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사자 정상 듀오, 아시아시리즈 우승 시킬까?

This gallery contains 3 photos.

 2011 야구 아시아시리즈가 열리고 있는 대만 타이중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3년 만에 부활한 아시아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 팀 첫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지면에서 보여드리지 못한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겠습니다   일단 삼성의 막내 정인욱-김상수의 다부진 각오와 이야기   [...]

More Galleries | 댓글 2개

소년체전은 미래다 <2>

둘째날 만난 친구는 여자 박태환이란 칭호를 얻은 경북체중 김가을 양입니다.

 

지난 동아수영대회 MVP라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번 소년체전에서 대회신기록까지
작성했습니다.

 

제 기획 연재물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AP07DA8140B1137A008.JPG

 

[소년체전서 만난 미래의 스타들]

 

<2>경북체중 2학년 김가을…   자유형 200m의 ‘여자 박태환’

 

 

“여자 박태환이 나타났다.”

 

 전국소년체전 수영 경기가 열린 11일 대전 용운국제수영장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자 중등부 자유형 200m에서 김가을(13·경북체중·사진)은 2분02초66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했다.

 

5월 동아수영대회에서 자유형 200m와 접영 50m를 석권하며 대회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한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김가을은 불과 3개월 만에 자유형 200m 기록(2분5초86)을 3초나 단축했다.

 

중학교 2학년으로 7세 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김가을이 두 살 위의 3학년 선수들을
제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니어에서 한 살도 큰 차이다. 박태환도 14세 때 이렇게까지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김가을은 박태환 같은 천재형 선수는 아니다. 경북체육중고 김성호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모두가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도 아니었다.

 

소년체전 접영 50m와 100m에서 2위에 오른 것이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기회는
불현듯 찾아왔다.

 

김 감독의 권유로 자유형으로 전향한 것이 적중했다.

 

김 감독은 “혼계영에서 가을이가 자유형 하는 모습을 보고 감이 왔다. 접영 200m까지
뛰던 능력이 있으니 중장거리까지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가을은 전향 후 1년도 되지 않아 자유형 200m 중등부에서 국내 최강에 올랐다.
자유형 200m는 박태환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종목이다.

 

AP07DA8140B1E31C010.JPG

 우승 후 만난 김가을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여자 박태환요? 내년에 국가대표 되는 게 우선이지요”라며 겸손해했다.

 

김성호 감독도 “지금 강화훈련을 섣불리 했다가는 수영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지금은 즐기는 수영을 배우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유독 여자 수영 유망주들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곤 했다.

 

“수영을 즐기지 못했다”는 박태환의 반성도 비슷한 맥락이다.

 

즐기는 수영을 배우고 있는 김가을의 소박한 각오가 더욱 미더운 이유다.

 

 

대전=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뭔가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친구였습니다.

 

짧은 그 기운을 느끼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중 2때는 어땠더라?

 

호들갑 1인자에 일희일비. 저도 나름 얘늙은이 소리 들었는데, 요즘 유망주들은
정말 고승 같습니다. ^^

 

 

 

 

 

카테고리 : 기억의 습작 댓글 85개

소년체전은 미래다

1박 2일로 계획했던 대전 소년체전 출장이 3박 4일로 길어졌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말이지요.

 

연합 말고는 종합 일간지 기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일단 놀라야 했습니다.

 

미래의 한국 스포츠 스타들의 장이라는 허울 좋은 표현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소년체전에서 다관왕을 차지한 스타들은 평균 3~4년 안에 국가대표가 됩니다.

 

올림픽 챔피언이 된 선수들도 있습니다.

 

동아일보도 공범이었습니다.

 

암튼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로는 3~4년 만에 소년체전 무대를 방문했습니다

 

 

AP07DA8140B011B5001.JPG

 

소년체전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자 묘한 쾌감이 뇌리를 스치고 갔습니다.

 

"풍부한 먹이감"을 발견한 사자마냥 말이지요.

 

천암함 사건 이후 처음 맞는 광범위한 현장이었다.

 

남이 취재해 논 자료가 전무한 현장, 생 먹거리가 널려있는 현장 앞에서 오랜 만에 느끼는 현장
기자의
짜릿함이다.

 

아마도 월드큽 시즌을 내근으로 보내며 인터넷 마와리와 머리로 쓰는 기획에 적지
않게 지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눈에 처음 들어 온 선수는 육상 여자 초등부 단거리를 석권한 이혜연 양(안양
비산초) 입니다.

 

아래는 혜연양을 만난 후 시작한 기획 시리즈 입니다.

 

=======

 

[소년체전서 만난 미래의 스타들]

 

<1> 비산초 6학년 이혜연

 

입문 3년만에 단거리 석권 “윗몸일으키기 하루 1000개”

 

 

 

2004년 전주 전국소년체전 4관왕 박태환은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건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2006년 울산 전국소년체전 2관왕 김국영은 31년 동안 깨지지 않던 육상 100m 한국기록을
올해 갈아 치웠다.

 

먼 미래가 아니었다. 몇 년 후 소년체전의 스타가 한국 스포츠를 바꿨다.

 

대전에서 열리는 제39회 전국소년체전 현장에서 ‘미래의 박태환, 김국영’을
꿈꾸는 소년, 소녀들을 만났다.

 

 

AP07DA8140B0A9C006.JPG

 

전국소년체전 육상 경기가 열리고 있는 11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100m 여자 초등부 결승선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여덟 명의 소녀 사이로 유독 작고
왜소한 체격의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또래 선수들보다 10cm가량 작은 150cm의 키와 초록색 유니폼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어깨와 팔뚝이 눈에 띈다.

 

 

○ 소년체전 100m 12초95 우승

 

 운동선수라곤 믿기지 않는 체격이다.

 

하지만 출발 총성이 울리자 반 박자 빠른 피치로 치고 나가더니 중반 이후 독주를
펼친 끝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2초95.

 

생애 첫 12초대에 진입한 여자 초등부 단거리 유망주 안양 비산초교 이혜연(12)의
얘기다.

 

 

 이혜연은 3학년까지 육상부가 없는 삼성초교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체계적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출전한 경기도 평가전 여자 초등부 80m에서
3위를 차지한 이혜연을 안양 비산초교 유지은 코치는 놓치지 않았다.

 

유 코치는 “아파 보일 정도로 호리호리했지만 피치가 남달랐다. 체력만 잘 다듬으면
대성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며 첫 만남을 소개했다.

 

 

○ “습득 능력 탁월… 큰 물건 될 것”

 

 2007년 첫 겨울 훈련을 소화한 이혜연은 3개월 만인 2008년 꿈나무선발대회
초등부(4학년 이하) 80m에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처음 뛴 100m 경기인 2009년 꿈나무선발대회에선 5학년임에도 2위에 올랐다. 2010년엔
200m까지 초등 무대를 평정했다.

 

 체격의 핸디캡을 극복한 것은 타고난 탄력과 성실함이었다. 하루 1000개 이상의
복근 운동을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단다.

 

유 코치는 “몸 관리 하는 것을 보면 실업팀 선수 뺨친다. 지시 사항을 습득하는
것을 보면 초등학생인지 어른인지 모를 정도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트랙에서 맨 앞으로 달려 나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요. 어른이
돼도 이런 기분을 만끽하며 달리고 싶어요.”

 

1994년 전국육상선수권에서 이영숙(당시 안산시청)이 세운 여자 100m 한국기록(11초49)을
깨는 그날까지 이혜연의 질주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대전=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기사가 나간 뒤 200m 금메달에 400m 계주 동메달까지 따내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지방지 기자들의 인터뷰 섭외 1순위가 됐다는 후문입니다

 

스타가 된 뒤에 제가 한 마디를 건냈습니다. "나중에 스타 됨 삼촌 잊으면
안된다?"

 

혜연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제일 먼저 전화할게요."

 

이 약속을 혜연이가 지킬까요? 안 지켜도 좋습니다.

 

 하지만 뿌듯함은 남겠지요. 내가 그 아이를 가장 처음 발견했다는…^^

 

 

 

 

 

 

 

 

 

 

 

 

 

 

 

 

 

카테고리 : 기억의 습작 댓글 남기기

부활의 서곡 알린 한화 장성호 선수를 만났습니다

 

AP07DA80F0B0A3A9009.JPG

 

가는 날이 장 날이라 하던가요.

최근 부활의 서곡을 울린 한화 장성호 선수를 만나기로 한 11일 청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은 비가 안 온다는데, 여기만 쏟아지네요"

태풍의 간접적 영향권이던 남부 지방의 비가 북상 중이었던 것이다.

KIA와 한화의 청주 경기는 결국 우천으로 취소됐고, 저는 청주 야구장을 목전에 두고 발을 대전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한화 선수들은 벌써 대전 숙소로 발을 돌린 상태였지요.

인터뷰 무산을 안타까워 하던 중, 한화 홍보팀 오성일 팀장께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이 화요일이라 팀 연습을 해야 한다네요. 용전동 팀 실내 연습장으로 급하게 와 주실 수 있나요?"

다음 날부턴 소년 체전 취재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부리나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AP07DA80F0B131D4011.JPG

 

바로
이곳 입니다. 대전 용전동의 한화 실내연습장.

 

한화
구단의 장점은 성적과 관계없이 상위권 팀과 같은 즐거운 팀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 입니다

 

사장까지
직접 나와 우천 취소 후의 마무리 훈련을 지켜보십니다

 

이희근
선수는 "요즘 같으면 3할 5푼도 칠 것 같습니다"라며 (감히?) 사장께 인사를
건내내요.

 

월요일
쉰 터라 화요일 우천 후 연습은 제법 오랜 시간 계속됐습니다.

 

5시
경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AP07DA80F0B1632C013.JPG

 

 

 

특이한
점은 인터뷰 내내 글러브를 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는 점이네요.

 

실내
연습장 옆의 웨이트 트레이닝 장에서 40여 분의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아래는
13일자 스포츠면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

 

“스나이퍼
부활? 운이죠, 아직 멀었어요”

 

 


KIA서 한화 이적 첫 홈런… 부활 서막 알린 장성호

 

 

“한화
와서 장님 문고리만 잡았지요. 홈런은 한 개도 못 칠 줄 알았다니까요.” 9년 연속
3할 타자 장성호(33).

 

그는
기자와 대면하자마자 대뜸 엄살부터 부렸다.

 

3일
넥센전 결승타에 이어 8일 롯데와의 안방 경기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을 날렸지만 전혀
성에 안 찬 기색이다.

 

“스나이퍼
부활요? 운 좋게 제가 안타 치는 날 팀이 이겨서 그렇지. 아직 멀었어요.”

 

 

한화의
오렌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장성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해 시즌 후 KIA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했다 갈등을 겪으며
제대로 훈련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적이 성사됐지만 7월까지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7개월
동안의 마음고생과 훈련 부족 탓이다. 장성호는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도 단호히
말한다. “아직도 제 스윙이 안 나오고 있어요.”

 

AP07DA80F0B1A3A9017.JPG

 

 

그랬던
그가 8월 들어 확 달라졌다.

 

21타수
6안타를 치며 타격감을 끌어올리더니, 지난주 두 번이나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을
터뜨렸다.

 

‘3번
타자’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대화
감독도 “역시 베테랑이다. 장성호가 살아나면 최진행-김태완의 무게감도 배가 된다”며
장성호의 선전에 한껏 고무된 반응이다.

 

부활의
서막을 장식한 뒤 만난 첫 상대는 공교롭게도 애증의 친정팀 KIA.

 

10일
비로 KIA와의 청주 경기가 취소된 뒤 대전 용전동 한화이글스 실내연습장에서 만난
장성호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솔직히
KIA와의 경기는 2, 3일 전부터 신경이 쓰여요. 다른 팀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하게
되더라고요. KIA에선 그만두는 날까지 청춘을 다 바쳐서 후회는 없어요. 좋은 추억으로
남겨야지요.”

 

 

AP07DA80F0B1C9C019.JPG 

 

 

 


감독, 신진 선수들이 그야말로 새로운 팀을 재창조하고 있는 한화에서 장성호는 고참선수
한 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한화에 올해 처음으로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것은 장성호에겐
기회이자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코치가 해야 할 이야기와 선배가 잡아줘야 할 부분은 엄연히 다르다. 후배들에게
경기에 임하는 자세, 수비 위치, 상대 투수 구질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하는 야구를
전파 중이다”고 밝혔다.

 

 

1996년
해태에 입단해 15시즌째 프로 무대를 누비고 있는 장성호는 올해 서른셋이다.

 

선배
양준혁의 은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 그는 “양준혁 선배의 안타
기록(2318개)은 꼭 제가 깨야겠다고 결심했다.

 

내년부터
4년간 죽어라 하면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조심스럽게 포부를 밝혔다.

 

10일
현재 장성호는 1775개의 안타를 기록 중이다. 양준혁과는 543개 차.

 

사막을
힘겹게 건너 오아시스에 당도한 장성호가 한화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올해는
정말 뭔가를 보여드릴 수 있는 힘이 없었어요. 팬들께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년엔
정말 크게 한 건 할 겁니다. 한화가 2년 안에 꼭 4강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유니폼 등판에는 해태(KIA의 전신) 시절부터 간직한 등번호
1번이 선명했다.

 

대전=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AP07DA80F0B1E251021.JPG

 

 

 

카테고리 : 기억의 습작 댓글 남기기

슈퍼 장애인 신경문씨, '인생 최대의 놀이터' 올림픽을 꿈꾸다

 

"장애인 올림픽 관련해서 휴먼 스토리 없을까?"

 

그와의 만남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칼 바람 속에 경찰서를 돌던 수습 시절 일진의 한 마디는 무척 매서웠다.

 

그를 알게되고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내 수습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줄은 몰랐다.

 

 

슈퍼장애인을 꿈꾸는 장애인 슬레지하키 선수 신경문씨

 

그와 대화하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감동이나 위안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도 장애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

 

회사 사정으로 기사화되지 못해도, 직접 만날 수 없어도 그는 그저 "기자님
꼭 한번 뵙고싶네요"라며 웃는다.

 

 

그가 내 저널로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감사한 일이다.

 

대신 그를 만나 사진을 찍어주신 안철민 선배와 주절주절 늘어논 글을 기사체로
바꿔주신 유성열 선배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국가대표’를 꿈꿨다. 목표는 밴쿠버 올림픽. 훈련이 없는 날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헬멧 안에 가득 찬 땀을 닦아 내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다 가슴에 든 멍이 아문 자리에 태극마크가 새겨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도
국가대표를 꿈꾼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발표된 대표팀 최종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올해 나이 서른일곱. 다음 올림픽이 열리는 4년 뒤에는 40대 ‘노장’이다. “제
인생 최고의 ‘놀이터’를 쉽게 포기할 순 없죠.” 밴쿠버 장애인 겨울올림픽이 개막한 3월 13일에도 그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아이스
슬레지(Sledge)하키 선수 신경문 씨(37·사진)는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부터 다리를 온전히 쓰지 못한다.
11세 때 큰 수술을 받고나서야 보조기구를 차고 걷는 법을 배웠다.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고 뛸 수 있었지만 불가능했다.

 

  삐뚤어
질만도 했지만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다리가 불편한 대신 팔 힘과 상반신을 단련해
‘몸짱’으로 거듭났다. 덕분에 동네 골목대장 자리는 늘 그의 것이었다. 대학생 때는 자전거를 타고 두 달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비기도
했다.

 

  2008년
1월부터는 스키에 도전했다. 연습 한 달 만에 장애인 동계체전에 출전해 결승점까지 완주했다. 기문을 하나 놓쳐 실격 당했지만 모두가 그의 ‘작은
기적’에 박수를 보냈다. 그는 “스포츠는 장애인들의 갈망을 채워주는 친구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슈퍼 장애인’

 

  그가
올림픽 출전을 꿈꾸게 된 건 아이스 슬레지하키를 처음 접한 2008년 9월부터다. 지금도 그날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는 신 씨는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는 장애인 스포츠는 처음이었다. 항상 몸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도 이렇게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운동을 한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자랑했다.

 

  아이스
슬레지하키는 하반신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슬레지’라고 불리는 썰매를 타고 상대팀 골 망에 퍽을 넣어 승부를 가린다. 한손에는 썰매를 미는
픽(pick)을 들고, 한 손에는 퍽을 때릴 때 쓰는 스틱을 든다. 겨울스포츠 선진국인 스웨덴,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는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처음 소개됐고, 지난해 강호들을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실업팀은 강원도청은 딱 한 곳이며 전체
등록 선수가 40여명이 것을 감안하면 기적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지만 강호 체코를 상대로 두 골을 넣는 등
선전했다.

 

  슬레지
하키를 접하자마자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후원하는 ‘연세 이글스’ 팀에 합류한 된 신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열린 장애인 동계체전에서는 동메달을 땄고, 대표팀 상비군에도 선발됐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그에게 대표팀 자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언젠간 나가겠지요. 지금은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번 올림픽을 TV로 지켜본 그는 “저변만 넓어진다면 다음
올림픽 때는 메달권에도 진입할 수 있다”며 “내가 꼭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
씨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 스포츠 컨설턴트’다.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에게 적당한 운동을 설계해 새로운 인생을 그려주겠다는 것. “저는
‘슈퍼장애인’이 꿈입니다. 장애와 불가능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밴쿠버 행 비행기를 놓친 게 아쉬울 법도 한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희망으로 가득했다.

카테고리 : 기억의 습작 댓글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