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鄕 德合一君
[고부지효일관 행비일향 합덕일군]
무릇 지식이란 하나의 관직에서나 효험이 있을 만한 것이고,
행동은 한 고을에서나 모범이 될 만하며, 덕(德)은 한 임금에게나
부합할 만한 것이다.
而徵一國者
其自視也 亦若此矣
[이징일국자 기자시야 약역차의]
그러므로 한 나라의 부름을 받은 자가 스스로에 대해 (자기가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마치 이(작은 새의 소견)와 같다.
[참고1] : 고부(故夫)는 표면상의
뜻으로는 "그러므로 무릇"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집어넣어
기계적으로 번역하면 좀 이상해 집니다. 즉 "그러므로 무릇(故夫)
무엇무엇한 것(중간의 내용들) 또한 이와 같은 따름이라(亦若此矣)(고
말할 수 있다)"라는
문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중간 문장을 넣어 만든 최종 문장은 좀 이상해 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무릇(夫대저,
보통, 일반적으로 말해) 무엇무엇하니(故)
무엇이 무엇하는 것은 역시 이와 같은 따름이다(亦若此矣)."라는
형식으로 번역해 보았는데, 뭐 어찌해도 대강은 파악된다고 봅니다. 큰 기대는 마십쇼.
[참고2] : 차(此)는
위 문장 이전의 문장<소요유-10>에서의 척안(斥鴳)으로 간주하여
번역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척안(斥鴳)은 "종달새"라고 번역하는 이도 있고, "메추라기"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튼 무엇이든간에 이는 붕(鵬)을
비웃거나 혹은 붕의 날아감(適南冥)을
이해하지 못하는 "작은 새"의 의미겠지요.
[世經評解]
지식(知)이 하나의 관직(官)에만 효용이(쓸모가)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일단, 일관(一官)의 의미는 "하나의 관직이라는 의미"를 넘어 "어떤
한 가지 일"로 좀더 확대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이란 어떤 한 가지 일에만 쓸모가 있다"라는
뜻이 되겠지요.
그래도 이 말이 선뜻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 "지식 만능주의"에 젖어있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거의 매일 어떤 지식을 추구합니다.
오늘의 사회를 사는 입장에서 보자면,
지식은 어떤 일에 쓸모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대체로 옳아 보입니다.
실제로 지식은 대체로 많은 쓸모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쓸모는 반드시 어떤 하나의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장자가 지효일관(知效一官)이라는 말로써 지식을 폄하하는 듯한 말을
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해석해 보겠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겠지요.
아무튼 그래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이
책 저 책을 찾아보기도 하며,
또한 이것저것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다가 보니, 마침내 그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당연히 그 "방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겠지요.
지식이라는 것은 대체로 위와 같은 것(위와 같은 과정과 결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야 비로소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이 진정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지식을 통한 문제 해결]
사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도 봅니다.
장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수반되고 결국 그 지식에
의해 어떤 문제가 해결됩니다.
다시 말해, 지식은 문제 해결의 순간에 스스로 그 효용성을 입증하고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그 다음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승리의
도취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승리의 도취감은 "이 문제 말고도 다른 문제까지 이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신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한 부분에서 얻은 자신감이 다른 부분으로 확장되는 것은
삶 전체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단, 과(過)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분야의 해법이 "반드시" 다른 분야의 해법이
되리란 "확실한 보장"은 없습니다.
어떤 하나의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사실은
무모합니다.
그것이 무모한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단순치 않고, 이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어떤 부부의 화목함의 비결을 다른 부부에 적용하면
화목함은커녕 더 큰 불화가 되기도 하죠.)
(또한 나의 답이 반드시 다른 사람의 답이 되는 것만도 아닙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답이 나의 답이 되지 않기도 하지요.)
다시 말해, "어제의 답"이 반드시 "내일의 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만약 정말로 그게 가능했다면, 인류는 이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새로운 문제는 늘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야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역사는 비슷해 보여도 늘 다르고, 사건은 비슷해 보여도 각각
독특성이 있으니
기존의 지식이란 단지 참고 자료가 될 뿐이고,
새로운 문제를 풀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실천(혹은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어제 주어진(얻어낸) 답"만을 가지고 "내일의
문제"까지
모두 완벽하게 풀겠다고 나서는 것은 "죽은 지식"으로
"변화하는 생생한 삶"을 재단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요약해 보자면,
제가 해석하는 위 장자의 문장(知效一官)의 요체는
"그 자체로 지식을 배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식에 대한
얽매임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쓰던 공부방법을 -당시에 그것이 아무리 효율적이었다고
해도- 대학교에서도 고수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고,
군대에서 유용했던 것을 가족관계에서 관철하고자 애쓰는 것도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대적인 지식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시대의 옳음은 바로 다음 시대에 무의미해질 수도 있지요.
때때로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로 경멸되기도 하나,
또한 때때로 그것은 비극적인 느낌을 동반하며 연민을 자아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농촌사회에서의 노인들의 지식" 역시 이에 해당될
수 있고,
(도시로 이주하면서 혹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지식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좀 씁슬하지요.)
"수많은 전통사회의 지식"들이 "현대"에
밀려 "무용한 지식"으로 전락한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독짓는 늙은이"가 그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비슷한 이야기 구조(과거의 지식에 집착하는 모습)를 가지고 있는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어리석게 묘사되어 있지만,
"독짓는 늙은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연민
그 자체"에 가까울 때가 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오로지 "전통 지식의 무력성"이란
시각에서만 보자면,
지효일관(知效一官)이란 말이 "낡은 것"을 배척하고
오로지 "새로운 것"만을
옹호하는 듯한 의미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새롭다"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도 하겠지만서도요...]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 혹은 오늘의 무력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지식에 대한 얽매임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 역시 "집착(얽매임)"
수준에 도달하면 그 또한 "역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거식증 환자처럼 말이죠.
거식증 환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먹을 것을 사다가
여기저기 쌓아놓지만 실은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그럼 뭐란 말입니까?
제가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혹은 "이것도
그렇다 저것도 그렇다"라는 식으로 계속 쓰다 보니,
혹시라도 짜증을 내실 만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지식은 쓸모있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예, 쓸모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이 부질 없는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지식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함께 무용해질
수도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예, 쓸모 있는 지식이란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함께 무력해진
과거의 지식이 언제나 무용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나마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과연 그게 가장 쉬운 건지는 잘
모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이 상대적이므로, 어디에도
집착할 필요는 없다"입니다.
즉 쓸모없다고 생각되던 것이
쓸모있는 것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쓸모있는 것이 쓸모없는 상태로 전화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며,
지식 역시 그렇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장자의 다른 구절에서 일례를
인용하여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단락의 이야기의 본체는 장자 잡편[雜篇] 외물[外物]편의
혜자-장자문답입니다.)
지금 여기 제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존재합니다.
사실 제가 발을 딛고 서 있기에는 그다지 "많은 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평의 땅만 있어도 저는 서 있을 수 있게 되니까요.
즉 그 시각에서 보자면, 제가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은 "필요한
땅"이고 나머지는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불필요한 땅"이 됩니다.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필요와 불필요를 이렇게 나누는 것이 우습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간이 나누는 "필요"와 "불필요"란
거의 대부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즉시 이동을 시작하자마자 이 "필요한 땅"과
"불필요한 땅"의 구체적 내용은 변화하게 됩니다.
즉 지금까지 "불필요했던 땅"의 일부가 "필요한
땅"으로 전화되고,
지금까지 "필요했던 땅"이 "불필요한 땅"으로
변화합니다.
그 경우 "옛 땅"은 불필요해졌고, "새 땅"은
필요해졌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옛 땅"을 다시 밟을 경우, 반드시
그러한 것만도 아닙니다.
오로지 "새 것"만을 더 옹호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제가 지식을 필요(유용)한 것이면서 불필요(무용)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면 위와 같은 예의 맥락에서입니다.
즉 모든 지식은 "잠재적으로 필요(유용)"한 것이면서
동시에 "잠재적으로 불필요(무용)"한 것입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파악할 때에만 필요(유용)와 불필요(무용)의
구분도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위의 예에서는 "필요", "불필요"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위 예에서 "필요"한 것(혹은 유용한 것)에 집착하면, 최악의
경우 단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어떤 하나의 지식과 다른 지식 사이의 대비를
통해 지효일관(知效一官)을 해석해 본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와 같은 해석만 고집할 필요 역시 없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식과 지식 이외의 것을 대비하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즉 지식을 지식 전체로 본다고 해도, 지효일관(知效一官)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것은 지식이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며, 지식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지식을 추구하다가 오로지 머리만 많이 써서 몸이 상한다면,
그것은 하나는 얻되 다른 하나를 잃는 것이겠지요.
더 나아가서 몸이 상하면 지식의 의미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로지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때때로 문제해결은커녕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죠.
아무튼 이상이 제가 지효일관(知效一官)의 의미를 해석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동의하시든 말든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장자의 원래 의도였다고 말하든 그렇지 않든 역시
개의치 않습니다.
어쨌든 지효일관(知效一官)의 의미를 위와 같이 해석하고 나면,
행비일향(行比一鄕), 덕합일군(德合一君)의 의미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행동은 어느 지방 혹은 어느 나라에서는 칭찬받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는 비난받는 행동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지효일관, 행비일향, 덕합일군의 예로 "작은 새(종달새
혹은 메추라기)"를
빗대어 말한 것은
그들의 지식, 그들의 행동, 그들의 덕이 "유용하다 무용하다"를
평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시각이 "유용성" 혹은 "필요"에 "갇혀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작은 새"에 대비되는 "대붕(大鵬)은
더 크거나 더 유용한 존재"라기보다는
"유용성"과 "필요"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연(自然)에는 필요와 불필요가 나뉘어 있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실은 모두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깨끗한 청소가 소임으로 규정된 청소부의 입장에서는 비 온 뒤 길가에
나온 "지렁이"가 불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반드시 깨끗이 치워버려야 할 존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단지 예입니다. 예에 집착하지는 마시고..]
자연(自然)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대붕우화 속의 "작은 새"는
"필요한 것" 혹은 "유용한 것"에 집착하고,
(어떤 것만을 선택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절대적으로 유용하다고 여기는 것을 뜻하며,
그 결과로 그 외 나머지의 것들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뜻하겠지요.)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을 "필요하고
유용하며",
그 나머지는 "불필요하고 무용하다"는 경직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사고의 최종 귀결은 자신은 유용, 그외 나머지 타인은 무용이겠지요.)
[극단적인 예로, 의사가 농사일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농부가 의업을 불필요하다고 여기거나 하는 등..]
[혹은 이 세상에 "중요한 사람"들만 가치 있고, 나머지는
무가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나"로 귀결되기 쉽기 때문에
나는 가치 있고 나머지는 가치 없고 등...]
그 때문에 이들로부터 "현자와 성인은 유용(존귀)하고, 나머지는
무용(비천)하다"는 식의 편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말씀을 따르는 "나"는 유용하고 성인의 말씀을
이해 못하는 "너"는 무용하다는 등..]
이에 비해 대붕(大鵬)의 입장에서는 "천지에 절대적으로
유용한 것도 무용한 것도 없고",
그러한 구분은 임시적이고 변동하는 것일 뿐이며,
만약 그 구분을 절대화하게 되면 잃는 것은 "인간의 자유"일
뿐입니다.
그럴 경우, 대붕의 입장에서는 "작은 새" 역시 무용하거나
쓸데없는 존재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 셈이며,
단지 그 얽매임으로 인해 자신을 속박하고 타인까지 속박하는
행태를 개탄하는 것일 따름이겠지요.
대붕우화의 "작은 새들"은 당시의 "재상",
"현자" , "군자", "임금(제후)" 등의 위치에 있으면서
[물론 반드시 그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겠지요...]
천지만물과 뭇 백성들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고
잘 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고 믿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지혜만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붕(大鵬)은 그러한 오만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도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천상천하의 거대한 협업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자기의
공"이라 여기는 것이니 그 어찌 위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功)을 모두 자기의 것으로 여기니 언젠가는 과(過)도 모두 자기의
것으로 받게 되는 날이 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대붕은 구태여 그 어떤 실체라기보다는
<"커다란 것"이지만 "작은 것"들을 포괄하기
때문에 "커다란 것">을 상징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계와 구분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기에 그것을
"크다"고 말하기도 어렵겠지요.
"크다"는 표현조차 임시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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