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것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때로는 밥보다 다른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길들여진 입맛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기 마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행복과 평화를 선물 받고 싶다면 좋은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너무나 익숙해 있으면 고마운 줄도 모른다.
듬직하게 집안의 평화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가 마음속으로는 항상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원할 때 찾아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른 사랑도 꿈꾼다.
이것저것 책임만 즐비하게 있는 결혼에 얽매이지도 않고 오로지 서로가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단순한 관계가 정부다. 자신의 ‘진정한 삶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랑이 필요해’ 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같이 인생의 책임을 짊어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꼭 남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자도 마음속으로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 꿈속에서라도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한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삶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정숙한 아내, 마네의 <독서>
모든 남자들이 아내에게 원하는 모습은 한결 같다. 자신만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우아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림속의 아내의 모습은 옷차림부터 다르다. 마네의 아내를 그린 <독서> 작품을 보면 더욱 더 느낄 수가 있다.
마네의 부인이 그의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어 주는 아들의 목소리에 만족해하고 있는 행복한 정경이다. 살갗이 비치지만 결코 드러남이 없는 드레스, 커튼, 의자의 커버의 색상은 모든 흰색 계열이다. 화면 가득 화사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흰색의 색조는 우아하면서도 순결함을 상징하고 있다.
그림 속의 정경처럼 마네의 부인 쉬잔느 레노프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마네의 피아노 선생이었는데 미인은 아니었다. 학생이었던 마네는 누드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돈에 의지하고 있던 그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다.
19살의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피아노 선생을 탐한 마네는 아버지의 허락이 없어 동거하면서 아들을 낳았다. 10년 동안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은 극비에 부쳐졌고 마네의 아버지가 죽은 3년 후에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림속에 등장하는 아들 역시 마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동생으로 행세를 했다.
아름다운 그녀 정부, 마네의 <올랭피아>
정부에게 정숙한 이미지를 원하는 것처럼 코메디는 없을 것이다. 남자가 정부에게 원하는 것은 관능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능적인 정부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마네의 <오랭피아>다. 마네는 아내와 정반대의 여자였던 빅토린의 관능적인 모습에 빠져 티지아노의<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다. 하지만 마네의 의도 달리 이 작품으로 인해 20여 년간 추문에 휩싸이게 된다.
마네가 추문에 휩싸이게 된 계기는 살롱전에 입선 때문이다. 개방적인 성격의 나폴레옹 3세는 살롱전 심사가 너무 엄격하다고 화를 냈고 그 다음해에 심사위원들은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입상시킨다. 그 결과 입선한 <올랭피아>를 보고 비평가는 물론 대중들도 분노를 터뜨렸다. 밤의 꽃인 매춘부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마네가 표현한 매춘부는 사실 사회가 감추고 싶은 치부였으며 사람들은 매춘부를 미술관에서 보기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올랭피아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에 등장하면서 파리 매춘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올랭피아는 춘희의 연적으로서 부끄러움을 모른 채 아름다운 육체를 팔아서 살아가는 매춘부의 이름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비너스를 상징하는 꽃은 장미였는데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올랭피아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난초는 사치와 여성의 성욕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목걸이와 슬리퍼만 신고 쭉 뻗은 다리 아래 음부를 손으로 가리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은 고상하고 우아한 여신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여자였다. 더욱이 목걸이는 창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는 올랭피아와 대비를 이루면서 그녀의 탐스럽고 풍만한 육체를 강조한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발기된 남성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 고양이는 1865년 살롱전에 출품하기 전에 덧 그려진 것으로 이 고양이는 마네의 추문의 상징이 된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비너스 발밑에 잠들어 있는 개를 마네는 꼬리를 세우고 있는 고양이로 대치했다. 전통적으로 검은 고양이는 악마의 의미를 암시한다.
당시 <올랭피아>를 비웃고 비난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주먹을 휘두르고 지팡이로 후려치는 소동이 있어서 그림 앞에 3명의 호위를 내세워야만 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마네를 보고 유명세를 타고 싶어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비난했다. 그들의 비난에 맞서 마네의 오랜 친구 에밀 졸라는 ‘<올랭피아>의 검은 고양이와 흑인 하녀는 색채를 제대로 적용한 예일뿐이다.’라고 반박했다.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이후 스캔들을 불식시키고자 자신의 동거녀이자 <올랭피아>의 모델인 빅토린 뫼랑을 다른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