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휘트니 휴스턴의 숨겨진 2%

 

 

 

 

  팝의 디바. 전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 부르는 흑인 여가수 중 한 명. 노래 좀 한다 싶은 여가수들이 늘 도전하는 가수. 히트곡 ‘Greatest love of all’은 리메이크곡임에도 원곡 가수를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로 잘 불러 그냥 그의 노래로 만든 주인공. 6옥타브 사이에서 늘 줄타기 하는 여자. ‘Saving all my love for you’와 ‘I will always love you’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늘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디스코나 부를 줄 알았던, 백인 가수 뒤에서 죽을 때까지 백보컬만 맡을 것 같았던 흑인 여성 가수를 무대 정중앙에 꽂은 최초의 흑인 여가수. 그렇게 가창력 하나로 변방에 있던 흑인 여성들을 일으켜 세운 흑인 문화 대통령 중 한 명.

 

  위의 것들은 그가 25년 간 이룬 업적들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만 모아도 저 정도군요. 바로 휘트니 휴스턴입니다. 1960, 1970년대 흑인음악의 산실이라 불리는 ‘모타운’ 레코드사가 아닌 백인 중심의 제도권 레이블 ‘아리스타’를 통해 데뷔한 그는 1985년 내놓은 1집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룹니다. 데뷔 앨범 수록곡인 ‘Saving all my love for you’와 ‘Greatest love of all’ 등의 대표곡들은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명곡으로 꼽히죠. 1987년 내놓은 2집 ‘Whitney’는 흑인 여성 가수 사상 최초로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해 7주 연속 자리를 지킵니다. 이후 1990년 3집 ‘I’m your baby tonight’, 1992년 그 유명한 영화 ‘Bodyguard’부터 1995년 ‘Waiting to exhale’, 이듬해 ‘The preacher’s wife’까지 이어지는 세 개의 영화 사운드트랙, 1998년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곡 ‘When you believe’. R&B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그리고 이혼, 약물중독, 2009년 재기 앨범 ‘I look to you’ 발매까지… 우리가 정확히 기억하는 그의 음악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모두는 아닙니다. ‘Saving all my love for you’나 ‘I will always love you’가 휘트니 휴스턴의 대표곡이지만, 분명 숨겨진 다른 명곡들도 존재합니다. 말을 뒤집으면, 폭발적인 가창력만이 그의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죠. 남들이 잘 모르는, 하지만 알면 좋을 법한 휘트니 휴스턴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요? 25주년을 맞아 월드투어, 그 첫 방문지가 한국이라는 소식. 이를 기념해 bs가 휘트니 휴스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을 통해 2% 숨겨진 그를 재조명 해보겠습니다.


 

 


 

#1… 하우스 리듬에 착착 감기는 가창력

“I’m every woman”(1993)

 

  언젠가 가수 인순이에게 누군가 “왜 앨범 안 내시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인순이는 “나도 앨범 빨리 내고 싶지만 작곡가들이 피하더라”라는 뜻밖의 답을 했습니다. 노래 잘 하기로 소문난 인순이를 피하는 작곡가가 있다니. 바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있더군요. 인순이가 워낙 가창력 있는 노래만 부르다보니 작곡가 대부분이 쉽게 부르는 노래는 주지 않고 대부분 ‘대곡’ 위주로 준다는 것이죠.

 

  인순이 스스로 이겨내야 할 딜레마인 셈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일 겁니다. 휘트니 휴스턴도 마찬가지겠죠. 그런 의미에서 1993년 발표한 하우스 풍의 댄스곡 ‘I’m every woman’은 어쩌면 그에겐 뜻밖의 곡이자, ‘극기’와 다름없는 노래일지 모릅니다.

 

  이 노래의 ‘스펙’을 잠시 말씀드리면, 영화 ‘Bodyguard’의 삽입곡이자 ‘I’ll always love you’에 이은 두 번째 싱글커트 곡입니다. 사실 이 곡은 흑인 여가수 샤카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기도 하고요. 지금 들으면 “아 휘트니 휴스턴이 부를 법한 노래네”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대단히 ‘진보적’인 노래로 들렸습니다. 1992년 말 발표된 ‘I’ll always love you’가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역사상 가장 긴 14주 연속 1위 기록을 세울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대곡’ 형태의 발라드곡이 다음 후속곡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죠. ‘Bodyguard’ 앨범에 ‘I have nothing’이나 ‘Run to you’ 등 ‘I’ll always love you’에 버금가는 발라드 곡들이 많았기도 하고요.

 

<그
놈의 ‘웬 다이아’ –;;>

 

  그럼에도 모두의 예상을 깬 채 휘트니 휴스턴은 ‘I’m every woman’을 후속곡으로 내놓습니다. 당시 하우스 뮤직계를 주름잡던 프로젝트 그룹 ‘C+C Music Factory’가 전체 프로듀싱을 맡았고 뮤직비디오에는 당시 갓 데뷔한 흑인 여성 3인조 트리오 TLC가 등장하는 등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하죠.

 

  엉덩이 들썩이게 만드는 경쾌한 하우스 리듬이 이 노래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얼핏 들으면 빠른 리듬과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가 경쟁하듯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죠. 곡 마지막에 “아하하”하는 아줌마 웃음이 들리는데 마치 “나 리듬하고 싸워서 이겼다”라는 식으로 여유를 부리기도 하죠. 신선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이 노래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야심 차게 밀었음에도 이 노래는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르고 그칩니다. 14주 연속 1위 했던 전 싱글과 비하면 거의 ‘실패’나 다름없죠. 그럼에도 당시 느꼈던 하우스 리듬과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 한 판 대결. 그건 참 신선했습니다. 마치 나른한 봄날 오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고 할까요.

 

 

 

 

 

 


#2… ‘폭발’ 대신 ‘수줍음’

“Why does it hurt so bad”(1996)

 

  휘트니 휴스턴 노래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귓구녕’을 뚫어주듯 속 시원하다는 것 아닐까요. 남들은 음 하나 올리는데 뻘겋게 얼굴 붉히는 순간에도 그는 아무 일 아닌 듯 단 번에 내 지르는 그 통쾌함. 그래서 한 편으로는 노래들이 죄다 지르고 뚫는 스타일이라 “저러다 목 완전히 맛 가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1995년 그가 참여한 영화 사운드트랙 ‘Wating to exhale’에서 그는 변신합니다. 첫 싱글 ‘Exhale’부터 그는 무조건 꽥꽥 내지르지 않고 속삭이듯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죠. 베이비페이스가 프로듀싱한 이 노래는 분명 명곡이긴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좀 낯설기도 했습니다. 내질러 불렀던 과거 노래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낯 간지러운’ 그런 느낌?

  아무튼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다소 ‘조신’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 조신한 모습의 결정판은 이 앨범 두 번째 수록곡인 ‘Why does it hurt so bad’에서 완성되었죠. 이 노래는 그가 부른 앨범 수록곡 3곡 중 ‘Exhale’, ‘Count on me’에 이어 마지막으로 싱글 커트된 곡입니다. 첫 시작부터 “Why does it hurt so bad~”라며 나지막히 읊조리니, 귀를 몇 번이고 후비게 됩니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 하니까요. 말 그대로 ‘내 귀에 속삭’이라고 할까요?

 

<휘트니
휴스턴이 참여한 두 번째 영화 사운드트랙 ‘Waiting to exhale’

왠지
미장원 아줌마 계모임 분위기가 –;;>

 

  사실 이 노래는 우리가 국어책에서 배운 소설의 4단계 ‘발단-전개-절정-결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곡입니다. 처음엔 속삭이듯 시작했다가 점점 고조돼서 클리이막스를 맞고 이어 끝나는 형태인 셈인데, 휘트니 휴스턴의 발라드 치고는 클리이막스가 짧은 편에 속하는 곡이다보니 여타 대곡에 비하면 그냥 ‘맛’만 보여주다 끝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1997년 흑인 음악 시상식인 ‘Soul Train Music Awards’에서 모 후배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 땀 뻘뻘 흘리며 부르더군요. 쉽게쉽게 대충대충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게 다 휘트니 휴스턴의 엄청난 능력이었던 겁니다. 지나고나니 남들에겐 대곡, 휘트니 휴스턴이겐 수줍음. 뭐 이런 셈이었다고 할까요. 당시만 해도 낯설었는지, 이 노래는 빌보드 싱글차트 26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 휘트니 휴스턴 차트 기록에 있어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안겨다준 노래입니다. 하지만 지금 들으면 오히려 대곡들보다 술술 잘 들리는 건 왜일까요? 비운의 노래로 남기에는 억울했기 때문일까요?

 

 

 

 

 

 

 


#3… R&B 3중창이란 이것이다

“Heartbreak hotel”(1998)

 

  빌보드 차트 1위, 최고 인기 여가수. 늘 ‘1등’을 달리던 그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잘 나가던 그도 1997년 이후 삐끗하기 시작하죠. 3장의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을 낸 그는 1998년 8년 만에 정규 음반 ‘My love is your love’을 발매했습니다만 1위도 아니고, 10위도 아닌, 빌보드 앨범차트 13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하게 되죠. 그야말로 휘트니의 굴욕인 셈이죠. 1985년 데뷔 이래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실패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실 이 앨범은 창피를 당할 만큼 앨범 졸작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죄가 있다면 발라드, 대곡,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스스로 여러 가지 음악적 시도를 했다는 것 뿐이죠. 그 중 하나는 흑인 여성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미시 엘리엇, 3인조 혼성 그룹 ‘퓨지스’의 멤버이자 흑인 프로듀서 와이클레프 진을 초빙해 힙합 음악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R&B와 정통 발라드의 중간에서 주로 노래를 불러왔기에 ‘회색’ 같은 노래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여기에 중간 중간 ‘완충작용’을 위해 1990년대 명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로부터 받은 달콤한 발라드 곡들을 심어놓기도 했죠. 그래서 뭐랄까, 앨범 전반 분위기가 다소 들쑥날쑥합니다. 앨범의 완성도를 떠나 뭔가 ‘좌불안석’ 같은 느낌이랄까요?

 

  신기한 것은, 이 앨범 전반 분위기는 다소 정신없지만 노래 한 곡 한 곡 퀄리티는 당시 휘트니 휴스턴이 발표한 노래들 그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이 앨범 첫 번째 싱글곡인 ‘Heartbreak hotel’입니다.

 

  이 노래는 정통 R&B 곡입니다. 노래 곳곳에 “나는 흑인 여성입니다”라는 메시지가 깔린 듯 짙고 강렬하죠. ‘정통 검은색’이 되려는 시도를 위해 그는 동료 흑인 여성가수들로부터 ‘지원군’ 모집을 합니다. 여기에는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흑인 여성가수가 참여하게 되죠. 세상을 떠난 흑인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아내인 흑인 여가수 페이스 에반스와 데뷔곡 ‘Friend of mine’으로 주목받던 신예 켈리 프라이스가 주인공입니다.

 

<페이스
에반스(왼쪽)와 켈리 프라이스>

 

  이들 세 명이 부르는 ‘Heartbreak hotel’에는 그 전까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에 늘 들어있던 강력한 ‘후렴구’도 없었습니다. 첫 느낌은 ‘싱거운 음식’처럼 밋밋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사람을 자꾸 끄는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자꾸 듣게 되고, 그러다보니 페이스 에빈스와 켈리 프라이스가 휘트니 휴스턴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래 구절들에서 ‘다크 초콜릿’ 같은 지독함도 느낄 수 있게 되죠. 노래를 자꾸 듣게 되는 건 전 세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봅니다. 시원스럽게 소리를 내지르는 노래가 아닌, 뭔가 ‘꼬들꼬들’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노래는 발표 당시 ‘대박’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서서히 닳아 오르며 롱런을 하게 됩니다. 결국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고 싱글음반도 100만장 이상 팔리며 그간 제기됐던 앨범 혹평을 한 번에 불식시키게 되죠.

 

  정통 R&B다보니 발라드곡 중심으로 알려진 국내에는 이 노래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나 이렇게 그루브도 탈 줄 알아”라며 흐느적거리는 휘트니의 목소리는 “아 원래 이런 여자였구나”라는 배신감마저 들게 합니다.

 

 

 

 

 

 


#4… 중년의 여유

“One of those days”(2003)

 

  앨범 ‘My love is your love’ 이후 깜깜 무소식이었던 그는 2002년 프로듀서 피 디디와 손을 잡고 컴백 소식을 알립니다. 그가 발표한 컴백작 ‘What’chu lookin’ at me’는 그 전에 잘 찾아볼 수 없던 업템포의 흥겨운 곡인데, 이를 통해 곧 낼 앨범 ‘Just Whitney’이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죠.

 

  2002년 말 발매된 이 앨범은 그러나 완전히 충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My love is your love’ 앨범 2탄 격이라 할 만큼 전작을 답습한 부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음악적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 팬들은 적잖게 실망했을 겁니다. 앨범 역시 차트 9위까지 오르는데, 이것도 전작 앨범 수록곡들이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나타난 ‘반사 이익’인 셈이죠.

 

  그럼에도 “아직 휘트니 휴스턴 죽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는 건 두 번째 싱글 ‘One of those days’ 때문이죠. ‘Heartbreak hotel’의 중년 버전이라고 할까요? 그루브 감도 살아있고, 느낌도 충만한 R&B곡인데, 여기서 달라진 것은 한층 여유로워진 그의 목소리입니다. 이 노래에서 그는 노래를 내지르지도, 읊조리지도 않습니다. 대신 흥얼거리며 느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부르는 법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 뒤에 깔리는 신디사이저와 그의 목소리가 하나처럼 들리듯 말이죠.

 

  한결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진 이유에 대해 그는 앨범 발매 당시 빌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이를 먹으니 전에 없던 또 다른 휘트니 휴스턴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또 다른 휘트니 휴스턴은 아마도 ‘여유’ 아닐는지요.

 

  그가 보인 여유로움은 물론 그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느낌은 1992년 남편인 바비 브라운과 함께 부른 듀엣곡 ‘Somethin’ in common’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지 결이 좀 다르다고 할까요? ‘Somethin’ in common’을 불렀던 1992년이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때였다면 ‘One of those days’를 불렀을 2002년은 앞으로 찾아올 침체기를 알기로 하듯 덤덤한 순간이었습니다. 말썽쟁이 남편, 이혼, 약물중독… 마흔으로 접어든 중년 휘트니는 그렇게 혹독하게 인생을 배웠죠. 대신 얻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필’ 충만한 새로운
휘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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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 가볍다고? 가장 쇼킹했던 한국 댄스음반 BEST 5

 

 

 

  “요새는 댄스뮤직도 재미가 없어…”

 

  며칠 전 음악계 인사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한 음악 평론가는 “한국 댄스뮤직이 점점 획일화 되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2003년 가수 이효리가 솔로 데뷔곡 ‘텐 미닛’으로 인기를 모은 후 너도나도 여가수들이 ‘섹시’ 콘셉트를 일관했고, 최근에는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기획사의 빵빵한 힘을 빌어 ‘고만고만한’ 음악을 내놓는다는 것이죠.

 

  사실, 따지고보면 맞는 말입니다. 이효리 등장 이전 섹시 여가수라고 한다면 ‘룰라’의 김지현, ‘늘 지금처럼’을 히트시킨 이예린, 엄정화 등 몇 손가락 안에 꼽았죠. 이효리가 성공한 직후인 2003년 말부터는 채연, 유니, 아이비, 서인영, 손담비 등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대형 기획사’ 출신의 여성 아이돌 그룹 전성기를 맞았죠. ‘원더걸스’, ‘소녀시대’, ‘2NE1’, ‘카라’, 그리고 연초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보핍보핍’의 ‘티아라’까지.

 

  문제는 ‘개성’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뭐 하나가 히트하면 우르르 몰리는 게 국내 가요계의 고질적인 문제니까요. 사실 그건 가요계 뿐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길거리만 나가봐도 ‘어그부츠’ 신은 여성들? 아뇨, 안 신은 여성들을 찾는 게 오히려 빠른 편일 듯 합니다.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서, 아무튼 “요즘 댄스뮤직 개성이 없다”며 사람들과 술 한 잔 들이켰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가수 고 이금희 씨 였습니다. 2007년 2월 20일. 정확히 3년 전 이맘 때 세상을 떠난 고인은 1960년대 ‘한국 최초의 댄스뮤직’이라 일컬어지는 ‘키다리 미스터김’으로 인기를 얻었죠. “망측하다” “어디 감히 엉덩이를 흔드냐” 등 기성세대들은 ‘댄스뮤직=불경한 것’으로 치부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고인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죠. 이금희 씨가 있었기에 1970년대 김추차, 1980년대 김완선과 박남정,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H.O.T’, 그리고 지금의 이효리와 ‘2PM’까지 댄스뮤직이 발전해온 것 아닐까요?

 

  그간 우리 가요 역사에서 댄스뮤직만큼 평가 절하 받은 장르도 없을 듯 합니다. 춤을 추며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한 번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춤은 기본이고 음악적 완성도도 높아야 하는데도 ‘가볍다’는 느낌 때문에 제대로 대접 못 받은 것이 사실이죠.

 

  “댄스뮤직 중에는 높은 음악성을 가진 곡들도 많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 등의 댄스뮤직은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 했다” “갈수록 기계음에 의존하는 댄스뮤직이 넘쳐난다” 술자리는 갈수록 진지해졌습니다. 결국 토론의 귀결점은 “가장 충격적인 댄스뮤직은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었죠. 주관적이긴 하지만 술자리 멤버들은 가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댄스음반 다섯 장을 즉흥적으로 골랐습니다. 적어도 이들의 음반에는 ‘댄스’ 못지않게 ‘음악’도 녹아 있었습니다.

 

 

 


#1 ‘빙글빙글’ 세상을 돌린 나미 ‘골든 앨범’(1984)

 

  1970년대 미 8군에서 위문공연을 다니던 여가수 나미.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노래를 부르며 몇 장의 음반을 낸 무명 가수에 불과했죠. 1979년 발표한 디스코풍의 댄스곡 ‘영원한 친구’로 인기를 얻긴 했습니다만 강력한 ‘한 방’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미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작곡가 김명곤 과의 만남. 얼마 전 폐암으로 사망한 가수 고 이남이가 속해있던 그룹 ‘사랑과 평화’의 멤버이기도 했죠. 그런 그는 당시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막 뜨기 시작한 ‘뉴웨이브’ 음악에 심취했습니다. “이런 음악을 한국에서 해볼 수 있을까” “한국적 멜로디를 얹은 ‘코리안웨이브’가 가능할까” 이런 궁리를 하던 그는 여가수 나미를 만났고, 그의 독특한 음색에 반해 의기투합 하게 되죠.

 

  그는 ‘빙글빙글’을 만들며 나미에게 더 목소리를 쥐어짜라고 주문 했습니다. 또 “뿅뿅”거리는 전자음에 어울리게 소위 ‘앵앵’거리는 콧소리를 더 높이라고도 시켰습니다. 패션은 짧은 단발, 의상은 최대한 펑키하게,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 쥐어짜는 창법. 이런 요소들을 버무린 채 1984년, 나미는 김명곤과 함께 ‘골든앨범’을 냅니다. ‘빙글빙글’이 담긴 나미의 통산 세 번째 독집 음반입니다.

 

  사람들은 “뭐야 이거”이러면서 낯설어 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모를 매력에 빠졌죠. 라디오와 동네 레코드점에서는 빙글빙글이 하루에도 수십 번 흘러나왔습니다. 트로트와 포크음악 일색이던 1980년대 초, 사람들은 “뿌리를 알 수 없는 음악”이라며 놀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뿅뿅’거리는 효과음과 기계음은 마치 ‘빙글빙글’ 돌다 어지러운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죠. 마돈나, 신디로퍼 등 당시 갓 데뷔한 미국 여성 가수들의 음악에 빠진 팝 팬들도 “아니 이런 음악이 우리나라에…”라고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노래의 묘미 중 하나는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빙글빙글’ 춤. 국내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보는 음악’ 시대를 열었다는 게 이 노래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빙글빙글’이
수록된 나미 1984년 ‘골든앨범’(왼쪽), ‘사랑이란 묘한거야’가 담긴 1987년 앨범(오른쪽)>

 

  ‘빙글빙글’로 나미는 당시 가요 인기의 척도였던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골든컵을 수상하고, 그 해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도 최고인기 여자가수상을 휩쓰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후 그는 ‘유혹하지 말아요’, ‘사과 하나’ ‘보이네’ ‘사랑이란 묘한거야’ 등 뉴웨이브를 근간으로 한 댄스뮤직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89년 잠시 트로트로 외도, ‘미움인지 그리움인지’를 내놨지만 별 반응이 없자 같은 앨범에 수록된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컴백,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죠. 당시 나미를 지원 사격한 쌍둥이 DJ듀오 ‘붐붐’ 기억 나시죠? “그래도 그래도 모든 것을 잊고…” 하는 다소 어설픈 랩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 군요.

 

 

 

 

 


#2… ‘귀국 기념’이라는 촌스런 글귀를
무색하게 만든

민해경 ‘귀국 앨범’(1985)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앨범 제목 아닐까요. 귀국 기념 앨범이라니, 정말 소속사 사장이 안티 아닌 이상 이런 제목, 더 이상 없을 겁니다. 하지만 민해경은 이런 유치한 제목의 앨범을 내놓고 대박을 거뒀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네요.

  민해경은 1985년 이 귀국 기념 앨범을 내놓고 타이틀 곡 ‘사랑은 이제그만’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했죠.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는 물론이고, 나미가 일궈놓은 1980년대 초중반 댄스뮤직 시장에 후발주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왜 ‘귀국’일까요? 아시다시피 민해경은 원래 댄스 가수로 데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이수영 같은 곱고 고운 발라드 가수였죠. 1980년 데뷔곡 ‘누구의 노래일까’와 초창기 그의 대표곡인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그의 노래들은 발라드가 근간을 이뤘죠. 그렇게 인기를 얻던 중 민해경은 1983년 돌연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 유학, 특히 ‘일본행’은 간 큰 사람이나 하는 결정으로 여겨졌죠. 특히 당시 잘 나가던 여가수가 이런 행동을 한다? 바로 ‘아웃’이나 다름 없습니다. 민해경은 그래서 2년 간 일본에서 고국에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일본에 발이 묶여 있었던 셈이죠.

 

  2년 후 돌아온 그는 발라드로 컴백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분위기를 180도 바꿉니다. 그 첫 열쇠가 바로 ‘사랑은 이제그만’인 셈이죠. 나미처럼 현란한 춤도,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인기를 얻은 건 순전히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민해경의 창법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댄스뮤직에 가볍게 몸을 흔들어 노래 불러도 전혀 썰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노래는 완벽한 팝 댄스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한국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룹니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퓨전 한식과도 같은 느낌인 셈이죠. 여기에 앨범 제목 ‘귀국 기념 앨범’의 효과도 있습니다. 촌스럽지만 친근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문제의
‘귀.국.앨.범’ –;; 그러나 ‘사랑은 이제그만’ 이 노래는 대박났으니..>

 

  한국형 댄스뮤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민해경은 아예 음악 노선을 댄스뮤직으로 바꿉니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존댓말을 써야할지 반말로 얘기해야할지’ 같은 노래부터 아모레 차밍무스 광고 음악으로 사용됐던 ‘그대 모습은 장미’ 등의 댄스뮤직들을 잇달아 히트시켰죠. 안타까운 것은, 민해경도 김완선 만큼이나 인기를 얻은 댄스가수임에도 당시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화요일에 만나요’ 같은 데 출연해서 ‘선생님’을 ‘성생님’, ‘안전벨트’를 ‘앙절벨트’라고 발음해 큰 웃음을 줬죠. ‘혀 짧은 연예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보니 그 신비감은 코믹함으로 남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민해경에게는 ‘마이너스’로 작용한 듯 싶네요. 좀 더 신비주의로 나갔더라면 ‘전설’이 됐을지 모를, 막연한 아쉬움이랄까요.

 

 

 

  

#3… ‘뮤지션’이 만든 댄스홀, 김완선 2집(1987)

 

  지금은 이효리가 있지만, 1980년대는 김완선을 빼놓고 댄스뮤직을 논하기 어려웠을 시기입니다. 단순한 인기를 넘어 한국 댄스뮤직의 ‘아이콘’이 돼버린 댄싱퀸 김완선.

 

  가수 인순이의 백댄서인 ‘리듬터치’ 멤버로 ‘춤 인생’을 시작한 그가 가수로 데뷔하기 까지는 1970년대 3인조 형제 밴드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 아시나요? 당시만 해도 댄서가 가수로 데뷔하기는 쉽지 않은 시대였죠. 가수에게 있어 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상관없는 ‘끝 양념’과도 같은 것이었죠. 산울림의 김창훈은 이런 김완선에게 날개를 달아준 주인공입니다. 1985년 지금의 김완선을 있게 한 데뷔곡 ‘오늘밤’부터 데뷔 음반 전곡을 그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합니다. 춤추는 댄싱퀸, 그러나 진보적인 사운드에 완성도 있는 편곡 상태. 대중은 김완선에게 귀를 쫑긋 세우게 되죠.

 

  뮤지션의 탄탄한 음악과 비주얼 댄스의 만남. 1집의 실험이 있었기에, 김완선 음악 인생에 명반이라 불리는 2집이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1987년 발매된 그의 2집의 첫 타이틀곡은 ‘나 홀로 뜰 앞에서’. 1집에 이어 작사 작곡 및 편곡에 참여한 김창훈은 좀 더 펑키한 컨셉트를 강조했습니다. 1집에 비해 좀 더 빨라진 템포를 비롯해, 다소 신경질적인 창법, 여기에 당시 미국을 휩쓸고 있던 마돈나의 집시풍 패션까지 차용, 비주얼 음악의 완성을 보이게 되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음반 버전과 방송 버전을 달리해 철저히 ‘비주얼 가수’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죠. 김완선 이후 음반 버전과 방송 버전을 달리한 사례는 후에 강수지, 서태지와 아이들 등을 통해 ‘일반화’가 됐습니다.

 

  ‘나 홀로 뜰 앞에서’의 활동이 끝날 때 쯤, 김완선은 이미 발매된 2집 음반을 다시 찍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새로운 노래 ‘리듬 속의 그 춤을’을 넣어서 소위 ‘리패키지’ 음반을 발매하겠다는 셈이죠. 당시만 해도 이미 낸 음반을 새롭게 찍은 사례가 없었기에 무모한 결정처럼 비춰졌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김창훈이 아닌 또 다른 뮤지션이 김완선에게 ‘러브콜’을 했기 때문이죠. 바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신중현입니다. 그가 김완선을 염두해두고 만든 ‘리듬 속의 그 춤을’은 김완선을 단순히 춤 잘 추는 가수에서 음악성 있는 가수로 한 단계 뛰게 만든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를 발표하고 김완선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가수들이 모여 공연을 하는 ‘팩스 뮤지카’에 출연하게 되죠.

 

<1987년
발표된 김완선 2집>

 

  2집의 성공으로 김완선은 매번 음반 작업을 하면서 재능 있는 뮤지션들과 조우를 합니다. 팝 댄스 풍의 히트곡 ‘기분 좋은 날’을 작곡한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박청귀, 그리고 김완선 음악 인생 역사상 최절정기를 안겨준 손무현 등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특히 윤상과 함께 당시 ‘페이퍼모드’ 그룹 멤버였던 손무현은 김완선의 5집에 참여,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 무도회’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죠.

 

 

 

 

 

 


#4… 껄렁껄렁 블랙뮤직이 ‘부잣집 아들이 된 순간

듀스 3집 ‘포스 듀스’(1995)

 

  분명 힙합, 펑크 등 흑인음악을 들고 나왔던 힙합듀오 ‘듀스’는 당시 음악계가 이들의 음악을 수용할 만큼 깨어있지 않았기에 ‘댄스 그룹’으로 단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훗날 ‘듀스’는 한국 댄스뮤직, 힙합음악 역사 모두에 등장할만큼 음악성 넘치는 듀오로 평가 받고, 여러 후배 뮤지션들에게 재평가를 받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잘 된 일 아닐까 싶네요.

 

  1993년 데뷔한 듀스는 데뷔곡 ‘나를 돌아봐’를 통해 당시 유행하는 자메이카 랩을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이후 ‘우리는’, ‘약한 남자’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지만, 당시 문화 대통령으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에 눌리며 “가볍다”는 평가를 받았죠. 이에 팀의 ‘브레인’인 이현도는 모든 역량을 발휘, 해체 전 역작 ‘포스 듀스’를 내게 됩니다. 정규 3집이자 해체 전 마지막 앨범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가지지만 수록곡 전반에서 그 전과는 다른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죠. 3년 남짓한 커리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많은 음악적 시도가 담긴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1995년
발표된 듀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Force Deux’>

 

  ‘굴레를 벗어나’ 같은 ‘명령법’식 펑크곡은 이 앨범의 얼굴이자 이현도의 장기나 나름 없었습니다. 또, ‘뽕’기 가득한 트로트 멜로디를 힙합과 적절히 섞은 ‘상처’는 한국식 힙합, 이른바 ‘된장 힙합’의 면모를 보여주었죠. 또 힙합 재즈곡 ‘반추’, 뉴 잭 스윙 장르인 ‘너에게만’ 등 혈기 왕성한 20대 시절 이현도의 실험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5 주도
면밀한 컨셉트로 세상을 ‘바꾼’

이정현 1집 ‘렛츠 고 투 마이 스타’(1999)

 

  세기말 불안한 미래, 사람들은 밤마다 머리를 흔들며 ‘아모크’를 외쳤죠. 주문과도 같은 이 ‘아모크’는 당시 무도회장의 찬가와도 같은 독일 테크노 음악이었죠. 아, 정말 11년 전 테크노 열풍은 대단했습니다.

 

  그 열풍의 중심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가수 이정현이 서 있었습니다. 3인조 댄스그룹 ‘구피’의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 출연해 신들린 테크노 춤을 췄고, 조PD 2집 타이틀곡 ‘피버’에서 맛깔나는 랩을 담당했죠. 그 때 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1996년 영화 ‘꽃잎’에서 미치광이 소녀 연기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지라, 그 모습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 그가 1999년 9월 말 세기말 테크노 열풍을 담은 앨범 ‘렛츠 고 투 마이 스타’를 발표했습니다. 앨범 인트로부터 뭔 외계어로 중얼거리며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이어 나오는 2번 트랙 ‘GX339-1’은 “진짜 이정현 맞아?”라 의심할 정도로 괴기스러운 면모를 보입니다.

 

<눈깔로
앨범 재킷을 만든 –;; 1999년 이정현 1집 ‘Let’s go to my star’>

 

  하지만 무엇보다 대박은 4번 트랙 ‘와’에서 터집니다. ‘동양 테크노’를 표방한 그는 음악부터 비녀, 새끼손가락 마이크, 부채 등 패션 아이템까지 유행시키는 등 완벽한 컨셉트로 중무장하죠. 영화 ‘꽃잎’에서 보여준 신들린 연기 못지않게 그는 이 댄스음반에서 표현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모두 쏟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뷔 음반임에도 57만장이나 팔리는 인기를 얻었지만 1집의 잔상이 너무 컸을까요. 이후 그녀는 2집 타이틀곡 ‘너’에서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3집 ‘미쳐’에서 마법사 등 앨범마다 다른 컨셉트로 승부를 걸지만 1집의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넘는 데는 실패합니다.

 

  흥미로운 것 하나. 이정현 데뷔음반 12번 트랙은 ‘아이 러브 X’란 곡인데, 여기에는 1990년대 말 유행하던 사회 비판적 가사가 담겼습니다. 뭐랄까, ‘H.O.T’ 노래를 만든 유영진 식 화법이랄까요. 그런데 이 노래에는 조PD와 함께 당시 스물 세 살 청년 박재상이 등장해 신나게 랩을 합니다. 박재상, 누군지 아시죠? 래퍼 싸이입니다. 지금은 거물이 된 싸이와 조PD의 파릇한 시절 모습은 참으로 적응이 안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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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역사상 가장 '독한' 여성 듀엣 이야기 #1

 

 

  하늘 아래 태양은 두 개일 순 없습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톱 가수들, 특히 솔로 여가수들은 더욱 그러하죠. 그러나 우리는 간혹 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상업적인 ‘적과의 동침’이든, ‘화해의 몸짓’이든 라이벌 여가수들의 합작 무대는, 마치 ‘장미의 전쟁’처럼 치명적이고 아찔합니다. 상업적 흥행 때문에 뭉친 커플도 있고, 때로는 “듀엣 녹음 당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났다”는 홍보 자료를 뿌리는 커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이른바 ‘원수’ 마케팅 언론 플레이를 한 셈이죠.

 

  이유야 어쨌든, 팝 역사를 살펴보면 ‘독한 향수’같은 여성 듀엣곡들이 많습니다. 서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기 이름 먼저 써야 한다고 난리를 피운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같은 커플이 있는가 하면 시너지를 내서 완전 떠버린 흑인 여가수 브랜드와 모니카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가 여신’이라 불리는 2009년 팝 계의 핫 키워드, 레이디 가가와 ‘꿀벅지’의 원조 비욘세가 함께 만나 ‘텔레폰’이라는 노래를 발표했죠. 왜 이들은 뭉쳤고, 뭘 남겼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bs기자가 2회에
걸쳐 한 번 알아봤습니다.

 

 

 


#1… “디바 둘이 만나도 안 되는 게 있다…”

휘트니 휴스턴
VS 머라이어 캐리 (1998)

 

 

  1990년대를 양분했던 팝 계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당시 이들의 듀엣 결성 소식은 반가움보다 우려가 앞섰습니다. 빌보드 차트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죠. 잠시, 배경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1985년 데뷔, 1987년 내놓은 2집 ‘Whitney’로 여자 가수 역사상 최초로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1992년 영화 ‘보디가드’ 주제곡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로 빌보드 싱글차트 14주나 1위를 한,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록 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엄청난 그에게 제동을 건 사람이 바로 머라이어 캐리였습니다. 그는 1990년 데뷔하자마자 4곡을 연속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리며 화려하게 데뷔했죠. 이후 1993년 내놓은 3집 ‘뮤직박스’가 1000만장 이상 팔리며 전성기를 예고합니다. 아시다시피 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의 소속사인 ‘소니뮤직’의 사장이었던 토미 모톨라와 결혼을 한 지라 앨범 발매 후 마케팅 및 홍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엄청났죠. 안 그래도 엄청난 가창력을 소유한 데다가 ‘음반사 사장 부인’이라는 사실은 윷놀이로 치면 모에 모모모를 거듭한 효과라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두 가수가 마주친 것은 1995년 11월. 휘트니 휴스턴은 ‘보디가드’ 이후 두 번째 영화 ‘웨이팅 투 엑세일’의 사운드트랙 음반을 냈고, 이 음반에서 첫 번째 싱글로 뽑힌 ‘엑세일’이 발매 첫 주 곧바로 싱글차트 1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 다음 주 2위로 떨어지죠. 그 자리를 머라이어 캐리가 꿰찹니다. 그가 흑인 남성 4인조 그룹 ‘보이즈 투 멘’과 함께 부른 ‘원 스위트 데이’는 엄청난 물량공세와 함께 미국 전역에 울려퍼지며 1996년 3월까지 무려 16주간 1위를 차지하죠. 그 때문에 휘트니 휴스턴의 ‘엑세일’은 한 주만 1위하고 8주 연속 2위에 머물게 됩니다. 선배인 휘트니 휴스턴의 자존심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졌죠. 당시는 머라이어 캐리의 최 전성기이기도 했지만 1980년대 흑인 여성가수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휘트니 휴스턴이 1990년대를 상징하는 머라이어 캐리에게 ‘디바’ 자리를 물려준 셈이죠. 이 때를 계기로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팝 계의 대표 라이벌 가수로 자리매김 합니다. 특히 R&B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고, 둘 다 찢어질 듯 카랑카랑한 가창력을 자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죠. 언론을 통해 이들이 라이벌로 비춰질 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게 됩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머라이어 캐리를 ‘애송이’로, 머라이어 캐리는 휘트니 휴스턴을 ‘한 물 간 디바’로 봤던 것이죠. 신경전, 참 대단했습니다.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단 한 번도 만날 것 같지 않은 이들, 그러나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나요? 1998년 두 사람이 듀엣곡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1990년대 팝 뉴스 중 가장 충격적인 뉴스 중 하나였을 겁니다. 이들을 불러 모은 것은 1990년대 명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 이 흑인 뮤지션이 두 사람의 공통분모였던 셈이죠. 휘트니 휴스턴의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잇’, ‘엑세일’ 같은 곡을 프로듀싱했고 머라이어 캐리 역시 ‘네버 포겟 유’ 같은 곡에 참여한 명 프로듀서였습니다.

 

  그는 1998년 영화 ‘이집트의 왕자’ 사운드트랙 음반 작업 도중 두 사람에게 발라드 곡 ‘웬 유 빌리브’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베이비페이스는 휘트니와 머라이어 뿐 아니라 보이즈 투 멘, 케니 지 같은 당대 최고 스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프로듀서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당시 베이비페이스가 프로듀싱 했다는 곡은 발표 했다 하면 대박을 쳤다는 소리죠. ‘웬 유 빌리브’를 들은 두 여가수들 역시 “곡 좋다. 이 노래 꼭 부르겠다”는 반응을 남겼습니다만, 두 사람이 듀엣을 해야 된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아니 왜 하필…”이라고 말했다더군요. “어차피 포기 할 수 없는 노래라면 불러야지…”라고 마음을 굳힌 이들, 다음 걱정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럼 누구 이름이 더 먼저 나오나요?”

 

 

 

  그 자존심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행여나 상대방이 더 많은 소절을 부를까 베이비페이스는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눠 노래를 부르게 시켰습니다(노래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혹시나 더 튀려고 애드립을 과도하게 부리면 곡을 망칠 수 있기에 두 가수에게 최대한 자제를 시켰다는 후문도 들렸죠). 사이가 좋지 않다는 얘기에 녹음도, 재킷 사진 촬영도 각각 따로 했습니다만, 최종 문제는 노래 부른 가수 공식 명칭에 누구의 이름을 먼저 쓰느냐 였습니다. 이것 참 쉽지 않았습니다. 베이비페이스도 예상하지 못했거니와, 두 여가수 모두 자존심을 굽힐 줄 몰랐습니다. 결국 오랜 논의 끝에 싱글 재킷에는 머라이어 캐리의 이름과 사진을, 빌보드 싱글차트에 게재될 때는 휘트니 휴스턴의 이름을 먼저 표기하기로 했죠. 참으로 ‘깔끔한’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당시 두 여가수의 잠재력만 보면 ‘웬 유 빌리브’는 발매 첫 주 빌보드 싱글차트에 1위로 곧바로 직행해도 남을 상황이었죠. 하지만 최고 기록은 13위였습니다. ‘톱 텐’은 식은죽 먹기였던 두 여가수에게도 당시 차트 최저 기록곡이라는 불명예가 생겼죠.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노래 이후 두 여가수 모두 인기가 급강하게 됐다는 겁니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는 2005년 ‘더 이매시페이션 오브 미미’ 앨범 까지 7년 간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빌보드지(誌)에서는 ‘When you believe’ 제목을 패러디한 ‘When you’re tired’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두 여가수의 자존심 싸움에 팬들이 지쳤다. 폭발적인 두 여가수의 가창력이 칼처럼 날카롭게만 들린다. 베이비페이스의 감성적인 멜로디가 피로 멍들었다”는 혹평이었죠. “팬들에게 어떻게 들릴까”보다 “내가 어떻게 돋보일까”를 더 걱정했던 두 디바. 팬들의 귀를 혹사시킨 죄 값은 컸습니다. 1990년대가 저물며 그들도 함께 저물었으니까요.

 

 

 

 

 

 


#2… “남자에 대해 뭘 아냐고?”

철저한 마케팅으로 ‘윈윈’ 거둔 브랜디 VS 모니카(1998)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의 결합이 ‘자폭 게임’이었다면, 흑인 아이돌 여가수 브랜드와 모니카의 ‘더 보이 이즈 마인’은 소위 ‘대립’ 마케팅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요.

 

  1994년 싱글 ‘아이 워너 비 다운’으로 데뷔한 여가수 브랜디와 이듬해 ‘돈트 테이크 잇 퍼스널’을 발표한 모니카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10대 여성 아이돌 가수였습니다. 나이는 1979년생 동갑. 두 가수 모두 진한 힙합 리듬 위에 달달한 R&B 사운드를 얹어 1990년대 또래들에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두 가수는 ‘만들어진’ 가수의 전형입니다. ‘트렌디’한 흑인 음악으로 인기를 모은 데는 두 가수 모두 든든한 ‘지원군’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이죠. 브랜디는 키스 크로치라는 흑인 프로듀서가, 모니카는 TLC, 토니 브랙스톤을 스타로 만든 흑인 프로듀서 댈러스 오스틴)이 있었습니다.

 

  두 가수 모두 데뷔는 화려했습니다. 브랜디는 데뷔 음반 수록곡 중 ‘베이비’라는 싱글을 100만장이나 팔았고, 모니카 역시 데뷔곡 ‘돈트 테이크 잇 퍼스널’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죠. 하지만 두 여가수 모두 1집 활동을 접을 때인 1996년 초, 같은 시기에 2집 음반을 준비하게 됩니다. 생명력 긴 가수로 남기 위해선 1집 성공을 이을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데뷔 음반에서 보여준 신선함이나 귀여움을 계속 이어나가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두 여가수는 뭉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윈윈’을 목표로 두 여가수는 이 때부터 철저히 계획된 마케팅에 의해 움직여야 했습니다. “1998년 스무 살이 되는 해에 2집을 낸다(‘2’라는 콘셉트에 맞추기 위해)” “두 사람의 듀엣곡을 각각의 음반 타이틀로 하자” “귀여움과 깜찍함 말고 성숙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오갔죠. 무엇보다 핵심은 두 여가수를 ‘라이벌’로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트로트 양대 산맥인 ‘송대관-태진아’처럼 말이죠. 사실 두 여가수가 데뷔하기 직전, 10대 흑인 여가수 알리야가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브랜디와 모니카는 알리야의 후발 주자인 셈이죠. 명목상은 서로 ‘다투는’ 라이벌이지만, 이 구도는 후발주자인 두 가수에게 ‘은근히’ 상승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프로듀서들은 예측한 셈이죠.

 

 

  1998년 6월, 이들은 ‘더 보이 이즈 마인’이라는 듀엣곡을 발표합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설전. 그것이 이 노래의 주제였죠. 음색도 비슷하고, 통통 튀는 트렌디한 사운드가 단숨에 대중을 사로 잡았습니다. 이 곡은 싱글 발매 첫 주 27위에서 그 다음 주에 곧바로 1위로 직행했습니다. 그 이후 13주 동안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만큼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상 ‘짜고 치는’ 라이벌이나 다름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보이는 이들의 깜찍함에 매력을 느낀 셈이죠. “무조건 싸워라”의 콘셉트는 뮤직비디오에서도 나타났습니다. 10대 하이틴 스타들이 싸우는 그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 노래가 인기를 얻고 브랜디와 모니카 두 여가수 모두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브랜디는 이후 내놓은 싱글 ‘해브 유 에버’가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모니카는 ‘더 퍼스트 나이트’, ‘엔젤 오브 마인’이 잇달아 빌보드 1위에 올라갔으니까요. 이 곡의 프로듀싱을 맡은 ‘뚱보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도 명 프로듀서로 거듭났습니다. 잘 짜여진 싸움 콘셉트가 가수는 물론이고 프로듀서까지 살린 셈이죠.

 

  두 가수 모두 이제는 서른을 훌쩍 넘었고,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됐습니다. 전성기도 지났습니다. 예전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더 보이 이즈 마인’ 2탄 격인
이것을 기대해보는 건 어떨까요?

 

‘더 허즈밴드 이즈 마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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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半島)의 보아, 신대륙을 뜯어 먹을까?

 

 

 

bs의 HOT gRoovE…

그 첫 번째 시간은

대륙으로 건너간 BoA의 미국 데뷔 싱글 ”Eat you up” 입니다

 

 

 

"BoA in U.S.A,"

 

21세기 디지털 음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iTunes”에서 지난 달 가수 보아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사실 글은 뭐,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한국 가수 보아가 일본을 찍고 미국을 진출했다… 이런 내용인데

전 그보다 저 제목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꿈의 나라, ”어메리칸 드림”의 본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인 그 곳에서

보아를 주목한다는 걸까요? BoA in U.S.A…

뭔가 야심찬 느낌의 제목임과 동시에

동양인이 또 한 명 왔구나… 하는 걱정 근심이 담긴 제목.

그리고 그들은 보아를 향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Can She eat us UP?"

보아의 미국 데뷔 싱글 ”Eat you up”을 패러디해 만든 문장이죠.

미국인들도, 일본 팬들도, 그리고 보아를 키워온 우리들도… 궁금합니다.

정말 보아가 미국을 뜯어 먹을 수 있을까요?

 

 

#1… 기쁘다 ”댄스” 오셨네?

 

Eat you up.. 정말 제목부터 섬뜩한 이유는 뭘까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오 BoA 언니 이렇게 파워풀했나염?"(스무 살 소녀)

"보아양, 춤 실력 녹슬지 않았군 그래…"(서른 살 대기업 직원. 보아 팬클럽 ”점핑보아” 전 회원)

"완전 처녀 다 됐네, 근데 너무 살기 등등해서 무섭다 무서워"(40대 중반 아줌마)

 

이 중에서 ”점핑보아”의 전 회원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시죠.

 

"아뇨, 사실 그래요. 보아가 어느 순간부터 너무 발라드만 부르는 것 같더라구요.

한국 활동을 중단한지 3년이나 됐고 일본에서는 댄스보다 발라드가 더 반응이 좋아서 그런지…

그래서 정말 몇 년만에 파워풀한 댄스곡을 만나니 엄청 반가운 거 있죠. 으흐흐흐흐"

 

여기서 잠깐. 왜 보아에게 격한 댄스를 기대하냐… 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말씀 드리자면,

2000년 8월 데뷔 당시 보아가 주목을 받은 것은

노래보다도 바로 댄스였습니다.

TV에서 데뷔 무대를 본 사람들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꼬마가 뭐에 한이 맺혀 저렇게 격하게 춤출까"라며 눈이 휘둥그레졌죠.

보아의 최고 히트곡으로 꼽히는 ”No.1” 때도 그랬고 3집 타이틀 곡 ”아틀란티스 소녀”도

팝핀을 자유자재로 하는 보아를 보면서 무슨 저런 연체동물이 있나…라고 놀란 분들도 많았죠.

그 중 가장 절정은 2004년 ”My name” 때였죠.

온 몸의 먼지부터 오장육부를 다 털어내는 것 같은 ”털기춤”은

신들린 수준을 뛰어넘어 "저러다 쓰러지는 것 아냐"라고 걱정이 들만큼 격렬했죠.

 

<격렬함의 극치를 보여준 2003년 Rock with you 당시 사진>

 

그래서 Eat you up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그 격렬한 댄스를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3년 만에 보는 보아양의 파워풀한 댄스곡이랄까요?

2005년 한국 5집 앨범 ”Girs on TOP” 이후 격한 댄스를 주무기로 내세운 곡인데,

직직거리는 전자음을 섞어 적당히 트렌드를 반영한 모습도 보이고

보아 특유의 비장한 괴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간 일본 활동에 치중하면서 보아는 댄스보다 발라드에 더 애착을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20대가 넘어서면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증거일까요?

”Loveletter”, ”Everlasting”, ”Be with you” 등의 발라드 곡들이 오리콘 싱글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보아의 입지를 다져줬고,

댄스곡이라 불렸던 ”Make a secret”이나 ”Sweet impact”, 올해 초 발매한 싱글 ”Vivid” 등은

사실 보아의 주특기인 ”비장한 댄스곡”보다 달콤한 ”틴 팝”에 가까웠죠.

 

 

Eat you up의 뮤직비디오 역시 꽤나 공들여 찍은 흔적이 보입니다

미국식 뮤직비디오, MTV 이론에 가장 어울린다는 ”오디션”을 주제로 찍었는데,

이러한 모습은 영화 ”더티댄싱”, ”플래시댄스” 등에서 출발해,

2003년 Jennifer Lopez의 ”I”m glad”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하게 되죠.

오디션을 보던 로페즈가 갑자기 의자 위 줄을 당기자 물이 쏟아지는 장면은

그 후 두고두고 전 세계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효리와 에릭이 출연한 ”애니모션”에서 폭발을 하게 되죠.

아무튼, 이제는 고전이 되다시피한 오디션 콘셉트 뮤직비디오에서 보아가 한 일은 과연 뭘까요?

답은….

 

1) 심사위원에게 삿대질하기

2) 발 구르면서 지반 내려 앉히기

3) 상드리에 및 전등 깨부수기

 

입니다… 결국 격렬함의 끝은 오디션장 폭파로 마무리 됩니다.

5분 남짓한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얻은 결론은?

여하튼 보아는 격렬하다…………… 입니다

 

 

#2… 절박한 미국 먹기?

 

10월 21일 iTunes에 공개된 Eat you up은

곧바로 댄스차트 3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죠.

하지만 그 이상, 이를테면 빌보드 싱글차트 진입 소식이라든지, MTV 뮤직비디 차트라든지

좀 더 메이저급의 차트 성적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야 보아가 좀 더 성공하길 빌고 마냥 잘해주고 싶지만,

사실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보아의 가창력과 몸짓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간 미국 팝 시장에 문을 두드린 가수도 많았을 뿐더러,

동양의 느낌은 거의 없고 전형적인 미국 팝 트렌드 공식을 잘 따른,

말 그대로 "우리 흉내 잘 낸 동양애"라는 느낌이 강할 것입니다.

따지자면, 흑인 무리들이 한복입고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것이라 할까요?

 

그렇다면 과연 동양 가수의 미국 진출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동양 가수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 합니다.

1960년대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라는 노래가 히트를 친 것 외에

1970년대 일본 여성 듀오 ”Pink Lady”도,

19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의 전설이라 불리는 마츠다 세이코도,

그리고 1999년 데뷔 앨범으로 일본에서만 740만장을 팔아치운 대형 가수 우타다 히카루도

미국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다 철수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마츠다 세이코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도니 웰버그와 함께 듀엣곡을 불렀고,

우타다 히카루는 Justin Timberlake와 Madonna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명 프로듀서 Timbaland의 도움을 얻었지만

명함도 못 내밀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 시장에서 이렇다 할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동양인으로서 신기할 뿐이지, 미국인들에게는 이들을 대신할 가수들이 주변에 깔렸다는 걸 간과했죠.

미국 시장인만큼 미국인들에게 머리가 뚫릴 정도로, ”목캔디”를 먹어 시원한 것처럼 </font

뭔가 충격적으로 다가온 동양 가수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죠.

 


<미국 진출 기자회견 당시 연습 중 팔을 다쳐 깁스한 채로 나타난 보아>

 

그렇다면 보아가 Eat you up으로 신대륙을 조금이라도 뜯어 먹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지난 달 미국 진출을 알리는 기자회견 장에

보아는 팔에 깁스를 한 채로 나타나 화제를 모았죠. 연습 중 다쳤다는 말과 함께

팔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font

”깁스 투지”에 대한 놀라움보다

그만큼 미국 진출이 절박하게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로 데뷔 8년.

그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죠.

특히 일본에서의 활약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받았죠.

2002년 데뷔 앨범 ”Listen to my heart”부터 올해 발매한 6집 ”The face”까지

정규 앨범 6장이 연속으로 오리콘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그 중 2집 ”Valenti”와 2005년 발매한 베스트 앨범 ”Best of soul”은 100만장을 넘겼죠.

 

"

<한국 여성 가수로서는 최초로 일본에서 100만장을 넘긴 보아의 일본 정규 2집 ”Valenti”> 

 

그.런.데…

2005년 싱글 ”Do the motion”이 오리콘 싱글차트 1위에 오른 후

보아의 일본 활동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발매하는 신곡들이 차트 1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라기 보다는,

”여름 댄스곡 – 겨울 발라드” 구조의 반복을 시작으로,

전개 역시 달콤한 틴 팝, 애절한 발라드로 소위 ”쥐어짜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죠.

이러한 매너리즘은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올해 초 발매한 싱글 ”Vivid”의 경우

싱글음반에 무려 3곡의 신곡이 포함된 ”3A”(타이틀곡이 3곡인 싱글음반) 태로 발매됐지만

첫 주 2만장의 판매에 그치며 싱글차트 5위에 랭크되죠.

그래서 미국 진출은 보아에게 있어서 일종의 분위기 전환이 아니었을런지요.

달콤한 아이돌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하고 무시무시한 여전사로 미국에 데뷔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아직은… ”Do the motion” 같은 성인풍의 보사노바나

나이든 언니 스타일의 발라드 가수가 되기에는

보아에겐 ”에너지”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자,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신대륙을 뜯어 먹을 것인지, 신대륙으로부터 뜯길 것인지…

행여나 눈물을 흘리며 인천공항발 비행기에 오르면 어떻할까 고민하는 분들,

일단 걱정은 동여매시죠.

그녀의 올해 나이는 이제 고작 스물 둘이니까요.

 

 

뭐라도 씹어 먹을 나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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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 비사마 다 필요없다! 강마에를 찬양하라!

 

 

bs의 HOT boy & COOL girl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에게 똥.덩.어.리 의 세계를 안내해준

위대한 지휘자 강마에 씨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렬한 여성팬 4명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아임 고너 비 어 똥덩어리~”

  가수 비의 팬들에겐 섭섭할 얘기지만, 요즘 그의 신곡 ‘레이니즘’을 압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마에니즘(Maenism)’이죠. 최근 방영되는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인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주제곡으로 누리꾼들이 비의 신곡 레이니즘을 패러디해 만든 것입니다. 지난 주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에서는 그를 ‘싼마에’로 패러디한 코너 ‘악성 바이러스’까지 등장했습니다. 비록 드라마 속 주인공이지만 특유의 독설과 강한 눈빛, 그리고 카리스마는 비, 장동건, 조인성 부럽지 않을 정도의 인기를 만들어냈죠. 버벅거리는 아줌마 첼로 연주자에게 거침없이 날렸던 대사, “똥·덩·어·리”에 많은 여성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궁금해 합니다. 왜 ‘똥·덩·어·리’에 열광하는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독설가가 도대체 뭐가 좋은지. 여기, 자칭 ‘강마에 사생파(사생활을 지키는 무리)’라 말하는 4명의 여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마에니즘은 무엇일까요?

 

  “‘똥·덩·어·리’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이 멋진 것 같아요! 자기 라이벌이 후임 지휘자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녹차 잔에 담긴 티백을 씹었잖아요. 향 다 빠진 티백을 씹어서라도 향을 내겠다는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빳빳이 드는 카리스마… 예술가는 지조가 있어야 돼요.”(26세 음대생)

 

<음대생을 반하게 한 티백명민 장면>

 

  사실 강마에는 얼핏 보면 거만한 캐릭터죠. 주변에 눈을 치켜뜨고 걸걸하게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단번에 “재수 없다”고 상대도 안 할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니들(구성원)은 개야 난 주인이고.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짖어!’라는 대사에서 강마에는 배려심도 없고 자기중심적이죠. 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기 위해 집에서 쉴 새 없이 지휘 연습하는 노력파죠. 여기에 강아지 ‘토벤이’를 아끼는 감성적인 면까지… 여자들은 ‘외강내유’형 남자에 끌린답니다.”(40세 선생님)

 

<40세 선생님이 뻑 간 문제의 그 노력 현장>

 

  그건 좋게 말해 외강내유지 사실 ‘나쁜 남자’ 판타지 아닐까요? 튕길수록 매력 있나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전 요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복고풍 정장을 즐겨 입는 그의 스타일이 멋있더군요. 갖출 건 갖춰야 한다는 완벽주의 성격 때문 아닐까요? 갈색 구두를 신고 베이지색 코트를 걸친 모습에서 여타의 아저씨들과 달라요. 뭐니뭐니해도 완벽주의의 핵심은 베이지색 조끼죠. 꽉 끼는 조끼를 단추까지 잠글 때, 옆구리에 드러난 사선 세 줄, 정말 예술이죠.”(33세 의류회사 직원)

 

<의류회사 직원이 꼽은 갈색 매력>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남자도 강마에처럼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썩소(썩은미소)’를 날려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중년 아주머니는 왜 웃으세요?

 

  “강마에든, 베토벤이든 다 필요 없다. 이게 다 잘 생긴 탤런트 김명민이 하는 거라 그렇다. 니들 남편이 “똥·덩·어·리”라고 외쳐봐라. 똥을 한웅큼 던지고 싶을걸. 꿈 깨, 어서~“(45세 주부)

 

 

그래, 결국은 이거였다.

똥.덩.어.리 가 아닌

 

김.명.민

 

 

아줌마는 노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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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아무로도 춤추게 한다?

<아무로나미에의 비달사순 프로젝트 사진.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시아 필드와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 올랜드 피크>

 

 

bs의 IT STYLE IT tRENd 그 첫 번째는

J-Pop의 여신 아무로나미에 이야기입니다

 

  질문 하나. 칭찬은 정말 고래를 춤추게 할까요? 최근 일본 패션계에는 이에 버금가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패션 아무로도 춤추게 한다

 

  현재 일본은 1990년대 인기 여가수 아무로나미에로 떠들썩합니다. 지난 달 29일 발매된 그의 베스트 음반이 발매 3주 만에 100만장을 돌파하며 제 2의 전성기를 알렸죠. 1995년에 솔로로 데뷔한 그는 2년 만에 1000만장의 음반 판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었죠. 갈색 생머리, 까무잡한 피부, 롱부츠 등 그의 스타일을 추종하는 20대 여성들, 아무러(Amurer)를 낳기도 했죠. 하지만 스무 살의 나이에 임신, 결혼 발표 후 5년 만에 이혼을 했죠. 발랄한 유로 댄스에서 마니아적 힙합으로 음악 노선까지 바꾸자 팬들은 하나 둘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올해 베스트 앨범 ‘Best fiction’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 했습니다. 첫 주 68만장의 판매를 올리며 현재까지 140만장이 넘는 대박을 터트렸는데요, 1992년 15세의 나이로 데뷔한 후 1998년 첫 번째 베스트 앨범 ’181920′으로 160만장 판매를 올린 이후 10년 만에 밀리언 셀링을 기록했습니다.

아무로가 이렇게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계기는 바로 올해 초 ‘비달사순 프로젝트’ 때부터 였습니다. 시대는 머리카락에서부터 변한다라는 표어 아래 비달사순은 약 50억원을 들여 아무로의 신곡과 뮤직비디오, 샴푸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음악과 영상, 패션의 융합을 위해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던 패트리시아 필드와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 올랜드 피크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죠.

 

<1960년대 복고풍 스타일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New Look>

 

  이들의 목표는 옛날로 돌아가기.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을 음악과 함께 형상화 했죠. 아무로는 60년대를 대표하는, Diana Ross로 대표되는 미국의 흑인 여성 트리오 ‘The Supremes’의 ‘Babylove’를 리메이크해 불렀습니다. 헤어스타일팀은 그의 머리를 보브컷(단발머리) 스타일로 바꾸고 스타일팀은 그에게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H라인 미니스커트, 챙이 넓은 모자와 검은색 장갑 등 60년대 대표 패션 아이템을 입히는 거죠.

  70년대는 펑키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푸른색 짚 업 원피스와 후드 티셔츠를 입고 나와 흑인 여가수 Aretha Franklin의 ‘Rock steady’를 불렀고 80년대는 당시 유행하던 유니섹스 코드, 맥시멀리즘을 형상화 하듯 형광색 의상, 어깨 넓은 원피스를 입고 나와 뿅뿅거리는 전자음을 섞은 영화 ‘Flash dance’의 주제가 ‘What a feeling’을 리메이크했죠.

 

<1970년대 펑키 스타일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Rock steady>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광고 속 등장한 비달사순의 신제품 샴푸는 한 달 만에 50만개가 팔렸고 아무로의 노래는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단순히 복고를 재현했기에 대박이 난 것은 아닙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한 손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눈으로는 PMP 액정 화면에 흘러나오는 영화를 보는 현재의 멀티 세대에게 어필했다는 것이죠. 한 큐에 문화를 소비하려는 그들에게 화려한 패션과 음악, 춤이 섞인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흥밋거리로 다가온 것이죠. 이들의 성공에 국내 패션업계도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국내 비달사순은 가수 이효리와, 함께 패션과 음악을 섞은 퓨전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고 컨버스’는 힙합 프로듀서 겸 래퍼 패럴과 함께 디지털 싱글을 내놨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5감문화 시대. 21세기 패션은 앞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 같습니다. 잘난 아이디어 하나가 여럿을 벌어 먹이는 시대, 하지만 한 때의 돈벌이 이벤트일 뿐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에이, 그래도 형광색 티셔츠와 하이탑 슈즈 뺀 테크토닉 문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무로도 춤추게 한 패션. 자, 다음은 누가 춤 출 차례일까요?

 

 

 

<amuro namie ‘New Look’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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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스, 디지털 브릿 did it again?

 

 

 

 

 

 

 

bs…기자의 음반 뒤집기 그 첫 번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새 싱글 ”Womanizer”입니다.

 

 

 

”긴급 속보. Britney Spears did it again!”

 

16일자 빌보드지 온라인 사이트인 ”빌보드닷컴(www.billboard.com)”에서 발표한 속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브릿.

또 사고 쳤나? 라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클릭을 했더니 웬걸? 몇 년 만에 ”긍정”적인 기사가 떴습니다.

1년 만의 새 싱글 ”Womanizer”가 싱글 발매 2주 만에 1위를 차지 했다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기사 제목에서 ”did it again”이란 문구는

브릿의 2집 타이틀곡 ”Oops, I did it again”(일명 ”오메, 나 또 해부렀네”)을 패러디한 것이죠.

잠깐. 이 대목에서 브릿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몇 가지로 구분을 하자면

 

1) 어라? 브릿 히트곡이 그렇게 없었나?

2) 브릿아… 정말 인간승리 했구나

3) 늙었는데 용 쓰는 구나

4) 이건 무효! 예전의 아리따운 브릿이 아냐!

 

엎어치든 메치든 결과는 브릿이 9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는 것. 자, 그럼 왜 이 시대는 ”Womanizer”를 택했고

사람들은 왜 ”파파라치” 수렁에 빠진 브릿을 9년 만에 건져 올렸는지

항목 별로 차근차근 한 번 알아볼까요? 자! 후비고~

 

 

 

 

#1

어라? 지금까지 브릿 뭐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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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이 1위 했다는 사실을 도통 믿을 수 없다는 분을 위해 이렇게 … 증거자료를 퍼왔습니다.

이번 싱글 ”Womanizer”가 그냥 1위를 했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요 놈, 얘깃거리가 많습니다. 1위를 하면서 총 세 가지의 빌보드 싱글차트 기록을 만들었네요

먼저, 서두에도 밝혔듯이 1999년 3주 간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브릿의 데뷔곡 ”Baby one more time”

이후 9년 만의 1위 곡이라는 것.

두 번째는 MP3 파일인 디지털 싱글 다운로드 횟수가 한 주간 28만 5000건으로

이는 2000년 이후 디지털 싱글 다운로드 집계 이래 여자 가수 노래로는 한 주 최고 다운로드 건수로 집계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올해 4월 28만2000건을 기록한 Mariah Carey의 ”Touch my body”)

세 번째는 가장 많이 뛰어올라 1위한 곡으로 기록 됐습니다.

이 노래는 지난 주 96위였는데 이번 주 1위를 했으니 95계단을 뛰어 오른 거죠.

신기한 것은 요 부문 1위는 바로 전 주에 탄생했습니다.

남부 출신 래퍼 T.I와 여가수 Rihanna의 합작 싱글 ”Live your life"가

지난 주 80위에서 1위로 79계단을 뛰어 기록을 갈았는데 한 주 만에 또 기록이 갈렸네요.

 

사실 브릿은 앨범형 가수였습니다. 1집과 2집이 미국 내에서만 각각 100만장 이상씩 팔았고

4집까 발매 첫주 연속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깃발을 꽂았죠. 그것도 2003년까지 최전성기 얘기죠.

그 후 베스트 앨범(4위), 지난 해 4년 만의 재기작 ”Black out”(2위) 등 아무튼 앨범 차트에서는 선전을 했습니다.

반면 싱글 차트서는 엄청난 인기에 비해서는 차트성적이 ”살짝”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2집 첫 싱글 ”Oops, I did it again”가 9위에, 2004년 ”Toxic”9위, 지난 해 4년 만의 컴백 싱글 ”Gimme more”가 디지털 싱글 판매에 힘입어 3위에오른 것 빼놓곤 다 그저 그랬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죠. ”꼬장꼬장한” 음악 평론가들의 갖은 혹평.

브릿 노래에 호의적이지 않은 라디오 DJ들(빌보드 싱글차트는 싱글 판매와 라디오 방송횟수가 합쳐져서 만들어집니다)

엄밀히 말해 음악보다 다른 화제(누드사진이나 파파라치 등)가 더 큰 가수였기에

”브릿은 가수가 아니라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의 친구일 뿐이다”라며

단순히 헐리우드 스타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이사실입니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9년 만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밟았고, 재기의 청신호를 켜게 됐답니다.

어제 오늘 그간 음지에서 숨어서 지냈던 전 세계 브릿 팬들이 옹기종기 모여 샴페인 파티라도 했을 분위기가 아닐런지…

 

 

 

 

#2 브릿의 인간승리

 

브릿만큼 사생활 노출된 스타도 없죠.

그래서 어찌보면 그녀는 전 세계인들이 동시에 키우는 ”바비 인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데뷔 초솜사탕 같은 아이돌 이미지,

3집 타이틀곡 ”I”m a slave for U”를 부르며 구릿빛 피부를 자랑한 섹시 이미지,

2003년 MTV 비디오 뮤직어워즈에서 그녀의 ”워너비”이자 대선배 가수 Madonna와의 딥 키스 등등

그녀의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춰졌습니다.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예견된 일이었죠.

 

그렇게 점점 스타가 되면서 그녀는 어쩌면 ”사생활 포기 각서”라도 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Justin Timberlake와의 염문설, 백댄서인 Kevin Federine과의 결혼, 그리고 이혼,

옷 사이로 삐져나온 살지 ”특종”이라 부르는 수많은 파파라치들 때문에

그녀의 추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특히나 클럽에서의 누드파티, 삭발한 채 길거리를 나선 이른바 ”삭발 브릿 사진” 등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그녀의 재기를 짓눌러버렸죠.

세기말의 바비인형, 밀레니엄 아이돌은 순식간에 ”흘러간 옛 가수”, ”재기 불능 아이돌”로 바뀌었답니다. <p

 

 

하지만 한 번 아이돌은 영원한 아이돌이었을까요.

Kevin과의 이혼 후유증, 24시간 내내 플래시를 터트리는 파파라치 속에서도

그녀는 지하실에서 세상을 깜짝 놀래킬만한 노래를 준비해왔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에게 해결책은 단 하나, 노래 뿐이었겠죠.

 

그렇게…

더 이상 빌보드 차트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그녀는

지난 해 ”Gimme more”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더니

드디어 올해 ”Womanizer”로 다시 아이돌 왕좌를 탈환하게 됐습니다.

단, 이제는 아이돌이라 하긴 그렇고 ”줌마렐라” 정도 어떨까요?

 

 

 

 

#3 ”굴욕”과 ”합성”을 넘어 결론은 ”디지털 브릿”

 

 

사실 Womanizer가 공개되자마자 호평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바로 위 사진 때문에 말이 많았는데, 이것은 재킷 사진도 아닌 그저 콘셉트용 사진입니다.

그런데 브릿도 ”디지털 CSI”라 불리는 전 세계 누리꾼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 없었죠.

문제가 된 것은 일명 ”과도한 포샵(포토샵 작업)”으로 합성 아니냐는 조작 의혹이었죠.

결국 이 사진은 슈퍼모 티아라 뱅크스의 몸을 합성한 것으로 밝혀졌고

”브릿의 굴욕”이라 불릴 정도로 웃음 거리가 됐죠.

 

 

(왼쪽이 슈퍼모델 티아라뱅크스원본 사진 /오른쪽이 리니 스피어스 사진)

 

 

뭐, 그렇다 하더라도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생각했는지 브릿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모든 걸 제처두고 9년 만의 컴백, 인간승리 등 오늘의 영광을 있게 해준 해결사는 ”음악”이었다는 사실!

그 비법은 바로 ”디지털 브릿”이었습니다.

뭐,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찬반양론이 아주 팽팽한데요

”Baby one more time”이나 ”Sometimes” 같은 손 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달콤한 초창기 음악

또는 ”(You drive me) Crazy)” ”Overprotected” 등의 멜로디 강한 댄스곡들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지금의 브릿 모습을 크게 반기지는 않을 듯 합니다.

 

음악으로 브릿의 9년을 나눈다면 1 2 3기로 나눌 수 있겠네요.

1집 Baby one more time 과 2집 Oops I did it again으로 대표되는 1기는

당시 "세기말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그의 손에서 다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로

아이돌 음악을 대표했던 프로듀서 Max Martin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Backstreet Boys, N sync,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Jive” 레이블 소속의 아이돌 가수들은

Max Martin 특유의 기승전결 뚜렷한, 찰 진 댄스음악으로 가볍게 1000만장 씩 팔았죠.

오죽 했으면 엄청난 앨범 판매에 놀란 록 밴드 Bon Jovi가 Max Martin에게 도움을 받아서

2000년에 ”It”s my life”란 곡을 발표했을까요.

 

하지만 아리따운 브릿이 언제까지 ”버블껌” 같은 달콤한 음악을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파격적인 변신을 한 것이 바로 2001년 발표한 3집이었습니다.

타이틀 곡 ”I”m a slave for U”는 그야말로 과거의 ”프레피룩(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복 스타일)”의 브릿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땀에 젖은 구릿빛 엉덩이를 흔들고 혀를 낼름거리며 나타났죠.

 

사실 이 때 왜 브릿이 섹시 콘셉트로 돌변했냐는 이유에 여러가지 추측이 나돌았는데

그 중 재미난 것은 라이벌이었던 Christina Aguilera를 따돌리기 위했다는 얘기였죠.

데뷔 시기가 같아 세기말 여성 아이돌 라이벌로 불렸던 두 가수는

2001년 브릿이, 2002년 아길레라가 각각 모두 섹시 콘셉트로 이미지 변신을 했죠.

누가 최고냐랄 것도 없이 요조숙녀에서 팜므파탈이 되려 서로 혈안이 돼 있었는데

이러한 두 가수의 대결은 200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Madonna를 사이에 두고

”Like a virgin”을 부르는 무대 위에서 더욱 치열했죠.

결국 이들의 눈물나는 구애 속에서 Madonna는 브릿과 딥 키스를 나눴고 다음 날 미국 언론은

”브릿의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죠.

 

그래서일까요? 두 가수의 섹시 콘셉트는 다시 3기로 접어 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나타났습니다.

브릿이 디지털, 일렉트로닉 섹시함으로 무장한 반면

아길레라는 2006년 3집 ”Back to basic”에서 1940~50년대 ”핀 업 걸” 이미지를 차용해 복고풍 섹시를 표방했죠.

 

 

자, 어쨌든

지금 브릿의 음악은 3기. 디지털 브릿입니다.

Womanizer나 지난 해 Gimme more 등에서 나타난 자극적인 기계음과 마찰음은 브릿 음악의 중심이 됐죠.

과거 Max Martin표 기승전결 뚜렷한 댄스곡과는전혀 달리

멜로디도 없고 쿵짝거리기만 하고 적당히 중독성 있는… 전형적인 디지털 음악을 추구하죠.

어떻게 보면 연예계 데뷔 9년, 노련해진 브릿의 영악한 선택이 아닐까요.

 

사실 Womanizer를 9년 만의 1위곡이라 할 수는 있지만

브릿의 대표 명곡으로 부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Baby one more time만큼 신선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으니까요.

그저 중독성 강한 최근의 대중음악 트렌드 공식을 정석대로 밟았다고는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의 신세대에겐

”원더걸스” 만큼이나 중독성 강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릴 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번 신곡은 일렉트로닉댄스음악의 ”Pink Floyd”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난해합니다.

지난 앨범과 비교하자면, 첫 싱글 Gimme more처럼 ”재미난” 노래도 아닐 뿐더러

지난 앨범 최고의 명곡이라 손꼽히는 ”Break the ice”처럼 웅장하고 스케일 큰 음악도 아닙니다.

좀 더 쉽게 쉽게, 편안해지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과는 달리

브릿은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적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듯 합니다.

이러다가 아예 멜로디 하나 없이 기계음과 브릿의 숨소리만 넣은,

난이도 100의 경지에 다다른 노래를 발표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갈수록 음악의 멜로디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강조되는 것은 바로 노래 가사입니다.

Gimme more 때도 시작부터 ”It”s Britney, bitch”라며 아이돌 가수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부터 내뱉었죠.

이번 Womanizer 역 제목부터 ”강한 여자” 이미지를 내뿜더

”Boy, don”t try to front(으시대지 마라)” 같은 명령을 남자를 향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혼, 파파라치 등을 통해 그간 남자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강한 분노의 가사로 나타내려 했 걸까요?

정확한 파악인지, 헛다리인지는 본인만 알겠죠.

 

확실한 것은 …

그녀가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뭔가 모르게 단련된 여전사, 남성과 ”맞짱” 뜰 것 같은 강한 여자의 이미지를

껴안았다는 것이죠.

올해 나이 스물 여덟.

모든 사람들이 ”게임 오버”라고 말할 때 마치 사이보그가 돼 다시 일어선 디지털 브릿. </font

과연 그녀의 제목대로 세상을 Womanizing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러 라이벌을 따돌리고 최종 목표인 제 2의 Madonna 바톤을 움켜 쥘 수 있을까요?

 

뭐, 이런 거창한 욕망…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니까 제쳐두자구요.

 대신 100만불짜리 썩소 한 방 날리는 브릿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그의 회심어린 한 마디도…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너넨 다 죽었어!"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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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무도 음반을 사지 않는 시대, ”Delete”버튼으로 음악을 좌자우지 하는 시대.

하지만 전 아직도 음반 위에 덮인 비닐을 만질 때마다 가슴 설렙니다

내 지문이 묻지 않은 그 음반을 손으로 뜯을 때의 그 희열…

그래서 전 ”음악 바보”라 불립니다.

 

바보가 돼도 좋습니다.

저는 아직도 음반이 좋습니다.

그보다는 전 음악이 좋습니다.

여자친구가 없어도 음악이 있어 오늘도 튼튼한 두 다리 믿고 살아가고

선배의 쪼임과 갖은 구박에도

"퇴근 후 Babyface의 새 음반을 사러 가야지"라는 다짐과 설렘만 믿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 꿈은 가수였고, 음반 기획자였습니다.

하지만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처럼 멋지지도 않고

빅뱅의 대성처럼 귀엽지도 않아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그 후 세 번째 꿨던 꿈… 음악 기자가 되는 것. 이것을 선택했습니다.

2004년 동아일보 입사 후 문화부에서 대중음악담당 기자로 2년 7개월 간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잠시 외도 중입니다.

산업부 위크엔드팀에서 제 2 전공이라 할 수 있는 패션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음악과 패션. 그래서 사내에서는 저를 두고 ”동아일보 딴따라 기자”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이런 블로그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신문에는 쓰지 못하는

저만의 groove한 세계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음악, 그리고 패션…

저녁 한 끼는 굶어도

나를 설레게 하는 노래 한 곡은 꼭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

그리고 술 값은 없어도 마크 제이콥스의 ”신상” 재킷은 어떻게든 두 손에 꼭 쥐어야 잠을 자는

여러분들에게 바칩니다…

 

오늘도 gRoovE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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