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양정철의 퇴진을 바라보며

카테고리 :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 | 작성자 : 권재현
 

 

중국 선불교 두번째 스승으로 꼽히는 혜가가 달마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팔뚝을 잘라내는 '혜가단비(慧可斷臂)'의 고사를 형사화하 그림.

 

  중국 선불교의 등불을 높다랗게 밝혀든 사람이 누구일까요? 일조(一祖) 달마가 아니라 육조(六祖) 혜능입니다. 왜 일조가 아니라 육조일까요? 인도의 선불교를 중국에 전한 달마의 법맥이 비밀리에 전수되다가 200년 뒤 혜능을 만나 만개했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불가의 공식적 설명이구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혜능이 대단한 선승이었던 것만큼 엉청난 구라꾼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달마는 그 생몰연도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혜능 생존 시절이나 지금이나 전설적 존재에 가깝습니다. 중국 사서에 달마의 이름이 등장하긴 하지만 인도에서 선불교를 전한 여러 인도 승려를 대표하는 대명사 정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기록이 들쭉날쭉합니다. 그 인도 승려들이 뿌린 제자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런데 혜능이 등장하면서 느닷없이 달마로부터 혜능으로 이어지는 전등(傳燈)의 계보가 탄생합니다. 깨달음의 지혜를 등불에 비유하면서 스승이 최상승의 경지에 이른 제자에게만 이를 비밀리에 전수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함께 도통한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만 도통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도맥론도 제시됩니다.

 

  아니 깨달았으면 깨달은 것이지 그걸 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하는 걸까요? 이는 혜능의 최대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혜능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이었습니다. 이는 혜능의 언행을 기록한 ‘육조단경’ 곳곳에 등장합니다. 심지어 여러 불경 중에서도 짧기로 유명한 법화경조차 읽은 일이 없어 ‘무진장’이란 여보살이 읊어준 내용을 듣고 그 핵심을 일깨워줬다는 내용까지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 중심의 종교인데 글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스승 노릇을 할수 있겠습니까. 혜능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인 홍조대사로부터 유일하게 자신만이 의발을 전수받은 제자라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그 증거로 달마가 인도에서부터 입고와 인도로 돌아가기 전 2조 혜가에게 전해준 뒤 대대로 그 직계제자에게만 물려줬다는 낡은 금란가사를 내놓습니다.

 

  실존인물인 홍조대사에겐 제자가 여럿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조의 의발을 전수받아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홍조대사가 주석하는 절에서 방아찧은 일을 하던 자가 홍조대사가 죽기 전에 몰래 자신에게 의발을 물려주면서 “너만 내 진짜 제자야”라고 인정해줬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지요.

 

  날조의 냄새가 확 풍기지 않습니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를 증언해줄 사람은 죽은 홍조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한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홍조대사의 제자 중에 이미 신이 내린 빼어난 제자라는 법명을 지닌 신수(神秀)가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인도풍의 다 헤진 가사라는 게 그리 구하기 어려운 것이겠습니까.  홍조와 신수의 명성에 기대어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고도의 홍보전략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선종 5조인 홍인대사 문하에서 떡방아를 찧던 6조 혜능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림

 

  여기에는 또다른 심증 하나가 더 있습니다.  혜능에 의해서 처음으로 달마에서 시작돼 홍조까지 이어지는 도맥계승의 전설이 등장합니다. 혜능의 구라로 의심되는 이 전설의 최고봉은 일조 달마와 이조 혜가가 사제지간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달마가 9년간 면벽수도를 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사찰 소림사. 주인공인 혜가는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달마의 석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습니다. 벌써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을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문을 연 달마가 말합니다. “저 하얀 눈이 붉은 눈으로 바뀌면 모를까 너를 제자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널 제자를 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그러자 혜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왼팔을 베어냅니다. 그러자 그 주변에 쌓였던 눈이 붉게 물듭니다. 그 처절한 각오를 보고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인도로 돌아가기 전 자신의 금란가사를 혜가에게 물려줍니다. 

 

  이게 진짜일까요? 소림사에선 이를 기리기 위해 합장을 할 때 한 팔로 하는 전통이 생겼다지요? 저는 이 이야기에 혜가와 자신을 등치시키려는 혜능의 무의식적 진실이 감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달마의 첫 중국인 제자 이름이 하필이면 혜가(慧可)입니다. 혜능은 한자로 혜능(惠能)말고도 혜능(慧能)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2조와 6조가 같은 혜(慧)자 돌림인 샘입니다.  

 

  둘째 달마의 제자가 될 수 있다면 팔 한짝쯤 내줄 수 있다는 혜능 자신의 간절함이 이 이야기에 투영됐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어차피 중국에 불법을 전하라 온 달마가 굳이 자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을 그리 모질게 박대하고 심지어 팔 한짝까지 내노라 했겠습니까? 일단 제자로 거뒀다 그릇이 안되면 금란가사만 전해주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셋째로 혜가가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 일화와 혜능이 스승으로부터 인정 받게 되는 게송의 내용이 서로 상응합니다.  혜가는 “제 마음의 번뇌를 씻어주십시오”고 했다가 “그래 씻어줄터이니 그 마음을 내놔봐라”는 달마의 일갈에 깨우칩니다. 또 혜능이 홍조로부터 득도했음을 인가받게 된 것은 “마음이란 게 본래 없거늘 먼지와 티끌을 닦아내려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게송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혜능이 사기꾼 땡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은 선승에게 세상사라는 게 이미 한바탕의 헛소동인 것을 거기에 그럴싸한 허구를 더한다고 무에 더 죄가 되겠습니까. 하물며 어리석은 중생을 계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을. 또 육조단경의 내용을 보면 글을 읽을 줄 몰랐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단박에 깨치고 또 설법하는 혜능의 머리가 비범했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일등공신임에도 "대통령을 부탁한다"며 훌훌 떠나간 양정철(왼쪽)과 이호철 씨

 

  제가 혜능이 펼쳐잰 이 한바탕 쇼를 언급한 이유는 무릇 스승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려면 제자를 잘 만나야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달마로부터 홍조까지 1조~5조의 선승들이 중국선종의 아버지들로 불멸의 추앙을 받게 된 것은 혜능이라는 제자를 만났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혜능이 홍조의 실제 제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달마~홍조를 스승으로 삼았다면 그 또한 제자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을 앞세웠기에 혜능의 명성 또한 불멸을 획득한 것입니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혜능이 창작한 달마와 혜가의 이야기에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선 처절한 희생이 불가피함을 일깨워줍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이호철 씨에 이어 양정철 씨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해외행을 선택했습니다. 미래의 문고리 권력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불신을 일거에 불식시킨 엄청난 결단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정권 창출을 위한 함께 노력한 동지가 그 수혜를 나눠받지 못하고 타지를 전전해야한다는 것은 서구적 합리주의로는 설명하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 정치현상임에 분명합니다. 냉철한 이성에 입각하면 ‘피학적 조작’의 냄새가 물씬하다고 냉소를 보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양철은 문재인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혜가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팔뚝을 자신의 손으로 베어내는 ‘혜가단비()’의 실천을 통해 나중에 한 자리 하겠다며 선거캠프에 기웃거렸던 날고 긴다는 사람들을 일거에 침묵시켰고, 그를 지켜보던 수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이야말로 앞선 조사(祖師)들의 가르침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말과 행동으로 퍼포먼스화한 혜능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호철가 양정철이란 두 제자를 통해 그들이 흠모했던 스승 문재인의 진면목이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 정점을 찍은 양정철 씨의 퇴진 소식이 보도된 날이 4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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