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을 동반자로 인정한다는 것

 

조선족을 동반자로 인정한다는 것

 

 

 

 

 

Y가 투자 문제 때문에 여러 투자자들을 만나고 다닐 때, 상해에서 온 한 투자자를 만난 일이 있다. 중국에선 업무상의 논의를 하기 전에 일단 만나서 식사부터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도 그를 따라 그 투자자란 사람을 만나러 갔었다. 만나러 갔다기 보다는 그냥 옆에 앉아 식사나 같이 하러 갔다고 하는 게 더 옳겠다. 아무튼 그쪽에서도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했으므로, 부담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여자친구가 조선족이었다.

나는 조선족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다. 내가 만나본 조선족은 예전에 상해에서 같이 선생 일을 하던 세 명이 전부였는데 그들과는 관계가 꽤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놀기도 했고, 수다도 많이 떨었고, 남들처럼 뒤에서 사장 욕도 많이 했고. 그때 그 고학력의 젊은 아가씨들이 준 인상은 한국의 젊은 아가씨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서 크게 위화감이 있지도 않았다. 물론 가끔 문화차이에 벙찔 때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암튼. 그랬기 때문에 중국의 한국인 사회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갖는 이미지를 모를 바 아니라도 늘 그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불과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거나, 그들의 처한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함부로 말하는 거라고 여겨 왔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날 투자자와 그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나는 내가 분명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그녀와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만, 나는 "투자자"라는 이름이 주는 권력의 위치를 잊고 있었다.

물론 그가 투자를 결정한 것도 아니고,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굽신굽신하는 성향도 아니며, 애써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주눅이 들거나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갑과 을이 주는 무게는 확실히 작지 않았다. 남편의 위치에 따라 사모님의 계급도 정해지듯, 투자자가 갑이면 여자친구도 갑이었고, 나는 을의 여자친구일 뿐이었던 거다. 다시 말해 조선족 아가씨는 갑이었고 한국인 아가씨는 을이었다.

이 글은 고백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었고 올바르다고 믿었던 한국인 S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 상황이 괜히 불편해졌다. Y는 나에게 너희는 동포니까 한국어로 대화해도 괜찮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녕하세요"를 어색하게 던진 후 한국어를 하지 않았다. 한국어를 하는 것이 그녀와 내가 처한 입장을 더 잘 말해줄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을 거다. 다만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던, 일본에서 학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일을 찾고 있다는 그 명랑하고 철없고 약간은 콧대높은 젊은 아가씨가 어쩌면 내게 한 계급 높은 사모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했을 뿐이다. 좀더 정확한 비유로, 만약 내가 북쪽 억양이 강하게 섞인 조선족 사장님 밑에서 비서를 해야 한다면? 그 조선족 억양의 사장님이 내게 일을 왜 이따위로 하느냐고 쪼아댄다면? 나는 그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글은 고백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내 앞에 그 상황이 나와 멀리 있을 때나 쉽지, 정말 상황이 다가오면 내 본성이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확연히 깨달았다. 나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안에는 한국인 사장님과 조선족 직원이라는 계급 관계를 전제로 깔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한도가 서로 동등한 위치일 때였다. 즉, 나는 시혜를 베푸는 사람이므로 그들은 언제나 나보다 계급적으로 위에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런 몰상식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똑바로 보이자 부끄럽고 슬퍼졌다.

미국인들이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뒤늦게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가십걸에는 흑인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은 흑인을 그들 나라의 대표자로 뽑았구나. 그의 출신 성분이나 성장 배경이 어떠하든, 그는 얼굴이 까만데. 여자인데. 장애인인데. 나보다 어린데. 고졸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그녀와는 더이상 만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녀와의 그 짧은 만남을 나는 꽤 오래 잊지 못할 듯 하다. 인정해야지,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계급이 있었음을. 그걸 극복해야 함을.

 

 

 

<작성자 : Sebin>

me2day
카테고리 : Sebin이 만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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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조선족을 동반자로 인정한다는 것

  1. EXIT says:

    꽤 용감하신 고백… 저도 깜박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이군요~
    미국인들도 200년이 걸렸지만 해냈습니다. 우리도 서서히 변할겁니다

  2. china says:

    잘 읽었습니다. 저는 조선족과 동업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등하게 시작했지만 나이로 인해 제가 부사장이었죠. 결국 6개월을 못 채웠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세빈님이 말한 그 느낌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민족 떠나서 사람 차일거라 생각하지만 아무튼 큰 경험이었습니다. –창완

  3. PRESIKE says:

    조선족은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릿 속에는 스스로 자랑스런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걸요
    그들이 우리를 한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까요?
    전 그 벽이 더 막막합니다

  4. 칭다오 하씨 says:

    조선족은 우리 한민족의 근대 운명 속에서 출발된 우리 민족입니다.
    그들이 교육과 환경이 대한민국에 살아온 우리와 달랐고 자본주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에
    중국의 한족에게 교육, 사회 보장등 정치적 차별을 받아온 200만 정도의 우리 형제이고
    동포입니다.
    미국, 카나다나 영국의 우리교포와 다른 점은 중국에 살아와서 광기와 혼돈의 세월에
    서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일그러진 우리 문명의 우리 형제일 뿐 입니다.

    공산당이 이들의 족보를 불태우게 했고 남한 출신은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절을 넘어
    살아온 동포이며 형제이며 숙명입니다. 똑같은 한국인에게 대함과 다름없이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보듬어 주시기를 고국에 계신 분들께 엎드려 인사 올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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