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세어링”과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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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세어링 운동을
보며,

 

참으로 우리 민족은 별나다. 말하자면 별나게 우수하다는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나라가 국난에 처하면 민중이 먼저 일어 났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들이 예외 없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다. 이런 역사성이랄까 전통이랄까 하는 애국 애족 심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IMF때는 전 국민이 금 모으기에 동참하여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작년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 때에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만큼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바다 살리기에
나섰다. 얼마 전 TV를 보니 일본도 수년 전 이런 해상기름
유출사건이 있었는데, 단결 잘 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자원 봉사 참여자가 우리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는
수치를 보고 나도 놀랐다.

 

일본이 이 나라를 지배하려 할 때 우리 국민들은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한 국채 보상운동이 있었고, 강점기에는 3.1독립운동이 있었으며, 또 중국, 만주, 러시아, 미주 등에서 우리 국민들의 독립운동, 항일운동은 끝 없이 이어져
왔었다.

 

그런데 지금 또 우리는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의 슬기로운 극복을 위해
잡 세어링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방 정부 중앙 정부, 공기업, 대기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중소기업들에서 이 운동은 소리 없이 진행 되고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엔 정부 및 경제단체 등이 앞장서거나 장려하고 있는 면이 있고,
또 일부 당사자들의 불만도 다소 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다소의 잡음은
있을 수 있고, 그렇다고 이런 다소의 잡음이 이 운동의 숭고한 뜻을 오염.훼손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IMF때의 금 모으기 운동 때도 다소의
잡음은 초창기에 있었지만, 그 운동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세계 각국의 찬사와 부러움을 샀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금의 잡 세어링 운동도
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리라 본다. 바로 네일 모래가 3.1
기념일이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일본 군국주의의 총칼에 맨손으로 맛 선 3.1 독립운동은, 한편으로는 우리 한 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게기가 되었으며, 또 한편 세계인으로부터 주목을 받아 세계사의 흐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운동이다.

 

즉 이 3.1운동을 게기로 민족자결의 원칙
미국 윌슨 대통령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곧 이어 이 정신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고, 그 이후 세계의 수 많은 나라가 독립을 쟁취하는데 큰 힘이 된 것이다.
3.1
절을 맞이 하면서 지금의 잡 세어링 운동을
한 번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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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내는 좌파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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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내는 좌파 언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동안(그래 봤자 한 열흘) 잠잠했던 좌파 언론이 신바람 났다. 물론 걸고 넘어지는 사안은 자기
배 채우려는 이기심이 그 본심인 미디어 법 국회상임위
직권상정이다.

 

노조는 파업하고, 뉴스는 도배질하고 아주 열심이다. 그런데 생각 해 보자. 국회란 무엇이며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3권 분립을 통한 정부의 견제 등의 기능은 말 할 것도 없지만, 그 중요한 존재 이유는 무어라고 해도 입법기능이다. 그래서 입법부라
하지 않는가?

 

입법의 기능이란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때로는 수정도 요구하는 기능이다. 이런 기능이 가능 하려면 제출된 입법안을 회의(국회 각 상임위원회
및 본회의)에 상정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국회법에도
법안이 제출 된 이후 언제까지 상정하여야 하는 등의 절차를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상정을 아예 보이콧 하는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이 우리 국회이고, 그러면서도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세비를 꼬박꼬박 챙기는 무리가 우리 국회의원이다. 이뿐 아니다. 국회란 국정을 헌법과 국회법 등이 정한 절차와 장소에서 논하라고 우리 국민이 세금으로 마련한 장소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 중엔 아예 국회 회의장이 아니라, 청계광장에서
혹은 용산 거리에서 띠를 두르고 데모하며 국정을 논하는? 무리가 큰 소리 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이다. 대통령이 법관이 청와대에서
혹은 법원에서 국정을 논하고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고 거리로 뛰쳐나가 데모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와 무엇이 다른가? 법안의 상임위 혹은 본회의 상정은 입법의 핵심 절차이다. 상정된 법안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본연의 의무이다.

 

이런 입법 절차를 밟기 위한 첫 걸음이 의안 혹은 안건의 상정이다. 이를
놓고 야당이란 무리는 또 농성에 들어가고(곧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오겠지만) 좌파언론은 피를 토하며 좌파 노조는 파업한다. 참으로 안하무인이고
꼴볼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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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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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1

 

이 이야기도 80년대 초의 이야기

 

인지라 좀 진부하긴 하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25년여 전이니 나름대로 지금 세대에겐 이야기 거리가 됨직하다.

 

여행 지는 우선 미국에서 페루를 입국하여 칠레를 거쳐 브라질로 가는 거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엔 페루입국비자를 미국 뉴욕에서 받았다. 물론 관광비자로

 

비자를 받는 것부터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맨하탄의 어느 호텔에서(하필 그 날 반 그 호텔 옆의 귀금속 상에 강도가 들어 총격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다음 날 우리 뉴욕 지사 원한테 들은 이야기지만)나와, “메시 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소위 마약을 하엿는지 눈동자에 핏발이 서고 동자 초점이 흐린 채, 비틀거리는 흑인들이 아침인데도 수월찮게 눈에 띈다.

 

하여튼 나는 백화점 앞 광장의 돌 의자(?)에 앉아 있는 흑인에게 페루대사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 흑인은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체로 발도 방향을 가르킨다. 그 태도에 겁이 질려 나는 자세히 묻지도 못하고 알려주는 방향으로 가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물어 찾아가니 그 흑인이 가르켜 준 방향과는 정 반대쪽이었다.

 

하여튼 간단히 페루 영사관에서 관광비자를 받고, 그날 나는 마이애미로 갔다. 또 마이애미에서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어라! 프런트에서 스페인어(사실은 짐작일 뿐.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하니까)로 뭐라 이야기한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영어로 체크인을 요청하였더니, 그제야 영어로 응대한다. 아니 여기가 미국이야? 하는 느낌으로(그 당시는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 대도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으니까) 체크인 하는데, 호텔 숙박 보증금을 내란다.

 

그때도 여행자수표는 있었지만(물론 크레디트 카드는 보편화 되지 않았고, 극히 특수 계층은 “Amex” 정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금을 소지한지라 100불짜리를 내미니, 이 프런트 맨 사람을 아예 도둑취급(? 나의 느낌)하듯 한다. 화폐를 요리조리 돌려보더니 그 화폐번호를 적고 내 날인까지 받는다.

 

하루 밤을 호텔에서 머문 후, 나는 마이애미 공항으로 가서 페루비안 에어라인(Perivian Airline)을 탔다. 그런데 사람 미치게 하는 건, 명색이 국제선인데 영어를 하는 스튜어디스가 없다. 나는 무턱대고 알아듣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또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영어로 계속 질문을 하니, 이 아가씨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고 사라진다.

 

잠시 후 남자 승무원을 대동하고 오기에, 나는 또 영어로 질문을 했다(질문 내용은 지금 기억이 없다). 그런데 불려 온 이 스튜어드조차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니 그냥 미안한 표정으로 멍 할 밖에나는 혼자 참으로 난감하기만 햇다. 남미가 초행인데다 혼자 샘플가방까지 들고 미지의 곳으로 가고 잇으니 처량한 마음까지 든다.

 

하릴없이 한 시간 남짓 지났나 했더니 비행기가 착륙을 한다. 주위 승객들의 표정이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이 공항이 종착지인 리마 공항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알고 보니 에콰도르 뀌토 공항이다. 뀌토 공항에 일단 네려 사방을 둘러보니, 공항청사래야 학교 교실 2-3개쯤 될까? 저 안쪽엔 원주민이 토산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잇고허나 난 고립무원인 채로 비행기를 놓칠까봐, 창 밖으로 내가 타고 온 비행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항이 하도 작으니 비행기가 코 앞에 정차하고 잇는게 다행이랄까.30여분-1시간이나 지나니 사람들이 다시 기내에 오른다. 실로 식은 땀(?)이 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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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2

 

다시 1-2시간을 비행하여 리마 공항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남미 특유의 기후답게 후덥지근한데, 어째든 공항 입국수속을 치루었다. 그런데 이미그레이션에서 나에게 이것 저것 한 두어 마디 물어 보고, 내 가방을 체크하더니, 내 여권의 페루 입국 비자가 찍혀 있는 페이지 네 변에 붉은 글씨로 막 쓴다. 그리고 입국을 하였는데 알고 보니 “Negotiation”이라고 쓴 거다.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게 이것이 바로 세금고지서다(말하자면 “Negotiation”이란 단어는 스페인어로 영어의 “Business”라는 말이다).

 

하여튼 입국하여 코트라에서 나온 현지 직원 안내로 리마 시내로 들어 가는데, 차 안에서 바라다 본 주위는, 초라 한 흙 벽돌 집들이 양 길가로 늘어 서 있는데,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부서진 채 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1960몇 년인가 대 지진이 났을 때 부서진 집들이란다. 그런데 나라가 궁핍하다 보니 재건이 못 되고 그대로 사람이 살고 그런단다.

 

얼마를 달려 리마 시에 도착 호텔에 체크인 하엿고, 저녁은 코트라 지사장과 그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에서 긴장을 풀면서 한 잔 했다. 그 호텔의 라운지 식당은, 음식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튼 멋 잇는 곳이었다. 앞쪽 원형무대에선 페루 민속 춤이 펼쳐지는데, 어쩌면 그럴게 매혹적이고 섹시한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여튼 그 자리에서 코트라 1인 지사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기억 나는 건,

첫째 페루는 아직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과는 외교관계가 없다는 것(이건 사전에 나도 알고 있던 사항이지만).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이니 조심하라는 것,

둘째로 자기가 부임 한 이래로 한국 비즈니스맨은 “H”자동차 직원의 시장 조사 팀이 1년 전에 다녀 간 뒤, 내가 두 번째이라는 사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무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곡이 내 기억으로는 어떤 영국의 유명가수가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익숙한 곡(곡명이 엘 콘도르 파싸 였던가?)인데, 원래 이 노래의 원곡은 페루의 민요인데 편곡하여 그 가수가 불러서 유명해 졌다는 것,

그리고 네 번째는 익히 거의 낮 선 나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만, 여긴 일본의 이민 역사가 이미 60년이 넘었고(그 당시), 일본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소스 중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핫 소스 즉 고추가 나오는데, 이건 붉게 익은 마르지 않은 고추를 그대로 채 썰어서, 페루의 소스와 버무려 나오는 (엄청 맵다) 정도였다.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오후 약속까지는 시간이 있어 혼자 거리 구경을 나오는데, 호텔입구에선6-8세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이 세수도 하지 않은 꿰 제제한 몰골과 찢어진 런닝셔쓰 차림으로, “야퐁 야퐁”(재팬을 스페인어로 발음) “원 달라 원 달라하면서 구걸한다. 이를 뿌리치고 조금 걸어 큰 길로 나갔더니, 로터리엔 신호등 대신에 교통순경이 수 신호를 하는데, 지금 TV에서 익히 보아 온(특히 김대중 정권 이후)바와 같이, 제복의 젊은 여자가 반 쪼갠 드럼통(그 안엔 시멘트를 채웠고)위에서, 자동차의 진행방향을 두 손을 몸을 돌려가면서 뻗어 교통정리를 한다. 그 당시엔 그 광경만 보아도 섬찟하고, 언제 북괴 프락치들이 나타날지 몰라, 간이 콩알 만 해 졌다(지금은 워낙 안보 개념이 희박해 진 터라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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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3

 

그 날 오후 바이어와 약속이 있어 외출하였다. 그 바이어는 페루 국영회사의 사장인데, 상담 진행 도중 느닷없이 별도의 커미션을 자기의 뉴욕 계좌로 챙겨 달란다.

 

내가 아니 대한민국의 젊은 비즈니스 맨이 누군가. 나는 즉석에서 이 친구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로 작심 하고 얼마를 원하느냐고 물엇다. 그 친구는 총L/C 금액의 5%를 요구한다. 나는 이를 기화로 우리나라의 그 당시 외환관리의 엄격함을 장황히 설명하면서, 커미션의 경우는 단 1%라도 정부의 허가 즉 한국은행의 특별인증을 받아야만 가능하고(사실은 그 당시만 하여도 우리나라 외환규정이 수 년 전보다 완화되어 L/C베이스인 경우 C3 즉 커미션 3%까지는 특인 사항이 아니었다), 그런 번잡을 피할려면 우리의 뉴욕 현지 법인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이 경우 우리 뉴욕현지 법인에게도 적어도 계약금액의 10%정도는 핸들링 수수료로 줘야 한다고 하며, 본사의 추가 마진 5%, 뉴욕현지 법인의 취급 수수료 10%, 그리고 바이어인 당신의 몫5%20%는 가격을 업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우니 그 자리서 Okey.

 

이렇게 싱겁게 상담을 끝내고 약식계약서에 사인한 후, 기본 좋게 호텔로 돌아 왔다. 호텔로 돌아온 후 본사와 국제통화를 하려니, 호텔 프런트 맨 왈 오늘 새벽부터 국제전화 교환원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가서 통화가 안 된단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으냐 물으니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당연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러면 호텔 텔렉스(요즘 텔렉스를 이해 하는 젊은이가 많지 않겠지만, 하여튼 획기적인 팩스가 나오기 전의 국제 통신수단으로, 모르스 부호는 아니지만 단어 한자한자를 쳐서 입력하여 송신하는 통신이다, 그리고 내가 텔렉스를 좀 치게 된 건, 1970년대 초 일본 동경지사에 근무할 때 배운 솜씨다.)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그 프런트 맨 하는 말, 호텔의 텔렉스 역시 고장이 나서 사용 불가란다. 그러면 어떡하느냐는 나의 거듭된 질문에, 서슴없이 네일 아침에 우체국으로 가 보란다. 우체국에 가면 텔렉스 통신이 가능하다는 거다.

 

하여튼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호텔을 나와서 거리구경을 좀 하는데, 예의 그 걸인 아해들이 호텔 앞에 도열하여 야퐁” “야퐁 웨친다.  다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우체국으로 갔다. 우체국에 들어서니 흡사 학생들 책상처럼 길다란 테이블에 칸막이가 되어 잇으면서, 텔렉스 기계가 약10여대 놓여 있다. 나는 거기서 텔렉스로 뉴욕지사를 연결하여,

 

: 어이 나 아무개인데, 지사장 계시나?

직원 : 아침 약속이 계셔서 출근이 좀 늦는데요.

: 자넨 누군가?

직원 : 아 예 저는 x x x입니다.

: 이 그런가 하여튼 수고가 많네, 근데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나 여기 페루에서 상담을 햇는데, “C” 관계로 자네들의 뉴욕지사가 수고 좀 해 주어야 겠네. 말하자면 여기 바이어가 뉴욕지사 앞으로 L/C를 열 테니, 뉴욕지사는 백투백 L/C를 한국 본사로 열게나. 그리고 자네 지사의 “C”10%이니 자네 지사장도 불만을 없을 것이네. 그러니 자네 지사장 출근하면 그렇게 보고하고

아 그리고 자네 지사장이 오더라도 나한테 전화 할 필요 없네. 왜냐하면 여긴 국제전화 교환수들이 총파업 중이라 연결이 되지도 않을 거니까. 그럼 계속 수고하게.

직원 : 예 알겠습니다. 무사히 다녀 가십 시요.

: 알았네. 그럼 이만 끊자.

 

이렇게 어렵게(?) 임무를 수행하고, 나는 가뿐한 기분으로 코트라 지사장에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그날 저녁 코트라 지사장이 호텔로 왔기에 간단히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저녁을 낼 테니 마땅한 데를 안내하라고 했다. 그 지사장이 안내 한 곳은 일식 집이었는데, 옥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급스런 집이었다. 마당엔 대나무로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고

 

그런데 식사를 하다가 내가 모처럼 이 머나먼 곳에 왔으니, 페루의 전통음식 중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어냐 물으니, 이 지사장이 그 집 마담과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아주 고급음식이라며 내 놓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간단히 말하면 생선 물회였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하드라도 나도 알본에서 3-4년 생활을 해 보았지만 물회라는 음식은 처음 대 하는지라. ”맛 나는 척 먹느라도 땀 께나 뺀 기억이 난다(페루는 세계 3대 어장을 거느리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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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미 여행기 – 4

 

페루 리마에서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칠레를 떠나기 위해 토요일 일찍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나왔다. 공항 출국 장엔 입국장에서 보지 못한 전경들이 많이 펼쳐진다. 헤어진 넌닝셔츠에 온갖 검뎅이를 다 묻히고, 손은 꼭 까마귀처럼 해 가지고 원 달러 원 달러 웨치는 아이, 신문 몇 장을 들고 신문을 파는 신문팔이 소년 등등

 

나는 한참이나 북괴의 6.25남침으로 촉발된 우리나라의 참혹한 그 당시를 잠시 떠 올렸다. 우리가 저랬다. 불과 15-20년 전에그 당시 기준)…그리고 그날 그날의 삶에 절박하여, 미군에게 매달려 기브미 츄잉검” “슈 샤인을 웨치던 시절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 그래도 지금은 머나먼 이국까지 장사를 하겠다고 나온 내가 자랑스러웠고, 조국이 고마웠다.

 

얼마 후 나는 짐을 부치고, 보딩 패스를 받아 들고 이미그레이션 앞에 섰다. 그런데 이 출입국 관리 한참이나 내 여권을 보더니 출국을 막는다. 그러면서 스페인어로 뭐라 하는데, 난 도통 알아 들을 수 없고그러기를 잠시 한 관리가 나오더니 나를 따로 자기 방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관리가 하는 말(이 관리는 그래도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내 비자가 비즈니스 비자이니(아하! 입국 때 갈겨 쓴 “negotiation(네고시아송)”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세청(그런데 국세청 즉 “National Tax Bureau?”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무슨 국가 계획 위원회(National Planning Board?)에 가서, 내가 페루에서 활동한 사항을 보고하고, 거기서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출국이 안 된다는 거다.

 

그제야 코트라 지사장의 말 이 나라는 공산?사회주의국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여튼 공항 관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길을 막는데야 속수무책일 수 밖에하릴없이 짐은 칠레로 띄워 보낸 채, 나는 코트라 지사장에게 전화로 간단히 상황을 이야기하니, 그 지사장 껄걸 웃으며 흔히 있는 일이나, 오늘은 토요일이고 하니 이미 출국은 포기하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공항으로 나올 테니 좀 기다리란다.

 

1시간 이상이나 흐른 후 그 코트라 지사장이 나타났고, 나는 그와 함께 다시 리마 시내로 다시 들어갔다. 코트라 지사장의 권유로 그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는데, 습한 고온의 페루에서, 양말 한 켤레 내의 한 벌 갈아 입지 못하고, 꼬박 이틀을(월 요일까지) 보낼 생각을 하니 정말로 난감하다. 나는 호텔 프런트의 바에 가서 술로 무료함을 달래면서, 아예 이렇게 된 마당에 마츄피츄의 잉카 제국 유적 관광이나 한번 다녀 올 요량으로, 호텔 직원을 불러 상의 해보니 이것조차 불가능하다.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서 거기서 헬리콥터로 관광하는 코스가 가장Time-saving한 코스인데, 이 마져도 3일은 잡아야 한단다. 또 스케쥴도 맞지 않고혼자 비즈니스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서 혼자 Time-killing하는 법을 이미 몸에 익혀 두었는 바, 그나마 다행 이랄까? 그대로 이틀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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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5

 

드디어 월요일이 되자 코트라 지사장과 공항엘 갔다. 우선 이미그레이션에 줄 서기 전, 코트라 지사장은 나에게 100불짜리 한 장을 달란다. 내가 내민 지폐를 받아 쥐고 코트라 지사장이 공항 사무실로 들어 간지 채 5분 정도 되었을까. 코트라 지사장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를 앞세워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다. 그리고 나와 며칠 간의 아쉬웠던 만남에 작별을 고한다. 미화 백불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하여튼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에 탑승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산티아고 공항에 네렸고, 페루에서의 기분 나쁜 경험을 깨끗이 잊으면서 나는 입국하게 되엇다. 그 이유는 그 당시로는 우리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을 맺은 유일한 나라가 칠레였고(그 이유는 그 당시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고 박정희 대통령과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간의 친분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입국한 것이다. 마침 칠레 지사장이 마중을 나와, 그의 안내로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한 짐을 보세창고에 거서 찾은 후, 호텔에 투숙하엿다.

 

칠레에 입국하고 보니 일기가 페루와는 딴판이다. 덥기는 한데, 칠레의 기후는 페루와 달리 습도가 높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상쾌한(?) 기후에 기분은 좋지만, 갈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호텔에 투숙하자마자 나는 호텔 미니 바의 콜라를 두어 병 들이키고는, 지사장에게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호텔 창 밖을 내다 보앗다.

 

내가 투숙한 호텔은 바로 칠레 대통령 궁과 공원광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잇었다. 그런데 대낮인데도, 공원 벤치 및 그 주위 나무그늘엔 젊은 남녀가 서로 부등켜 안고 엉켜서, 어느 다리가 여자의 다리인지 남자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같이 딩군다. 역시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남미에 온 느낌이다.

 

거리엔 그 때 처음으로 현대자동차가 칠레에 대량수출에 성공한 포니 택시가 가끔 눈에 띄고, 거리에 나서면 페루에서와 같은 걸인은 없지만, 역시 동양인이 신기한지 조그만 아이들이 치노 치노”(중국인을 그렇게 부른다) “야퐁 야퐁그런다. 역시 이민의 역사를 위시하여 세계로의 진출엔 한국이 그 만큼 뒤졋다는 것일 게다.

 

저녁에 산티아고 지사장과 저녁을 하고, 일부러 늦으막하게(? 아홉 시가 넘어서) 술집구경에 나섰다. 9시가 넘으면 한국 같으면 사람이 붐빌 시간이지만, 홀은 영 덩그러니 텅 비어있다. 지사장의 설명인 즉 남미인 즉 라틴계 사람들은 밤의 문화를 즐긴다. 점심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이며, 이때 낮잠을 자기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 경에 다시 오후 일과를 보고 9시가 넘어서야 식사들을 한다, 그래서 술집은 12시 정도가 되어야 붐빈단다.

 

하여튼 술집에서 댄서들의 스트립 쇼가 현란하고, 좌석에 같이 앉은 아가씨는 포니의 나라에서 왔다니 반색을 한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나는 페루를 거쳐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고 하니, 그만 아가씨의 얼굴이 금방 찡그려 진다. 나는 내친 김에 페루의 아가씨가 이쁘더라고 하니(실제 원주민과의 혼혈인 들은 예뻤다. 키도 아담하고, 피부 색깔도 약간 갈색을 띄면서, 눈동자가 또렷하고…), 이 아가씨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보듯이 나를 대한다. 지사장의 설명인 즉 칠레와 페루인 사이엔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하단다. 거기에다가 칠레인들은 페루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함께 역시 세계 어디서나 나름대로의 사연은 있겠지만, 바로 이웃나라와 잘 지내기는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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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6

 

이튿 날 일찍 국영기업체 사장인 바이어를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 역시 페루에서와 똑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페루에서 한번 경험도 있고, 해외 세일즈를 다니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 비재한지라 적당히 처리를 하고, 오후에 산티아고 지사장과 거리구경을 나섰다.

 

백화점, 시장을 둘러보니 “Made in Korea”, “Made in Taiwan”이 상점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확히 몇 년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칠레에서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대통령이 전직 아옌데 대통령이 추구하던 공산.사회주의를 버리고, 조국 칠레 부흥을 위하여 과감히 경제개발에 나섰다.1차적인 방향이 시장주의자이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프리드만 교수의 시카고 학파의 소장 그룹을 경제 참모로 전면에 내세우고, 남미에서는 독특하게도 개방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기를 불과 수년 만에, 몇 년 전만해도 상상치도 못하던 그리고 비참하던 칠레 경제가 막 부흥의 싹을 틔우고 있는거다. 개방된 경제체제하에서 국영기업을 과감히 민영화하고, 시장을 개방하여, 이 남미 최남단의 나라에는 활력이 넘치기 시작한단다.

 

거리엔 포니 택시가 달리고, 시장엔 물건이 넘쳐나고, 민영화에 따를 경제가 전반적인 활기를 띄고…. 나는 여기서 개방경제의 활력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현지 지사장의 이야기도 칠레 정부의 이런 과감한 개방정책에 우리나라와의 교류도 다른   남미국가에 비해서는 활발하다는 거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브라질로 농업이민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부분은 칠레로 와서 정착하고 있단다

 

특히 칠레의 기후는. 날씨는 맑고 건조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시내를 흐르는 물은 그치지 않고 졸졸 흐른다. 지사장의 이야기인즉, 칠레 산티아고 지역은 상당히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냇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동쪽에 위치한 안데스 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네리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산티아고 시내를 중심으로 안데스 산맥 쪽은 고급 주택 촌이, 서쪽 태평양 쪽으로는 서민 주택 촌이 형성되어 있고, 모든 가구는 자기 집 앞 가로수에 물을 주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단다.

 

하여튼 칠레는 남미에서 드물게 맑고 건조한 날씨이며, 또한 동쪽으로 자동차로 약 30분만(?) 달리면1년 사시 사철 스키를 즐길 수 있고, 또 서쪽으로 달리면 또 일년 사시 사철 해수욕을 즐길 수 잇는 세계적인 유명 해수욕장이 늘어 서 있다는 거다. 참 신기하고 부러운 나라라는 생각을 금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경우나 또 누구에게나 이 있으면 이 있듯, 칠레 경제의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당시에는 외화획득의 대부분이 구리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Mono-culture 경제형태이고, 이래서 피노체트 대통령은 경제와 산업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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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7

 

다음 날 나는 다른 바이어와의 상담을 위해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이 바이어는 한국에서 제법 많은 물품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페루에서나 어제 만난 국영기업 사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비즈니스맨이다(공무원이 아니니까).

 

상담을 마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그런데 이 친구 나에게 뜻밖의 점심초대를 한다. 뜻 밖이라는 의미는 좀 더 있다가 더욱 절실히 느낀 바이지만, 하여튼 나에게 칠레 고유의 삶을 경험하란다. 나는 즉석에서 좋다 하고, 그 친구를 따라 건물을 나왔다.

 

자동차도 타지 않고 조금 걸으니 칠레 전통 시장이 나오는데, 꼭 그 당시의 우리나라 마장동 재래시장과 흡사하다. 진열 된 상품들도 농촌에서 갓 올라온 푸성귀며, 약초 등등이 시장 중앙에 난전을 펴고 있고, 길 양 옆에는 조그마한 천막가게들이 즐비 하고

 

한 참을 걸으며 시장구경을 마친 우리는 그 시장통의 허름한 음식점으로 들어 갔다, 꼭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국밥 집과 흡사하다. 들어서니 작은 테이블이 두어 개 오른 쪽이 있고, 왼쪽은 주방이다. 우리는 그래도 그 집에서 유일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이 소탈한 비즈니스맨이 애용하는 집인 모양으로, 주인은 반갑게 인사한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솔직히 어떤 음식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음), 조금 있더니 디저트?인지 수박화채가 나오는데, 이게 또 희한하게도 옛날 우리네 어른들이 즐겨 드셨던 화채다(수박에 술을 넣고 만든 화채). 신기해하며 또 우리네 음식과 흡사하다며 환담을 하고 잇는데, 느닷없이 두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악단(?)이 나타나서 우리 일행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주인과 더불어 홀의 테이블을 치우고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 비즈니스맨은 자기가 대동한 20살 남짓한 젊은 여비서와 그 반주에 맞추어 신나게 돌아간다(참 재미 있는 나라다). 그러면서 나 보고도 춤을 추란다. 마지 못해 이리 저리 시늉을 내다보니 전심시간이 이미 두어 시간 흘렀다. 그렇게 이 사람들은 인생을 즐긴다(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악단은 그렇게 식당손님들의 흥을 돋아주고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단다).

 

이후 하도 칠레에서의 인상이 오래 남고, 또 그 독특한 지리적인 특성(스키장과 해수용장이 불과 1-2시간의 거리에 있다), 그 사람들의 낙천적이면서도 유쾌하며 솔직함에 끌려, 그 후 약 15년 동안은, 만일 내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이민을 간다면 미국도 싫고 일본도 싫고, 남미 칠레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일부 비난도 받고 있지만, 칠레는 피노체트 대통령의 개방과 경제우선정책에 힘입어 지금도 남미 최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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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민 합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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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민 합의문.

 

비록 민노총이 참여 하지 않은 채이지만 노사민정이 위기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합의하였다 한다. 일단은 환영 할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사항이 한 둘 아니다. 그 중에 노측의 양보?인 임금 반납이다. 말하자면 삭감이 아니고 자진 반납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물론 근로자를 대표하는 단체 대표가 임금 삭감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이해하지만 일면 이는 그만큼 고통분담의 의지도 부족하고 위기에 대한 인식도 안이하기 짝이 없다는 증좌이다. 임금 삭감과 자진 반납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한가지는 퇴직금 계산의 기초가 되는 임금이다. 삭감의 경우는 당연히 퇴직금도 삭감된 임금을 기초로 산출되는 반면, 자진 반납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점이며, 두 번째는 경기가 어느 정도 좋아 지면 자진 반납한 노측은 당연히 임금이 제 자리로 돌아 와야 한다는 논리이며, 여기에 더하여 임금인산을 요구할 것이다. 말하자면 감액된 임금 플러스 인상액이 반영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합의가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개별 사업장에서 과연 실행되는 추진력이 있느냐이다.

 

이와는 별도로 수 개월 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 임금수준이 과도하게 높은 점을 인식하여 우선 공기업을 중심으로 대졸초임의 삭감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그 재원으로 추락하는 고용을 조금이나마 뒷받침 하기 위하여 인턴 사원 채용을 늘리기를 주문하였다. 아무튼 왜곡된 우리나라의 임금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아이디어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분과 출발은 일단 괜찮은 편이다.

 

우리나라 대졸 사원들의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이미 통계수치가 말 해 주고 있다. 대졸초임의 임금수준이 일본은 그 나라의1인당 GNP60% 미국은 100% 정도인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120%를 상회한다. 이는 당연히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일방, 기업은 고용을 축소하며 고용 없는 성장기업의 해외탈출의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고용 있는 성장이라는 선 순환을 위해서라도 왜곡된 고임금 구조 타파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여기에 전경련이 회원사의 대졸초임 삭감에 이어 앞으로 2-3년 간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전경련의 회원 사라면 대기업들이므로 충분히 이는 설득력이 있고 그 당사자들도 충분히 감내 할 수 잇는 수준으로 본다. 그리고 이는 기존사원들과 삭감된 대졸초임 직원들과의 형평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다만 이번 합의의 정신을 살려 실행에 옮기기 위한 노측이 얼마나 협력하느냐가 문제이다.

 

지금 이러한 논의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언제 가게를 접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600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노측은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민노총 산하의 기업들의 동참을 위해서, 우리 국민들은 적극적인 여론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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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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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사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좌파적인 소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시킨 동의대 테러사건을 바로 잡겠다고 발 벋고 나섰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동의대 테러 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한 결정은 잘 못 된 것 아니냐는 전의원의 질문에 김 볍무장관은 분노를 느낀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전 의원은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한다 한다. 이제 하나하나 제 자리를 찾아 가는 느낌이다. 역사의 왜곡은 이뿐 아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좌파적 왜곡은 한시 바빠 바로 잡아야 한다. 다른 여러 시국 반국가사범들이 심지어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뒤집으며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한 잘 못된 결정이 한둘 아니다.

 

2-3년 전인가 내가 아는 지인이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와서 뱉은 소감이 기억난다. 소위 제주 4.3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시킨 후, 제주도 곳곳에는 그 당시 치안유지를 담당하였던 경찰?을 완전히 살인마로 규정하는 기념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드란다.

 

그래서 더럽고, 분노가 치밀어 빨리 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 이후 가급적 제주도 여행을 자제하고 있다. 아니 한번도 가지 않았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잘 못 된 좌익의 왜곡된 역사를 하루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아울러 노무현 장인에 대한 과거의 행적도 다시 살펴 봐야 할 것이다. 갑자기 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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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환경 권력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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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을 보니 영국의 환경운동 지도자(green Peace) 6명이 자신들이 과거에 반대 해 오던 원자력 발전소 건립 반대는 오류였다며, 이를 철회하고 원자력 발전을 지지한다고 전향을 하였다 한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완전 할 수도 없으려니와 또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떳떳이 천명함이 지도자들의 몫이다. 몇 년 전 우리 나라 변산반도의 저 준위 원자력 폐기장을 사활을 걸고 반대하며, 그 지역 수장인 군수에게 백주에 테러를 자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그 무리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릇 권위란 자기가 외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남이 스스로 인정 할 때 생기는 것이며, 또 권위 있는 지도자란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는 과감히 인정 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더 나아가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알 때 그 도덕성도 갖추는 법이다.

 

남이 인정 하지도 않는 얄팍한 권력에 취하여, 기금이나 손 대고 이권청탁과 엽관에 열심이던 이 나라의 환경 권력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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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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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라크 이야기… 

 

1). 입국 이야기

내가 이라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 한 것은 1980년 인가이다. 그때는 독제자 후세인이 정권을 잡은 지 불과 몇 년 되는 시점이었지만, 그런대도 나라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고,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아직 국교도 없는 이 나라에 한국의 유수한 건설업체들이 벌써 진출하여 이라크의 무진장한 석유와 그에 따른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일행 몇 명을 동행하고 이라크에의 수출 상담을 위해 이라크의 스폰서의 도움으로 입국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이라크 화폐 디나르의 공식 환율은 1달러에 1.2”디나르 정도였던 거로 기억된다. 그런데 쿠웨이트의 암시장에서는 그의 약 8-9배였고, 우리는 우리 스폰서의 충고를 받아들여 쿠웨이트를 경유하고 쿠웨이트에서 달러를 이라크 디나르로 환전상에서 바꾸어 이를 숨기기 위하여(이라크 디나르 화폐를 이라크 내로 반입하거나 반출하는 것은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고 있었다) 새벽 3시쯤인가 이라크 국경을 육로로 통과하였다.

 

국경 검문소에서 우리를 실은 버스는 통관/입국을 위하여 대가하고 있었고, 마중 나온 우리의 스폰서는 이라크 세관 및 입국관리와 부산히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걸 어두운 창 밖으로 쳐다보며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스폰서는 미리 세관원 및 입국관리를 매수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드디어 우리는 입국이 허가되었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오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이라크 의 남부 도시) 지역의 평원을 바라보며 우리 버쓰는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창 밖으로 바라 본 풍경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달린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지고 잇었다. 처음엔 들판에 키가 작은 사막 잡초가 보이더니 어느덧 야자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이라크의 땅은 비옥하고 그래서 이라크가 문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일행은 잠에 떨어졌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린지 꼬박 12시간 정도가 넘어서 우리는 드디어 바그다드에 도착하였고 스폰서의 안내로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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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텔 이야기

 

체크인 한 호텔은 이름만 호텔이지, 투숙한 방엔 화장실도 없었고 밖에 잇는 화장실은 막힌 채 분뇨가 넘쳐 복도까지 흘러나오는 기막힌 곳이었다. 하여튼 찌는 듯한 더위에 선풍기조차 없고 분뇨냄새까지 맡으며 우리 일행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한 채, 이튿날 아침식사를 위해 호텔 로비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약 100여명을 수용하는 곳이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거의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차지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용케도 자리를 잡았다. 식탁 테이블 위에는 호텔용 버터와 찻잔만이 댕그러니 놓여있고, 손님들은 어느 누구도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순한 국민 학교 학생들처럼 얌전히 식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종업원이라고는 주방과 연결된 배식 구 옆에 허리춤에 손을 집고 거만하게 손님들을 쳐다보고 있는 당랑 한사람 뿐이었다. (물론 메뉴의 선택은 있을 수 없고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를 한참 저쪽 편에 앉은 어떤 신사가 왜 이렇게 식사가 늦게 나오느냐고 큰소리로 웨이터에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광경에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또 한 편으로는, 우리끼리 저 손님은 오늘 아침 얻어먹기는 글렀다고 히죽히죽 웃었고(우리는 그러한 항의 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스폰서를 통하여 안보?교육을 미리 받았으므로), 배식 구 옆에 서 있는 웨이터는 무슨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힐끗 그 손님을 한번 쳐다보고는 가소롭다는 표정만 짓는다.

 

그러고 긴 침묵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약 10여분 후에 배식이 시작되었다. 배식이라야 마른 빵 조각 두어 조각을 담은 접시들과 차 주전자를 뿐이었고, 이를 카트에 쌓고 밀고 다니면서 빵 한 접시” “차 한 잔 따라주는 배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차례로 배식을 해 주던 그 웨이터 아니나 다를까, 조금전 식사가 늦다고 항의한 그 손님 테이블은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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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리 풍경과 상담

 

아침을 마친 우리는 스폰서의 주선으로 각자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국영회사의 상담을 위해 호텔을 나왔다.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고, 이라크 주택의 담장 위엔 능소화, 베라글로즈 등 이름 모를 넝쿨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그 담장 벽엔 독재자 후세인의 푸른색의 단색사진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탁아소에 들러 아이를 안고 웃으며 서 잇는 사진, 방직공장을 들러 여공들의 들을 어루만지는 사진 등 등,1M의 공간도 없이 벽은 후세인 천국?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잇었으며, 거리엔 들개들이 사람을 슬금슬금 피해가며 어슬렁거리고이라크엔 그 당시엔 들개가 많앗다. 밤이 되면 이들 들개는 무리를 지어 공원에 모여 살며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간혹 들개의 습격을 받는 일도 허다하단다.

 

이라크는 누구나 모두 알고 있듯이 모든 무역 상행위를 국영으로 한다. 말하자면 아침의 그 호텔 식당 종업원도 공무원 신분인 것이다. 따라서 상담은 이 바이어 저 바이어 만날 필요 없고, 섬유면 섬유제품을 수입하는 경공업 제품 수입회사의 섬유담당만을 만난다.

 

그런데 이라크는 여느 중동국가와 달리 여성의 사회진출이 아주 모범적?으로 잘된 나라이다. 차관급 여성이 10여명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차도르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착용할 뿐 젊은 여성은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여튼 국영회사를 방문 할 때는 담당자와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국영회사를 방문 하면 입구 리셉션은 어김없이 젊은 아가씨가 지키고 있고, 용건을 묻고 담당자와의 약속여부를 체크 한 다음 출입이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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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하나의 호텔 이야기.

 

우리 일행은 지난 밤 고생이 막심했는지라 현재의 호텔에선 우리가 도저히 더는 머무를 수 없다고 했다(사실은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이에 우리 스폰서 하는 말인 즉, 사회간접시설 등이 미진한 상태에서 세계각국 비즈니스 맨들이 오일달러 때문에 밀려드니 지금 잇는 호텔도 과분하다는 거다. 그러면서 한번 다시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우린 바그다드 사정이 그러한 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라 대꾸도 못하고 또 한번 알아보겠다는 그의 말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에 반가운 소식이 왔다. 아주 근사한 호텔에 방을 잡았다는 거다, 우린 즉시 저녁을 먹고 그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 호텔은 어제의 호텔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호텔 방마다 에어컨까지 달려 잇으니 말해 무었하랴. 어 그런데 에어컨이 고장이 나 있다. 우리는 프런트에 연락을 하엿고, 프런트에서는 곧 고쳐준다는 이야기 뿐. 한 시간을 기다려도 무 소식, 두 번 세 번 독촉 전화하느라고 잠도 못 이루다가 지쳐서 그 더운 호텔에서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로비의 식당에 갔는데, 이거 정말 별천지다. 식당 입구엔 그래도 화분도 몇 개 놓여 잇고아무튼 자리를 잡고 보니 메뉴는 단순하지만 에그프라이도 잇다. 우리는 각자 토스트와 에그프라이를 시켰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에그프라이를 시키지 않앗다. 드디어 식사가 나오고 에그프라이에선 모락모락 김까지 나오고 이건 천하의 별미다.

 

그런데 일행 중 에그프라이를 시키지 않은 사람이 에그프라이를 보고서 군침이 돌아 웨이터를 불러 에그프라이를 하나 더 추가하려 햇다. 그런데 그 추가주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웨이터 양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하는 말, 말하자면 누구 똥개 훈련시키느냐는 항의? 아닌 꾸지람이다. 주문을 하려면 처음부터 동시에 주문 할 것이지 이게 뭐냐는 이야기다. 이 한마디에 그 손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말 한마디 못하고….물론 에그프라이도 못 얻어 먹고 말이다.

 

공산주의 체제에 대하여 경험도 있고 사전에 보안교육도 스폰서로부터 받앗건만, 갑작스레 호전된 분위기(어제의 호텔보다)에 그만 깜빡 바그다드에서 잇을 수 없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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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리셉션 아가씨와 관련된 이야기.

 

우리가 바그다드를 방문하였을 때 일본 상사 뿐 아니고 외국 주재원들 사이엔 묘한 기류, 공포와 우려의 분위기가 팽배해 잇었다.

 

사연인 즉 일본 미쯔비시 상사 바그다드 지사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수 개월 전 그 미쯔비시 상사의 섬유 담당 직원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고, 새로이 부인한 일본 상사 맨 당연히 하루가 멀다 하고 섬유 수입국영회사를 출입하게 되고, 그리하여 드디어 그 회사의 리셉션 아가씨와 눈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중동국가들이 모두 그러하지만, 특히 후세인이 통치하는 이라크라는 나라는 설사 남녀가 서로 호감을 갖더라도 시내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드나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사회이다. 그리하여 그 일본 상사 맨은 고심 끝에 일요일에 야외로 드라이브를 하자며 프로포즈를 하였고, 그 아가씨도 위험을 무릅쓰고 오케이한 것이다.

 

일요일을 골라 두 사람은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갔고, 무사히 귀가까지 하는 데는 성공하여 그 상사 맨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다음 날 회사를 출근하였다. 그런데 이미 미쯔비시 상사의 바그다드 지사엔 이라크 정보부의 공문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잇었다. 내용인 즉 그 일본 상사 맨을 2일 이내애 출국시키지 않으면 미쯔비시 바그다드 지사를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미쯔비시 바그다드 지사는 지체 없이 그 상사 맨을 귀국 조치하였고

 

바그다드에선 3-4인 이상이 모이는 것 자체가 불순분자로 찍히는 첩경이며,3-4인 중 2-3인은 비밀경찰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일 체제와 같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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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랑루즈와 고급레스토랑 이야기

 

하루는 우리 스폰서의 배려로 밤에 무랑루즈라는 술집을 갔다. 말이 술집이지 옛날 우리나라에 서커스 단이 오면 공터에 커다란 천막을 쳐 놓고 공연하듯이 커다란 천막이 술집이다.

 

맨 앞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각국에서 흘러 들어온 가수들이 노래를 한다. 사회자는 이라크어, 영어, 일어, 한국어로 사회하고그런데 사회자의 사용언어의 순서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하는데 맨 처음 이라크어로, 다음엔 영어, 그런데 그 다음이 일어가 아니고 한국어이고 일어가 맨 나중이었다. 사연인 즉 바그다드에 체류하는 일본 상사 맨들보다 한국인 건설 노무자 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한국 여가수가 나온다. 나이는 30이 넘어 40대로 보일 만큼 찌들대로 찌든 아가씨였는데, 국교도 없는 이 나라에 어떻게 입국까지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노래하는지, 우리 같은 범인은 이해할 수 없지만, 스폰서의 이야기로는 이 아가씨가 월남 전쟁터에서 한국군인을 상대로 노래를 하다가 월남 패망과 동시에 이리로 흘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무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니다 보면 한국인들의 생명력 특히 한국여자들의 삶에 대한 집념과 그 노력에 감탄한다.

 

또 하루는 우리 스폰서가 저녁을 사겠다 기에 내가 고른 스위스 음식 “폰듀”(내가 좋아하는 스위스 음식이다)전문 식당으로 갔다. 그렇게 호화롭지는 않앗지만, 그 당시의 바그다드 사정에 비하면 정말로 근사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야채가 나오는데 야채 중에 풋 마늘 잎이 나온다. 한국 마늘처럼 크지는 않지만 틀림없는 마늘잎이다. 내가 한편으론 신기하고 해서 물어 본 즉 이라크에서도 가끔 먹을 수 있단다. 하여튼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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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하나의 호사 티그리스 강변 이야기

 

무더운 날씨에 며칠간을 지낸 어느 날 우리는 우리의 스폰서의 초청으로 티그리스 강변을 방문하였다.

 

티그리스 강이 어떤 곳인가?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인류 문명의 3대 발상지 중 하나이지 않는가? 설레는 마음으로 강가에 간 우리는 모래밭에 자리를 잡았다. 옆엔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잇고,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엔 흡사 우리나라 생성 회 센타 아니면 매운탕 집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것도 폭격으로 반쯤 찌그러지거나 파손 된 대로

 

현지인의 이야기로는 후세인이 집권하기 전만 하드라도 이 강가는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붐볐고, 이 반쯤 파괴된 집들이 지금부터 우리가 누릴 요리들을 팔던 곳이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인적이 끊기고,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튼 우리 스폰서는 미리 연락을 해 둔 모양으로(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를 위하여 그날만 특별하게 재개업?을 하였단다) 그 중 한 집을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하이네켄 맥주와 요리준비물(마른 나뭇가지 한아름, 그리고 커다란 민물고기 몇 마리 등)을 들고 나온다.

 

우선 가져온 나뭇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더니 우리가 둘러앉은 곳에 둥그렇게 원형으로 꽂아 세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역시 그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우고, 생선은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마치 동태처럼 쫙 편다. 그러더니 그 생선을 꽂아둔 나뭇가지에 모닥불을 향해 빨래 널듯이 걸친다. 조금 지나고 생선이 어느 정도 은은하게 익으니 가운데 모닥불을 끄고, 그 타고 남은 숯불에 생선을 얹어 굽는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하고, 강바람은 살랑이는데, 우리는 한낮의 더위를 식히며 그 생선구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인류가 수천 년 전 문명을 꽃 피웠다는 그 강변의 아무도 없는 텅 빈 모래사장에 앉아, 강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그 맥주와 그 생선구이 맛이란 말하자면 지상 최고의 호사이다.

 

이야기에 의하면 그 생선은 티그리스강의 명물인데, 흡사 우리나라의 잉어처럼 생겼으나 맛이 좋았으며, 그 생선 요리 역시 티그리스 강변에서 나는 나뭇가지(흡사 우리나라의 갯버들처럼 생겼다)에 구워 먹어야 제 맛이란다. 이러한 정취와 맛에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모여든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고 후세인이 집권한 후 체제가 공산화되면서 그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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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중정원 이야기.

 

이라크에 온지 약 1주일쯤 되는 날, 그래도 짬을 내어 일행은 관광에 나서길 했다. 먼저 바그다드 인근의 유젹지를 간단히 둘러 보앗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커다란 아주 오래된 회교사원을 들른 기억이 나고, 또 바벨탑엘 갔다. 토성 아니 정확히는 흙 벽돌로 지은 나선형으로 생긴 탑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올라가는 나선형 길에 안전난간이 없어 바짝 중심에 붙어 뱅글뱅글 돌아 올라간 기억이 난다.

 

이라크 하면 가장 유명한 유적은 아무래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정원(Pendulem garden)일게다. 이 유적지는 바그다드에서 자동차로 수 시간 달린 것으로 기억되는데, 공중정원이라 해서 공중에 정원이 있는 건 아니고, 고대 바빌로니아의 최 전성기 때에 왕이 왕비를 위해 궁전지붕(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두고 물을 위로 운반하여(지금이라면 펌프로 간단히 되겠지만, 그 땐 어떻게 했는지?) 하여튼 정원을 가꾸었단다.

 

그래서 공중정원이라고 한 모양인데, 내가 방문하였을 땐 발굴이 시작 된지 몇 년 안된 모양으로 한참 발굴 중이었고, 관광지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안내 팜플렛, 안내원 등도 전혀 없었을 뿐 아니고, 달랑 관리인만이 매표를 하고, 입구에 이 유적은 유네스코 문화유적으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는 뜻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무팻말(높이 약 50Cm1M 정도, 베니아 판에 흰 페인트 글씨)이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여튼 입구엘 들어서면 바로 발굴 현장이었고, 그 발굴중인 현장엔 수 미터 깊이의 통로가 잇고 양쪽 벽엔 수 천년 된 벽돌담이 죽 이어져 잇는데 그 벽돌담들은 벽돌 모자이크로 양각의 동물그림들이 그려져 잇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덩그러니 높은 지역이 나타나고 그 언덕 위엔 그 유명한 사자상(사자가 여인을 겁탈하는 상)이 우뚝 서 있었다.

 

하여튼 이 도시가 전성기엔 그렇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모래태풍에 묻혀 지상에서 사라진 지, 수 천년 만에 어느 고고학자에 의하여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적지를 관광하던 중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림이 양각으로 새겨져 잇는 벽돌조각을 주어서는 자기 품속에 감추어 나온 것이다. 내가 그 때 그 사람을 말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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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후세인 독재체제의 틈.

 

우리는 어느 날 바그다드가 아닌 시골의 공장을 방문 해 보기로 하였다. 바그다드 시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잇는 자전거 생산 공장이엇는데, 우리는 차창 밖의 수 많은 야자수 들판을 바라 보며 갔다(이 나라에선 대추야자를 많이 먹는데, 맛이 아주 달고 좋다. 그리고 사람의 건강에도 좋단다).

 

도착한 공장의 책임자(사장) 방으로 안내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사장도 정말로 오랜만에 외부손님을 맞이한지라 무척 반가워 하였다. 그런데 도통 근로자들이 공장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공장이 가동되는 기색이 없어, 우리는 지금 공장이 왜 가동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사장은 아예 체념한 투로 기껏 공장 가동율이 20%에도 못 미친단다. 그 이유는 예를 들면 설비는 체코제이고, A/S용 부품은 소련제, 또 어떤때는 중국(그 당시는 중공)제 이런 식이란다. 즉 자기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중앙 수입회사가 일괄하여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이번엔 소련, 다음 번엔 어디?에서이런 식으로 수입하여 배분해 준다는 거다.

 

그러면서, 후세인 체제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다. 감히 바그다드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즉 이 사장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국영회사(모두가 국영이지만)의 사장에 임명되었다면 소위 지배그룹에 속하지만 자기는 이 체제에 찬성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또한 사장이 되면 그 회사엔 자동차 한대, 전화 한대, 그리고 텔렉스(그 당시는 팩스가 발명되기 전) 한대가 배정이 되는데, 전화 및 텔렉스는 1365일 거의 고장으로 불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또한 앞서 이야기 한대로 공장라인이 서도 부품을 공급 받지 못하니 가동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거다.

 

우리는 바그다드에서 수 백 킬로 떨어진 이 벽지에서 비로소 참된 민(백성)의 소리를 들어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 사장의 좀 도와 달라는 이야기를 뒤로한 채, 아무리 철저한 독재-부총리를 자기에게 거역한다고 단숨에 총살시키는 후세인-체제하에서도 그 틈은 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북과의 김일성(그 당시는 김일성)체제에도 저러한 틈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그리하여 언젠가는 북괴의 갑작스런 붕괴와 그에 따른 평화통일을 꿈꾸며 바그다드로 귀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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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느 한국인 근로자의 이야기.

 

마침 바그다드에 진출하여 잇는 한국 건설회사의 이라크 책임자가 내가 아는 선배인고로, 어느 날 인사를 겸하여 그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는 거다. 이야기인 즉, 자기회사의 바그다드 시내 건설현장에서, 그 현장의 후문 경비를 서는 근로자의 이야기인데, 그 근로자가 경비를 서 잇으면서 무료하기도 하여 길 건너편 주택가에서 놀고 잇는 이라크 소녀와 손짓 발짓으로 알은 채 하며 지냈단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그 소녀와 눈이 맞은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는 그 아이가 그날 저녁엔 자기의 부모가 없으니 집으로 오라는 유혹을 했고, 그 근로자는 월담하여(정식으로 대문을 들어서는 건 이웃의 이목이 있어 곤란하다), 그 아가씨와 정분을 맺은 것이다. 일단 한번 정분을 맺은 후 이 청년과 그 소녀를 점점 깊은 관계로 빠졌고, 드디어 그 소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어떻게 해결 할 방법이 없자 고민 끝에 종내 가출을 하게 되었고, 가출한 소녀는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공산철권통치 아래에선 거리를 방황하는 자유도 누릴(?) 수 없어, 그러다 지친 그 소녀는 하는 수 없이 역시 바그다드 시에 잇는 그 소녀의 고모를 찾앗고, 그 고모는 즉시 그 소녀의 부모에게 연락하고……이리하여 그 동안의 불장난이 백일하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 소녀의 부모는 이 근로자를 경찰에 고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느닷없이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이 건설회사 지사장이 경찰에 출두하였고, 우리 건설회사의 지사장의 입회 하에 그 소녀의 병원진단서를 발급 받아 그 청년을 구속하게 된 것이다. 이 지사장의 이야기인 즉 이런 경우 이라크에선 사형이 보통이고, 운이 좋아야 무기징역이란다. 다급해진 그 청년은 마침 미혼이라, 자기가 그 소녀와 결혼하겠다는 그러니 선처를 바란다는 호소도, 그 소녀의 아버지로부터 일언지하 거절 당한지라 걱정이 태산이란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 세가지가 기억난다. 그 하나는 1년 전쯤 비슷한 일을 어느 영국인이 저질렀는데, 사형판결이 났고, 영국대사는 끈질기게 선처를 호소하였건만 끝내 무망하여, 마침내 영국여왕이 이라크를 친선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 었고, 이를 기화로 영국여왕이 특별히 후세인에게 선처를 요망하여 풀려나 귀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또한 바랄 수도 없는 일이고, 또한 선처를 요청하여도 이라크 정부(후세인)가 들어 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나라는 비록 후세인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고 잇지만, 역사 깊은 문명국답게 사법제도는 잘 정비되어 잇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병원에서 피해자의진단서를 끊을 때 가해자 측인 자기를 입회시키는 것이라든지, 하여튼 운영이 문제이지 제도 자체는 훌륭하다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자기도 명색이 법대(S 대 법대 졸업)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지만 죄목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것이다. 즉 이 한국 근로자의 죄목은 상해죄(처녀막 파열), 무단 주거침입죄 기타 등등 9가지에 이르더란다. 물론 그 청년이 나중에 어떻게 되엇는지는 본인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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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그다드 탈출기(?).

 

동행했던 일행들이 무사히 자기들 소임을 마치고 전부 귀국한 후, 나는 마무리를 위해 며칠 더 머물기로 했다.

 

출국 일을 코 앞에 둔 어느 날 바그다드 시내가 발칵 뒤집혓다. 영문을 모르는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던 사람이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바스라에 짖고 있는 이라크 원자력 발전소를 미사일로 폭격 하였다는거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모두들 하늘을 쳐다보고 잇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미사일을 향한 이라크의 대공포가 하늘을 어지럽게 날고 있엇다.

 

황급히 호텔로 돌아오니 투숙객들은 짐을 꾸리랴 체크아웃 하랴 난리다. 나는 그럴 처지도 못되어 우리 스폰서에게 전화한 즉 가급적 빨리 일을 마무리 짓도 이라크를 떠나란다. 이튿날 일을 전부 마무리 하고 우리 스폰서에게 전화하니, 바그다드 공항이 폐쇄되다 싶이 하였고 요르단 에어라인을 제외한 외국 항공사들 전부가 취항을 중지하였다는 거다. 그나마 이라키 에어라인과 요르단 에어라인도 심야에만 출항한다는 거다. 그러니 좌석을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사람들은 자동차로 요르단으로 줄지어 출국한단다. 그리고 바그다드에서 요르단까지 자동차로 약 8시간 정도 걸리는데 지금은 비상상황이라 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거다. 하릴없이 나는 비행기 좌석확보를 거듭 부탁하고 그져 기다릴 수 밖에

 

그러기를 수일이 지나 드디어 정확히 나의 비자 만기일에, 천우신조로 우리 스폰서로부터 바그다드 발 동경 행 이라키 에어라인의 좌석을 확보하였다는 소식을 저녁에 듣고, 나는 황급히 짐을 챙겨 바그다드 공항으로 내 달렸다. 공항에 도착하여보니 이 역시 아수라장이다. 인산인해인 사람들을 비집고 간신히 이라키 에어라인 창구의 긴 줄 맨 끝에 섰다. 그러나 이라키 에어라인은 도무지 보딩패스를 발급할 기미조차 없다. 그러나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그러는 동안 나는 또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내 비자가 바로 그날에 끝나니 엄격히 말하면 밤 12시가 넘으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는 거다. 드디어 새벽 한시가 가까워 오자 보딩패스가 발급되고, 나는 이미그레이션을 무사히 빠져 나와 비행기를 탔다. 정말 꿈을 꾸고 잇는 심정으로 비행기 좌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비행기가 이륙을 하지 않았고, 또 공중에서 이스라엘 미사일에 격추 될 수도 있어서인지 모든 승객이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기다리는 거다.

 

드디어 새벽 2시 경 비행기는 이륙하였고, 잠시 후 스튜어디스가 이라크 영공을 벗어 낫다는 아나운스먼트가 나오자 모든 승객이 일제히 하며 환호한다. 나도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어라! 몇 좌석 앞 쪽의 비행기 비상구 문짝의 내벽이 떨어져 덜렁거린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는 비상구 문짝의 내벽과는 상관없이 잘도 비행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후 기내식이 나왔고, 그 기내식은 품질도 나쁘진 않앗지만 어째든 그렇게 맛있는 기내식은 먹어본 기억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잠이 들엇고, 이튿날 저녁 무렵 나는 동경에 도착 호텔체크인을 하고서야 서울 집으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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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그리고 티그리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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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그리고 티그리스 강

 

어제 이라크 잘랄 타라바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라크 전후 복구 SOC사업의 한국 참여 및 자원개발에 관한 상호 협력을 다짐하였다 한다. 물론 이 나라에는 이라크가 극히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겠지만, 지금 50-60대 사람이라면 이라크에서의 추억과 인연을 이야기 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쯤이던가 그 때는 한국 건설업체들이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이어, 이라크에 진출하여 국교도 없는 이 나라에서 건설공사를 하고 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당시 중동 건설시장에서 뒤 쳐져 있던 삼성건설이 남부 바스라 지역의 하수도 정비사업 진출(공사금액 약 3천만 불?)이 효시였다고 생각된다.

 

그 이후 현대건설 등이 본격 진출하여, 오일 달러가 춤을 추던 이 나라에서 많은 공사를 벌렸다가 끝내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중단되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또한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 경제봉쇄가 시작되어, 이라크에서 공사 대금 및 물품 대금을 받지 못 한 채 철수하여 20여 년 이상이 흐른 후 해결을 본 일도 있었다.

 

이 때 공사대금을 가장 많이 못 받은 회사는 단연 현대건설이었고, 물품 대금을 가장 많이 받지 못한 회사 역시 현대종합상사였다. 그 외 삼성물산을 위시하여 한국의 내노라하는 회사들도 역시 액수의 많고 적음은 있었지만 대금회수를 미쳐 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이와는 별도로 1980년인가 내가 이라크 시장개척단을 이끌고 바그다드에서 보낸 30일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체류하고 있는 동안 출국을 불과 2-3일 앞 둔 시점에서 이라크 바스라 지역에 건설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불시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거의 모든 항공로가 막힌 상태에서 노심초사 하던 일, 그리고 후세인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선량한 이라크인들 등등..

 

그럼에도 내가 특별히 잊을 수 없는 것은 티그리스 강 변 갈대 숲에 앉아 티그리스 강 명물이라는 생선을 구워(이라크 전통 식으로) 안주 삼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더불어 맥주를 마시던 일이다. 그 동안 이라크 전을 보도하는 TV화면을 보니, 그 갈대 숲은 다 없어지고 강변이 콘크리트로 뒤 덮여 있는 장면을 보며 참 많이 변 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보다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런데 이제 이라크의 치안도 많이 안정되었다는 외신 보도와 새로이 선출 된 이라크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했다는 기사에, 문득 티그리스 강이 그립고 바그다드 시내가 그리워 진다. 조금만 더 젊었으면 한 번 꼭 방문 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내 블로그의 이라크 여행기 참조). 마침 정부에서도 여행제한지역 해제를 검토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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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사태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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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태가 일어 난지 벌써 1개월이 넘었다. 그럼에도 사태의 진원지였던 용산의 남일빌딩을 둘러싸고, 아직 전철연과 경찰 용산구청 재건축조합간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다. 물론 조합 및 용산구청은 철거를 위한 준비 및 전철연들의 불법적인 행위 단속을 하려 하는 반면, 전철연은 이 상징적?인 장소를 자신들의 행위 정당화를 위한 선전 수단으로 계속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 사망자들이 안치 된 한강성심병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철연은 이 병원 영안실로 통하는 모든 길목에 사법경찰? 노릇을 하고 있고, 경찰은 경찰대로 숨어 있는 전철연 남 모 회장을 체포하고 또 더 이상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철통 같은 검문 검색을 하고 있단다.

 

말하자면 이 대명 천지에 서울 용산구에만 하드라도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가 두 개나 존재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공권력이 능멸되는 이 상태를 정부 당국은 두고 보려는가? 아예 용산 사태는 전철연이라는 불법 테러 집단의 주도 면밀한 계획하에 일어난 사태라는 것은 검찰수사에서 명백히 밝혀졌고, 그들이 바라는 우리 남한의 해방과 적화기도에 부화뇌동하는 사람은 이미 극 소수일 뿐이다.

 

이들 정부 전복 기도 세력들이 이 불씨를 살리려고 매일 벌리는 청계광장 불법 시위 모임은, 시민들의 외면과 경찰의 원천봉쇄로 불가능 해 졌고 참가인원이 고작 500명 안팎이란다. 이제 지난 광우병 촛불시위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은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무엇이 누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인지 이제 충분히 터득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더 이상 서울바닥에 해방구를 방치하는 것은 당국의 직무유기이다. 빠른 해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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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고속철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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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고속철도에 대하여.

 

KTX경부 고속철도는 10여 년 이상 걸린 우리나라의 드물게 보는 국책사업이었다. 솔직히 초창기 기획단계에선 과연 그 만큼 높은?요금을 받아서 고객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 수익성에 대하여 나 혼자 나름 우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구간 KTX고속철도가 개통한 이후, 그 편리성에 승객이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불어 났고, 공사화한 고속철도 수익성 향상을 위하여 나름의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점에 대해서 흐뭇하게 생각하며, 머지 않아 성공적인 국책사업의 모델로 일본의 JR신간센과 경쟁할 때가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완공을 앞둔 시점에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들과 부실시공?에 따른 하자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철도 콘크리트 침목에 매립되는 하드웨어가 독일제품에서 영국제품으로 바뀐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 외의 부실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고속철도 기술진들은 독일제품에서 영국제품으로의 철도침목 하드웨어 교체는, 나름 기술적인 타당성도 충분하며 공사비 절감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이는 극히 기술적인 문제인지라 섣불리 문외한인 나로써는 단정적으로 이러쿵저러쿵 할 여지가 많지 않아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안전을 위협할 만한 하자가 이미 발생했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처음 중국 상해를 방문하였을 때 안내하는 사람이 상해 푸동 공항에서 상해시 중심지까지 포설된 고속철도를 자랑하며, 기관차는 독일제이지만 그 기초인 레일공사는 중국이 직접 하였노라고 자랑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그 당시로는 뭐 그게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내심 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의 KTX레일공사의 문제점들이 신문에 논의되면서, 중국이 약 20여 년 전에 이룬 일을 나름 토목기술수준을 자랑하는 우리가 이런 문제에 허둥대는 것을 보면 좀 마음이 착잡하다. 물론 상해 고속철도 역시 초창기에 여러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나라의 경부 고속철도 운영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리고 고속 기관차의 국산화를 통하여, 중국이나 미국 기타 외국 고속철도 공사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출발한 마당에, 이러고서 외국 발주처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조속하고 정확한 원인파악 및 해결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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