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시애틀은 참으로 희한한 도시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스타벅스, 코스트코, 노드스트롬(백화점)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회사들의 본사를 두고 있다. (원래 시애틀에 본거지를 뒀던 세계 최고의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2001년 본사를 시카고로 옮겼지만 직원 수가 MS 전체 직원 수의 배에 이를 정도로 큰 공장을 여전히 시애틀 근방에 갖고 있다.) 코스트코의 자체 브랜드인 Kirkland는 시애틀 근방의 도시로 코스트코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문화적으로는 영화 Sleepless in Seattle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인기 미드 중 하나인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배경이다.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치로가 있는 MLB 시애틀 마리너스(요즘에 정말 그지같이 못한다)와 NFL 시애틀 시호크스의 홈이다. 1990년대 게리 페이튼과 숀 캠프가 이끌었던 MBA 슈퍼소닉스는 올해 시즌부터 다른 도시로 옯겨갔다. 농구는 별로 인기가 없다. 흑인이 많지 않아서일까?
여름 날씨는 끝내주지만 10월부터 이듬해 4월 정도까지 부슬비가 거의 매일 같이 내려서 (결코 많이 오지는 않는다.) 우중충하며 위도도 높아 겨울엔 오후 4시면 어둡다. 우스개소리지만 스타벅스가 없었다면 시애틀의 자살률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기업과 출신가수(또다른 유명 가수 중에는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여성 자매 듀오인 Heart가 있다)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시애틀은 기본적으로 락앤롤 타운이고 전자IT산업이 주종이다. 이 곳에 IT 산업이 흥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MS가 뉴멕시코 주의 알바커키에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고향인 시애틀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MS가 뿌린 씨가 수많은 벤처기업의 밭으로 자라난 것이다. 리얼네트웍스가 있고 MS에서 분화된 익스피디아 닷컴도 시애틀에 있다.

그러면 왜 시애틀이 희한한가. 이렇듯 여느 미국의 도시에 비해 잘 알려져 있고 유명 기업도 많지만 미국 내에서는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영원히?) 보스톤에서 뉴욕과 필라델피아, 워싱턴DC를 잇는 동부의 메갈로폴리스가 중심이다. 서부에는 LA와 샌프란시스코가 시애틀보다 당연히 인구도 많고 주목도 많이 받는다.

물론 시애틀이 수 많은 미국의 도시 중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의 시애틀은 미국 노스웨스트의 골목대장 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local 도시에 가깝다.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UBC에 다닐 때 경제학 조교가 한 말이 있다. 캐나다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퀘벡 주의 맥길대 출신이었던 이 조교는 주말에 몬트리올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어디 하이킹 했고 어디 놀러갔다는 얘기만 하다 끊는다고 했다. 그래도 대학원에 갈 정도면 학교에 관한 얘기도 할만한데 학교 얘기는 그저 변두리적인 주제일 뿐이라며. 그만큼 동부 사람들에게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훌륭한 자연경관과 느긋한 일상으로 대변되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라는 얘기 아닐까. MS라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두고 있지만 여전히 목제와 제지업이 중심인 세계에서 가장 키큰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 워싱턴 주이고 그 주의 중심이 바로 시애틀이다.

카테고리 : Seattle &
태그

댓글(1) 시애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