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철완, 최동원을 만나다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최동원 kbo 경기운영위원.
1980년대 최고의 투수였던 그는 유종의 미를 부산에서 거두고 싶다고 했다. 바로
롯데 사령탑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다. 사진=황태훈>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죠. 부산은 저의 뿌리에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죠. 롯데는
제가 온 몸을 불살랐던 팀이에요. 그곳에서 공을 던지며 야구를 배웠으니까요.”

  최동원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51)의 요즘 심경이다.

  그러나
그는 안다. 마음대로 그곳으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롯데 구단이 불러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롯데 감독으로 야구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요. 여러 팀에서 러브 콜을 하더라도 제가 선택할 곳은 롯데뿐입니다.”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최 위원에게서 강한 스킨 냄새가 전해졌다. 외모도 그랬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금테 안경, 작은 눈매에 야무진 입술. 그리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거침없는 언변.
세월은 흘렀지만 선수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 뿐….  

  그는
경기운영위원으로 8개 팀의 야구를 즐긴다. 경기 마다 심판 판정과 기록을 분석해
보고서를 쓴다. 비가 내리면 경기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요즘은 전국 야구장을
돌고 있다. 올 시즌 133경기를 지켜봐야하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매일 보니 너무 좋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깊이 있게 볼
수 있어서 공부가 됩니다. 앞으로 다시 현업으로 돌아가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1980년대
롯데 시절의 최동원. 그는 시속 150km대 강속구를 배짱있게 뿌린 철완이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
위원은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불세출의 투수다.

  역동적인
투구 폼에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아무리 강타자를 만나도 그는 주눅들지
않았다. 칠테면 쳐보라며 공을 던졌다. 배짱은 그의 자존심이었다.

  최
위원은 그 당시 해태 선동렬(삼성 감독), 삼성 김시진(히어로즈 감독)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 3인방으로 불렸다.

  최
위원은 지난해 한화 2군 감독에서 물러난 뒤 요즘 경기를 지켜보는 제3자가 됐다.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야구장 곁에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한화
감독 시절에는 경기에만 집중했다. 승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선수 시절과
감독은 너무 달랐다.

  “선수는
경기만 잘하면 되지만 감독은 선수의 얼굴 표정, 발걸음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24시간
아들같은 선수들을 뒷바라지 해줘야 하는 자리죠.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팀워크가
무엇인지를 배웠죠.”

  그는
올 시즌 야구 판도를 ‘미로’라고 표현했다. 두산, SK, KIA 등 상위권 3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시즌 후반까지 순위 변동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까지 몸담았던 한화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굳었다. “한화가 하위권을 벗어나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에요. 김인식 감독님이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하죠.”   

  최
위원은 부산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요즘도 부산 경기를 보기 위해 사직야구장을
찾으면 야구 팬들이 “왜 롯데로 안돌아오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고향을 떠난
지 21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부산 팬들의 따뜻한 환영이 고맙기만 하다. 그는 “고향
팬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최동원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롯데의 프렌차이즈 스타 출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팀의 에이스였다.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책임지며 우승을 이끌었다. 자신의 통산 103승 가운데 96승을
롯데에서 거뒀다.

  하지만
1988년 선수협의회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그해 11월 삼성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됐다.
2년 뒤 그는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공을 던질 의욕을 잃어버린 게 이유였다.

  “선수협은
제가 잘되려고 추진한 게 아니에요.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데 불만이 있을리 없죠.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어려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선수협
사태로 롯데와 껄끄러운 사이가 됐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고향을 향해 있다. 부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그의 꿈이다.

  일부에서
‘최동원은 절대 롯데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최 위원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나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누군가 음해하려는 것 같다.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마구 휘갈기는 기사를 볼 때면 화가 난다. 롯데는 내 야구 인생을 불살랐던 곳이다.
어떻게 내가 그런 말을 하겠나.”

  최
위원에게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시간들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야구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던 때의
그 얼굴이었다.

  롯데
이야기를 할 때면 최 위원의 눈빛은 유독 빛났다. “경기 운영위원은 특정 팀에 치우치면
안된다”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은 숨길 수 없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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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불세출의 철완, 최동원을 만나다”

  1. 이수현 2009-07-01 at 9:40 pm #

    최동원 대단한 선수였죠…하하하 아직도 삼성과의 그 일이 잊혀지질 않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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