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과 ‘한국적인 것’

카테고리 : 도그마에 대한 도전,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 | 작성자 : 권재현

 

지난 가을, 보수의 적통을 자임하던 정부가 사리사욕에 가득 찬 한 여인의 먹잇감에 불과했음을 발견하고 우리의 혀는 ‘입 속의 검은 잎’이 되어버렸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대통령이 40년 전 주술에 사로잡힌 ‘철부지 공주’임을 깨닫고 우리의 눈은 ‘돌에 새겨진 비명’이 됐다. 그렇게 우리는 서정이 말라붙은 가을을 보내야했고, 촛불로 한겨울 삭풍을 견뎌야했고, 끝끝내 천둥의 함성으로 봄날을 맞이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절망의 어둠이 깊은 만큼 희망의 새벽 또한 멀지 않음을 다시 깨쳤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다는 것이 교과서 밖 현실에서도 생생히 살아 숨쉼을 배웠다. 뿐만 아니다. 박근혜의 침몰과 세월호의 부상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억압받는 모든 것은 귀환한다”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일갈이 아침드라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최고 권력자와 그 대척점에 선 ‘벌거벗겨진 생명’(호모 사케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논한 이탈리아 사상가 조르지오 아감벤의 이론이 ‘동방의 밝은 등불의 나라’에서도 유효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명징하게 드러난 사실은 대다수 한국인이 간과해왔던 ‘한국적인 것’(The Koreaness)의 재발견에 있다. 물론 한국적인 것을 한두 가지로 못 박을 순 없다. 외국인들이 먼저 주목한 ‘정(情)의 문화’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이 강조한 ‘한(恨)의 문화’도 있다. 조선의 양반사회가 무너진 이후 사회적 계급의식을 무화시키려는 강렬한 평등의식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 양반문화의 산물로서 딸깍발이 정신으로 면면히 계승된 ‘부끄러움의 윤리’도 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쌈짓돈이라도 꺼내는 ‘베풂의 미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촛불혁명이 일깨워 준 한국적인 것은 바로 ‘부당한 권력에 대한 집단적 항거정신’이다.

 

  한국 정치는 세 명만 모여도 당파싸움을 벌인다 할 만큼 지리멸렬한 것이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도입한 제도적 장치들이 인치(人治)에 의해 번번이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음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자생적 민주화를 성취한 원동력이 무엇일까. 서구는 물론 중국과 일본 같은 동아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유구한 전통에 있다. 바로 집단적 저항의식이다.

 

  우리 헌법에 등장하는 3·1운동과 4·19혁명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10항쟁 정도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저 멀리 임진왜란 때 의병 봉기부터 시작해 19세기 조선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을 비롯한 수많은 민란과 임오군란, 동학혁명의 공통점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집단적 항거이다. 이들 항거는 대다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불의에 맞서 싸웠으며 20세기 들어 그 상당수가 일정한 성과를 쟁취해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고려 권문귀족 세력에 맞서 동아시아 유일의 ‘유교혁명’을 성취해낸 조선 건국의 기억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 한중일 삼국을 통틀어 민본주의에 입각한 유가사상을 이념으로 삼아 실제 혁명에 성공한 역사는 조선왕조가 유일하다. 한(漢)~청(淸)에 이르는 중국 왕조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잡은 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유가를 도입했을 뿐 그 사상에 입각해 건국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주자학의 본고장인 송나라에서 유가사상에 입각했던 왕안석의 개혁이 좌초했음을 기억해보라.

 

  다른 나라와 한국이 진정 차별되는 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서구에서 성공한 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1688)과 미국 독립전쟁(1774)과 프랑스대혁명(1789)과 러시아혁명(1917) 정도다. 다른 혁명들은 일시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결국 ‘테르미도르의 반동’ 류에 의해 진압되거나 무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 내 대다수 진보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은 스페인내전이 프랑코 독재체제로 귀결된 점이나 ‘68혁명’이라 불리는 1968년 동유럽과 서유럽의 혁명이 하나같이 정권획득에 실패한 것을 봐도 그렇다.

 

  동아시아로 이를 좁혀 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20세기 들어 공산혁명을 통해 권력교체를 이뤘지만 그것은 소수 혁명가에 의해 기획된 모반의 성공이란 점에서 과거의 왕조 교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혁명이라고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소수의 공산당원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미완의 혁명에 불과하다. 천황제 국가였던 일본의 민주화는 패전의 대가로 미국에서 이식됐다는 점에서 역시 뿌리가 약하다. 내부 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1947년 2·28운동을 필두로 대다수 민중봉기가 처절한 패배의 쓴맛만 보다가 1989년 선거혁명을 통해 비로소 민주화의 단맛을 맛봤을 뿐이다.

 

  반면 한국의 민주화는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가 거리로 나서 쟁취한 것으로서 위기상황에서 어김없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차별화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은 5·18 같은 패배의 쓴맛 못지않게 4·19와 6·10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승리의 꿀맛. 한국정치의 역동성이란 것도 바로 이런 집단적 저항의식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정권은 늘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이 모델로 삼는 영미 민주주의가 대부분 ‘무혈혁명’으로 포장된 엘리트의 제도혁명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의례에서 배제하려는 집요한 실랑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의 제창을 막으려 한 집단무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국 민주주의가 집단적 저항의식의 성취임을 외면하고 부인하려는 강박관념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국의 아버지들’인 이승만·박정희와 그를 따랐던 군인·관료 엘리트들의 제도혁명으로 이뤄진 산업화의 결실, 곧 ‘위로부터의 혁명’의 결과여야 했다. 그래서 일반 민중의 열망을 담아낸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유구한 전통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묵살, 배제해 온 것이다. 그래서 한국 보수층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은 공산주의의 변종인 민중민주주의를 환기시키는 호환·마마 같은 노래로 터부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말로 한국 보수층 역사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무릇 보수라 함은 그 나라만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이유에 충실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국이 보수주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영국적인 것(The Englishness)’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 때문이다. 유럽 대륙의 대부분이 왕정을 폐지했음에도 왕정을 유지하는 것, 성문헌법이 아니라 불문헌법 체제를 바꾸지 않는 것, 심지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면서까지 “우린 니들과 다르거든”을 고집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영국적인 것에 대한 영국인의 태도가 자랑 일변도가 아니라는데 있다. 그들은 이를 끊임없이 풍자하고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집단기억화한다. ‘쇠귀에 경 읽기’식으로 고집이 세고, 자기네 집을 성처럼 여기는 폐쇄성을 지녔고, 남 험담하기 좋아해 자리를 비울 수 없으며, 남자들은 축구라만 사족을 못 써 이를 빌미로 쌈질하기 바쁘고, 여자들은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요리를 너무 못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대신에 시간 약솔 잘 지키는 깐깐한 원칙주의자에 뇌물 밝히는 것을 혐오하며 뭐든 치열한 토론을 펼치되 다수결로 결정된 것은 깨끗이 승복한다는 긍정적인 면을 끼워 넣는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이 ‘메이드 인 브리튼’이라는 점도 빠지지 않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바로 존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영국 작가인 톨킨이 그 소설에서 자국민을 모델로 삼은 종족이 있다. 바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동굴 같은 자기 집을 벗어나기 싫어하면서 자신들이 대단한 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호빗이다. 그는 자국민을 볼품없는 외모에 딱히 별다른 재주도 없는 이들로 신랄하게 풍자했지만 결국 그들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묘파했다. 잘나고 멋져서가 아니라 고리타분할지언정 물질적 유혹에 타협하지 않는 독립심을 지녔고 무엇보다 자유와 우정을 중시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국민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었던 조지 오웰조차 높이 평가한 가치도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허물을 스스럼없이 인정할 줄 알고 열등감이 없을 때 비로소 건강한 자기희화화도 가능한 법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뤄진 ‘역사 바로 세우기’의 패착은 역사의 거울 앞에서 지독한 자기애에 빠져 이런 건강한 자기풍자의식을 상실한 데 있다. 일본우익의 용어를 그대로 수입한 ‘자학사관(自虐史觀)’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한강의 기적’을 앞세우고 북한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논하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운운하는 것은 유치한 나르시시즘에 지나지 않는다. 무릇 역사라 함은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런 성숙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한국보수는 자신들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를 포기하고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예쁘니’라는 자화자찬의 유혹에 빠져 오히려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한국 보수가 바로서기 위해선 한국적 경험에 입각해 지키고 보존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힘부터 키워야한다. 또한 그 가치가 절대선이라는 자가당착에서도 벗어나야한다. 그것은 옳고도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어렵사리 키우고 소중히 간직해왔기 때문에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먼저 한민족이 세계 최초의 뭘 발명했고, 뭘 개발했고, 삼성이 전 세계 뭐가 일등이고, 올림픽 금메달 순위가 몇 등이고 하는 ‘잘난 척’부터 멈추자. 대신 우리 자신을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아유 참 못 생겼구먼,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못난이를 좋아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렇다고 자기 얼굴에 똥칠하자는 게 아니다. 겸손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못난 우리네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솔직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운운하는 사람일수록 외국과 비교하며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함부로 말할 때가 많다. 외국물 좀 먹고 온 해외유학파나 고위층 인사 중에서 많이 발견된다. 역사공부를 얼치기로 한 사람들이다. 한국은 영국이 340여년, 미국이 240여년, 독일이 160년, 일본이 140년에 이룬 것을 70여 년 만에 이뤄낸 국가다. 그런 압축발전을 이루는 가운데 엄청난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한국을 그런 나라와 비교하면서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고 씩씩거리기 일쑤다. 연봉이 수백 억대인 프리미어리그 축구와 겨우 억대 연봉 받는 한국 프로축구의 수준 차를 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울분을 토하거나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혀를 차며 진보연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서구적 기준에 입각해 한국사회에 대한 냉소와 환멸을 토해내는 동안 한국은 서구사회가 상상도 못했던 대규모 평화적 촛불시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끌어냄으로써 세계의 경탄과 부러움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그러니 제발 외국 어느 나라와 한국을 곧바로 비교하는 짓부터 멈췄으면 좋겠다. 남이 어떻게 사는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부터 고쳐 가면 된다. 아직 멀었다고 앙앙불락하는 시간에 자기 자신부터 고쳐나가면 된다. 자기는 만날 남들 눈치 보며 살면서 남 타령하기 바쁜 것 이 역시 ‘한국적인 것’이라면 마땅히 고쳐 나가야할 것이다.

 

  ‘즐거운 지옥’이라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자기풍자부터 펼쳐보자. 최순실 게이트 같은 퇴행적 현상이나 벌어지는 한국 정치는 분명 후진적이다. 그런 정치권에 돈 갖다 바치기 바쁜 재벌 중심의 한국경제는 구리기 짝이 없다, 돈이면 다 된다는 돈독이 잔뜩 올라 온갖 갑질이 횡행하는 한국사회가 구제불능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흔히 한국적 가치라 불리는 것들이 짧은 시간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느라 심하게 훼손되거나 아예 상실된 경우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면면히 계승되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부당한 권력남용을 참고 참다가 한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국민적 저항에 나설 줄 안다. 서구와 동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보다 평등의식이 강하기에 재벌 골리고 놀리기에 능하다. 속물근성에 물들었을지언정 질 나쁜 범죄자에게도 “밥은 먹고 다니냐’고 챙길 정도로 정이 많다.

 

  최순실 게이트로 우리 국민이 집단적 자괴감과 허탈감을 안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자꾸 용으로만 그리려 했지만 아직은 미꾸라지에 불과한 우리의 진면목을 대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따위의 나르시시즘에 함몰되지 말고 현재의 못난 우리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과거에서 길러온 건강한 우리에 대한 초상을 새로 그려가자. 이야말로 만해 한용운의 노래처럼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리에 퍼붓는’ 우리 공동체에 대한 역설적 사랑의 힘이다. 또 그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할 제일 소중한 자산 아니겠는가.

 

-6월 20일 발간된 도요문학 무크지 11집 ‘변화의 힘’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해 11월 7일 ‘한잔의 선식’에 올렸던 ‘최순실 게이트’로 돌아본 ‘한국적인 것’을 대폭 수정 보완해 ‘촛불혁명’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본 글입니다.  

4 thoughts on “‘촛불혁명’과 ‘한국적인 것’

  1. moschang

    “버드 비샵” 이란 영국 아줌마가 100 년전 한국을 돌아보며 남긴글에 이렇게 착한 국민들위에 어찌 이다지도 못난 관리들이 자리잡고잇단 말인가 하며 혀를 차는 것을 볼수있다. 고려가 망해 조선이 되고 조선이 망해 일본 식민지가 되고 이렇게 된것은 다 못난 관리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419 는 이 백성의 착하기만 한 그 한편 속에 숨어있든 힘을 폭발 시켰다. 그리고는 불과 40 년만에 세계 꼴찌가 10 등으로 올라 왔다. 참 현기증 이르키는 백성들이다.

  2. bhlee4401

    촛불혁명은 종북좌파들의 자기도취적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을 장악한 언론노조의 사주로 연유한 일방적 주장일뿐이다.
    태극기 봉기가 더큰 규모로 이루어졌는데도 언론은 재갈이 물려 끽소리도
    못하고있지 않은가. 세월호 상장을 당선되는날까지 패용하고 당선다음날
    제거한 문대통령이 균형잡힌 역사관을 가져주기 고대할뿐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비자거부를 당해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수행을 못했다는
    것은 세계적인 웃음거리 아닐까.

  3. sju6769

    종북 좌파들의 선전선동이 꼭 해방후의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다. 배후 조종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이나라가 북한 공산주의자들 손에 넘어 가기전에 말이다.대구 노조 파업때 병원 영안실에 가서 송장을 매고 나와 길거리 시위하는것과 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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