악산 연주암 아래, 과천 향교 코스 쪽엔 대피소가 있었다.

일행 중 흑산도 출신 어느 분이 홍어를 갖고 왔다.

얼음이 송송 맻힌 게 알맞게 언 홍어회 였다.

한 점 얻어 먹었는데,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옆 자리의 홍어를 보니 그 때 그 홍어 맛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는 이제 갈치도 다 골라먹고 나니 먹을 게 마땅치 않은 상황 아니던가.

먹고 싶다. 우리끼리 그런 말들이 오갔다.

어떤 친구는 주제넘게 입맛을 다시면서 홍어회 먹은 그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던가. 옆 자리 분들이 일어설 채비를 한다.

그런데, 그냥 일어서는 폼이다. 홍어는 아직도 한 접시 가량 남아있다.

우리 일행들, 누구 뭐랄 것도 없이 그 쪽으로 주시를 한다.

그 사람들이 일어서 출입문 쪽으로 나가고 그 테이블은 비웠다.

한 친구의 성질이 급했다. 아줌마를 불렀다.

저거, 우리 좀 먹을 수 없을까.

아줌마가 힐끗 남은 홍어를 보고는 씩 웃는다. 그리고는 한 마디.

글쎄요. 물어 보고요.

그 소리릉 들은 것 같다.

그 자리 앉았던 분들 중의 한 사람이 돌아서더니,

주인 할머니더러 뭐라뭐라 한다.

홍어를 챙겨달라는 주문이었던 것 같다.

잊었던가, 아니면 우리가 그러는 것을 보고 용심이 나서였던 것인가.

아줌마가 우리보고 다시 쌩긋 웃는다. 아쉬움과 머쓱함이 담긴 웃음이다.

아줌마가 그 모양이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모두들 얼굴만 쳐다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머쓱했던지.

 

이유있는 껄떡거림,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껄떡거림은 주책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주책바가지를 쓴채 씁쓸하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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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 따루 씨의 감성돔

미녀들의 수다,

즉 ‘미수다’에 나오는 따루 씨,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데,

감성돔을 구워 먹으려고 말리는 중이랍니다.

감성돔을 구워 먹는다?

그 말은 감성돔의 맛을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도 갯가 출신을 제하고

구운 감성돔의 맛있는 맛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한마디 했습니다.

 

감성동 구워 먹으려면, 잘 말려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게 잘 말리는 것인가.

‘꾸덕꾸덕’하게 말려야 한다.

어떻게 ‘꾸덕꾸덕’하게 말리는가.

서울에서는 좀 힘들 것이다.

바닷바람, 즉 해풍이 솔솔 부는 바닷가나

선창가가 좋다.

 

따루 씨,

나의 조언에 어떻게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서울 바람, 서울 햇볕에 말려도

정성이 지극하면 ‘꾸덕꾸덕’하게 마르지 않을까요.

 

아무튼 잘 말려서 맛 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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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루 씨의 감성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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