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구체제(體制)와 중국경제 확장의 대충돌>
국수(國手) 이세돌, 자의반타의반 휴직의 함의
한국기원발
이세돌 파문이 결국 양쪽의 타협을 이뤄내지 못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7월2일
한국 기원 이사회가 열려면 무슨 해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상당기간 타협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왜 타협이 힘든지, 충돌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가 이 글의
주된 고민입니다.
우선, 관심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죠? 지난 8일 이세돌이 한국기원에 휴직계라를 제출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원인은 한국 기원에서 이세돌이 ‘한국 바둑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중국 리그 참가 상금의 5%를 한국기원 측에 내지 않는 등’의 복잡
다단한
이유를 제시해 한국기원 소속 기사들이 투표로 이세돌 제제에 동의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를
납득하기 힘든(사실은 화가 많이 났겠지요) 이세돌 사범이 휴직계란 최강의 수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10년
12월 30일까지 한국기원에서 주관하는 대국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휴직계는
한국기원 내의 규정에
있는 기사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기사가 그것도 자신의 전성기에 일종의
스트라이크(파업)성 휴직계를 제출했다는 것은 세계 바둑계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더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게다가
1년 반 이상의 휴직은 이세돌 사범의 실력이나 수입 나아가 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기원과 이세돌 사범 양쪽 모두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이 바둑계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국수
이세돌 사범은 과거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겅어왔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바둑인입니다. 1세대인
조남철옹은 일본 지배 하에서 근대바둑을 받아들였고, 2세대인 김인-조훈현 등은 아예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첨단 일본 바둑을 뼈속까지 받아들여 이를 한국식으로 재해석
해냈습니다.
3세대인 유창혁-이창호 등은
이들 일본에서 돌아온 스승을 통해 한국 바둑을 만들어 냈고 꽃피운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4세대 격인 이세돌 이하 신진
세대들은
일본 바둑인들보다는 오히려 중국 바둑인들과 겨루며 한국 바둑의 세계 정상을 재
확인 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란
일본을 쳐다볼 여유가 많이 줄었다는 얘기지요.
제가
걔인적으로 이세돌 사범을 경험한 기억은 조금 엉뚱하기도 합니다. 2005년
여름이었는데 잉창기 배가 열렸던 롯데호텔에서 이세돌 국수를 만나 몇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많은 기사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세돌은 당시 여느 기사들처럼 이창호-창하오와의
대국을 지켜보며 열심이 복기하고 있었지요. 우연히 그가 내 곁으로 오기에 잠시 그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 도중 제가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세돌님….나름
까칠하다고 사람들이 그러던데…"(나)
"(버럭)
누가 그래욧!! 저 안까칠해욧"
제가
크게 잘못한거죠. 감히 이세돌 사범에게 저런 무례한 질문을, 그것도 뒷담화를 빌어 던지다니 말이죠. 그러나 전 그의 반응에
더욱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대한 반응은 사실 이런 것이었습니다.
"헛헛.
누가 그런 소릴…", "까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등등. 농담을
점잖고 예의스럽게 맞받아 치는 답변을 기대했던 것이지만 그는 진짜 화를 내더군요.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기자에게 말이죠. 이는 분명 전통적인 기사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알고 있는 기사의 모습은 이창호 사범의 그것입니다. 돌부처 이창호… 누군가
사정없이 부산을 떨어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정중하게 맞받아 치는
모습. 적어도
바둑이란 저렇게 산보다 듬직한 사람이 하는 두뇌 스포츠란 것을 몸으로 입증해 온
인물입니다. 장미
담배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칼잡이 조훈현 9단이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내려다 보는 된장바둑 서봉수 9단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분들이 화를 내거나 실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바둑의 기본 속성인 ‘예(禮)와 예(藝)’가 바둑 기사의 내면에도 깊숙이 각인됐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예절로서의 바둑 문화를 꽃피운 쪽은 다름아닌 봉건제 사회인 일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일본으로 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정확하게 한국이 이룬 거의 모든 근대화의 성과들은 일본에서 보고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고
제가 이세돌 사범이 다른 기사들과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모가 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는 그 만의 개성과 장점으로 무장한 사내입니다.
대신 이전의 바둑
기사들의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다는 거지요. 과거 선배들의 가치관이란 조직과 위계에
조금 더 많은 가치를 뒀다면 이세돌 사범은 ‘실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지고 보면 ‘휴직계’란 돌발적인 상황 이전에도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1인자에 대한 예우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사실이구요. 적어도
대한민국 1인자라면 그 정도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정도에 걸맞은 의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비칩니다. 이를테면 강자의 논리인 셈인데요.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논리를 스포츠에서 부정하기란 곤란합니다. 오히려 가장 정상적인 사고이자
바둑계에서 고려치 않은 목소리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앞서
이세돌 사범이 우리 사회가 처음 보는 형태의 바둑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조금
시각을 확대해서 일본과 중국이라는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일본 유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오신 스승을
안둔 것은 아닙니다. 제 관점으로는 이세돌 사범의 바둑이 철저하게 중국 바둑천재들과 상대하면서
강해졌기 때문이고,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열리는
바둑리그에서 상당한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의 액수나 출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한국 바둑의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중국 바둑과의 대결을 예정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한국 기사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이
좁은 한국 보다 오히려 중국 내부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이세돌 파문의 표면적 이유는 바로 한국 바둑리그 참여 문제 입니다.
이세돌
사범과 아무런 상의 없이 신안군청에 포함시킨 것도 문제가 됐지만 이 사범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무엇인지 한국 기원측의 고민이 부족한 것도 사실 같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조훈현 사범이나 대다수의 한국기원 관계자들의 시각은 대승적인 견지에서
이세돌 사범이 수긍을 하고 따르리라고 봤던 안일함으로 비칩니다. 게다가 이미 이세돌
사범은 한국인이고 한국 기원 소속이긴 하지만 어느순간 중국에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진것도 간과한 듯 보입니다. 만약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없었다면 이세돌
9단이 과연 휴직계라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 까요? 과거 선배들은 전혀 고혀해볼
수도 없는 과격한 수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때문에
이 갈등을 이 같은 차이나 블로그에서 주목한 이유도 바로 혹시 중국 경제의 확장과
과거 일본식 패러다임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이
대목이 조금 불분명 해서 여러분들이 지적을 주셨는데요. 실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세돌
사범의 휴직계 제출 사건은 따지고 보면 한반도의 처한 정치 경제적 민감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껏 조훈현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중견 기사들은 일본바둑을 배우고 따라잡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세돌로 대표되는 신진 기사들은 오히려 중국 기사들과 경쟁해왔고
활동의 기발을 서서히 중국에 기대고 있다. 중국경제 확장의 결과로 벌어진
이번 이 같은 정치적 민감성은 이세돌 사범은 물론이고 한국인이라면 비켜갈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
이 정도의 문제 의식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연
애국주의와 도의적 관계로 뭉쳐진 한국기원과 조훈현 9단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실력과 그에 따른 보상을 앞세운 중국식 실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세돌 9단의 오류인가
하는 거죠.
따지고
보면 이 두 선택 모두 어느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틀리지 않기 때문에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훈현 9단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이세돌 역시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뿐입니다. 대신
그 결론을 이끈 성장 배경과 문화 배경이 전혀 달랐다는 점입니다.
결국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반도인
한국은 섬나라 일본의 근대를 빠르게 흡수하여 일본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고개를돌려보니 대륙인 중국은 또다른 방식으로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그 압도적인
시장 규모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틈새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전략과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한국
바둑은 일본의 미학적 바둑과 중국의 실리적 바둑과는 달리 치열한 싸움바둑으로
세계 바둑을 평정해왔습니다. 이른바 바둑의 한류인 셈이지요. 조훈현 9단과 이세돌
9단의 화해 속에 저는 한국 바둑 나아가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갈등의 장본인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일 수 있습니다.
PS
: 오늘 뉴스를 보니 이세돌 국수가 중국리그 참가를 위해 상해에 입국하려다가 체온이
0.3도 정도 높아서 문제가 됐었군요. 공항에서 신종플루 의심을 받아 정밀 검진을
받으라 시간을 허비해 대국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신종플루는 아니었구요.
이세돌 사범도 절실하게 느꼈을 테죠. 자신은 중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한국에 살면서 중국 경제에 편입된다는 서의 불편함도 동시에 절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9.06.
17)
(2009. 06. 19)
수정


푸투오산 부두에서 출발한 배는 10분 남짓해 선지아먼 부두에 도착한다. 선지아먼은 저우산 섬의 동남쪽에 있는 부두다. 이 섬의 중심지이자 육지로 가는 부두가 있는 딩산강(定山港)까지는 2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굳이 닝보를 경유할 필요가 없어서 항저우행 버스표를 샀다. 표값은 55위안으로 바쌌지만 한 라인에 3명이 타는 고급버스다. 버스는 20분쯤 달려 딩하이터미널에서 남은 좌석을 채우고, 10분쯤 지나자 저우산과 닝보 사이를 잇는 배에 올라탄다. 
컴퓨터를 켜고, 위치를 검색하니 호텔에서 170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좀 쉬다가 밖으로 나와 후비엔춘 임정청사를 찾았다. 새로 생긴 쇼핑몰인 시후스다이광창(西湖時代廣場)의 뒤에 있다. 취재할 당시에는 쇼핑몰은 없었는데 격세지감이 일었다. 임정청사 건물은 완전히 재건축됐고, 입구만이 과거의 모습이 남아있다. 여행지로 바뀌면서 내부에 살던 이들은 모두 이주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로비로 내려가 계산을 하고 택시를 탔다. 다음 목적지인 황산시로 가기 위해서는 항저우시치처짠(杭州西汽車站)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다. 황롱여행터미널에도 황산행이 있지만 일반버스가 더 경제적이다. 호텔에서 시짠(西站)까지는 20분 정도 가고, 21위안이었다. 바로 버스가 있어서 탔다. 황산까지는 230킬로미터인데 요금은 물경 84위안이다.





푸동공항은 인천이나 베이징 공항에 비견되는 거대한 공항인데, 1청사와 마주보는 2청사가 개통하면서 그 규모에서는 세계 최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신고장과 수화물 수취대까지의 이동은 이 공항을 갈 때마다 짜증나게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입국신고장 앞에 있는 검역과정이다. 신종 플루 환자가 중국에서도 발생했고, 늘어나는 추세라 상담히 삼엄하다. 열이라는 있는 판에는 감금될 것이 뻔하니 고열인 사람들은 가능한 여행을 피하는 게 상책같다. 



상하이 최대의 쇼핑 타운인 정따광창(正大廣場)에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고 있었다. 사실 이제 중국은 쇼핑의 재미를 느끼기에 너무 힘들다. 일년 사이 위안화의 가치가 일년 사이에 두배가 올라 이미테이션 상품이나 농산물 정도를 제외하면 살 거리가 없다. 일반시장도 그런데 정따광창 같은 고급 쇼핑몰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따광창의 입구에는 시티은행(花旗銀行)의 현금지급기가 있다. 아직까지 중국 여행에서 가장 효율적인 환전 방법을 나는 시티은행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티은행에서는 외국에서 이용 가능한 현금 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카드로 중국에서 위안화를 찾을 경우 한국에서의 기준율보다 약간 높은 정도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한국서 위안화를 직접 살 때 비용보다는 3~5%를 아낄 수 있어서 필자도 개인여행시에는 이용한다. 물론 시티은행이 있는 도시에서도 좋은 효율이 가능하지만 시티은행이 없어서 중국은행 ATM 등을 통해서 한국서 바꾸는 비용과 비슷한 가격에 위안화 환전을 할 수 있다.
정따광창을 관통해 나가 류자쭈이에서 지하철을 탔다. 몇정거장 아니어서 2위안이다. 상하이 지하철은 이제 서울에 비견될 만큼 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지하철 만으로 상하이 여행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저녁 10시 정도 되면 현지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택시도 잡히지 않으니 차라리 이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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