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오늘은 우리의 미래?"

 <일본식
구체제(體制)와 중국경제 확장의 대충돌>

 

 

  
    국수(國手) 이세돌, 자의반타의반 휴직의 함의

 

 

 

한국기원발
이세돌 파문이 결국 양쪽의 타협을 이뤄내지 못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7월2일
한국 기원 이사회가 열려면 무슨 해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상당기간 타협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왜 타협이 힘든지, 충돌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가 이 글의
주된 고민입니다.

 

 

우선, 관심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죠?  지난 8일 이세돌이 한국기원에 휴직계라를 제출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원인은 한국 기원에서 이세돌이 ‘한국 바둑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중국 리그 참가 상금의 5%를 한국기원 측에 내지 않는 등’의 복잡
다단한
이유를 제시해 한국기원 소속 기사들이 투표로 이세돌 제제에 동의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를
납득하기 힘든(사실은 화가 많이 났겠지요) 이세돌 사범이 휴직계란 최강의 수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10년
12월 30일까지 한국기원에서 주관하는 대국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휴직계는
한국기원 내의 규정에
있는 기사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기사가 그것도 자신의 전성기에 일종의
스트라이크(파업)성 휴직계를 제출했다는 것은 세계 바둑계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더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게다가
1년 반 이상의 휴직은 이세돌 사범의 실력이나 수입 나아가 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기원과 이세돌 사범 양쪽 모두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이 바둑계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국수
이세돌 사범은 과거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겅어왔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바둑인입니다. 1세대인
조남철옹은 일본 지배 하에서 근대바둑을 받아들였고, 2세대인 김인-조훈현 등은 아예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첨단 일본 바둑을 뼈속까지 받아들여 이를 한국식으로 재해석
해냈습니다.

 

3세대인 유창혁-이창호 등은
이들 일본에서 돌아온 스승을 통해 한국 바둑을 만들어 냈고 꽃피운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4세대 격인 이세돌 이하 신진
세대들은
일본 바둑인들보다는 오히려 중국 바둑인들과 겨루며 한국 바둑의 세계 정상을 재
확인 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란
일본을 쳐다볼 여유가 많이 줄었다는 얘기지요.

 

제가
걔인적으로 이세돌 사범을 경험한 기억은 조금 엉뚱하기도 합니다.
2005년
여름이었는데 잉창기 배가 열렸던 롯데호텔에서 이세돌 국수를 만나 몇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많은 기사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세돌은 당시 여느 기사들처럼 이창호-창하오와의
대국을 지켜보며 열심이 복기하고 있었지요. 우연히 그가 내 곁으로 오기에 잠시 그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 도중 제가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세돌님….나름
까칠하다고 사람들이 그러던데…"(나)

 

"(버럭)
누가 그래욧!! 저 안까칠해욧"

 

제가
크게 잘못한거죠. 감히 이세돌 사범에게 저런 무례한 질문을, 그것도 뒷담화를 빌어 던지다니 말이죠. 그러나 전 그의 반응에
더욱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대한 반응은 사실 이런 것이었습니다.

 

"헛헛.
누가 그런 소릴…", "까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등등.  농담을
점잖고 예의스럽게 맞받아 치는 답변을 기대했던 것이지만 그는 진짜 화를 내더군요.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기자에게 말이죠. 이는 분명 전통적인 기사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알고 있는 기사의 모습은 이창호 사범의 그것입니다. 돌부처 이창호… 누군가
사정없이 부산을 떨어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정중하게 맞받아 치는
모습. 적어도
바둑이란 저렇게 산보다 듬직한 사람이 하는 두뇌 스포츠란 것을 몸으로 입증해 온
인물입니다. 장미
담배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칼잡이 조훈현 9단이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내려다 보는 된장바둑 서봉수 9단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분들이 화를 내거나 실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유는 바둑의 기본 속성인 ‘예(禮)와 예(藝)’가 바둑 기사의 내면에도 깊숙이 각인됐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예절로서의 바둑 문화를 꽃피운 쪽은 다름아닌 봉건제 사회인 일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일본으로 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정확하게 한국이 이룬 거의 모든 근대화의 성과들은 일본에서 보고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고
제가 이세돌 사범이 다른 기사들과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모가 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는 그 만의 개성과 장점으로 무장한 사내입니다.

 

대신 이전의 바둑
기사들의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다는 거지요. 과거 선배들의 가치관이란 조직과 위계에
조금 더 많은 가치를 뒀다면 이세돌 사범은 ‘실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지고 보면 ‘휴직계’란 돌발적인 상황 이전에도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1인자에 대한 예우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사실이구요. 적어도
대한민국 1인자라면 그 정도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정도에 걸맞은 의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비칩니다. 이를테면 강자의 논리인 셈인데요.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논리를 스포츠에서 부정하기란 곤란합니다. 오히려 가장 정상적인 사고이자
바둑계에서 고려치 않은 목소리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앞서
이세돌 사범이 우리 사회가 처음 보는 형태의 바둑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조금
시각을 확대해서 일본과 중국이라는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일본 유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오신 스승을
안둔 것은 아닙니다. 제 관점으로는 이세돌 사범의 바둑이 철저하게 중국 바둑천재들과 상대하면서
강해졌기 때문이고,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열리는
바둑리그에서 상당한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의 액수나 출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한국 바둑의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중국 바둑과의 대결을 예정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한국 기사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이
좁은 한국 보다 오히려 중국 내부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이세돌 파문의 표면적 이유는 바로 한국 바둑리그 참여 문제 입니다.

 

이세돌
사범과 아무런 상의 없이 신안군청에 포함시킨 것도 문제가 됐지만 이 사범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무엇인지 한국 기원측의 고민이 부족한 것도 사실 같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조훈현 사범이나 대다수의 한국기원 관계자들의 시각은 대승적인 견지에서
이세돌 사범이 수긍을 하고 따르리라고 봤던 안일함으로 비칩니다. 게다가 이미 이세돌
사범은 한국인이고 한국 기원 소속이긴 하지만 어느순간 중국에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진것도 간과한 듯 보입니다. 만약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없었다면 이세돌
9단이 과연 휴직계라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 까요? 과거 선배들은 전혀 고혀해볼
수도 없는 과격한 수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때문에
이 갈등을 이 같은 차이나 블로그에서 주목한 이유도 바로 혹시 중국 경제의 확장과
과거 일본식 패러다임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대목이 조금 불분명 해서 여러분들이 지적을 주셨는데요. 실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세돌
사범의 휴직계 제출 사건은 따지고 보면 한반도의 처한 정치 경제적 민감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껏 조훈현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중견 기사들은 일본바둑을 배우고 따라잡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세돌로 대표되는 신진 기사들은 오히려 중국 기사들과 경쟁해왔고
활동의 기발을 서서히  중국에 기대고 있다. 중국경제 확장의 결과로 벌어진
이번 이 같은 정치적 민감성은 이세돌 사범은 물론이고 한국인이라면 비켜갈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이  정도의 문제 의식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연
애국주의와 도의적 관계로 뭉쳐진 한국기원과 조훈현 9단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실력과 그에 따른 보상을 앞세운 중국식 실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세돌 9단의 오류인가
하는 거죠.

 

따지고
보면 이 두 선택 모두 어느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틀리지 않기 때문에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훈현 9단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이세돌 역시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뿐입니다. 대신
그 결론을 이끈 성장 배경과 문화 배경이 전혀 달랐다는 점입니다.

 

결국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반도인
한국은 섬나라 일본의 근대를 빠르게 흡수하여 일본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고개를돌려보니 대륙인 중국은 또다른 방식으로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그 압도적인
시장 규모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틈새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전략과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한국
바둑은 일본의 미학적 바둑과 중국의 실리적 바둑과는 달리 치열한 싸움바둑으로
세계 바둑을 평정해왔습니다. 이른바 바둑의 한류인 셈이지요. 조훈현 9단과 이세돌
9단의 화해 속에 저는 한국 바둑 나아가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갈등의 장본인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일 수 있습니다.

 

 

PS
: 오늘 뉴스를 보니 이세돌 국수가 중국리그 참가를 위해 상해에 입국하려다가 체온이
0.3도 정도 높아서 문제가 됐었군요. 공항에서 신종플루 의심을 받아 정밀 검진을
받으라 시간을 허비해 대국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신종플루는 아니었구요.
이세돌 사범도 절실하게 느꼈을 테죠. 자신은 중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한국에 살면서 중국 경제에 편입된다는 서의 불편함도 동시에 절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9.06.
17)

(2009. 06. 19)
수정

 

카테고리 : 호자이의 중국과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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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기당하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기(?)

광저우의 한국친구 A에게서 노트북 하나를 선물 받았다. 아니, 선물 받았다기보다는 내가 우겨서 얻어냈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A가
광저우의 길거리에서 심봤다를 외치며 무려 2000위안이나 주고 산 도시바의 최신형 중고 노트북. 그러나 그 최신형 중고 노트북은
나중에 제대로 확인해 보니 시가 800위안 정도면 살 수 있는 P3 750 투알라틴에 256M 메모리를 장착한 백전노장이었다.
A가 길거리에서 확인했을 때는 분명히 펜티엄 듀얼코어2에 2G 메모리를 장착하고 비스타가 설치된, 그리고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
멋진 초소형 슬림 노트북이었다. 아마 그는 "이런 멋진 노트북이 단돈 2000위안이라니!"하며 숨을 ‘흡’ 하고 들이마셨을
것이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A의 노트북 사건이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것은 그가 중국 생활 15년차이며 중국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산전수전 다 겪어 중국에서 여간해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사기맞았어요 ㅠㅠ"하고 입을 열었을 때 처음에 나는 날 놀리는 거겠거니 하고 믿지도
않았었다. 나중에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화가 났었다. ‘아니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런 일을 당하지?’ 하면서.하
지만 이런 일은 중국에 오래 머물고 중국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벌어지는 것 같다. 그의 해명처럼, 노트북을 사야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작 실행은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작고 예쁘고 성능도 좋아보이는 노트북이 다가와, 이것이 장물이라
정식으로 내놓고 팔지는 못한다며 2000위안에 가져 가라고 할 때에, 물론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물건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또한 있을 때, 에라 이거다 하고 지름신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A에게 신중하지 못하다며 비난했지만, 사실 나라고 그의 입장을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15년이 아니라 중국에서
평생을 산 중국인이라 한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아, 중국인은 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들은 매사
신중하고 의심이 많으니까?외국 생활, 특히 중국 생활을 매일 용산에서 살아가는 삶과 비교하면 어떨까.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고 가게마다 물건 종류도 너무나 많아서 정말 미리 너무나도 완벽하게 정보를 수집해 가지 않으면, 혹은
눈치가 정말 놀랍게 빠르지 않으면 항상 바가지를 쓰거나 엉뚱한 물건을 더 사오게 되는 용산에서 매일매일 모든 생활용품을 사야
한다면? 정가가 얼마인지는 판매상과 알바생 외에는 알 수 없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항상 이걸 내가 제대로 사고 있는 걸까 하고
의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정말 피곤한 삶일 것이다. 물론 사람이 많으므로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착한 물건도 나쁜 물건도
있을 것이며, 단골이라 챙겨준다고 생각했던 친절한 오빠가 알고보니 내게 매번 몇만원씩 더 뜯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여성가격과 남성가격, 한국인가격과 외국인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쉽게
사람을 믿지 않고 무엇이든 쉽게 결정하지 않고 꼼꼼히 오랜시간 따져보는 중국인들의 의심병은 아마 그들 나라에 무엇이든 너무 많은
이유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중국에 오랜 시간 살아가려면 신중한 그들의 성격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작은 손해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거나. 동관에 사는 친구 R은 기차역까지 20위안에
택시를 흥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10위안이면 가는 거 알고 있지만, 지금은 시간도 없고 택시도 많지 않고 10위안 정도는 그냥
내 시간과 수고 값이라고 생각하려구요. 게다가 이런 택시는 오히려 안전해요." 노트북 사기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중국 친구 Y는 웃으며 말했었다. "아니 그러게 왜 물건을 길거리에서 사? 문제가 생기면 누굴 찾으려고?" 그러나 그 Y는
정작 엊그제 타오바오에서 자주 쓰는 화장품을 샀다가 가짜 물건을 받았다. 자주 쓰는 거라 그 향을 알고 있는데 이건 알콜 냄새만
나고 향이 없다며 가짜가 분명하다고 툴툴댔다. 하필 그 때 인터넷 뱅킹에 문제가 있어 선불로 돈을 주기로 하고 물건을 받았던
것인데, 한번의 방심으로 140위안이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그러고보면 중국에서의 생활은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듯하다. 물론 너무 대놓고 따질 필요도 없고, 긴장 때문에 너무 뻣뻣한 것도 보기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느긋하게 그러나 꼼꼼하게, 항상 만일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100%를 믿지 않는 것. 만일의 경우에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하하 웃을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즐거운 중국생활을 만드는 작은 미덕일지도.그런 의미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사기맞은 노트북 얘기를 하던 A씨에게 찬사를, 그리고 무선인터넷 카드도 없는 넷북을 주저없이 공짜로 준 것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를!

카테고리 : Sebin이 만나는 중국 댓글 10개

<푸투오산, 지우화산 여행기 3> 절강을 건너다


<푸투오산, 지우화산 여행기 3> 절강을 건너다

 

 


푸투오산 부두에서 출발한 배는 10분 남짓해 선지아먼 부두에 도착한다. 선지아먼은 저우산 섬의 동남쪽에 있는 부두다. 이 섬의 중심지이자 육지로 가는 부두가 있는 딩산강(定山港)까지는 2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선지아먼에는 몇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하나는 도착 부두를 나오자 마자 왼쪽에 있는 고급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상하이 난푸따치아오 여행버스터미널, 항저우 황롱여행버스터미널, 닝보 공항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상하이는 아침 7:05분부터 11번, 항저우는 아침 7:10분부터 12번, 닝보는 6:00, 10:00 두 번 있다.

 

물론 닝보행은 저우산의 중심지인 딩하이터미널에 가면 차가 많음으로 여기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닝보까지는 3시간, 항저우까지는 4시간반, 상하이까지는 6시간 정도가 걸린다.


굳이 닝보를 경유할 필요가 없어서 항저우행 버스표를 샀다. 표값은 55위안으로 바쌌지만 한 라인에 3명이 타는 고급버스다. 버스는 20분쯤 달려 딩하이터미널에서 남은 좌석을 채우고, 10분쯤 지나자 저우산과 닝보 사이를 잇는 배에 올라탄다.

 

이 운항 시간도 50분 남짓이라 버스에서 내려 갑판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거나 밖을 구경한다. 막 출발한 저우산을 보니 군함들이 도열해 있다. 세계 군사문제에서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는 가장 논란꺼리중 하나다. 중국의 행보로 봐서는 이미 항공모함이 건조중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항공모함은 지키는 용도보다는 장거리 공격의 의미를 가지기에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800기에 가까운 핵무기에 우주선을 쏘을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중국이 항공모함을 가진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저우산
중국 군함들


배는 예정대로 한시간이 못되어 닝보 동북단 베이창(北倉)구에 섰다. 배를 빠져나온 버스는 시내를 경유하지 않고, 항용(杭甬)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이정표는 위야오(余姚), 샤오싱(紹興), 샤오산(蕭山), 항저우가 차례대로 나와 있다. 이전에 들렀던 길들이 생각난다. 위야오에는 중국 최고 사상가이자 무인인 왕양명의 고향이다. 주자학이 중시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양명을 따르는 이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문무를 겸비했던 행적이 너무 신비해서 주자보다도 더 찾고 싶은 인물이다. 또 명말 청초의 위대한 사상가 황종희의 묘가 있다. 황종희의 묘는 초라한 반면에 위야오 부자가 쓴 가묘가 관광지처럼 되어 있었던 속물적 풍경이 있었다.


샤오싱을 지날 때야 수많은 인물들이나 황주, 중국 4대 미인에 들어가는 서시 등이 떠올랐다. 버스는 얼마되지 않아 항저우에 들어선다. 전당강을 건너자 항저우의 새로운 건축군이 눈에 들어온다. 항저우국제회의센터나 대극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불과 몇 달전에 항저우를 지나쳤지만 이번에 느끼는 항저우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인상으로 연재하는 신문에 칼럼을 하나 썼다.(한국은 저지앙성에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링크)


버스는 시내로 들어가 우산광창(吳山廣場)에서 한번 서고 나서 서호를 돌은 후 황롱여행터미널에 내렸다. 버스에 내리자 마자 항저우 특유의 더위가 느껴졌다. 안사람과 아이는 한시도 태양볕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짜랴.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르키고 있고 배꼽시계도 운다. 점심을 위해 황룡체육센터 동문안에 있는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패키지 손님을 주로 받아 음식을 별로지만 100미터 거리니 당연했다.

 

그런데 안에 들어서자 아뿔사 문을 닫았다. 안내 직원에 물으니 맞은 편 마트 지하에 한국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뒤쪽 출입문으로 들어가니 피자헛 등과 붙은 ‘고구려’가 나온다. 배낭을 내리고, 언제나 처럼 돌솥, 김치찌개 등으로 메뉴를 정하고 기다린다. 점심시간을 지나선지 여전히 조용하다. 운영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패키지 손님의 감소 등으로 적지 않은 매출 감소가 있을텐데 잘 버티는지 모를 일이다. 식사를 하지 않고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여서 택시를 탔다.


여행 3일째이기 때문에 항저우에서는 좀 좋은 호텔을 잡았다. 라마다플라자 호텔(华美达广场杭州海华大酒店)이다. 시후에서도 가깝고 주변이 번화한 이유였다. 수준이 있는 호텔인데 조식을 포함하고도 1박에 548위안이어서 주저하지 않고 예약했다. 여행에서 저가의 호텔도 좋지만 가끔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피로를 푸는 방법이다. 객실이 서호방면은 아니지만 호텔이 깔끔해서 편하다. 짐을 풀고 한참을 쉬었다. 문득 생각이 든 것이 있었다. 항저우 ‘후비엔춘(湖邊村)’ 임시정부 청사가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3년 ‘임시정부 2만리 길을 가다’라는 다큐를 제작했는데, 그때 항저우 임시정부를 들렀었다.


컴퓨터를 켜고, 위치를 검색하니 호텔에서 170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좀 쉬다가 밖으로 나와 후비엔춘 임정청사를 찾았다. 새로 생긴 쇼핑몰인 시후스다이광창(西湖時代廣場)의 뒤에 있다. 취재할 당시에는 쇼핑몰은 없었는데 격세지감이 일었다. 임정청사 건물은 완전히 재건축됐고, 입구만이 과거의 모습이 남아있다. 여행지로 바뀌면서 내부에 살던 이들은 모두 이주했다.

 

임정청사로 쓰던 곳은 임시정부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미 문을 닫아서 안을 볼 수 없다. 옛날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건물의 중앙에 있는 우물뿐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여행객들이 항저우에 많이 들리면서 우리 임정청사가 복원된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지만 왠지 가슴에는 싸한 전율감도 흘렀다.


2003년 항저우 후비엔춘 임정청사(상단)와 2009년 청사(하단)

임정청사를 보고 시후 쪽으로 갔다. 날이 더워서 움직이는 것은 포기했다. 사실 시후를 열차례가 넘게 왔으니 보고 싶은 것도 없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좀 돌아보고 싶은데, 아이가 더 힘들어한다. 대신에 날이 어두워지면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유명한 찻집이자 음식점인 후반쥐(湖畔居) 등을 둘러봤다. 날이 어두워지자 유람선 표를 샀다. 어른이 25위안인데, 용우 표는 사지 않았다.


 

조금 어둑해질 무렵 배가 떠났다. 2~3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배다. 배는 단치아오(斷橋), 바이티(白堤) 등을 지나 싼탄인위에(三潭印月) 등을 돌아보는 한시간 정도의 여정이다. 주말이 아니어선지 시후의 야경이 옛날만 못했다. 금요일이 아니라면 낮시간에 돌아보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왔다. 미녀의 고장으로 알려진 항저우는 사실 밤이 되야만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항저우에서 잘 놀기 위해서는 한국에 못지 않은 돈도 필요하지만 이곳 밤 문화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택시기사 등으로 무장한 삐끼들에게 걸려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다음날 아침에도 언제나 처럼 6시니 식구들 모두가 일어났다. 천천히 씻고, 호텔 2층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조식도 아주 깔끔했다. 그냥 조식 가격(1인 80위안 우리돈 15000원)만으로 보면 무서운 가격인데 호텔 값에 포함시키니 좀 싼 느낌이라 편안히 먹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로비로 내려가 계산을 하고 택시를 탔다. 다음 목적지인 황산시로 가기 위해서는 항저우시치처짠(杭州西汽車站)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다. 황롱여행터미널에도 황산행이 있지만 일반버스가 더 경제적이다. 호텔에서 시짠(西站)까지는 20분 정도 가고, 21위안이었다. 바로 버스가 있어서 탔다. 황산까지는 230킬로미터인데 요금은 물경 84위안이다. 


항저우에서 황산으로 가는 길에 저지앙과 안후이성의 경계를 지난다. 툰시까지 3시간을 예상했는데, 2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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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투오산, 지우화산 여행기 2> 관음보살이 계신 푸투오산

내 핸드폰의 모닝콜이 서울에서 맞춘 시각(5:30분)에 울리자 식구들은 서서히 눈을 떴다. 중국이 한시간 느리기 때문에 현지시간으로는 4:30분이다. 8살 아들은 유독 잠이 없었는데 중국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은 여장을 챙겨서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루지아(홈인)이나 진지앙즈싱, 한팅 같은 호텔 체인들의 아침 식사는 모두 실속형이다. 주요한 먹거리 몇개를 배치하고 가격도 10~20위안으로 아주 깔끔하다. 아내나 아이는 선호하는 볶은 밥과 계란 등으로 배를 채운다. 이 집은 커피도 깔끔해서 편안히 식사를 했다. 싼 체인망이라고 하지만 위안화 같이 치솟아 200위안대를 호가하니 우리 모텔보다 더 비싼 숙박비다. 개인 자유여행자라면 30위안부터 유스호스텔을 이용할 수 있지만 가족 여행이라 이런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푸투오산 위치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다. 오늘의 목적지는 중국 4대 불교 명산중 하나인 푸투오산이다. 푸투오산은 상하이의 남동부에 있는 후차오강 부두(上海芦潮港码头)에서 107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행정적으로는 저지앙성에 속해 있는데 주섬인 조우산(舟山)에서는 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 상하이와 닝보를 잇는 34킬로미터의 항저우만 대교가 생겨서 육로로 측정해 보니 245킬로미터 정도다. 물론 닝보에서 푸투오산으로 들어가는 3시간을 넣으면 길은 더 복잡해 진다.

 

고로 시간이 급한 여행자는 후차오강 부두(上海芦潮港码头)에서 9:30분과 10:00에 두편 있는 쾌속선을 타면 바로 푸토오산 부두에 도착한다. 단점은 258위안이라는 어마어마한 배값이다. 밤시간을 활용하고 싶다면 상하이 우쏭부두(吴淞码头)에서 20:00에 있는 배를 타면 된다. 다음날 7:30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장점은 숙박비를 줄일 수 있고, 배삮도 등급에 따라 159위안에서 189위안이어서 쾌속선보다는 낮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후차오강 부두에서 쾌속선을 타는 것이었다. 이 쾌속선의 출발지인 후차오강 부두는 상하이 시 중심에서 택시로도 한시간 거리다. 택시타면 200위안은 넘게 나온다. 하지만 비싼 값을 하기 위해서 시 중심에 있는 난푸따치오 여행터미널에서 후차오강 부두까지 가는 차를 무료로 운행한다. 단 9:30분 배를 타기 위해서는 8:00까지 터미널로 가야하고, 10:00배는 8:30분까지 가야한다. 호텔에서 난푸따치아오 여행터미널까지 택시비는 25위안 정도였다.

125센티미터인 용우의 표를 사지 않았는데 반표를 사오라해서 샀다. 이후에도 용우는 어지간하면 표를 사지 않았고, 자리가 필요한 버스나 기차 등에서만 반표를 샀다. 아마도 용우 정도가 표를 사는 마지노선 같다. 난푸따치아오 여행 터미널에는 푸투오산쪽으로 가는 여행자들이 이용할 서비스가 많다. 우리가 이용하는 쾌속선도 있지만 양산항(洋山港)에서 출발하는 푸투오산행 배도 이곳을 이용해 갈 수 있고, 600위안대인 푸투오산 2일 투어, 800위안대인 푸투오산, 항저우 여행도 판다. 물론 이 상품은 쾌속선이 아닌 버스를 이용한다.

상하이엑스포 공사장 

비싼 배삮 때문인지 항구까지 가는 버스는 고급버스다. 노동절 연휴가 끝났는데도 버스는 2/3 정도의 좌석이 차 있다. 버스는 출발해 난푸따치아오를 지나서 내년에 있을 상하이 엑스포의 공사장을 지난다. 아직 공사의 진척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중국은 상하이 엑스포를 통해 다시 한번 부상할 것이다. 북미의 대다수 나라들이 자국관의 디자인을 마쳤는데 한국관은 아직 디자인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바로 옆 동네에서 1억명이 모이는 좋은 기회인데, 이걸 활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정도면 국가 전략 부재가 아니라 무개념이라할 수 있다.  버스가 한시간 가량 난후이취(南匯區)를 관통해 달리자 부두에 닿는다. 상하이 남부에 있는 난후이 지역은 최근 푸동신취에 속해지면서 발전이 보장받은 지역이다. 당연히 부동산 개발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지역이다.

버스를 방파제 들을 타고 들어가 배를 타는 바로 앞까지 가서 선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배에 승선한다. 배는 부산에서 거제도 가는 쾌속선을 조금 튀겨 놓은 모습이다. 대양의 파도가 부딪쳐서 인지 조금 흔들린다. 그간에 몸이 약해진 아내나 아이나 별로 속이 좋지 않은 눈치다. 방위시절 1톤짜리 똑딱이 배를 타고, 그물걷이를 많이 해본 나에게 이 정도 파도는 별로 대수가 아니다.

배가 출항한다. 그런데 출항한지 한참이 지나도 2~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다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항저우 대교는 알고 있지만 저것은 무슨 다리길레 저렇게 길까를 생각했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이름하여 동하이따치아오(東海大橋)다. 후차오항에서 저지앙성(浙江) 셩스셴(嵊泗县) 샤오양산다오(小洋山岛)까지 만들어진 이 다리의 길이는 32.5킬로미터다. 샤오양산다오는 동서가 3킬로미터 정도되는 별 모양의 작은 섬이다. 도대체 왜 이 작은 섬까지 32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다리를 놓았을까. 바로 상하이 근교 바다의 수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에 가까운 이 섬을 국제해운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중국 다운 발생인데, 이런 발상을 보면 100킬로미터 남짓한 랴오닝반도와 산둥반도를 잇는 다리를 놓는 것이 몽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경제적 가치도 가치지만 두곳이 중간에는 섬도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배를 탄지 두시간이 지나면 저우산(舟山) 인근의 섬들이 보이고 3시간 후에야 푸투오산 부도에 도착했다. 제법 큰 저우산의 동남에 있는 푸투오산은 남북 길이 6.8킬로미터, 동서 길이 1.5~2킬로미터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은 중국 4대 불교 명산중 하나로 불리는 관세음보살의 중생 교화 도량이다.

용이 바다오 누워있는 형세인 이 섬에 사찰이 들어선 것은 일본 승녀 혜악(慧锷)에 의해서다. 당 함통(咸通) 4년(863년) 일본 승녀 혜악대사는 또 다른 불교 명산인 우타이산(五台山)에서 관음상을 모시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의 배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푸투오산에 도착했다. 혜악은 그곳이 불상이 있을 곳으로 알고 사찰을 지었는데 그곳이 차오인동(潮音洞)이다. 이후 불사가 계속되어 전성기에는 3개의 사찰(3大寺)과 88개의 암자(庵), 128개의 초막이 있었고, 승려도 4000에 이르러, 진단제일불국(震旦第一佛国)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부두터미널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섬 입장료를 사야 한다. 역시 입 벌어지게 만드는 1인 160위안(3만2천원 가량)이다. 다행히 용우는 표를 사지 않았는데 딴지를 걸지 않았다. 씨트립에서 본 푸토오산 호텔 비용은 4성급은 600위안으로 높고, 2성급인 바이부꺼빈관(百步阁宾馆)도 300위안에 달해서 직접 부딪히기로 마음 먹었다. 터미널은 나오자 앞에 호텔들이 모여서 호객을 한다. 이름에 지아르(假日 홀리데이)가 붙은 호텔의 가격은 물으니 180위안이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한번 보기로 하고 호텔 차에 탔다. 터미널에서 왼쪽으로 250미터 정도의 짧은 거리였다. 호텔의 입구는 허름했지만 방에 올라가 보니 시설이 깔끔해서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 속도도 상당히 빨라서 기분이 좋았다.

 

방을 잡고 나자 오후 1시가 지났다. 관세음보살도 배가 불러야 보지 하는 마음으로 근처 식당에 들렀다. 푸토오산 식당들은 대부분이 해산물을 주 메뉴로 한다. 이전의 여행처럼 감자볶음인 지엔자오투오스, 마파도우푸, 양저우차이판 등을 시킨다. 식성이 좋지 않아서 많이도 먹지 않으니 더 시켜도 낭비다. 그래도 해산물 메뉴가 들어져 있어 맛조개를 물으니 한그릇에 17위안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저렴해 하나를 주문했다. 용우도 즐겁게 먹는다.

밤이 채워지자 길을 나섰다. 푸투오산은 그다지 큰 섬이 아니고 교통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서 여행에 큰 불편이 없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전 코스를 걸어도 되겠지만 2~5위안하는 순환버스를 타고 다니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중국어가 가능하다면 여행단을 따라다니면서 더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이곳의 불교만을 느끼고 싶다면 가족끼리 편하게 다녀도 어렵지 않다. 전체 코스를 돈다고 해도 오래 걸려야 하루 정도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보편적인 코스는 다음과 같다.(꼭 봐야할 곳은 굵은 표시)

 

 

 

 

 


여행지도 

터미널-반투오스(磐陀石)→얼구이팅파스(二龟听法石)→관인동(观音洞)→普济禅寺(푸지찬스)→(버스)→파위찬스(法雨禅寺)→(버스)→후이지찬스(慧济禅寺)→부딩산(佛頂山 케이블카 이용 상하행합 35위안)→(버스)→바이부샤(百步沙)→부컨취관인위앤(不肯去观音院) 즈주린(紫竹林)→차오인동(潮音洞)→난하이관인리샹(南海观音立像)→(버스)→터미널

배낭도 호텔에 두었으니 우리 가족은 가벼운 마음으로 길에 올랐다. 아쉽게 시간상 반투오스는 보지 않고 바로 푸지찬스로 향했다. 호텔에서 천천히 가면 30분 정도의 거리다. 길에는 푸투오산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로 꼽히는 푸투오산대주점(4성 스탠다드 800위안 가량)이 있다. 푸투오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수목들이다. 일본승이 조사여서 일본에서 온 나무 들도 많고, 정원들도 아기자기한 면도 많다. 이정표들도 일본어로 표기되어 있다.


보제선사 경내 

 

   

 

 

 

먼저 푸지찬스에 들렀다. 푸지찬스는 푸투오산의 중심 절이다. 원래 사찰은 후량(后梁) 정명(贞明) 2년二(916)에 현재의 부컨취관인위앤(不肯去观音院)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청나라 강희, 옹정 시기에 6단계 사찰로 지금의 위치에 만들어졌다. 주 건물은 대원통전(大圆通殿)인데 이곳은 활대전(活大殿)으로 불리는데, 안에는 8.8미터의 비로관음(毗卢观音)이 모셔져 있다. 절 여행은 해인지(海印池 御碑亭、观自在菩萨墙-산문(山门)—어비전(御碑殿)—종고루(钟鼓楼)-천황전(天王殿)-대원통전(大圆通殿)-법당(法堂) 순으로 하면 된다.

푸지찬스에서 나와 다보탑(多寶塔)이 있는 오른쪽 편 길로 나오면 푸지찬스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파위스까지는 1.5킬로미터고 약간 오르막이므로 순환버스(3위안)를 타는 게 좋다. 길의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해안선인 치엔바오샤(千步沙)가 펼쳐져 있다.

  

 

 

 

 

 

 

 

 

 

 

 

 

 

 

 

 

 

파위스 주차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파위스가 있다. 파위스의 중심건물은 관음전(观音殿)과 구룡전(九龙殿)이다. 특히 유명한 것인 구룡전 앞 기둥에는 아홉 마리 용이 각인되어 있고 안에는 구룡목욕못(九龙藻井)이 있는데, 난징에 있는 명나라 황실에서 가져온 것으로 푸투오산 3대 보물 중 하나다. 파위스는 해회교(海会桥 日莲池)-산문(山门)(天华法雨 각, 구룡벽九龙壁)-천왕전(天王殿)-옥불전(玉佛殿)-구룡전(九龙殿/九龙藻井)-어비전(御碑殿)-방장원(方丈院)으로 여행하면 된다.

두 곳에서 우리 가족은 정성껏 기도를 하고 바이부샤행 버스에 올랐다. 섬의 전경이 보고 싶다면 리프트를 타고, 부딩산에 올라갈 수 있지만 아내나 용우나 리프트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바이부샤 정류장에 내려 부컨취관인위앤(不肯去观音院) 즈주린(紫竹林)→차오인동(潮音洞)→난하이관인리샹(南海观音立像)을 차례대로 봤다. 전체 여정이 한시간 정도가 걸린다. 부컨취관음위앤은 푸투오산의 첫 번째 사찰이다. 일본승 혜악이 가져가던 관음상을 이곳에 두었다가 가져가려니 들수 없어서 이곳에 사찰을 꾸민 것이니 가장 신령한 자리이기도 하다. 즈주린은 작은 암자에 지나지 않는다.

즈주린을 나와 해안쪽으로 10분쯤 걸으면 난하이관인 입상을 볼 수 있다. 푸투오산이 모시는 관음상을 조형한 것이다. 입상대는 3층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33미터다. 그중 불상은 18미터이고, 연대(莲台)가 2미터다. 불상꼭대기에는 미타(弥陀)를 왼손은 법륜(法轮)을 오른손은 무외인(无畏印),묘상(妙状), 자상(慈祥)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향을 사서 기도를 하고 돌아섰다. 나오는 길의 왼편으로 관음의 옆 얼굴이 보였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내 딸의 얼굴이 생각났다. 도대체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고, 또 그렇게 허뭇하게 져버리기도 하는 것일까. 하늘은 필요한 영혼이 있다면 그냥 만들면 되지 왜 불쌍한 인간들에게 상처를 주고, 데려가는 것일까.

다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들러 내일 배를 확인했다. 내가 선지아먼(沈家門)행 배를 알아보자 아내가 화를 냈다. 원래대로 닝보로 가면 되지 왜 선지아먼행을 알아보냐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성질을 부렸다. 올해로 결혼 10년 싸운 숫자는 초반기 2~3번인가로 기억한다. 잘 안싸우는 부부보다는 싸우는 부부가 낫다는데, 우리 부부는 별로 안 나은 부부였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 동안을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살았다. 부족해도 서로를 신뢰해왔고, 예기치 않은 큰 고통도 같이 경험했다. 지난 1년반 동안 너무나 의연하게 아이를 지켜줬고, 이제 잇몸 전체가 위태할 정도다. 나를 믿고 서로 살았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신경질을 낸 내가 바보 같아서 금방 우스워졌다. 호텔에 들어가 조금 쉬다가 나오자 이번에도 동네 주민이 나를 끌어서 자기의 식당으로 안내한다. 이번에는 맛조개가 15위안으로 약간 더 싸다. 소라를 하나 더 주문하고, 큰 조개도 하나 주문해서 과용을 했다. 언제나 처럼 저녁에는 반주로 작은 바이주 한병도 시켰다. 바닷 바람이 시원하게 우리 식탁을 닥아주고 있었다. 세상에 술이라는 물건이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우리 가족은 5시 무렵에 일어났다.
창밖으로 아침 안개가 끼어 있었다. 호텔 식당에서 간단한 꺼리로 식사를 마치고 여장을 쌌다. 부두로 나와 선지아먼행 배표를 끊었다. 1인 29.5위안이다. 배로 타는 길에 “낙가산을 다녀오지 않으면 푸투오산 여행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선전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낙가산은 푸투오산에서 3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이다. 난 여행자이지 관광객이 아닌 만큼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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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투오산, 지우화산 여행기 1>길을 떠나다

<우리 가족은 5월 10일부터 8일 가량 상하이, 푸투오산, 항저우, 황산, 지우화산,
난징, 쑤저우 등을 돌아봤습니다. 그 여정을 간단히 기록합니다. 대여섯번이 될 기록이
첫회입니다>

 

내 죄는 별다른 게 없다.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글을 쓰고 싶어도 내게는 진주가 될 상처가 없다고 몇 번의 푸념을 한 정도였다. 스물 댓살 때 부산역에서 만난 주정뱅이 아저씨가 충고 입네하고 “그래도 니 이야기를 써라”는 게송을 줘서 그렇게 알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내가 더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내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 그것도 아주 크고 단단한 못이다. 우심방에서 판막을 지나 좌심방을 관통한 이 못은 내 맥박만큼이나 자주 고통을 준다.

어릴 적부터 무등산 산장에 있는 작은 집에 가는 길에 김현승의 ‘눈물’이 있는 시비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무등산 산장 정류장에 도착하기 100미터쯤 앞에 있는 구비길의 안쪽에 있는 이 시비를 나는 몇 번이고 만지작이며 읽었다. 어린 내가 왜 그 시비를 읽었을까. 지금의 내 고통을 예감이나 했던 것일까.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닌 것도 오직 이 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김현승 ‘눈물’ 전문)

1년 반 남짓 우리에게 눈빛만을 준 둘째를 떠나보내고, 나와 아내, 8살인 아들이 길을 떠났다. 잊기 위함도 있지만 추억 속에 간직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라도 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중국 땅의 신들에게 부탁을 위해서라도 급히 여행을 생각했다. 직원에게 가장 싼 상하이 표를 구해 달라했다. 나와 아내는 11만원, 아이는 9만원이었다.(텍스 5만원 가량 불포함)

5월 10일. 싼 항공권이기 때문에 저녁 비행기였다. 서울은 반바지를 입지 않으면 더울 만큼 뜨거운 날이다. 30도를 넘은 지역도 많았다. 내 어릴적에는 한 여름에도 30도를 넘은 적이 별로 없었고, 30도가 넘는 것이 큰 뉴스였다. 하지만 이제 5월에도 30도를 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었다.


인천공항서 우리 가족

 

상하이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에 도착하고 다음날 일찍 푸투오산행 쾌속선을 탈 예정이어서 호텔을 자기부상열차의 종착역인 롱양로 부근에 잡았다. 여행사를 하기는 하지만 나가 가족이 다니는 여행은 중국의 호텔 예약 시스템인 씨트립(www.ctrip.com)을 이용한다. 여행사로 이용하는 가격보다는 5~10% 정도 비싸지만 중간에 귀찮은 일도 없고, 현지 비용에 가장 가깝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동공항의 꼼꼼한 검역푸동공항은 인천이나 베이징 공항에 비견되는 거대한 공항인데, 1청사와 마주보는 2청사가 개통하면서 그 규모에서는 세계 최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신고장과 수화물 수취대까지의 이동은 이 공항을 갈 때마다 짜증나게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입국신고장 앞에 있는 검역과정이다. 신종 플루 환자가 중국에서도 발생했고, 늘어나는 추세라 상담히 삼엄하다. 열이라는 있는 판에는 감금될 것이 뻔하니 고열인 사람들은 가능한 여행을 피하는 게 상책같다.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해 1청사와 2청사의 중앙에 있는 자기부상열차 터미널로 이동했다. 보통은 시내까지 공항버스(http://www.shanghaiairport.com/travel/airport_pd.jsp)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줄 겸해서 터미널에서 150미터 정도 가면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기로 했다. 자기부상열차는 일반 승객은 50위안, 항공권이 있는 승객은 40위안이다. 아이는 125센치미터 인데, 별 다른 말이 없어 표를 사지 않았다. 이후 아이는 버스는 좌석 때문에 반표를 사야했지만, 지하철 등은 모두 표를 사지 않아도 됐다.

자기부상열차 매표소자기부상열차 

세계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상업형 자기부상 열차(www.smtdc.com)일 이 열차는 푸동공항에서 상하이 지하철로 연결되는 롱양로역까지 33킬로미터를 운행하는데 보통 8분이 걸린다. 열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431킬로미터이다. 아이에게 “니가 탄 이 열차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열차란다”라고 말하지만 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열차의 속도에 대해 시큰둥 하다. 실제로 밤에는 손님이 없어서인지 속도를 300킬로미터 정도까지 밖에 내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많은 낮 시간에는 431킬로미터까지 올린 후 속도를 떨어뜨리면 도착하는 정도의 여정이다.

자기부상열차에서 내려 예약한 호텔(锦江之星 上海磁悬浮总站店 http://hotels.ctrip.com/domestic/showhotelinfo.aspx?hotel=57079)로 갔다.  호텔은 지하철로 치면 롱양로 역 1번 출구로 나와 바이장루(白杨路)를 타고, 푸동 중심지 방향으로 400미터를 가면 잉화루(櫻花路)의 교차로에 있다. 스탠다드가 269위안인데, 저층으로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두고, 아이에게 야경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 푸동으로 나왔다. 택시로 궈지후이중신(國際會議中心)을 말했는데 요금은 25위안 정도다. 일요일 저녁이라 중급 정도의 조명이 되어 있다. 둥팡밍주와 진마오따샤에 금융센터까지 가세한 푸동의 마천루는 갈수록 신비해진다. 거기에 금융센터보다 더 올라가는 빌딩도 가세하고 있어 이 지역 지반이 얼마나 버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푸동서 본 푸시

상하이 야경을 오면 보통은 푸시에 있는 와이탄 언덕에서 푸동을 보는데 개인적으로는 푸동의 빈지앙따다오(濱江大道)에서 와이탄의 야경을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지하로 난 여행케이블카로 이동하면서 양쪽에서 야경을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빈지앙따다오에서 야경을 보고 샹그릴라 호텔쪽으로 나가니 양꼬치를 판다. 두 개를 사서 아이에게 주니 먹는다. 우리 부부를 닮아 소심하지만 아빠가 시키는 것에는 가끔 도전을 하는데 양꼬치도 즐겁게 먹어서 안심했다.

정대광창정대상하이 최대의 쇼핑 타운인 정따광창(正大廣場)에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고 있었다. 사실 이제 중국은 쇼핑의 재미를 느끼기에 너무 힘들다. 일년 사이 위안화의 가치가 일년 사이에 두배가 올라 이미테이션 상품이나 농산물 정도를 제외하면 살 거리가 없다. 일반시장도 그런데 정따광창 같은 고급 쇼핑몰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따광창 시티은행 인출기정따광창의 입구에는 시티은행(花旗銀行)의 현금지급기가 있다. 아직까지 중국 여행에서 가장 효율적인 환전 방법을 나는 시티은행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티은행에서는 외국에서 이용 가능한 현금 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카드로 중국에서 위안화를 찾을 경우 한국에서의 기준율보다 약간 높은 정도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한국서 위안화를 직접 살 때 비용보다는 3~5%를 아낄 수 있어서 필자도 개인여행시에는 이용한다. 물론 시티은행이 있는 도시에서도 좋은 효율이 가능하지만 시티은행이 없어서 중국은행 ATM 등을 통해서 한국서 바꾸는 비용과 비슷한 가격에 위안화 환전을 할 수 있다.  

 

 

정따광창을 관통해 나가 류자쭈이에서 지하철을 탔다. 몇정거장 아니어서 2위안이다. 상하이 지하철은 이제 서울에 비견될 만큼 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지하철 만으로 상하이 여행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저녁 10시 정도 되면 현지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택시도 잡히지 않으니 차라리 이게 더 낫다.

롱양로 역에 도착해 아이가 걷기 힘들다고 보채서 인력거를 탔다. 3위안이다. 조금 긴 여행의 시작이고, 한국에서의 일에 지쳐선지 우리 식구들은 빨리 잠에 빠졌다. 지난해 2월 황급히 서울로 나온 지 1년 3개월만에 중국에서의 잠이었다.

카테고리 : 창완이의 중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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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차(凉茶)의 계절, 광동에서는 열을 식혀 주세요.

 

 

광동에서는
열을 식혀 주세요
 

 

 

 

광저우 근교 도시인 짜오칭에 놀러 갔던 둘째날 아침, 친구 M이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나타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자 M은 멋적게 웃으며 때리거나 맞거나 하면서 그리 된 게 아니라 어제부터 한쪽 눈 언저리가 불편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이리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아, 어제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그러자 알겠다는 듯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哎呀,上火了! (아이고, 몸에 열이 올랐구나)"

M의 끝없는 푸념은 이어졌다.

"아, 어제 나 민물생선이 맛있다고 내가 거의 반접시를 다 먹었잖니. 마지막 한 점 남은 거 내가 챙겨 먹은 거 기억하지?"

"아, 생선을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당연히 열이 오르지"
"네가 어제 을 많이 마셨던가?"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어, 그런데 어제 우리가 또 오리를 먹었잖아!"
"아… 그렇네, 어제 오리도 있었지?"
"내가 원래 오리보다 닭을 좋아하는데 어제 왜 오리를 그렇게 먹었지? 닭을 먹을걸."
"그러게 닭을 먹었어야 했는데."
"그러게, 아침으로는 다른 것 먹지 말고 흰 쌀죽을 먹는 게 좋겠다."
"그래야겠어."
그러더니 아침 식사가 한가득 차려진 부페에 가서 M은 정말로 다른 걸 제쳐두고 흰 죽만 떠 먹고 있다.

사실 나는 M의 눈을 보고나서 다래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세균감염이겠거니 했고, 어제 그가 남들 다 가는 온천에 오지 않은
것도 다래끼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열이 더 오를까 걱정되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침식사를  끝낸 후 다음 일정
때문에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M을 보니 언제 샀는지 그새 손에 량차(凉茶) 한 병이 들려 있다. M이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량차 한 병을 다 마셔서 그런지 아침보다는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
열을 식혀준다는 량차의 효과인지 아니면 그저 아침에 얼굴이 부었던 것이 풀린 것인지는 몰라도 M의 눈 윗꺼풀이 아까에 비해서는 조금 가라앉아 있다.

 

 

광동성에서 가장 유명한 량차 전문점 황쩐룽(黃振龍)

여러가지 약초를 배합해 만들어 체내의 열을 식혀준다는 량차는 쉽게 열이
오르는 광동사람들의 오랜 벗이다.

광저우의 길거리 곳곳에서는 황쩐룽 이외에도 여러 브랜드의 량차 전문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上火(몸에 열이 오르다)"라는 말을 모르고 중국친구들과 음식을 먹고 건강을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무더운 더위가
1년 중 9개월간
지속되는 광동에서는 생활 자체가 열과의 싸움이며 투쟁인 듯하다. 상해에서 공부할 때도 清热解毒(열을 식히고 독기를 없앤다)라는
중의학의 전통적인 개념을 배우며 신기해 했었지만 그때는 그저 이런 게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면, 유난히도 음식에 까다롭고 건강에
민감한 광동에서는 "上火"를 피하는 것이 매 끼니와 생활의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생각해보면 우리도 찬 음식, 더운
음식 등을 구분해 가면서 비슷하게 한의학의 이론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이렇게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차갑고 뜨거운 것을
따지는 것은 아무래도 낯선 일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의학에서의 열이란 생명의 근원으로서 몸 안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여러 원인 때문에
몸 안의 균형이 깨지면서 열이 몸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것이 목이 건조하고 아프고, 안구가 충혈되며, 비강이 화끈거리며, 입이
마르고 혀가 아프며 입 주위가 헐고, 코피가 나거나 이가 아픈 등의 각종 증상들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
열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생활 습관이나 음식 섭취 등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데, 광동은 특히 덥고 습한
지역이므로 더더욱 열이 오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음료수 브랜드 중의 하나인 왕라오지 량차.

쓰촨식의 매운 샤브샤브(훠궈)를 통한 홍보 전략이 아주 큰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하긴 내가 광저우에 처음 왔을 때에 중국 친구 하나가 왕라오지 브랜드의 량차 한박스를 선물하면서 매일 아침 하나씩 마시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대중의 입맛에 맞도록 덜 쓰고 더 달게 변형을 가했다는, 한약맛이 덜 나는 량차를 마시면서 나는 사람들이
왜  좀 더운 것 가지고 이리 유난을 떠는가 하고 생각했었다. 한국에 다녀와서 면세점에서 산 홍삼캔디와 홍삼초콜릿을 친구들과
나눠먹겠다고 가져왔을 때 인삼은 열이 많아서 이걸 먹으면 몸에 열이 과하게 오르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며 먹기를 주저하는 중국
친구들을 보며, 홍삼은 인삼에 비해 열이 훨씬 적고 게다가 이 캔디며 초콜릿에는 홍삼 성분이 1프로도 안 된다며 설득하는 나를
보며, 아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하며 투덜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광동 사람들에게 조금 동화된
것일까? 한여름 아주 더운 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걷다가 량차 가게라도 발견하면, 바로 뛰어가 시원한 2위안짜리 량차 한잔을
사 그자리에서 훌쩍 마시며 열을 식힌다. 망고니 리쯔니 하는 열대과일이 맛있다고 한웅큼 사다놓고 먹는 친구에게 그건 뜨거운
음식이니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제지하기도 한다. 아직 생선과 닭고기, 오리고기 사이의 미묘한 관계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콜라보다는 캔에 든 왕라오지 량차를 시켜 마실 정도는 되니 외국인으로서는 체내
열 관리점수
70점 정도는 줄 수 있을까?

눈에 다래끼를 얹은 M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국 왕라오지 량차 한 캔을 더 사서 마셨다. 나는 그에게 과로나 스트레스도 몸에
열이 오르는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집에 돌아가서 수박이나 먹으며 쉬라고 말했다. 그 고장에 가면 그곳 풍습을 따르라고,
入鄕随俗라고 했던가. 광동에 올 일이 있다면 아직 광동의 더위에 적응하지 못하는 몸을 위해 스스로에게 량차 한 잔을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얼굴에 여드름이 난 예쁜 친구가 있다면 웃으며 "몸에 열이 올랐구나, 무리하지 말고 매운 거 너무 먹지
마~"하고 한마디 아는 척 하면서, 광동 친구들이 신봉하는 체내 열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를 한번 가져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광저우의
날도 더워지고 있다. 량차의 계절도 다가온다.

카테고리 : Sebin이 만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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