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원화(한국돈)으로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한 북한문제전문가가

남북교역 대금 및 북한 근로자 임금을 원화로 결제하자는 구상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습니다.

[6월29일자 동아일보 <"남북경협제도개선" 전문가들 목소리 확산>
참조]

 

북한이 과연 원화를 받으려 하겠느냐의 문제는 둘째로 칠 경우,

이 구상은 우리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남북경제교류에서 원화를 결제수단으로 삼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남북경협자금이 북한의 군사자금으로 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혹은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둘째로는 원화 지불의 결과로 파생될 수 있는

남한의 경기부양 효과입니다.

원화를 받은 북한은 그것을 가지고 필요한 물자를 사기 위해 남한의 물건을 되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북한이 원화를 제3국을 거쳐 달러로 교환하고자 할 때에도

-그 경우 메커니즘이 좀 복잡해지겠지만- 결국엔 남한 경제가 이득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물론, 모든 북한전문가들이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이는 가능한 "방안" 중 하나죠.]

거기에 덧붙여 저는 향후 남북통일을 향한 장기 대책으로서도

그와 같은 방안이 어떤 식으로든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부터라도 북한 내에 원화를 유통시켜서 향후 발생될 "단일통화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만약 북한에 원화를 유통시키는 방안이 혹시라도 성공할 경우,

이는 남북경제협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판단합니다.

즉 정치적 통합은 장기 과제로 남기더라도

경제통합은 가속화하자는 것이죠.

 

물론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만약 북측에서 원화결제를 완강히 거부할 경우엔 이 구상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측에서 협상을 교묘히 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짜본다면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순전히 제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고 이야기하자면,

저는 개성공단과 관련해 북한측에서 제시한 모든 조건을 수락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단, 그 때의 전제조건은 "유씨의 석방과 신변안전 보장 각서"와 함께

모든 결제를 원화로 한다는 토를 다는 것입니다.

즉 인상된 임금을 원화로 결제함과 동시에 토지사용료 등 5억불까지도

원화로 결제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경우에도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과도한 임금인상"이라고
반발하여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원화결제"가 성사된다면 이는 그 자체로

협상의 승리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성사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 같은 한낱 필부의 생각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원화결제 구상은 전문가들 생각이고, 제 생각은 거기에 덧붙여 개성공단협상에서

파격적인 방법으로 원화결제를 달성하는 전략까지 포함됩니다. 물론 "가능한
방안" 중 하나로요.]

그리고 위와 같은 생각은 "가능한 여러 대안"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생각 말고도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야겠지요.

 

제 생각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남북교류의 결과로 북한의 핵개발이나 군사자금 축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남북교류의 틀과 제도를 바꾸고

이를 토대로 경색된 남북경제협력을 살려내고 북한 주민들을 돕고 우리 경제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대의만 지켜진다면,

저는 가능한 어떤 대안이라도 찬성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참고 :

6월29일자 동아일보 내용에는

어떤 전문가가 그런 제안을 했는지 그 실명이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과 관련해 실명이 밝혀진 경우도 있습니다.

2009년 5월23일자 서울신문에서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가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교류 과정에서도 당시 서독의 통화를 통해 교류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경우에는 추가적인 자료를 찾아봐야 할 것 같고, 정확한 진상은 아직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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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미군포로 사망자 명단 기록자와 유족의 눈물

예전에 리더스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실렸던 글 하나가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그 글의 내용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기는 합니다만-

6.25전쟁 중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휴전 후 포로교환에 의해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한 병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병사는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추위와 굶주림 또는 총살 등의 이유로 죽어간 동료 미군들의

명단을 적었다고 합니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 소박한 꿈마저 이루지 못하고
죽은

한 친한 동료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 그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차츰 그 명단에 적히는 이름의 양이 많아졌습니다.

 

이 병사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고통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았고,

비밀리에 적어두었던 죽은 동료 병사들의 명단은

치약을 제거한 치약튜브 안에 그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말아넣는 방법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명단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북한에 의해

"공식적인 사망포로"로 기록된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이 명단은 "상부"에 의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무시되었습니다.

병사는 이를 개인적으로 보관하였고 본인도 한동안 이에 대해 잊고 지냈습니다.

 

병사는 전쟁 후유증(우울증, 공포증 등)으로 인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결혼도 몇 번이나 실패했으며 알코올중독에 빠지기도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참고로,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겪는 정신적 외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차대전 후에 "미쳐버린" 병사수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지요.

[19세기에 창안된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진 계기는 이 "미친
병사들"과도 연관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병사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어떤 여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실종된 것으로 처리"된 한국전 참전 군인의 딸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아니, 아버지가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 여부만이라도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명단을 가지고 있던 병사는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명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이름이 나왔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북한의 어디어디에서 무엇무엇을 하시던 중 돌아가셨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랑스러운 군인의 모습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대강 그런 말을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네요.. ^^)

그것을 보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 없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의 최후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오래된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명단을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이 명단은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40년간[1990년대 일로 기억..] 실종자로 처리된 수백명의 한국전 포로들의 사망을 확인해 준 자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병사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위대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새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국가는 이 병사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의 공로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수십년간 참전 군인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해

마음 아파했던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 이 이야기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1987년 KAL858기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은

위에서 언급했던 유가족들,

즉 40년간 아버지 혹은 아들 혹은 형님이나 동생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유가족들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는 전에도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잠깐 언급했던 이야기이도 합니다.

[6월 25일자 "뉴스스크랩논평" 참조]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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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교류는 김정일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저는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어야 하고

북한이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대의에 있어서는 여러 북한인권민주화 단체와 뜻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인권운동을 논하시는 분들 중에는

도대체 어떤 방법이 북한인권에 대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일정정도
방황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바로 황장엽 선생입니다.

 

황장엽 선생은 과거 "햇볕정책"은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이유 속에는 "햇볕정책"이

북한의 김정일을 바꾸지 못한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6월 15일자 황장엽 선생의 글 참조]

 

 

저는 그분의 생각이 아주 부당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저 역시 "햇볕정책"이 김정일을 바꾸지 못할 개연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황장엽 선생의 논리는 북한의 변화와 김정일의 변화를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저는 그 생각이 "자유민주주의적(주권재민) 사고방식"과

전혀 동떨어진 생각이라고 봅니다.

변화시켜야할 대상은 김정일이 아닙니다.

변화의 주체는 북한 주민이고 북한 주민이 변화되어야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를 오로지 북한의 권력자의 변화를 통해 이룬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생각은 북한의 주인이 김정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의 주인은 김정일이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 주민이 변화해야지 가능한 것이지 김정일의 의지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의 민주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지구상에서 민주화과정을 겪었던 모든 나라들의 민주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절대 권력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민주화를 추진하지 못합니다.

민주화는 오로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합니다.

김정일은 스스로 민주화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북한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민주화될 수도 없습니다.

북한의 민주화는 오로지 북한 주민의 각성과 그에 따른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의 민주적 각성입니다.

그와 같은 민주적 각성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현재로써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외부와의 교류(압력과는 다른 말이지요..)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도 끊임없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현실과 우리
현실을 비교하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현 시점에서 햇볕정책은 물론 기초적인 남북교류까지 부정하면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향상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요컨대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북한과의 교류를 지속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이뻐서 교류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답시고 남북교류를 부정하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김정일체제가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라는 대의에 입각할 때,

무엇이 과연 더 올바른 대북정책인지에 대해 황장엽 선생을 비롯한

그 분의 추종자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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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의 대화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사는데,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지요.

 

하지만, 철학자들은 그런 질문을 합니다.

예를 들어, 현상학적 사유의 근본에는 앞의 질문, 즉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그 자체 내에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상학에서 사용되는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공동주관성 혹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란 개념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양식이자 도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동주관성 혹은 상호주관성 혹은 간주관성이란 개념은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러 개인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생각들에는 "어떤 공통적인 것"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음…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대단히 칸트(Kant, I.)적인 사고입니다.

칸트는 인간의 사고에는 -서로 공유될 수 있는- 선험적 전제 혹은 선천적인 사유의
범주(가령 시간과 공간)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그로 인해 경험이 가능하고(이 부분은 언뜻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상호간의 소통도 가능해진다고 보았습니다.

후설(Husserl, E.)의 공동주관성 개념은 칸트의 사유방식을 확장하여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각각의 표면적인 생각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후설의 철학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면,

사회 속에서 서로 갈등하는 두 대립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만 곁들이면 "자연스럽게" 서로 소통하고
서로 협동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낙관적 해석에 반기를 들며 더 나아가서는 그와 같은 낙관론이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개하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L.)도 그런 철학자에 포함됩니다.

특히 그의 후기 철학(그의 대작 "철학적 탐구" 참조)이 그렇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대단히 심사숙고했던 철학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외국인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는 매우 깊은 사유의 결과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두 사람의 대화를 잘 추적해 보면 의외로 양자는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으며,

조금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두 사람 모두 "독백"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기실은 "독백"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했다고 믿으며

상대방 역시 실질은 "독백"인데 마치 나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믿는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이에 관한 일상의 예는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서로 잘 안다고 여겨지는 친구, 부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를 보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마치 잘 알고 있는 듯이 여기고 있지만

기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실은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 문제야말로 비트겐슈타인이 "공동주관성"의 맹점을 정확히 지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비트겐슈타인의 문제의식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결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로서의 "공동주관성"이 사전에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공동주관성"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배우고 가르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외국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서로 배우고 가르쳐 가는 과정"을
겪어야지만 그나마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비유와 같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사회 속의 각 개인들은 어떤 불변의 규칙이 미리 전제된 상황에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로 부딪혀 가면서 새로운 규칙을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창출해 나가면서 소통을 이루어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내
생각 속"에서

독단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자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는 그 빌어먹을 "딱지붙이기놀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낼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언급한 "딱지붙이기놀이"는

어떤 다른 사람과 마주하여 "생사를 걸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자신의 머리가 만들어낸 "타자에 대한 허상"을 미리 "타자에게"
부여한 다음 자기 멋대로

타자를 상상하고 그 타자에게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고 믿고 그 타자에 대해 공격하는

(혹은 반대로 타자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믿고 그 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도
하는)

행위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제가 임시적으로

만들어낸 말입니다.

 

요즘 들어 "소통"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화두로 제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현 시점에서의 우리 사회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통"의 문제는 사회가 유지되고 변화되는 전 과정과

연관되는 문제입니다.

 

서로간의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있으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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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재영 기자 "아버지 전상서(09-03-11)" 전문수록 및 기사 논평

잔해만 돌아온
KAL기
1987년 11월 27일 북한공작원 김현희 씨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한 대한항공기의 잔해와 승객들의 유품이 1990년
5월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도착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KAL기 폭파로
부친 잃은 본보 김재영 기자 ‘아버지 전상서’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희생자 중에는 중동건설 현장 근무 중 휴가차 귀국길에
올랐던 고 김상만 씨(당시 40세)가 포함돼 있었다. 고인의 아들로 현재 동아일보 국제부에 근무하는 김재영 기자가 11일 김현희 씨 뉴스를 보고
아버지께 쓴 편지를 게재한다. 김 기자는 사건 당시 초등학교 5학년(11세)이었다.》
아버지, 언젠가 만나면 꼭 여쭤
보고 싶었습니다.1987년 11월 29일 아버지는 무슨 꿈을 꾸고 계셨을까요. ‘고생했다’ 등 두드리며 어머니를 꼭 안아주고
계셨을까요. 저와 동생들의 함박웃음을 떠올렸을까요.마지막 편지에서 아버진 선물보따리를 한 아름 준비했다 하셨죠. 용케 휴가를
앞당겨 우릴 빨리 보게 됐다고 좋아하셨죠. 하지만 설레는 마음 싣고 바그다드를 떠난 비행기는 가족 누구의 가슴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시신 한 구, 유품 한 점도 없이.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벌써 22년이 흘렀네요. 전 비행기를 탈 때면 늘 창가에
앉아요. 아직도 어디선가 푸른 하늘을 날고 계시지 않을까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곤 합니다.

아버지,
거기에선 평안하신지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늘 고생만 하신 우리 아버지.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머나먼
땅으로 떠나 3년 동안 얼마나 힘드셨나요. 희생자 115명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죠. 열사의 땅에서 비지땀을 흘린 ‘건설역군’들, 맨몸으로 꿈을
일구던 20, 30대 젊은 역군들은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하고 말았습니다.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참
컸습니다. 가장을 잃은 젊은 엄마들은 슬픔에 잠길 틈도 없었지요.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머니도 3남매 키우느라 공장일
세탁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감을 찾아
뛰어다녔습니다. 이젠 못 알아보실지도 모르겠네요. 고왔던 30대 어머니의 머리에 벌써 서리가 내려앉았으니까요.
희생자
부모들은 산목숨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이 눈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언젠가 돌아올 거라며 늘 대문을 열어 놓으셨던
할아버지도 두 달 전 아버지 곁으로 가버리셨죠.오늘 TV로 김현희를 보았습니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을 만났네요. 출근 전이던 저와 함께 TV를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새까맣게 타
버려 재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았나 봅니다.
저는 직접 김현희를 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는 20년 전
법정에서 딱 한 번 봤다고 하시네요.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장본인을, 어머니는 20년 만에 어이없게도 TV를 통해 다시
봤습니다.착잡했습니다. 납북 일본인 문제만 부각되면서 이 비극이 국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됐습니다. ‘12년
만에 공개석상에 나온 그가 처음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희생자 가족이 아니었을까. 비록 유가족들을 위해 조용히 살려고 했다고 말했지만, 첫마디는
나는 가짜가 아니다가 아니라 희생자에 대한 애도였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희생자 가족이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의혹
없는 진실입니다. 김현희가 가짜냐, 진짜냐가 아니라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와 위로였습니다. 김현희가 다시 공개석상에 나선 이제라도 의문점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나요.김현희를 볼 때 그 뒤에는 참담한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것, 냉전의 산물인 역사의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국민들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한 살 때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이즈카 고이치로 씨의 애끊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네요. 끊어진 천륜을 꼭 다시 이어 가길 기원합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

 

이상은 동아일보 2009년 3월 11일자 김재영 기자의 기사 전문이었습니다.

 

 

[위 기사에 대한 저의 논평]

 

이명박 대통령은 1987년 KAL858기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경험하신 분입니다.

당시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115명의 희생자 중 이명박 대통령 회사의 가족들(현대건설
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그 사건의 주범이라면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관련된 증거들을 철저히 제시해야 하는 것도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1990년 발견되었다고 하는 KAL858기 동체 잔해는 북한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물관에 보존했어야 함도 물론이죠.

그 잔해는 폐기되었습니다.

차후 북한의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증거자료들을 스스로 폐기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동시에 지금이라도 조사단을 다시 파견해 사고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유품들을 단 한 가지라도 찾아내서 유족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김현희는 지금이라도 당장 유족들을 찾아가 눈물로 사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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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빅딜(Big Deal),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중도 실용주의를 진정으로 수용할 의지가 있다면

현시점에서 정치적 빅딜을 못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이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 모든 쟁점을 공화당 정책만으로
도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대로 민주당이 집권해도 민주당은 늘 의회의 공화당의 눈치를 보곤 하였습니다.

권력 균형 때문에 어느 한쪽이 독주를 못하게 되어 있는 시스템인 것이죠.

물론 집권당은 야당에 비해 자신의 정책을 수행하기에 유리한 위치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유리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즉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정책은 밀고 가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야당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골격이 갖춰진 의회민주주의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요.

 

현 시점에서 중도 정치를 표방함은 현안 각각에 대해 "중간"노선을
택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각 현안에 대한 중간은 마치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을 합친 다음 반으로 나누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것이겠지요.

중도 실용을 제대로 표방함은

어떤 현안은 정부안대로 밀고 나가고 다른 현안은 야당의 뜻대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현안은 몇 년간 시한부로 미뤄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럼 어떤 현안을 서로 맞바꿀 것인가인데요…

사실 빅딜을 생각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인데… 그 지점에 다다르면 박 터지게
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야가 만나서 잘 따져보고 협상하다 보면 그림이 아주 안 그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엔 "실리"도 중요하지만 "명분"이란 것도 중요해집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에 명분이 있고,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북한-통일"문제에 자존심이 실려있습니다.

지금 판은 한나라당이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고집 피우고 있고,
민주당은 "다 반대하겠다"인데,

실제로 현안은 공전만 거듭하고 있지 어느 누구도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 때 정부가 "경제" 명분과 실리를 챙기고,

대신 야당에게 "대북문제" 명분을 던져주면 저는 협상도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대북문제는 민주당 의견에 좀더 힘을 실어주겠다고 해 버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의 관한 공로도 과감히 인정하는 제스처도 보여줘야
합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6.15가 사기니 뭐니 해서 그렇게 말하는게 머쓱하겠지만,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 자신은 6.15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적은 없으니 그 공로를
인정해주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 제대로 풀 능력 없습니다.

5자회담?

한미회담하니까 오바마가 5자회담에 동의했다고요?

아닙니다. 오바마는 격식 때문에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도 6자회담이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죠.

러시아가 동의했다고요? 어느 정도 공감했는지는 모르지만 6자회담 얘기 또 합니다.

중국은? 당연히 결사반대하고 있지요. 어찌 그리 중국을 모른단 말입니까?

쌍동이 강경책 썼던 일본은? 일본도 아니랍니다.

그게 성공한 회담입니까? 망신이지.

더 이상 망신 당하지 말고, 차라리 민주당에게 넘기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 경우 북한도 협상(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물론 대북문제를 민주당으로 넘기면 정부와 한나라당이 받아야 할 것도 당연히
있어야겠지요.

4대강 받으십시오. 대운하 공약 아닙니까?

경제살리기 "명분" 아닙니까?

반면 북핵으로 초래된 남북경색은 공약이 아니었지요.

이러한 빅딜과 관련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타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단, 그 경우엔 가뜩이나 관계가 안 좋아진 불교계와 한판 붙을 위험도 있고 자유선진당도
펄쩍 뛸 위험성이 없지는 않죠.

불교계와 자유선진당은 다른 방식의 미끼를 줘서 달랠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아니, 불교계의 경우에도 대북유화책은 4대강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설득할 명분도
없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제 욕심인데, 4대강 사업하면서

북한 노동자들 데려오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건 남북 빅딜에 속하는 것이죠.)

괜히 외국인 노동자들 들여오지 말고요.

 

그 밖에 미디어법 같은 것은 그냥 2-3년간 미뤄두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라고요? 예, 소설입니다.

저는 위에 쓴 글대로 실현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에 쓴 글은 일종의 연습답안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정치의 전문가도 아니고 정책입안자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한 아마추어적
사고를 정책에 반영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전문가들이 개입하고 노련한 정치가들이 타협하면 어떤 식으로든 빅딜을
성사시킬 수 가능성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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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도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소견

흔히 정치에서 중도적 입장을 갖는 것에 대해

"우유부단하고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생각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에서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양극단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양극단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샌드위치 공격을 받을 것을 각오하는 선택입니다.

해방직후 우리나라에서 중도를 선택했던 정치인들은

좌우파의 맹공 앞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들 개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러한 선택이 역사적으로 요구되는 때가 있으며 그 역사 앞에서는 목숨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평화적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공고화하고

그 속에서 경제발전을 지속해 나가며 이를 토대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고 사회복지국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평화적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아직도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는 합의이고, 대화이고, 양보이며 건전한 경쟁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우파와 건전한 좌파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그 속에서 일정정도 서로 양보해서 룰을 만들어 나아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룰에 대해서는 서로가 최대한 지키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추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헌법은 준수되어야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악법이 존재할 경우엔 양보와 합의를 통해 고쳐야 합니다.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과 생각은 부득불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은 늘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적 규칙 속에서 갈등 자체를 제도화하여 사회적 갈등을 창조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어느 한편만이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배신입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용인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따라서 그 체제에서는 당연히

사상과 종교, 언론, 양심, 집회, 결사, 기업활동, 사회단체 및 정당결성 등의 자유는 각각 모두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좌익독재든 우익독재든 독재입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부득불 자유를 제한할 경우에는 "다중"이 합의한 법률에 철저히 근거해야 하며,

동시에 "다중"은 그 법률의 집행에 있어 자유와 인권침해 소지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감시해야 합니다.

독재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국민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때로는 좌파가 집권하고 때로는 우파가 집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 정권을 장악해도 민주주의의 기본적 룰을 지켜야 함은 물론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 체제를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착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적 정치는 어느 개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특정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서 중도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적 정치는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좌파가 우파를 용인하고 우파가 좌파를 용인할 수 있는 민주적 시스템을 끈질기게 지켜내는 정치입니다.

이러한 정치는 특히 지금처럼 평화적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정치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러한 체제를 옹호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란 것이 늘 불완전하고

어떤 한 사람의 천재가 한 사회를 천재적 능력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은 사실상 환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불완전한 여러 대안들을 이리저리 실험해 보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모두 인간이기에 피차 불완전한 것은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완전성이란 측면에서 서로 배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실용주의를 다시 한번 천명했습니다.

일단 그에 대해 환영합니다.

그것은 그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중도주의자라고 말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우파입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좌파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중도파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우파 정권입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우파 대통령이 중도 실용주의 정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의 사상이 중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우파의 입장에서 좌파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명박 정부가 과연 어느 정도 중도 실용주의를 밀고 나갈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서도,

그러한 노선이 실제로 어느 정도 실현될 경우 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좌파입니다.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시스템을 아직까지는 대안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좌파가 아니기도 하긴 합니다.

그보다 "확실히 더 나은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들은 늘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보다 좋은 것을 강구해야 하고 더 좋은 것이 나오면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어쨌든 현재까지는 일정정도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명박 정부가

중도 실용주의를 그 실질적 내용에 있어 어느 정도 견지해 나아갈 경우 그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러한 바람은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좌파 혹은 중도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그는 우파이고 그의 정권은 우파정권인데,

우파 정권더러 좌파 정책을 쓰게 한다거나 좌파정권이 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가 우파의 입장에서 좌파를 어느 정도 인정 포용하고,

정책적으로도 일정부분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양자간의 평화적 타협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화적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성숙시킨 공로로써의 만족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좌파에게 때로는 우파에게 얻어맞으며 결국 실패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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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藏於天下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누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내 것"이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집착은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더 나누어서 커질 수 있는 것을 내 속에 꽁꽁 숨겨두게
되어서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에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작은 것"마저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숨겨도 도둑은 귀신처럼 그 존재를 알아채어 훔쳐내고야
말 것입니다.

실은 그 어디에도 숨길 곳이 없는데 오늘도 이리저리 숨기느라 노심초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자(莊子)가 말했습니다.

천하를 천하에 숨기면 그 어떤 도둑도 훔쳐갈 수가 없다고….

그의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면서도… 어리석은 저는 오늘도 이 작은 마음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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