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와 기사작성,
이 두 가지는 기자들 업무의 핵심일 것이다.
보도에 있어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취재를 잘 해도,
기사를 잘못 쓰면 뉴스와 스토리텔링이 잘 전달될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기사를 잘 써도 취재가 잘못되면 그릇된 정보와
얘기를 전달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후에 K선생의 유족이 오셨다.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해 허겁지겁 그동안 준비해 놓았던
자료들만 대강 훑어본 채 그들을 맞았다.
그냥 몇 가지 물어보는 정도의 만남이었다.
몇년 전, 어느 신문의 기자가 쓴 기사가 검색된 게 있어
그 기사를 중심으로 묻고자 했다.
그런데, 유족 중의 사위라는 분이 유심히 기사를 살펴본다.
어디서 본 기사라는 것이다.
신문과 기자이름을 알려줬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 기사 엉터립니더. 순 엉터립니더.
엉터리기사라니요?
말인즉슨, 인터뷰 중심으로 쓰여진 그 기사는 기실 그 게 아니라는 것.
그냥 일방적 주장의 보도자료 몇장에 의존해 쓰여진 기사이고,
당사자와의 인터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사실대로 왜곡됐을 뿐더러, 이미 고인이 된 그 예술인은
물론
유족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그 기사가 나온 후, 유족 측에서 항의를 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는 것.
기사 내용의 진위여부는 법원에서 가리면 될 일이고,
나는 그저 주는대로 썼을 뿐이고…
한 예술인의 문화적 계승여부와 관련된 그 사안이
법원까지 갈 정도인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기자는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자신의 기사를 옹호하면서
그런 고압적인 태도로 기를 꺾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에서 유족들은 상황을 접어 버렸다.
기자를 상대로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는 패배감이
앞섰다는 것이다.
그 신문은 중앙 5대지에 들어가고, 그 기자는
가끔 텔리비전에 나오기도 하는 ‘저명한’ 인사이다.
그 유족들은 이즈음 그 예술인에 대한 자료집 발간을 준비 중에 있다.
왜곡된 사실을 어떻게든 시정하겠다는 마음에서다.
아쉬운 것은 그 당시, 그 기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기사를 바로 잡아 줬으면, 그 가족들이 애를 써가며
그런 준비를 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기자는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상당한 딜렘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잘못하는 기자는 퇴출돼야 한다.
빨간 띠 두르고 아무리 노조활동을 열심히 해도
무능력하고 비상식적이고 정의감이 없는 기자는
하루라도 빨리 기자직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났다.
그 게 여러모로 우리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