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일독을 권하며

카테고리 : 도그마에 대한 도전, 역사의 책갈피에서 | 작성자 : 권재현

 

 지난해 8월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란 책이 뒤늦게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경기 광주시 ‘나눔에 집’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에 의해  피소된 여파라고 합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책이 출간되고 10개월간 1500부가 팔렸는데  뒤 2개월 간 똑같이 1500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팔순 넘은 할머니들이 정말 이 책을 읽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할머니들을 돌봐온 ‘나눔의 집’ 측에서 발췌해 읽어준 부분만 보고 격노하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소송 관련 보도를 피상적으로 접한 분들도 감성적으로 할머니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비판을 위해선 일단 문제의 책을 먼저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선행되야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박 교수에 대한 비판의식이 드시는 분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번 소송이 순수한 분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책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서평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던 ‘나눔의 집’ 측이 1년이 다 돼서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둘째 소송이 제기된 시점이 총리후보자로 나선 문창극 씨의 일본군 위안부 폄훼발언으로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셋째 박유하 교수가 ‘나눔의 집’에 사시는 할머니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박 교수에 동조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소송제기가 이뤄졌습니다.  누군가 박유하 교수를 공격하기 위해 절묘한 타이밍을 계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 그와 맞서 싸우며 뒹굴다가 어느새 변해버린 자신을 확인할 때입니다. 지난해 8월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바로 제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일본 우익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십니다. 저 역시  이 책의 앞부분만 읽고 살짝 거부감이 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제대로 몰랐던 부분에 새롭게 눈을 떴고 저자의 주장 중 상당부분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에 장문의 서평을 실었습니다.  아래는 그 서평의 일부입니다. 부디 박유하 교수를 일본 우익의 앞잡이라고 쉽게 매도하기 전에 꼭 <제국의 위안부>를 먼적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 심포지엄에서 나란히 앉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교수가 박 교수의 주장을 지지한 것을 알고도 과연 박 교수를 '일본 우익의 대변자'라고 쉽게 폄하할 수 있을까? 

  

  8·15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하면 선뜻 떠오를 통념을 무참하게 깨버린다. 한마디로 위안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접근방식이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울컥했다. ‘뭐야,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매춘부라고 매도하는 가해자 일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건가.’

 

  저자가 그런 천박한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를 무조건 일본의 국가범죄와 배상으로 연결지으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영원한 볼모로 잡아두는 짓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 한국인이라면 ‘아니 왜 우리가 연약한 피해자 편에 서서 오만한 가해자를 철저히 단죄하는 데 인색해야 하지?’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우리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은 외면하고 일본에게 불리한 내용만 확대 재생산하는 기억의 조작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래서 이해와 화해가 아니라 분노와 적대의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다면?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와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라는 책을 쓴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세종대 일문과 교수이다.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런 저자의 문제의식은 1990년 초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가 왜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인들은 이를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린다. 저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키워놨고, 이로 인해 일본 우익뿐 아니라 이 문제에 죄의식을 느끼던 일반 일본인까지 염증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나름의 사죄와 보상을 했다. 일본 아베 내각이 들어선 뒤 그 존재가치가 새삼 부각되는 고노 담화(1993년)는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인정하면서 “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당시 무라야마 내각은 한발 더 나가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1인당 200만 엔의 보상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보내고 7억엔 규모의 의료복지사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강제연행까지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구조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또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자민당 의원이 세 배나 많은 국회를 통한 의원입법이 불가능했기에 민간참여를 앞세우긴 했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 돈으로 기금을 마련한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말로는 보상금으로 번역된 ‘쓰구나이’란 일본어 표현에는 죄를 씻는다는 속죄의 의미가 담겼다.

 

  2003년까지 지속된 이 사업을 통해 필리핀 대만 한국의 위안부 285명이 속죄금을 받았다. 한국에선 모두 61명이 이를 수령했다(수령을 강력 거부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숫자와 비슷하다). 이 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의 90% 가까이가 일본정부 국고에서 지출됐다.

 

일본군 위안소 입구에 붙은 격문. 왼쪽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의 서비스’, 오른쪽은 ‘성전에서 대승한 용사를 대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야마토 나데시코는 ‘아름다운 일본 여성’의 대명사라는 점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결국 일본인 위안부의 대체제였음을 보여주는 한편 그들에게 신체적 위안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 요구했음을 보여준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문제는 갈수록 권력화하는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의 이런 속사정은 모른 채 ‘국회입법에 의한 국가배상’만 요구하면서 사태가 크게 꼬여버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를 과거 일본제국의 사과와 반성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익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는 일본 진보진영의 ‘냉전적 사고’가 더해지면서 일본 우익의 내면에 잠들던 ‘악마’를 깨웠다는 것이다. 즉 당초 국민기금 설립에 반대하지 않던 자민당과 요미우리신문이 종전 입장을 번복하고 적극 반대로 돌아선 배경에는 일본인의 피로감과 반감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진짜 민감한 대목은 지금부터다. 저자는 위안부들의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일본군의 잔학성에 균열을 가하는 증언’들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들을 속여서 전쟁터로 끌고 가 학대와 착취를 일삼은 주체는 대부분 동포인 조선인 민간업자였다. 조선인 위안부는 19세기부터 등장한 일본인 위안부(가라유키)의 대체재로서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 위안부와 달리 특별취급을 받았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이 패망의 순간까지 보호하려 한 ‘군수품’이었다면 다른 나라 여성은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여도 되는 ‘전리품’이었다. 상당수 위안부들은 역시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끌려와 죽음을 눈앞에 둔 일본군 병사에게 동병상련을 느꼈고 사랑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평균연령은 25세의 빈곤층 여성이었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의 위안부는 ‘일본군 군홧발에 짓밟히는 가녀린 열다섯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다. 일제가 14세~25세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해 여학생들 중심으로 모집이 이뤄졌던 정신대와 혼동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묻는다. 착종된 이 이미지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면서 정작 동족을 팔아먹은 우리의 죄에 대해 눈감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 우리 대신 싸움을 벌이는 팔순 할머니들 뒤에 숨으려는 유아의식의 발로는 아닐까.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을 매섭게 노려만 봐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번쯤 거울에 비쳐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12 thoughts on “‘제국의 위안부’ 일독을 권하며

  1. 박유하 교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는데, 여러가지 생각해본 계기가 됐네요.. 감사합니다. ^^

  2. 그림처럼~

    저는 박교수를 몰라요. 그런데 지난번 donga.com에 쓰신 review를 읽었을 때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국인들이 특히 일본과 관련된 문제에서 감성이 차분해 지기보다 오히려 더 뜨거워 진다는 것을 항상 느끼거든요.

  3. 세미나 리

    나는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를 세번 읽었습니다.
    나는 1934년생으로 해방되던 해 1945년에 국민학교 4학년이었어요.
    1학년 때부터 학교의 명으로 거의 날마다 가녀린 어깨에 가마니 메고 산에 가서 솔갱이 채집에 동원 됐었어요. 채집한 솔갱이는 맺혀있는 기름을 짜는 착유소에 가서 수납했습니다. 석유 수급이 안 되는 일본군의 연료로 쓰기 위한 그 착유소 업자는 조선인이었습니다.
    왜 이런 말부터 먼저 하느냐면, 식민치하 모든 분야의 일본인 앞잡이 업자는 피할 수 없이 식민지 세상에서 태어나는 사생아들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섭니다. 그들은 눈꼽만큼도 민족의식이란 게 없었지요.
    박교수의 책에서 ‘조선인업자의 죄’를 말한 부분이 가장 우습네요.
    박교수의 글에 동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입니다.
    이 책의 인상을 말한다면 ‘나무만 보고 숲은 간과했네요’
    여러 자료와 살아있는 몇 사람의 취재에다 자신의 감성이 듬뿍 들어있는 이런 책은 쓰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왜냐면,
    매몰되고 감춰진 팩트는 이 학자의 지식속에 스며있지 않다는 생각에섭니다. 정신대란 명분으로 동원해 간 위안부가 정확하게 몇이나 되는지의 기록은 없습니다.
    내가 열 살 때 정신대로 뽑혀간 나의 세째 이모의 나이는 열여덟이었습니다. 이모가 자살하면서 보내온 마지막 편지(군 검열 때문에 인편으로 보내왔었다)를 나는 아직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쓸 수 없지만………전투에서 부대로 귀환한 일본군 병사가 하루에 50명도 넘게 이모의 몸을 거쳐가는 일이 거듭돼 견딜 수 없어 죽는다는 유서였습니다. 나의 외할머니는 날마다 눈물로 지새다가 일년남짓 후에 돌아가셨고 그 후 우리 외가가 겪은 정신적 고통은 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런 고통을 겪은 집이 우리 외가 뿐일까요.
    그 시대에 살았던 우리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강압으로 식민 지배를 한 제국주의 일본의 민얼굴을 보고 겪은 우리가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시대에 살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마에무끼로 생각하지 않고 일본에서 교육 받아 교수가 되고 학자가 된 사람이 쓴 다분히 편견으로 점철된 이 책으로 마음을 정신을 생각을 덮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뿐입니까.

    •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 혹시 그 이모 분의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계신가요?

      • 국보금자료

        이런 편지는 길이 보존해야 하는데…

    • 1

      헛소리 즐~
      정신대하고 위안부는 다르다.
      정신대는 근로정신대라하여 공장 등에서 일하는 거고
      일본군과 성관계를 했던 것이 위안부다.
      그런데도 정신대로 끌려간(?) 사람이 ‘위안부’일을 했다.’성적인 접대 일’을 했다고 하니….
      이 나라의 반일교육과 역사왜곡이 정말 심각하다고 밖에는
      할말이 없다.

      • 휴...

        글로는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대략 20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30대입니다. 30대인 저조차도 어릴 때는 ‘위안부’와 ‘정신대’를 같이 혼용해서 쓰곤 했습니다. 대략 15년전까지도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위 원글을 쓰신 분이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이라면 제 어릴 적 시절과 동일하게 위안부와 정신대를 같이 혼용해서 썼다고 봅니다. 특히나 지금으로 보면 나이가 만 80세신데 인터넷을 쓰시는 걸 보면 맞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상황상 위안부와 정신대를 시작한 것이 근래인 것과 나이를 감안해서 본다면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세이십니다.

        헛소리 즐~이라는 비매너로 상대를 그렇게 비방하는 걸 보니… 아직 역사왜곡을 지적하는 모습 너머로 뇌가 덜 성숙하신 분이라는 이미지만 강하게 보입니다.

  4. 일본논리

    정대협이 민간단체를 앞세운 기금의 존재를 몰랐다니.. 그게 더 웃기는구랴…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자체가 일본의 장난질이라는 속셈을 간파했기에 그 기금 자체를 거부하고 일본국가의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독일이 그 사례중 하나죠… 민간단체를 앞세워 보상받을 경우 결국 일본은 공식적으로 사과나 보상을 할 의무가 없다는 논리에 휘둘리게 되는겁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이 위안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일본이 흔히 하는 장난질에 말려들지 않은게 잘못이라니 이러한 궤변도 없을겁니다…
    그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으면서… 명령에 따른 일본 원폭 투하 미군에게는 죽는 그날까지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의 작태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나요?

  5.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저자가 말하는 일본의 속사정을 모른 채 우리나라의 정대협을 문제로 삼는 것이 맞는 것인가’ 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사정을 대변하는 상태에서 정대협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저는 그리 보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는
    ‘강제 동원이 되었으니 우리는 위안부 따위가 아닌 피해자야! 우리는 배상받기를 원해’
    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강제한 적은 없어. 하지만 우리가 위안부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은 맞아. 그러니 보상은 해줄 수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시한 적은 없으니 사과할 수는 없고 배상금도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 문제는 솔직히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일부 사람들 중에서 이 문제를 피해를 어쨌든간에 배상은 해야 하니깐 현금이라도 먹고 나서 나중에 사과받아도 되잖아 라는 식의 생각은 버렸으면 합니다.

    과연 저 기금을 다 받고 나서도 일본이 나중에

    ‘너희들 기금 받아놓고 무슨 소리야? 우리 강제동원 한적 없다는건 니네들이 피해금 받은 것으로 증명됬잖아?’
    라고 말 못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우익세력이 뭐, 가만히 있는답니까?

    더하여, 일본은 그전부터 강제 동원은 없었다라는 주장을 계속 해서 주장하였었으며, 일본 정부는 단 한번도 입장을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일본 압잡이들이 많은 피해를 입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과연 우리나라 압잡이들이 일본군보다 피해를 많이 입혔다라는 사실은 과연 이 책에서 검증된 내용을 사용한 것입니까? 말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무척이나 힘든 내용입니다. 그럼 군에서 강제동원되었던 여성들이 압잡이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라고 말할 수 잇나요 아니면 일본 군인하고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고 말할 수 있겠나요? 이런 자료는 명확성을 띄지 않고 있으니 분명히 증언이나 혹은 증거가 더욱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으나 이부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이 글은 일본을 지지하기 위한 글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조선인들이 일본군 통제 아래에서 군인으로 강제 징발되어 전쟁에 동원된 상황에서 과연 압잡이였던가 아니면 압잡이가 아니였던가도 분명 확인하기 어려웠을 터입니다.

    더해서 압잡이들이 하였다고 해도 그 압잡이들을 컨트롤 한 사람들은 분명 일본인들이였을 것입니다. 뭐 설마 그럼 군 강제동원을 아주 압잡이 한국인이 건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말씀하진 않을 것이시죠? 그럼 결국 그 행동들은 일본인들의 묵인 및 일본인들의 지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그 일본인들이 더욱 혜택을 받는 환경이 되어 있었음은 분명하고요.

    마지막으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여성분들에 증언에 대해서 살펴보죠. 네덜란드 강제동원 할머님은 괜히 수령을 거부하고 이건 모독이라고 하였을까요? 그리고 한국에 사람들 중 현재 살아계신 33분은 ‘우연히도’ 일본군한테만 피해를 보는 지역에 파견되어 있던 사람들인가요? 그분들이 압잡이한테 피해본 것이 더 큰지 일본군에게 강제로 당한 피해가 더 큰지에 관해서 한번 여쭈어보셨던가요?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들은 그냥 ‘우연히’ 그런 쪽에 파견되어 있던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있어서 그런 말을 햇어영~ 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하려면 제가 할말이 없어지니 그만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저는 작자와 이 글을 쓴 작성자가 한국 및 다른 국가에서 피해를 본 여성에 대한 사과와 인정이라는 면에서 한번 보면 어떨까 합니다. 과연 일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요?

  6. 손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덧글 남깁니다.
    일본어 ‘쓰구나이’가 보상뿐만 아니라 속죄의 뜻을 담고있다고 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보상과 배상 두단어는 어감부터 확 다른데요… 일본인들은 하이쇼우라는 ‘배상’의 뜻을 가진 일본어가 있는데도 왜 굳이 쓰구나이를 썼을까요? 그 부분은 해석하기 나름인것 같은데 부러 두가지 뜻을 담은 단어를 쓴것이 책임회피가 아닌가 싶네요. 일본어를 잘은 모르지만 배상과 보상이 분명히 다른걸 알텐데 저들이 모르고 썼을리도 없고요. 처음엔 삼척동자님 글을 읽고 일본어에는 보상과 배상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없고 무조건 통합해서 쓰구나이라고 칭하는줄로만 알았어요. 보상을 뜻하는 단어로 따로 있고 배상을 뜻하는 단어도 따로 있는데 말에요.

    • 이 역시 책을 읽으시면 이해가 될 부분입니다만 짧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할 당시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총 8억 달러를 제공하면서 식민지배의 모든 법적 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됐다입니다. 따라서 법적 책임을 지는 배상이란 표현을 쓸 수 없는 겁니다. 다만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쓰구나이’란 표현을 썼다는 것이지요.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역시 유대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뜻하는 ‘배상’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뜻하는 ‘보상’이란 표현을 썼다는 것이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설명입니다. 여기서 보상은 compensation이 아니라 atonement의 개념으로 쓰구나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죄를 씻는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야 배상을 써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일본 측에서도 법적 책임문제는 끝났지만 그래도 마음의 빛이 있어 이렇게라도 보상하겠다는 정성을 담았는데 외면당했다는 앙금이 생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