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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1
이 이야기도 80년대 초의 이야기
인지라 좀 진부하긴 하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25년여 전이니 나름대로 지금 세대에겐 이야기 거리가 됨직하다.
여행 지는 우선 미국에서 페루를 입국하여 칠레를 거쳐 브라질로 가는 거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엔 페루입국비자를 미국 뉴욕에서 받았다. 물론 관광비자로…
비자를 받는 것부터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맨하탄의 어느 호텔에서(하필 그 날 반 그 호텔 옆의 귀금속 상에 강도가 들어 총격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다음 날 우리 뉴욕 지사 원한테 들은 이야기지만)나와, “메시” 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소위 마약을 하엿는지 눈동자에 핏발이 서고 동자 초점이 흐린 채, 비틀거리는 흑인들이 아침인데도 수월찮게 눈에 띈다.
하여튼 나는 백화점 앞 광장의 돌 의자(?)에 앉아 있는 흑인에게 페루대사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 흑인은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체로 발도 방향을 가르킨다. 그 태도에 겁이 질려 나는 자세히 묻지도 못하고 알려주는 방향으로 가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물어 찾아가니 그 흑인이 가르켜 준 방향과는 정 반대쪽이었다.
하여튼 간단히 페루 영사관에서 관광비자를 받고, 그날 나는 마이애미로 갔다. 또 마이애미에서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어라! 프런트에서 스페인어(사실은 짐작일 뿐.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하니까)로 뭐라 이야기한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영어로 체크인을 요청하였더니, 그제야 영어로 응대한다. 아니 여기가 미국이야? 하는 느낌으로(그 당시는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 대도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으니까) 체크인 하는데, 호텔 숙박 보증금을 내란다.
그때도 여행자수표는 있었지만(물론 크레디트 카드는 보편화 되지 않았고, 극히 특수 계층은 “Amex” 정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금을 소지한지라 100불짜리를 내미니, 이 프런트 맨 사람을 아예 도둑취급(? 나의 느낌)하듯 한다. 화폐를 요리조리 돌려보더니 그 화폐번호를 적고 내 날인까지 받는다.
하루 밤을 호텔에서 머문 후, 나는 마이애미 공항으로 가서 페루비안 에어라인(Perivian Airline)을 탔다. 그런데 사람 미치게 하는 건, 명색이 국제선인데 영어를 하는 스튜어디스가 없다. 나는 무턱대고 알아듣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또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영어로 계속 질문을 하니, 이 아가씨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고 사라진다.
잠시 후 남자 승무원을 대동하고 오기에, 나는 또 영어로 질문을 했다(질문 내용은 지금 기억이 없다). 그런데 불려 온 이 스튜어드조차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니 그냥 미안한 표정으로 멍 할 밖에…나는 혼자 참으로 난감하기만 햇다. 남미가 초행인데다 혼자 샘플가방까지 들고 미지의 곳으로 가고 잇으니 처량한 마음까지 든다.
하릴없이 한 시간 남짓 지났나 했더니 비행기가 착륙을 한다. 주위 승객들의 표정이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이 공항이 종착지인 리마 공항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알고 보니 에콰도르 뀌토 공항이다. 뀌토 공항에 일단 네려 사방을 둘러보니, 공항청사래야 학교 교실 2-3개쯤 될까? 저 안쪽엔 원주민이 토산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잇고…허나 난 고립무원인 채로 비행기를 놓칠까봐, 창 밖으로 내가 타고 온 비행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항이 하도 작으니 비행기가 코 앞에 정차하고 잇는게 다행이랄까. 한 30여분-1시간이나 지나니 사람들이 다시 기내에 오른다. 실로 식은 땀(?)이 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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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2
다시 1-2시간을 비행하여 리마 공항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남미 특유의 기후답게 후덥지근한데, 어째든 공항 입국수속을 치루었다. 그런데 이미그레이션에서 나에게 이것 저것 한 두어 마디 물어 보고, 내 가방을 체크하더니, 내 여권의 페루 입국 비자가 찍혀 있는 페이지 네 변에 붉은 글씨로 막 쓴다. 그리고 입국을 하였는데 알고 보니 “Negotiation”이라고 쓴 거다.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게 이것이 바로 세금고지서다(말하자면 “Negotiation”이란 단어는 스페인어로 영어의 “Business”라는 말이다).
하여튼 입국하여 코트라에서 나온 현지 직원 안내로 리마 시내로 들어 가는데, 차 안에서 바라다 본 주위는, 초라 한 흙 벽돌 집들이 양 길가로 늘어 서 있는데,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부서진 채 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1960몇 년인가 대 지진이 났을 때 부서진 집들이란다. 그런데 나라가 궁핍하다 보니 재건이 못 되고 그대로 사람이 살고 그런단다.
얼마를 달려 리마 시에 도착 호텔에 체크인 하엿고, 저녁은 코트라 지사장과 그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에서 “긴장을 풀면서” 한 잔 했다. 그 호텔의 라운지 식당은, 음식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튼 멋 잇는 곳이었다. 앞쪽 원형무대에선 페루 민속 춤이 펼쳐지는데, 어쩌면 그럴게 매혹적이고 섹시한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여튼 그 자리에서 코트라 1인 지사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기억 나는 건,
첫째 페루는 아직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과는 외교관계가 없다는 것(이건 사전에 나도 알고 있던 사항이지만).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이니 조심하라는 것,
둘째로 자기가 부임 한 이래로 한국 비즈니스맨은 “H”자동차 직원의 시장 조사 팀이 1년 전에 다녀 간 뒤, 내가 두 번째이라는 사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무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곡이 내 기억으로는 어떤 영국의 유명가수가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익숙한 곡(곡명이 “엘 콘도르 파싸” 였던가?)인데, 원래 이 노래의 원곡은 페루의 민요인데 편곡하여 그 가수가 불러서 유명해 졌다는 것,
그리고 네 번째는 익히 거의 낮 선 나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만, 여긴 일본의 이민 역사가 이미 60년이 넘었고(그 당시), 일본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소스 중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핫 소스 즉 고추가 나오는데, 이건 붉게 익은 마르지 않은 고추를 그대로 채 썰어서, 페루의 소스와 버무려 나오는 (엄청 맵다) 정도였다.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오후 약속까지는 시간이 있어 혼자 거리 구경을 나오는데, 호텔입구에선6-8세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이 세수도 하지 않은 꿰 제제한 몰골과 찢어진 런닝셔쓰 차림으로, “야퐁 야퐁”(재팬을 스페인어로 발음) “원 달라 원 달라”하면서 구걸한다. 이를 뿌리치고 조금 걸어 큰 길로 나갔더니, 로터리엔 신호등 대신에 교통순경이 수 신호를 하는데, 지금 TV에서 익히 보아 온(특히 김대중 정권 이후)바와 같이, 제복의 젊은 여자가 반 쪼갠 드럼통(그 안엔 시멘트를 채웠고)위에서, 자동차의 진행방향을 두 손을 몸을 돌려가면서 뻗어 교통정리를 한다. 그 당시엔 그 광경만 보아도 섬찟하고, 언제 북괴 프락치들이 나타날지 몰라, 간이 콩알 만 해 졌다(지금은 워낙 안보 개념이 희박해 진 터라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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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3
그 날 오후 바이어와 약속이 있어 외출하였다. 그 바이어는 페루 국영회사의 사장인데, 상담 진행 도중 느닷없이 별도의 커미션을 자기의 뉴욕 계좌로 챙겨 달란다.
내가 아니 대한민국의 젊은 비즈니스 맨이 누군가. 나는 즉석에서 이 친구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로 작심 하고 얼마를 원하느냐고 물엇다. 그 친구는 총L/C 금액의 5%를 요구한다. 나는 이를 기화로 우리나라의 그 당시 외환관리의 엄격함을 장황히 설명하면서, 커미션의 경우는 단 1%라도 정부의 허가 즉 한국은행의 특별인증을 받아야만 가능하고(사실은 그 당시만 하여도 우리나라 외환규정이 수 년 전보다 완화되어 L/C베이스인 경우 C3 즉 커미션 3%까지는 특인 사항이 아니었다), 그런 번잡을 피할려면 우리의 뉴욕 현지 법인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이 경우 우리 뉴욕현지 법인에게도 적어도 계약금액의 10%정도는 핸들링 수수료로 줘야 한다고 하며, 본사의 추가 마진 5%, 뉴욕현지 법인의 취급 수수료 10%, 그리고 바이어인 당신의 몫5% 총 20%는 가격을 업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우니 그 자리서 Okey.
이렇게 싱겁게 상담을 끝내고 약식계약서에 사인한 후, 기본 좋게 호텔로 돌아 왔다. 호텔로 돌아온 후 본사와 국제통화를 하려니, 호텔 프런트 맨 왈 오늘 새벽부터 국제전화 교환원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가서 통화가 안 된단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으냐 물으니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당연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러면 호텔 텔렉스(요즘 텔렉스를 이해 하는 젊은이가 많지 않겠지만, 하여튼 획기적인 팩스가 나오기 전의 국제 통신수단으로, 모르스 부호는 아니지만 단어 한자한자를 쳐서 입력하여 송신하는 통신이다, 그리고 내가 텔렉스를 좀 치게 된 건, 1970년대 초 일본 동경지사에 근무할 때 배운 솜씨다.)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그 프런트 맨 하는 말, 호텔의 텔렉스 역시 고장이 나서 사용 불가란다. 그러면 어떡하느냐는 나의 거듭된 질문에, 서슴없이 네일 아침에 우체국으로 가 보란다. 우체국에 가면 텔렉스 통신이 가능하다는 거다.
하여튼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호텔을 나와서 거리구경을 좀 하는데, 예의 그 걸인 아해들이 호텔 앞에 도열하여 “야퐁” “야퐁” 웨친다. 다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우체국으로 갔다. 우체국에 들어서니 흡사 학생들 책상처럼 길다란 테이블에 칸막이가 되어 잇으면서, 텔렉스 기계가 약10여대 놓여 있다. 나는 거기서 텔렉스로 뉴욕지사를 연결하여,
나 : 어이 나 아무개인데, 지사장 계시나?
직원 : 아침 약속이 계셔서 출근이 좀 늦는데요.
나 : 자넨 누군가?
직원 : 아 예 저는 x x x입니다.
나 : 이 그런가 하여튼 수고가 많네, 근데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나 여기 페루에서 상담을 햇는데, “C” 관계로 자네들의 뉴욕지사가 수고 좀 해 주어야 겠네. 말하자면 여기 바이어가 뉴욕지사 앞으로 L/C를 열 테니, 뉴욕지사는 백투백 L/C를 한국 본사로 열게나. 그리고 자네 지사의 “C”가 10%이니 자네 지사장도 불만을 없을 것이네. 그러니 자네 지사장 출근하면 그렇게 보고하고…
아 그리고 자네 지사장이 오더라도 나한테 전화 할 필요 없네. 왜냐하면 여긴 국제전화 교환수들이 총파업 중이라 연결이 되지도 않을 거니까. 그럼 계속 수고하게.
직원 : 예 알겠습니다. 무사히 다녀 가십 시요.
나 : 알았네. 그럼 이만 끊자.
이렇게 어렵게(?) 임무를 수행하고, 나는 가뿐한 기분으로 코트라 지사장에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그날 저녁 코트라 지사장이 호텔로 왔기에 간단히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저녁을 낼 테니 마땅한 데를 안내하라고 했다. 그 지사장이 안내 한 곳은 “일식” 집이었는데, 옥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급스런 집이었다. 마당엔 대나무로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고…
그런데 식사를 하다가 내가 모처럼 이 머나먼 곳에 왔으니, 페루의 전통음식 중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어냐 물으니, 이 지사장이 그 집 마담과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아주 고급음식이라며 내 놓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간단히 말하면 “생선 물회”였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하드라도 나도 알본에서 3-4년 생활을 해 보았지만 “물회”라는 음식은 처음 대 하는지라. ”맛 나는 척” 먹느라도 땀 께나 뺀 기억이 난다(페루는 세계 3대 어장을 거느리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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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미 여행기 – 4
페루 리마에서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칠레를 떠나기 위해 토요일 일찍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나왔다. 공항 출국 장엔 입국장에서 보지 못한 전경들이 많이 펼쳐진다. 헤어진 넌닝셔츠에 온갖 검뎅이를 다 묻히고, 손은 꼭 까마귀처럼 해 가지고 “원 달러 원 달러” 웨치는 아이, 신문 몇 장을 들고 신문을 파는 신문팔이 소년 등등…
나는 한참이나 북괴의 6.25남침으로 촉발된 우리나라의 참혹한 그 당시를 잠시 떠 올렸다. 우리가 저랬다. 불과 15-20년 전에그 당시 기준)…그리고 그날 그날의 삶에 절박하여, 미군에게 매달려 “기브미 츄잉검” “슈 샤인”을 웨치던 시절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 그래도 지금은 머나먼 이국까지 장사를 하겠다고 나온 내가 자랑스러웠고, 조국이 고마웠다.
얼마 후 나는 짐을 부치고, 보딩 패스를 받아 들고 이미그레이션 앞에 섰다. 그런데 이 출입국 관리 한참이나 내 여권을 보더니 출국을 막는다. 그러면서 스페인어로 뭐라 하는데, 난 도통 알아 들을 수 없고…그러기를 잠시 한 관리가 나오더니 나를 따로 자기 방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 관리가 하는 말(이 관리는 그래도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내 비자가 비즈니스 비자이니(아하! 입국 때 갈겨 쓴 “negotiation(네고시아송)”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세청(그런데 국세청 즉 “National Tax Bureau?”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무슨 국가 계획 위원회(National Planning Board?)에 가서, 내가 페루에서 활동한 사항을 보고하고, 거기서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출국이 안 된다는 거다.
그제야 코트라 지사장의 말 이 나라는 공산?사회주의국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여튼 공항 관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길을 막는데야 속수무책일 수 밖에…하릴없이 짐은 칠레로 띄워 보낸 채, 나는 코트라 지사장에게 전화로 간단히 상황을 이야기하니, 그 지사장 껄걸 웃으며 흔히 있는 일이나, 오늘은 토요일이고 하니 이미 출국은 포기하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공항으로 나올 테니 좀 기다리란다.
1시간 이상이나 흐른 후 그 코트라 지사장이 나타났고, 나는 그와 함께 다시 리마 시내로 다시 들어갔다. 코트라 지사장의 권유로 그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는데, 습한 고온의 페루에서, 양말 한 켤레 내의 한 벌 갈아 입지 못하고, 꼬박 이틀을(월 요일까지) 보낼 생각을 하니 정말로 난감하다. 나는 호텔 프런트의 바에 가서 술로 무료함을 달래면서, 아예 이렇게 된 마당에 “마츄피츄”의 잉카 제국 유적 관광이나 한번 다녀 올 요량으로, 호텔 직원을 불러 상의 해보니 이것조차 불가능하다.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서 거기서 헬리콥터로 관광하는 코스가 가장Time-saving한 코스인데, 이 마져도 3일은 잡아야 한단다. 또 스케쥴도 맞지 않고…혼자 비즈니스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서 혼자 Time-killing하는 법을 이미 몸에 익혀 두었는 바, 그나마 다행 이랄까? 그대로 이틀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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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5
드디어 월요일이 되자 코트라 지사장과 공항엘 갔다. 우선 이미그레이션에 줄 서기 전, 코트라 지사장은 나에게 100불짜리 한 장을 달란다. 내가 내민 지폐를 받아 쥐고 코트라 지사장이 공항 사무실로 들어 간지 채 5분 정도 되었을까. 코트라 지사장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를 앞세워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다. 그리고 나와 며칠 간의 아쉬웠던 만남에 작별을 고한다. 미화 백불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하여튼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에 탑승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산티아고 공항에 네렸고, 페루에서의 기분 나쁜 경험을 깨끗이 잊으면서 나는 입국하게 되엇다. 그 이유는 그 당시로는 우리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을 맺은 유일한 나라가 칠레였고(그 이유는 그 당시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고 박정희 대통령과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간의 친분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입국한 것이다. 마침 칠레 지사장이 마중을 나와, 그의 안내로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한 짐을 보세창고에 거서 찾은 후, 호텔에 투숙하엿다.
칠레에 입국하고 보니 일기가 페루와는 딴판이다. 덥기는 한데, 칠레의 기후는 페루와 달리 습도가 높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상쾌한(?) 기후에 기분은 좋지만, 갈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호텔에 투숙하자마자 나는 호텔 미니 바의 콜라를 두어 병 들이키고는, 지사장에게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호텔 창 밖을 내다 보앗다.
내가 투숙한 호텔은 바로 칠레 대통령 궁과 공원광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잇었다. 그런데 대낮인데도, 공원 벤치 및 그 주위 나무그늘엔 젊은 남녀가 서로 부등켜 안고 엉켜서, 어느 다리가 여자의 다리인지 남자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같이 딩군다. 역시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남미에 온 느낌이다.
거리엔 그 때 처음으로 현대자동차가 칠레에 대량수출에 성공한 포니 택시가 가끔 눈에 띄고, 거리에 나서면 페루에서와 같은 걸인은 없지만, 역시 동양인이 신기한지 조그만 아이들이 “치노 치노”(중국인을 그렇게 부른다) “야퐁 야퐁”그런다. 역시 이민의 역사를 위시하여 세계로의 진출엔 한국이 그 만큼 뒤졋다는 것일 게다.
저녁에 산티아고 지사장과 저녁을 하고, 일부러 늦으막하게(? 아홉 시가 넘어서) 술집구경에 나섰다. 9시가 넘으면 한국 같으면 사람이 붐빌 시간이지만, 홀은 영 덩그러니 텅 비어있다. 지사장의 설명인 즉 남미인 즉 라틴계 사람들은 밤의 문화를 즐긴다. 점심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이며, 이때 낮잠을 자기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 경에 다시 오후 일과를 보고 9시가 넘어서야 식사들을 한다, 그래서 술집은 12시 정도가 되어야 붐빈단다.
하여튼 술집에서 댄서들의 스트립 쇼가 현란하고, 좌석에 같이 앉은 아가씨는 포니의 나라에서 왔다니 반색을 한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나는 페루를 거쳐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고 하니, 그만 아가씨의 얼굴이 금방 찡그려 진다. 나는 내친 김에 페루의 아가씨가 이쁘더라고 하니(실제 원주민과의 혼혈인 들은 예뻤다. 키도 아담하고, 피부 색깔도 약간 갈색을 띄면서, 눈동자가 또렷하고…), 이 아가씨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보듯이 나를 대한다. 지사장의 설명인 즉 칠레와 페루인 사이엔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하단다. 거기에다가 칠레인들은 페루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함께… 역시 세계 어디서나 나름대로의 사연은 있겠지만, 바로 이웃나라와 잘 지내기는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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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6
이튿 날 일찍 국영기업체 사장인 바이어를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 역시 페루에서와 똑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페루에서 한번 경험도 있고, 해외 세일즈를 다니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 비재한지라 적당히 처리를 하고, 오후에 산티아고 지사장과 거리구경을 나섰다.
백화점, 시장을 둘러보니 “Made in Korea”, “Made in Taiwan”이 상점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확히 몇 년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칠레에서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대통령이 전직 아옌데 대통령이 추구하던 공산.사회주의를 버리고, 조국 칠레 부흥을 위하여 과감히 경제개발에 나섰다. 그 1차적인 방향이 시장주의자이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프리드만 교수의 시카고 학파의 소장 그룹을 경제 참모로 전면에 내세우고, 남미에서는 독특하게도 개방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기를 불과 수년 만에, 몇 년 전만해도 상상치도 못하던 그리고 비참하던 칠레 경제가 막 부흥의 싹을 틔우고 있는거다. 개방된 경제체제하에서 국영기업을 과감히 민영화하고, 시장을 개방하여, 이 남미 최남단의 나라에는 활력이 넘치기 시작한단다.
거리엔 포니 택시가 달리고, 시장엔 물건이 넘쳐나고, 민영화에 따를 경제가 전반적인 활기를 띄고…. 나는 여기서 개방경제의 활력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현지 지사장의 이야기도 칠레 정부의 이런 과감한 개방정책에 우리나라와의 교류도 다른 남미국가에 비해서는 활발하다는 거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브라질로 농업이민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부분은 칠레로 와서 정착하고 있단다
특히 칠레의 기후는. 날씨는 맑고 건조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시내를 흐르는 물은 그치지 않고 졸졸 흐른다. 지사장의 이야기인즉, 칠레 산티아고 지역은 상당히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냇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동쪽에 위치한 안데스 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네리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산티아고 시내를 중심으로 안데스 산맥 쪽은 고급 주택 촌이, 서쪽 태평양 쪽으로는 서민 주택 촌이 형성되어 있고, 모든 가구는 자기 집 앞 가로수에 물을 주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단다.
하여튼 칠레는 남미에서 드물게 맑고 건조한 날씨이며, 또한 동쪽으로 자동차로 약 30분만(?) 달리면1년 사시 사철 스키를 즐길 수 있고, 또 서쪽으로 달리면 또 일년 사시 사철 해수욕을 즐길 수 잇는 세계적인 유명 해수욕장이 늘어 서 있다는 거다. 참 신기하고 부러운 나라라는 생각을 금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경우나 또 누구에게나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 칠레 경제의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당시에는 외화획득의 대부분이 구리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Mono-culture 경제형태이고, 이래서 피노체트 대통령은 경제와 산업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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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 7
다음 날 나는 다른 바이어와의 상담을 위해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이 바이어는 한국에서 제법 많은 물품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페루에서나 어제 만난 국영기업 사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비즈니스맨이다(공무원이 아니니까).
상담을 마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그런데 이 친구 나에게 뜻밖의 점심초대를 한다. 뜻 밖이라는 의미는 좀 더 있다가 더욱 절실히 느낀 바이지만, 하여튼 나에게 칠레 고유의 삶을 경험하란다. 나는 즉석에서 좋다 하고, 그 친구를 따라 건물을 나왔다.
자동차도 타지 않고 조금 걸으니 칠레 전통 시장이 나오는데, 꼭 그 당시의 우리나라 마장동 재래시장과 흡사하다. 진열 된 상품들도 농촌에서 갓 올라온 푸성귀며, 약초 등등이 시장 중앙에 난전을 펴고 있고, 길 양 옆에는 조그마한 천막가게들이 즐비 하고…
한 참을 걸으며 시장구경을 마친 우리는 그 시장통의 허름한 음식점으로 들어 갔다, 꼭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국밥 집과 흡사하다. 들어서니 작은 테이블이 두어 개 오른 쪽이 있고, 왼쪽은 주방이다. 우리는 그래도 그 집에서 유일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이 소탈한 비즈니스맨이 애용하는 집인 모양으로, 주인은 반갑게 인사한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솔직히 어떤 음식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음), 조금 있더니 디저트?인지 수박화채가 나오는데, 이게 또 희한하게도 옛날 우리네 어른들이 즐겨 드셨던 화채다(수박에 술을 넣고 만든 화채). 신기해하며 또 우리네 음식과 흡사하다며 환담을 하고 잇는데, 느닷없이 두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악단(?)이 나타나서 우리 일행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주인과 더불어 홀의 테이블을 치우고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 비즈니스맨은 자기가 대동한 20살 남짓한 젊은 여비서와 그 반주에 맞추어 신나게 돌아간다(참 재미 있는 나라다). 그러면서 나 보고도 춤을 추란다. 마지 못해 이리 저리 시늉을 내다보니 전심시간이 이미 두어 시간 흘렀다. 그렇게 이 사람들은 인생을 즐긴다(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악단은 그렇게 식당손님들의 흥을 돋아주고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단다).
이후 하도 칠레에서의 인상이 오래 남고, 또 그 독특한 지리적인 특성(스키장과 해수용장이 불과 1-2시간의 거리에 있다)과, 그 사람들의 낙천적이면서도 유쾌하며 솔직함에 끌려, 그 후 약 15년 동안은, 만일 내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이민을 간다면 미국도 싫고 일본도 싫고, 남미 칠레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일부 비난도 받고 있지만, 칠레는 피노체트 대통령의 개방과 경제우선정책에 힘입어 지금도 남미 최 선진국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