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는 힘이 세다

카테고리 : 도그마에 대한 도전 | 작성자 : 권재현

 

정신과의사 정혜신 씨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자신의 체험담을 털어놓고 있는 김태룡 씨. 페스티벌 봄 제공

  아버지가 기관원에 끌려갔을 때 아들은 태어난지 채 100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남산에서 무서운 고문을 받고 그들이 주문한대로 간첩짓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6.25전쟁 때 월북했다가 남파된 외당숙이 권총으로 협박해 신고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그 결과 할아버지는 사형됐고 아버지는 무기징역, 고모와 삼촌도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 1979년 발표됐던 ‘삼척 일가족 간첩단 사건’입니다.

 

   아버지는 1998년 근 20년 만에 풀려났습니다. 갓난아기 때 보고 면회 와서 얼굴을 본 게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든다는 아들은 스무 살이 돼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으실 거예요. 어린 시절을 지켜보지 못한 채 어른이 다 된 아들을 대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지.”

 

   6일 저녁 8시 서울 용산구 서계동 ‘불의 절벽2’(임민욱 연출) 공연이 펼쳐진 백성희장민호극장 250여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초로의 신사가 꺼내놓은 기막힌 사연을 숨 죽이고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는 2006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사건으로 판정한 ‘삼척 일가족 간첩단사건’의 피해자 김태룡 씨(61)가 정신분석의 정혜신 씨의 질문에 나직히 답하고 있었습니다. 

 

   ‘ 20년간 면회를 다섯 밖에 못했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부자 간에 너무한 거 아아니야’라는 생각은 김 씨의 다음 말에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온 가족이 창졸지간에 옥살이를 하게 된 거잖아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는 남파간첩으로 내려와 부상당한 처남(외당숙)을 내치지 못한 자신 때문에 온가족이 이 풍비박산 났다는  자책감으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셨고, 그 소식을 들은 고모도 따라서 음독자살해 돌아가셨죠.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도 힘겨웠으니까요.”

 

   그 순간 객석에선 나즈막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김 씨는 취조를 받을 당시 자신이 받았던 ‘통닭구이’ 고문과 ‘짬뽕국물’ 고문을 설명하면서 지금도 통닭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짬뽕을 보면 토악질이 난다고 고백했습니다.

 

감옥에서 인쇄기술을 배웠지만 출옥해보니 디지털 인쇄로 바뀌어 공사판에서 일하면서 기수을 배우려고 그가 사모았다는 공구들과 그렇게 자신이 만든 침대 곁에서 정혜신 씨와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태룡 씨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지를 그는 반어적인 우스개 소리로 들려줬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된 감옥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더 이상 고문을 견딜 수 없게 된 그 감옥동료는 일본에 체류할 당시 북으로 넘어가 간첩교육을 받고 남파됐다는 이야기를 꾸며내 자백했다고 합니다.

 

  심문관은 일본에서 배를 타고 원산으로 갈 때 얼마 걸렸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생각나는 대로 “두어시간 밖에 안 걸렸다”고 말했다가 “말도 안돼,  일본에서 한국 오는데도 대여섯시간은 걸린다”며 윽박지르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뭐? 당신이 간첩선 타고 북에 가봤어? 난 직접 가본 사람이야. 북한 간첩선이 얼마나 빠른 줄 알아? 바닷물에 거의 닿지도 않고 날아가듯 간다고!”

 

   이 말에 심문관은 아무 말도 못해닸고 합니다.  이번엔 원산에서 어디로 갔느냐는 말에 평양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고 하자 또 “몇 시간 걸렸어?”라는 질문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이번엔 한두시간을 더 써서 “서너 시간 걸린 것 같다”라고 하자 다시 “말도 안돼, 북한의 철로가 얼마나 노후됐고 꼬불꼬불한데”라며 언성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는 다시 또 이렇게 응대했다고 합니다. “왜 자꾸 시비야? 당신이 원산에서 평양까지 기차 타봤어? 난 타본 사람이야! 밤중에 나 하나 태우고 다른 역에 서지도 않고 달리면 얼마나 빠른데!”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머릿속에선 ‘얼마나 필사적인 상황이었으면 그런 말이 다 튀어나왔을까’하면서 주객이 전도된 그 상황에 웃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 김 씨의 입가에도 처음으로 웃음기가 서렸습니다. 

 

"저도 한때는 점말 행복하고 살고 싶었습니다"라면서 전날 공연에선 가져오지 않았던 결혼식 사진을 꺼내놓으며 행복했던 한 때를 생각하며 웃음짓는 김태룡 씨.

 

  하지만 다음 순간 다시 뜻밖의 말을 털어놨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당한 모진 경험담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족들이 지금까지 받은 고통에 제가 겪은 고통을 다시 얹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저 혼자 안고 저승까지 가려고 했죠. 가족 아닌 사람들에겐 말해봤자 ‘괜히 그런 일을 당했겠는가, 그렇게 당할말한 일을 했으니까 그런 거겠지’란 말이 돌아올 것 같고.”

 

  그는 자신의 입으로 그 모진 체험담을 꺼내놓은 게 이날이 세 번째라고 했습니다.  민가협의 도움으로 고문피해자 후유증 치료 모임에 참가했다가 정신과 상담의 정혜신 씨를 만나 정신상담을 받으면서 처음이었고 전날 공연이 그 두 번째였다는 겁니다.

 

  그는 특히 아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밤무대 가수로 일한다는 아들과 달리 노래를 못한다는 그의 애창곡은 딱 하나라고 했습니다. 현철의 ‘보고 싶은 여인’. 그는 가사 속 여인을 아들로 개사한 노래를 어눌한 창법으로 들려줬습니다.

   “사랑했던 그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처가면 생각난다/ 생각난다 가고없는그 사람아/ 어느 하늘아래 살고있나/ 보고 싶은 내 아들아/꿈속에라도 꿈속에라도 보고 싶구나 아 아 아 내 아들아.”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노래하는 무대를 한번도 보러 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미안하고 계면쩍어사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밤무대를 지켜야했던 아들은 전날에 이어 마지막 공연이던 이날도 아버지를 보러 공연장에 나타나질 못했습니다.  관객은 그 현장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돼어 가슴 깊이 꽁꽁 숨겨줬던 이야기를 들려준 김 씨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연출된 ‘리얼리티 쇼’가 넘쳐나는 시대,  진짜 리얼리티의 미덕을 묵묵히 보여준 무대였습니다.

 

 

 

5 thoughts on “리얼리티는 힘이 세다

  1. 홍기호

    불행한 시절 희생당한 한가족의 처절한 단편이 우리를 전율케한다.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이중적인 잔혹함에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진다. 그냥 내가 아니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시절을 다시 돌아본다.

  2. admin

    저널로그 운영자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닷컴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3. David Kim

    버려진 인간들!!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과 국민들이 사과해야 하는데… 살아 계신 것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4. 김건

    그저 마음이 싸-해질 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위로 한다고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아 그저 손을 잡고 함께 우는 것밖에는 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감동이 아니라 아픔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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