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인터넷 여행사에 당황하다, 이건 뭥미?

 

인터넷여행사에 당하다

 

 

3월 초에 중국 북부의 홍콩이라는 대련에 (순수)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권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창완 선배가 비자 규정이 바뀌었다면서 은근히 겁을 주더군요. (비자를 받기 위해 재직증명서를 필참시키는 방향이랍니다) 고민끝에 ”패키지”로 항공권을 구매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넥스투어라는 온라인 여행사의 대련 2박3일 자유여행을 택해서 예약을 넣었습니다. 혹시나 같이 갈만한 분이 있을까 해서죠.

 

그런데 너무 황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엊그제 그 회사 남자 상담원하고 한판 싸우고 씩씩거리는 중입니다.

 

AP0029.JPG

 

가격은 18만6000원, 거의 매일 출발에 리턴 비행기표 연장이란 조건이 딱 제 구미를 당겼습니다.

 

밤에 예약하고 기다리니 다음날 오전에 전화가 오더군요. 목소리가 이쁘장한 남자 직원이었는데 "예약하셨죠?"하더니 아주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더군요. 몇가지 확인을 하더니 돌아로는 항공권 문제를 주로 상의하였습니다. 몇가지 우여곡절 끝에 가격이 18만6000 + TAX 10만 50000원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첫 갈등은 중국 비자에서 터졌습니다.

 

"1년 복수 비자를 신청하고 싶은데요…?"(나)

"네. 중국 복수 비자는 1년짜리 15만원 입니다." (상담원)

"다른 여행사는 12~14만원 정도인데…왜 거기만 비싼건가요?"(나)

"….여기는 15만원 입니다."(상담원)

 

"14만원에 안되는 거죠?………..머 그럼 그렇게 진행을…."(나)

"(후.하고 한숨을 쉬더니) 상품 없습니다… (툭~전화 끊김)"

 

허걱.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전화가 끊어진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가 내 뱉은 말이 제게 잘 안들려서 그랬는데 조금 당황한 저는 전화가 끊긴것인지 끊어진 것인지 몰라 한 3분을 기다리다가 제가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아니 전화가 끊어진건가요? 아님 끊으신건가요? 왜 전화 다시 안주고 그러세요"(나)

 

&uot;(급 당황하며)……..멀 어떻게 해드릴까요"(상담원)

 

어휴 정말 옆에 있으면 한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싼 가격 항공권이라고 생각하고 예약을 취소하고 어쩌고 하면 제가 복잡해 질 것 같아서 그냥 진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 터지더군요. 이 사람이 확정되면 바로 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안보내 주는 겁니다. 참다 못해서 4시쯤에 다시 전화를 했죠. 2주도 안남았는데 비자도 만들어야 하고 급하다고 말이죠.

 

"아!(이제야 생각난단 듯이)………6시까지 메일 드리죠. 툭~"(상담원)

 

이번에도 먼제 전화를 먼저 끊더군요. 문제는 6시까지 컴퓨터를 껴놓고 기다리는데 메일 결국 안왔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다시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다시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역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후 2시경에 씩씩러기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왜 보내주겠다면서 안보내 주는 건가요? 싼가격 상품이라고 차별하는 건가요? 도대체 언제나 가격 확정을 받는 건가요?"(나)

 

그러자 그 친구 답이 걸작입니다.

 

"제가 보내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다리면 되는 일 갖고 왜 그렇게 서두시나요?"(상담원)

"아니 어제는 6시까지 보낸다면서 전화도 없는 거 아닙니까?"(나)

그러자 갑자기 "손님에게 팔 상품이 없다" 며 전화를 또 툭 끊어 버리네요.

 

와. 이건 머 제가 그다지 다혈질은 아닌데 꼭지가 돌아버리겠더군요.

다시 전화를 걸어 항의했습니다.

 

"아니 내 평생 전화를 먼저 끊는 여행사 상담원은 처음입니다. 당신 여행업계 종사하는 사람 맞습니까?"(나)

 

"지금 당신이 잘못해 놓고 업계를 논하시는 겁니까?"(상담원)

 

"(목소리가 떨려 말이 안나옴) 알았으니까….당신 말고 옆에 사람 좀 바꿔줘요. 상관이나..아무나 좀"(나)

 

"제가 원래 담당도 아니고 전화 받을 사람 없습니다." (상담원)

 

"알았어요. 중국 여행 안가고 일본이나 유럽 갈테니까…제발 다른 사람좀 바꿔요."(나)

 

"됐습니다."

 

완전 대 놓고 반말투로 대드는군요. 정말 어이가 없어, 알았다 예약 취소해 달라고 GG를 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사상 처음으로 적반하장격인 여행사를 만났는데…정말 무섭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소리는 귀여눈 남자분이신데….진상 손님을 너무 많이 만나서 저렇게 나쁜 습관을 가진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30만원 짜리 상품 하나 정도는 안팔아도 그만이라는 건가요? 전 여행업계 적잖이 경험해봤느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손발이 오그라 들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에 대해 항의할 데가 전혀 없다는 것이네요.

 

머 예약이 진행 안한 상태고 계약조차 안된 상황에서 항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릴 곳도 없어보입니다. 있다고 해도 읽지도 않을테고, 전화연결을 받는 대표전화도 없는 형편이네요. 지역에 따라 무작정 배정이 될 뿐이고요. 어찌됐던 막장 여행사를 경험한 셈입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조언을 구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달렸습니다

 

 @@@@ [02/13 13:47]  ::

 

넥스트어 완전 홈페이지 위주 입니다. 제가 일년에 4-5번은 여길 썼는데.

저번에 완전 엉망인 사건을 한번 당해서.. 다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항공권 예약 하시는분들도 100% 확정된 여행만 예약 하시고 가급적 사용 하시지 않는게 좋겟죠.

저는 예약 했다가 돌아오는 날자에 웨이팅 넣어 준다고 했는데. 전화상으로 말해놓고

웨이팅 걸지도 않았더군요. 그래서 전화 하니..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셔서 싼거라고

오히려 틱틱 거리더군요.. 크레임 건다니까 다시 해주도록 해보겟다.. 이런식이었습니다.   

 

뭉치깽이  [02/13 13:50]  ::

 

넥스투어.. 저도 5년전에 된통 당한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태국 파타야 패키지를 보내드렸더니…

이 망할X의 현지 가이드가 팁은 팁대로 다 빨아먹고서는 정작 여행은 짝퉁여행을 시켜드렸더군요.

혈압이 뻗쳐서 넥스투어에 전화해서 개나발을 불었더니 일부 환불해 주더라구요.

그 뒤로는 인터넷 여행사 절대로 선택 안합니다.    

   

아바네로  [02/13 15:47]  ::

 

전 인터넷 여행사만 이용하는데 웹투어와 클럽리치투어가 젤 문제없이 빠르게 진행하더군요.

일본의 경우 특히 UA 항공권은 클럽리치투어가 더 쌉니다. ㅋㅋ

 

 

<글쓴이 호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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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부는 치마바람

 

 

  교육에 있어서 한국과 비슷해지는 중국

 

 

비자 갱신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시내의 위생보건센터에 갔었다. 이곳은 장기비자를 받으려는 외국인과 외국 장기비자를 받으려는 중국인이 와서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전염병이나 성병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를 받는 곳이다. 소변검사와 채혈을 간단하게 끝낸 후 만난 내과와 외과 검사 담당의는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여자분이셨다.

 

푸근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닌 그녀는 내 서류를 대강 훑어보다가 의외라는 듯 "어머, 선생님이에요?"한다. 워킹비자를 신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이 서류에 명시되도록 되어 있다. 웃으며 그렇다고 했더니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궁금하단다. 이런건 은근히 프라이버시지만 미소가 친절했으므로 나도 웃으며 말했다. "OOO라고, 아실지는 모르겠어요."

 

여의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당연히 그 학원을 안다면서 거기 영어 선생님들이 아주 유명하지 않느냐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한국어지만 원래 영어로 유명한 학원이라 그렇다고 하니, 자기 아들을 이번에 그곳 토플 대비반을 듣게 했다며, 영어 선생님들이 대단히 훌륭하더라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멋적다는 듯, "거긴 시험 대비 족집게 강의 같은 게 있잖아요. 어휴, 어쩔 수 없죠."하며 웃었다. 나도 웃으며 "맞아요, 시험 준비하려면 그렇게 해야죠."하고 대답했다.

 

우리 학원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방선생은 이번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일부러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이곳 광저우까지 데려왔었다. 수업 때문에 딸을 보러 자주 내려가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방학 때 열리는 초등학교 영어반을 다니게 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창사에도 같은 학원의 분원이 있지만 광저우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수준도 같이 배우는 아이들의 수준도 다를 것이고, 그래서 아이에게 이왕이면 광저우같은 대도시의 실력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상담을 받던 청소년부 담당자는 광저우와 창사는 아이들 수준이 다르니, 아이의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게 아니라면 한 단계를 내려서 공부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방선생은 "확실히 수준이 다르긴 다를 거예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러면서도 아이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다. 청소년부의 담당자는 한편 아이를 일단 봐야 인터뷰를 하고 등록을 할텐데, 아이가 오기 전에 접수가 마감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는 듯 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중국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를 둔 부모들의 진학 지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딸을 시 중점 중학교(重点中學)에 보내야 하니 주변의 인맥을 동원해서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보라고 닦달하는 아내 이야기를 하며,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인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며 한숨을 짓던 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은 그게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중점학교와 일반학교는 학생의 질도 수준도 다르다며 중점 중학교는 중점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당연한 준비라고 이야기했다.

 

자기 아들이 다니고 있는 중점학교의 교장을 개인적으로 안다며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하던 그녀는, 소개는 해주겠지만 아이의 성적이 반드시 톱이어야 한다고 재차 확인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줄을 서서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면 인맥도 돈도 소용이 없다고, 일단 아주 우수한 학생들 안에서 다시 다른 요소들을 가지고 재선발을 하는 거라고 했다. 한숨 짓던 친구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들들 볶는지 모를 거라며 투덜댔지만 그래도 아이가 전교 2등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에 끼지 않고 음식만 연신 먹고 있던 다른 한 친구는 열살짜리 딸이 북경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했다. 그 학교는 그 친구 집에서 버스로 40분은 걸릴텐데.

 

아들이 중점 중학교에 다닌다는 그녀는 식당을 나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나마 광저우는 좀 나은 편이야, 정치인 자녀들이 많지 않아서. 북경 쪽으로 가면 이런 인맥으로는 어림도 없거든, 그쪽 중점학교들은 일단 당 중앙위원 자녀들부터 받기 시작하는데다 직급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차례도 돌아오지 않는대. 듣기로는 자수성가한 한 사업가가 자기 아들을 꼭 중점학교에 보낸다고 학교에 찬조금을 100만위안이나 냈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중점학교 졸업장이 100만위안의 가치가 있는 거야? 북경대 졸업장도 아니고…"

 

"지금이야 큰돈 같지만 사실 멀리 보면 괜찮은 투자지. 10년 20년이 지나 아들이 사업을 배우기 시작할 때, 자기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전부 중앙에서 간부를 하고 있을 거 아냐. 얼마나 좋은 인맥이야?"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국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아니, 때로는 한국보다 더 열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양수오에 갔을 때 홀로 냇가에 서서 여행 가이드용인 듯한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며 공부를 하던 한 학생을 보면서 느꼈던 신선함은 이제 개발이 더딘 내륙지방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고, 도시의 부모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자녀의 출세를 꿈꾼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의 방식으로,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의 방식으로. 하긴, 막노동을 하는 주성치도 장강7호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냈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막노동밖에 못하지만,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실제로 막노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농민공들에겐, 귀족학교는 커녕 아이를 낳아 기를 비용조차 막막한 것이 현실이니 이는 상상된 허구에 불과하겠지만. 이미 건국 60년을 맞는 사회주의 중국이지만 평등이란 말은 마치 국경일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후진타오 주석의 연설만큼이나 표면만 친근할 뿐이다. 중국이 한국과 조금 더 비슷해질 때마다 나는 어쩐지 슬퍼진다.

 

글쓴이 (Se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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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에 아쉬운 점들

회귀한 디아스포라 오우삼의 항복작

 

 

                                              적벽대전2 포스터

 

‘적벽대전2’가 중국에서 흥행 신기록을 세우는 것은 안 물어봐도 뻔하다. 2편보다 박진감 없고, 구성도 엉성한 1편이 흥행에 성공했는데 2편이 성공하지 않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쟁 씬이나 어줍잖은 휴머니즘으로 채워진 오락영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1975년부터 시작한 감독 오우삼의 필모그라피는 1986년 ”영웅본색‘에서 진정한 본색을 드러낸다. 쌍권총. 비둘기 등 그이 트레이드마크 등도 이때부터 빛을 발한다. 이후 영웅본색의 후속작 및 ‘첩혈쌍웅’(1989년) 등으로 이어지는 연작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87년 홍콩 반환으로 많은 홍콩 영화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브로큰 애로우나 페이스오프, 미션 임파서블2, 페이첵 등으로 비교적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고국을 그리워한 디아스포라 오우삼은 최근 ‘적벽대전’으로 대륙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제작과 감독으로 참여한 이 영화는 홍콩과 미국은 물론이고 대만, 일본까지 오가던 그의 방황의 결과치고는 너무 타협적이기에 안타깝다.

 

우선 이 영화는 지나치게 중화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영화의 후반에 제갈량(진청우 분)이 ‘천하삼분’을 말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현 중국 정부의 심사를 흐트러지게 하지 않기 위해 삼국정립 부분은 거의 무시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남은 것은 조조의 탐욕으로 인해 일어나는 전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조조가 마치 ‘소교’를 얻기 위해 일으킨 전쟁인양 보이는 측면이 많다. 조조가 악역을 맡으면 당연히 오나라와 유비가 착한 역이 되는 권선징악의 구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조조는 여자나 좋아하고, 지나치게 아집 많고, 상대방에게 병든 자를 보내 전염병을 일으키는 간교한 자로 보이게 한다. 이 영화에서 지나친 중화주의의 단적인 예가 위나라 군대에서 벌어지는 축국(蹴鞠)이다. 축국은 제(齊)나라 이전부터 중원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영화에서 처럼 완성된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적은데도 이런 방식으로 만든 것은 중국의 축구 종주국 주장을 위한 포석으로 느껴진다. 적벽대전이 진정한 승리라면 그것은 조조를 무찔러서가 아니라 불안할지라도 오(吳)의 유지와 촉(蜀)이 만들어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오우삼은 천하삼분지계를 무시한 셈이다.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이야기 전개다. 한 편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극히 한계가 있었기에 이 영화가 선택한 적벽의 주요 키워드는 ‘소교’를 둘러싼 주유와 조조의 갈등, 적벽의 전초전으로 벌이는 공명(화살 확보)과 주유(채모, 장윤의 주살)의 조조에 대한 심리전이다. 그러다보니 이 시기에 중요한 키워드인 ‘장판파’ 전투나 방통의 연환계, 황개의 고육계, 관우와 조조가 맞닥뜨리는 화용도 등은 흔적이 없다. 유비 진영에 막 들어온 제갈량과 기존 인물인 관우 장비와의 헤게모니 쟁탈전이야 너무 부족한 시간으로 무시했다고 치더라도 어줍지 않은 반전주의는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한다.

  

반전주의를 위해 감독은 손권의 동생인 손상향(짜오웨이 분)이 적진에 들어가 위나라 병사 손숙제와 인연을 맺게 한다. 최후 결전의 순간 손상향은 위나라 진영에서 손숙제를 만나는데 그의 사망으로써 전쟁의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오나라 진영에서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날리는 것도 이런 장치들이다. 그밖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이 임신한 주유의 아내 소교(린즈링 분)가 홀홀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조조의 공격시간을 늦추어, 동남풍으로 오나라군이 공격을 성공하게 한다는 설정이다.

 

                                    소교와 조조

 

이 영화에서 소교는 조조가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자, 제갈량이 주유를 분노하게 해 오나라를 전쟁으로 이끌게 한 인물로 나온다. 또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공격을 늦추게 해서 남편인 주유가 승리를 이끄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원전에서는 조조가 소교를 탐낸 것 보다는 제갈량이 주유를 자극할 때 조조의 시를 오용해 주유를 전쟁에 끌어들이게 한 것으로 나온다. 회자되던 삼국지의 드라마 버전이 나관중에 의해 소설화된 것이 1400년 전후이니 그녀는 600년만에 한 영민한 감독에 의해 주요 인물이 된 셈이다.

 

지난 여름 ‘적벽대전 1’은 나에게 많은 실망을 줬다. 사실 그에 비하면 대규모 전투씬이 있는 2편은 보는데 나은 편이다. 정사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불과 몇줄로 소개된 한 전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전쟁에 참여한 병사의 수도 백만(위)과 4만(오)이 아니라, 1/5에서 1/10의 수준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반면에 나관중에 의해 정리된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지략과 주유와 노숙의 오나라가 결합해 황제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한 조조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전투를 통해 절대 강자인 조조의 세력이 약해지고 오나라는 강동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고, 유비가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반면에 우리 판소리인 ‘적벽가’는 이런 영웅들의 전투보다는 거대한 전쟁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병졸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 판소리 ‘적벽가’를 빼닮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삼국지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와 삼국지라는 익숙한 소재 때문에 이 영화는 2주째 우리 박스오피스 수위를 달리는 것 같다.


                                                                   조창완(www.aljatour.com)

카테고리 : 중국, 어디까지 아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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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을 시작하며…

저도 글을 시작하며… 

 

 

저 역시도 중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로 중국 얘기를 시작해야 겠습니다.

2004년 1월18일, 제가 난생 처음으로 중국에 도착해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2004년 1월 18일 오전 8시. 중국 산동성 칭타오항 입구, 이젠 이 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훌쩍 만 5년이 흘렀으니까요. 중국에서 한국 간판을 본다는 것이 LA에서 한국 간판을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막내 고모가 계십니다. 일본어를 전공한 그분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을 하셨는데, 무역업을 하는 고모부를 따라 90년대 후반에 훌쩍 중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인연이 멀어진지 수 년. 저는 설 연휴 직전에 청도에 계시다는 고모님을 찾아뵙고자 난생 처음으로 중국으로 향하게 됐습니다.

 

1월 17일 인천에서 출발하는 페리호를 이용했고, 10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18일 새벽에 청도 항에 도착하더군요.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제가 사진 정리를 잘 해 놓았기 때문이라 자부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저는 사진이 취미였기 때문에 꽤 많은 사진 자료를 갖고 있는 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매년 1~2차례는 중국을 여행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변에서 베이징을 거쳐 상해와 광저우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시안과 성두를 거쳐 라싸까지 싸돌아다녔으니 (한국에 주로 거주하는 사람 치고) 나름 적잖은 중국 여행을 해 본 축에 낄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중국어가 익숙치 않은 저는 Sebin님과 조창완 선배에 비하면 수박 겉 핥듯이 돌아다닌 셈이지요. 그게 자극받아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늘지 않아 고민입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절대적인 체류시간이 부족합니다만 그를 보완할만한 여러 장기(?)가 있음을 블로그를 통해서 입증시키도록 하겠습니다.(부담 백배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분이 바로 저와 함께 이 공간을 채워주실 두 전문가 분들이십니다. 제가 조창완 선배와 Sebin님을 모신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두 분들은

중국거주 2세대와 3세대 쯤

되는 분들로서 삶의 공간인 중국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과 분석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 선배만 해도 거의 10년을 중국에서, 그것도 두 발로 중국 전역을 답사해 본 최고의 중국 현지 전문가라고 평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Sebin님은 주로 중국 남방지역에서 거주하며 현재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생활인이자, 전문 블로거이시기도 합니다.뿐만아니라 탁월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중국 얘기는 누구라도 폭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십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충분하게 중국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글쓴이 (호자이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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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글을 시작하며…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니까요. 이 블로그에 글을 쓰도록 권유해 주신 호자이님도 그렇게 인터넷에 글을 쓰다가 만났습니다. 호자이님은 제 개인 블로그가 휑하니 파리만 풀풀 날리고 있을 때 종종 놀러와 한마디씩 해 주고 가신 제 첫 독자였지요.

 

중국에 처음 발을 내딛은 것이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이었고, 중국에 살기 시작한 것이 2005년 1월이니 사실 중국에 관해서는 호자이님이나 조창완님보다 훨씬 늦깎이입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이야기들이 혹시 너무 깊이가 얕지는 않을까, 다른 두 분이 쓰시는 글들과 너무 비교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 블로그를 같이 하자는 호자이님의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꽤 망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중국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인터넷, 그리고 중국이라는 테마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자 여기에 부족한 글들이나마 연재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것들은 여행, 문화,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인입니다. 중국 생활 속에서, 혹은 여행을 통해서 그들만의 삶과 흥미로운 생각들을 만날 때마다 여기에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곳을 통해 중국과 관련있는, 혹은 중국에 관심있는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의견을 교환하고 싶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글쓴이 (Sebin)

카테고리 : Sebin이 만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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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즐기면 더 깊은 중국 차

 

알고 즐기면 더 깊은 중국 차

 

 

얼마전 대만을 방문했다. 차를 갖고 다녀 술을 못하던 친구는 술자리에서 술 대신에 차를 따라주었다. 전날 58도짜리 대만 빼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에 너무 반가웠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금 차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아마 그 친구가 다도(茶道)를 말하면서 격식을 말했다면 피곤했겠지만 친구가 왔다면서 내놓은 좋은 차를 그저 간단히 우려서 주는 모습이 편했고, 그래선지 차 맛도 싱그러웠다.

 

중국의 차 세계는 넓다. 그 넓이 만큼 깊이도 있다. 옛날 화교 출신의 한 의사에게 “중국은 물이 나빠서 차를 마시지요”라고 물었다가 호된 직책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푸젠이나 저지앙의 물이 얼마나 좋은지 아냐고 물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관점을 버릴 수 없다. 수질을 따진다면 중국에서 우리 물에 버금가는 물을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항저우 롱징차밭

                                                     항저우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롱징차 밭

 

어떻든 중국인들에게 차는 생활의 일부다. 차가 나오는 청명(淸明)을 전후해서 항저우는 고급 차들을 모으는 롱징차 같은 고급차도 있지만 백성들의 찻주전자를 채워주는 수많은 차들이 재배된다. 때문에 중국인들의 삶에 가까이가면 차에 대해서는 조금씩 알아가는 게 좋다.   

 

차를 이야기하면 필자는 한 영화가 떠오른다. 몸이 허약한 여교사와 늦깍기 학생의 지극한 사랑을 그린 진천(金琛) 감독의 ‘국화차’에서 차는 두 사람의 마음과 몸을 녹이는 중요한 소재다. 또 장위앤(張元)이 감독하고, 짜오웨이(趙薇)와 지앙원(姜文)이 주연한 ‘녹차’에서 여주인공 위팡(吳芳 짜오웨이 분)은 남자와 처음 데이트를 하기 전 녹차 잎들에게 물어보는 감성파 대학원생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 녹차는 위팡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소재이자 남자 천밍량(陳明亮)이 마시는 커피와 대비되는 그들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차는 이렇듯 기호품을 지나서 현대에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건에는 선과 악이 교차한다. 하지만 백익무해(百益無害)한 물건을 꼽으라면 차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성정을 차분하게 만들고, 때로는 음식으로 때로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 4대 장수식품(차, 토마토, 적포도주, 마늘)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우이산따홍파오

                                          우이산 따홍파오. 반발효차의 명품인데 ”어머니 차나무”는 이제 채취를 금지했다

 

중국은 인도와 더불어 차(茶)의 고향이다. 특히 지금도 차 재배가 번성한 푸젠이나 저지앙 등이 그 중심이다. 물론 이는 차나무에서 생산되는 차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마시는 차는 천여종이 넘는다. 큰 종류로 구분하면 녹차, 꽃차(花茶), 청차(靑茶 우롱차), 홍차, 보이차(普洱茶), 보건차 정도다. 녹차도 수십종류인데 각 성별 녹차 종류가 있고, 시후 롱징(龍井), 황산 마오펑(毛峰), 군산(君山) 인쩐(銀針), 신양(信陽) 마오지엔(毛尖), 까오치아오(高橋) 인펑(銀峰), 주예칭(竹葉靑), 삐루오춘(碧螺春) 등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녹차들도 있다.

 

역시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100그램에 몇위안짜리부터 황금의 가격을 휠씬 넘는 귀한 차들도 적지 않다. 가히 중국은 차의 나라이고, 차는 중국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차가 없는 중국은 상상하기 힘들다. 요즘 차가 없는 중국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초등학교들이다. 서양식 식생활 문화를 배워가는 중국에서 어린 아이들은 아직 차를 마시는 습관이 들지 않았다. 때문인지 초등학교에는 상상이상으로 비만성 아이들이 많다. 기름기와 다식하는 중국 음식 습관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다. 머잖아 중국 일반인들의 체형도 미국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럴 때 오랜 역사는 차를 마시라고 권할 것이다.

 

사실 중국 문화에서 차의 풍경은 너무 흔연하다. 중국인들의 차와 같이 생활한다. 기차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큼지막한 차통 하나를 들고 다닌다. 그 안에 수시로 온수를 넣어서 우려내어 마신다. 중국인들의 차를 마시는 가장 전형적인 풍경은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두보초당이나 왕지앙루(望江樓) 공원, 칭양궁(靑羊宮)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이곳의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장소다. 이곳 사람들은 공원에 마련된 거대한 차관(茶館)에서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서 갖가지 흥미로운 일에 몰두한다. 우러나는 찻잎에 그들은 시간과 몸을 맡기고 천천히 지난 일들을 회상한다. 더러는 거친 문혁 시기 같이 격렬히 토론하는 모습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 말없이 마작이나 카드를 즐긴다.

 

                                        청두 차관

                                       청두 왕지앙루 공원의 차관 풍경.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시간도 마신다

 

차의 본향 가운데 하나인 항저우에도 5000~7000여곳에 이르는 차관이 있다. 이곳에는 몇위안에서 몇천위안에 달하는 차들이 갖가지 태로 손님을 맞는다. 1936년에 3공원에서 작된후 몇차례 이사를 거친 후 위앤화광창(元華廣場) 2층에 자리한 칭텅차관(靑藤茶館)도 그런 명소 가운데 하나다. 이곳의 차관은 차를 끊이기 가장 좋은 롱징(龍井)의 후파오수이(虎跑水)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지역에서 만날 수 없는 항저우 만의 찻집이다. 시후의 일출과 월출 등을 볼 수 있는 호수 주변의 찻집들도 적지 않다. 현재 항저우에 있는 저지앙대학 대학원장으로 있는 무협작가 진용(金庸)도 “호숫가에서 롱징차를 품평하니, 사람들이 천상에 있는 듯하네”라는 말로 차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특히 항저우는 물론이고 쑤저우, 조우주왕(周庄), 통리(同里) 등 수향(水鄕)의 찻집에서 강물과 홍등에 기대어 마시는 찻집은 여행자들을 깊은 편안함으로 안내할 것이다.

 

차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기후는 연평균 기온 13도 이상, 강우량은 연평군 1,400mm이상이어야 하므로 고온과 많은 비가 필수적이다. 녹차용 차는 좀 냉랭하고 안개가 짙은 지방에 적합하며, 고지대일수록 차의 수획량은 적지만 향기가 좋다. 따라서 중국은 산이 많고, 기온이 적합한 창지앙(長江 양쯔강) 이남에 대부분의 차 주산지가 있다. 강남의 차밭은 우리나라 보성이나 제주도의 차밭처럼 그 자체로도 신선한 향을 담고 있다.

                                  윈난 푸얼차 밭 풍경

                            윈난 시솽반나의 생차를 수집하는 모습. 이 생차를 발효시켜 푸얼차를 만든다                     

 

차는 따는 시기나 시간 등은 물론이고 가공하는 방법이나 기술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난다. 항저우 등 강남의 3~4월은 차를 본격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차를 따는 아낙들은 삼태기를 짊어지고, 연한 녹색을 띤 차밭에서 끊임없는 손놀림으로 차를 채취한다. 차는 절기에 따라  동지 뒤 셋째 무일(戊日) 전후에 만든 납차(臘茶)를 비롯해, 춘분 전후의 戊日에 만든 사전차(社前茶), 한식 전후에 만든 화차(火茶), 곡우(穀雨, 4월20일경) 전후에 만든 우차(雨茶), 입하(立夏, 5월6일경)를 전후로 만든 입하차(立夏茶) 등 절기를 기본으로 한 구분이 있는데 가장  높은 품질의 차는 3~4월에 처음으로 채엽하는 첫물차를 가장 높게 친다. 순을 딸수록 차는 거칠어지고, 아미노산이 늘어나 품질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황산 마오펑

                                   안후이성 황산 아래에 있는 마오펑 차밭. 황산마오펑도 몇차에 꼽힌다

 

차는 언제나 항상 사람들의 음을 달래준다. 차에 관한 다양한 감상을 쓴 린위탕(林語堂)은 “차(茶)는 은자(隱者)에 비(比)할 수 있고 술은 기사(騎士)에 비할 수 있다. 술은 좋은 친구를 위하여 있고, 차는 조용한 유덕자(有德者)를 위하여 있다”고 말했다. 차는 한가하고 고요하게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에  차를 마시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품성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글쟁이 조창완(www.aljatour.com)

카테고리 : 중국, 어디까지 아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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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완입니다

 

글을 쓰는 조창완 입니다

 

 

메신저로 연결된 호짜이가 어느날 갑자기 같이 중국 관련 블로그를 운영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합니다. 이미 몇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우려가 있었지만 조금 후 나는 ”그러자”하고 응낙을 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호짜이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블로그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97년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나름대로 앞선 네티즌입니다.

 

하지만 99년 중국에 가면서 한국내 인터넷의 흐름이나 응용 등의 문제는 갈수록 둔해져 갔습니다. 물론 99년 중국에 가면서도 바로 통신을 했고, 인터넷이 보편화될때는 역시 바로 인터넷을 사용했습니다. 톈진에 살던 2001년 이사를 했는데 당시에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이 집도 당시 열악한 중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찾아내고 이메일을 통해서 방 주인을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아이티 벤처들이 만들어질때 저는 한국에 있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에 급하게 귀국을 했습니다. 아이티 버블도 사라진지 오래고, 웹2.0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변화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10년만에 돌아온 한국의 모든 소통 공간은 온라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 그 사이 물류 등 하부적인 인프라도 완전히 구축되었습니다. 이제 좋은 아이템과 효율적인 마케팅만 가능하면 작은 자본으로도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잡고 있는 분야는 여행과 방송 콘텐츠입니다. 여행은 정부가 망하기를 권장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 살아날 기미가 없습니다. 때문에 역으로 외국에서 한국에 오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이제 기초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어떻든 제 일들은 중국이라는 나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공간은 제 중국 사업과 중국에 관한 다양한 풍설을 적는 공간으로 할 계획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을 통한 강호 재현의 많은 조언을 받았으면 합니다.

 

 

카테고리 : 왁자지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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