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이기고 이세돌도 위협…13살의 바둑천재들

 

 

■지겹게도 싸우는 마징가Z와 태권브이

 

어린이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아직 모르는게 많기 때문이죠.

사내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특히 싸움에 대한 호기심이 강합니다. 원초적인 호기심이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우리반의 ‘짱’은 누구일까. 나보다 쎈 아이는 누구일까에 대한 탐색을 한번씩은 합니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는 고전입니다.

 사자는 아프리카 사바나가 활동무대이고 호랑이는 아시아 밀림에서 사니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 사자는 무리생활을 하고 호랑이는 단독사냥을 하므로 1대1 싸움을 가정한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것.

그 어떤 이론적 근거도 꼬맹이들의 원초적 지식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신장 56m, 체중 140t의 거구에서 나오는 발차기와 눈에서 나오는 필살기 ‘자바늄 광자력빔’을 보유한 로봇태권브이.

입에서는 풍속 100m의 산성 회오리 ‘루스트 허리케인’을 불어대고 3만도의 열 ‘브레스트 파이어’를 가슴에서 발사하며 팔꿈치에서 ‘드릴 미사일’을 쏘아대는 마징가제트.

동네꼬마녀석들은 두 거인 로봇의 승자를 놓고 갑론을박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가 마징가제트가 되고 로봇태권브이로 변신하여 실제 싸움을 벌이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1976년 6월 26일,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무하마드 알리)와 이노키 간지(안토니오 이노키)의 역사적인 이종격투기가 일본 무도관에서 열렸을때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알리의 팬들이 “안 토끼냐 이노끼“라고 놀리면 이노키를 응원하는 녀석들은 ”무엄하다 알리“라고 응수를 했죠.

밤잠을 설치며 기대했던 세기의 대결의 결말이 ‘침대레슬러’와 ‘허풍복서’라는 허무함이라니…

 

김두한과 시라소니, 김일과 천규덕은 장난꾸러기 중학생들의 단골 라이벌이었습니다.

유지광, 이정재같은 깡패주먹들, 알밤까기의 재빠른 레스링선수 여건부, 만화에 나오던 타이거 마스크 등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개구쟁이들의 대역파이터로 등장했었지요.

 

사내녀석들이었던 때문이었을까요. 개구쟁이들의 관심은 주로 싸움이었죠.

 

원숭이 배설기관의 색깔에서 시작해 과일과 운송수단→민족영산을 거쳐 결국 조국근대화와 민족단결을 요구하는 군부정권의 선전으로 귀착되는 노래가 있죠. 구전동요같은 체재선전가요말입니다. (원숭이 xxx은 빨개-빨가면 사과-사과는 맛있어…로 시작하는…)

무엇을 하든 종착은 자기들 뜻대로 만들어버리던 시절이었죠.

 

인격이 여물지 않은 어린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무의식중에 그 물이 들었을까요.

자신이 알고 있는 각종 파이터들을 총집합시켜도, 원숭이의 결론이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이었듯이 마지막에는 한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언제나 파이터의 최종승자는 이소룡이었습니다.

노란 추리닝에 짐승울음같은 괴성으로 대변되는… 천재 파이터였죠.

서투른 솜씨로 돌리던 쌍절곤에 맞아 이마에 밤톨만한 혹 하나 안달아 본 개구쟁이가 있었을까요.

 

■이소룡과 효린

 

이소룡은 꼬마추종자들의 얼을 빼놓을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습니다.

 

작은 키(171cm)는 킥의 스피드를 높이기에 최적이었고 절제된 근육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잘생긴 외모뒤의 차가운 이미지는 맞춤형 액션스타였지요.

 

이소룡은 천재라 불릴만한 파이터였습니다.

그의 절제된 근육은 인간 이소룡의 모든 것을 압축해놓은 것입니다. 모든 남성의 로망이지요.

 

이소룡의 근육은 근육강화제 마셔가며 헬스클럽에서 역기들어 만든 근육이 아닙니다.

우락부락한 ‘과시형근육’이 아닌 스피드와 파워를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련해 만들어낸 ‘기능성근육’입니다.

 

보디빌더들에게 마라톤은 금물입니다. 마라톤은 근육을 최소화해 오래달리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야하는 단거리종목과 초인적인 지구력이 요구되는 마라톤에서 사용하는 근육은 전혀 다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였던 벤존슨의 근육을 기억하실겁니다. 마치 헐크를 연상시키는 삼두박근.

물론 금지약물복용으로 만든 공장형 근육임이 밝혀져 메달도 박탈당했습니다만 역설적으로 단거리선수들이 만들어야 하는 근육의 전형을 보여준 셈입니다.

 

신장 2m, 체중 170kg에 체지방 0. 온몸이 근육덩어리인 이종격투가 밥샙이 1회전을 넘기면 제풀에 지쳐 넘어지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이소룡의 근육은 이봉주의 그것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깡마르지만 찰고무같은 케냐육상선수를 연상시킵니다.

61kg의 몸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 콤팩트(compact)는 세계최고의 집적(集積)기술을 자랑하는 한국반도체에 못지않습니다.

 

이소룡 근육의 백미이자 유일하게 과장된 근육이 활배근(闊背筋)입니다.

광배근(廣背筋)이라고도 하는 이 근육은 허리에서 등에 걸쳐 퍼져 있습니다. 목과 등근육인 승모근(僧帽筋)과 연결돼있지요.

이소룡이 활배근을 활짝 펼친 모양을 보고 사람들은 ‘코브라같다’고 하지만 승민애비가 보기에는 활공하는 하늘다람쥐로 보입니다. 사람의 몸이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적어도 승민애비의 눈에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밀로의 비너스의 상’보다 훨씬 예술적가치가 높아 보입니다.

활배근은 주로 턱걸이를 통해 키워지는 근육입니다. 뛰어오르기와 배치기를 합작해야 겨우 턱걸이 3개를 하는 승민애비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근육이지요.

아 정말이지 만들어보고 싶은 근육입니다.

씨스타 효린의 가슴을 동경하는 젊은 처자들은 승민애비를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소룡이 천재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리얼리티’때문입니다.

 

훌륭한 액션배우인 그는 동시에 뛰어난 무예가였습니다.

트램펄린을 이용해 현란한 덩크를 보여주던 ‘할렘농구단’의 ‘앤터테인먼트 농구’식이 아닙니다.

이소룡은 길거리 격투를 통해 무술계에 입문한 리얼파이터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에 핀 꽃’이라고 칭송받던 절권도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한 종파를 이룬 것이죠.

 

리얼파이터 출신이라고 해서 60억분의 1이라는 ‘표도르’나 UFC 헤비급 챔피언 ‘브록 레스너’와 붙이지는 마십시오.

이소룡은 ‘싸움꾼’이 아닌 ‘무술가’였고 동시에 제임스 딘에 비견될 정도로 그시대 청춘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훌륭한 배우였습니다.

차라리 액션영화에 출연한 레스너의 외모와 연기력을 그와 비교하십시오.

 

■IQ 210의 김웅용과 13세 입단한 이동훈

 

김웅용은 그 시대 승민애비에게는 신비의 대상이었습니다. IQ 210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간 세계최고 지능.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의 어린이잡지에 김웅용은 단골등장인물이었습니다. 육영재단에서 발간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어린시절에는 ‘어깨동무’를 가장 자주 봤습니다.

3살 때 4개국어를 익혔고 6살에 일본 후지TV에 출연하여 미적분을 풀었다지요.

 

그는 천재의 대명사였지요.

 

세기의 석학 아인슈타인이나 뉴튼, 레오나르도 다빈치보다도 머리가 좋은 이가 한국에 있었다니요.

 12세 때 미국 NASA에 스카우트 되어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는 것이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신비의 대상이었던 김웅용은 또한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국민학교 때 공부못했던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마는 승민애비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조금만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김웅용’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저러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죠.

 

예나 지금이나 자식 둔 부모님들은 왜 이렇게 균형감각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세계최고의 지능을 가진 이와 본인 자식을 비교하다니요.

남자친구가 ‘권상우’나 ‘소지섭’이길 바라는 ‘오나미’스러운 여자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점은 승민애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동훈 초단이 13세의 나이로 입단을 결정짓던 날, 승민애비 장남인 정승민(鄭昇旻)군은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에게 혼이 났습니다. 나중에 이동훈과 자신이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야단맞은 것을 안 승민군에게 오히려 승민애비가 혼이 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바둑동네 천재들 입단이야기

 

한국바둑계는 특출난 천재1명이 주도했습니다.

바둑의 종주국이라는 중국이 고만고만한 준재들의 경쟁을 통해 바둑을 발전시킨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천재는 무엇일까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뛰어난 재주, 혹은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사전적 정의입니다.

 

천재는 연령과 관계가 깊습니다. 엄마뱃속부터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천재’를 이야기 할때 ‘입단(入段-프로기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둑동네에서는 초대천재로 조훈현을 꼽습니다.

50년이 지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최연소입단(9세7개월)기록이 그 논거의 시발점입니다.

 

경쟁이 심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이나 호적착오(53년생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52년 용띠라고 합니다)라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조훈현의 기록은 대단한 것입니다.

 

2차성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꼬마가 한 분야의 프로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은 돌아가신 유명한 대머리 해설가 김수영 사범은 언제나 조훈현-이창호 사제에 관해 두 가지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창호가 아마추어 때 나에게 석점을 깔고 졌다는거 아닙니까”

“천하의 조훈현이 저의 입단 동기입니다. 으하하”

 

김수영 사범은 1944년 생입니다. 입단 나이가 18세.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10대입단임에도 불구하고 조훈현보다 9살이 많습니다.

 

1997년 24살차이의 박성수(36세)-최철한(12세)의 사제동반입단자가 입단하기 전까지 심종식-유병호와 더불어 가장 나이차이가 많은 동기였습니다.

11세에 입단한 이창호는 어떤가요. 75년 7월 29일생이 86년 8월 1일에 프로가 됐으니 11세 3일입니다. 대회가 나흘만 빨리 열렸다면 10세입단이었을텐데요.

입단은 조훈현이 더 어린 나이에 했지만 경쟁의 치열함은 이창호가 윗길이었습니다. 이창호는 바둑계의 사관생도라고 할 수있는 연구생1기(정규54회)출신입니다.

 

연구생서열1위였던 이창호는 예선을 거쳐 올라온 4명의 경쟁자(김원, 김영환, 정현산, 이재일)와 2차례의 풀리그를 거쳐 프로가 되었습니다.

함께 프로가 된 김원(현 대한바둑협회 전무이사)는 말할 것도 없이 ‘부산의 신동’ 김영환과 ‘고흥의 투혼’ 정현산은 이창호가 바둑을 배우기 전부터 전국무대를 석권하던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넘치는 승부끼를 주체하지 못해 바둑이외의 승부에도 눈을 돌리며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 이재일도 당시에는 쟁쟁했지요.

최종본선 참가인원이 적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엄선된 엘리트들간의 승부로 대회의 긴장감은 한층 더했습니다.

 

아무튼 초등학생 입단자는 최규병(충암초교)이후 11년만의 일이지요.

 

이세돌은 12살이던 1995년에 프로가 되었습니다. 13세의 조한승과 동기지요. 한국프로바둑역사상 최강의 입단동기로 평가를 받습니다.

 

이세돌의 입단환경은 이창호와 또 다릅니다.

백년대계를 꿈꾸며 어린 유망주에게만 입단의 기회를 주겠다던 한국기원의 발상은 보편적평등권을 주장하는 비연구생 아마강자들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연구생2기(정규55회) 정현산, 김영환, 연구생3기(정규56기)공병주, 김승준을 배출한 후 일반 아마추어에도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지요.

이제 입단대회는 한국기원 연구생만 참가하는 대회와 모든 이에게 문이 열린 일반인대회로 양분되었습니다. 연구생은 물론 두 대회모두 참가할 수가 있었습니다.

 

71회 입단대회는 일반인대회였습니다.

당시 일반인대회 최종본선은 12명 풀리그방식이었습니다. 그중 1위와 2위가 프로면장을 받습니다.

 

지옥의 예선을 통과한 얼굴은 김진환, 조민수, 김찬우, 김동근, 원백희, 박상근, 한종진, 김강근, 이현욱, 조한승 등 10명이었습니다.

아마바둑을 휩쓰는 장년의 호랑이들과 지옥훈련으로 단련된 바둑머신 연구생이 6대4의 비율로 섞였습니다.

한문덕과 이세돌은 전기대회 3-4위로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했지요.

 

술을 사랑하는 김진환 7단은 세실배에서 우승을 했고 연구생출신 김찬우는 아마10강전 우승자였죠. ‘순천만 백호’ 조민수는 당시 대회진행자였던 승민애비에게 예의 그 걸쭉한 욕을 해댔습니다.

 

“어이 승민애비 이 xx누마. 니는 행님보고 인사도 안허냐 잉..확 눈x을 뽑아서 당구를 쳐불라”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대회장에서는 서로 거의 말이 없습니다. 그저 눈으로 인사하지요. 험한 아는체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욕쟁이할머니 식당에 가서 욕한다고 신경질 내보십쇼. 바보취급 받습니다.

 

쟁쟁한 멤버중 이세돌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비금초등학교 6학년의 코흘리개지만 당당한 입단1순위였습니다. 김찬우와 조한승에게 한칼 맞았지만 9승을 거두며 프로가 됐지요.

 

5살에 한글과 구구단을 깨쳤던 목진석은 오히려 바둑교실입학을 거절당했습니다. 너무 어리다는 것이 이유였죠. 결국 아마5단실력의 아버지(목이균)에게 바둑을 배웠죠.

바둑돌만진지 3년만에 어린이 대회에서 2회우승한 목진석은 승민애비가 신입사원시절이던 1994년 8월에 백대현과 함께 프로가 됩니다. 가원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꼬집어보고싶은 볼살을 지닌 귀여운 최철한이 아버지같은 스승 박성수와 함께 동반입단한때는 1997년 5월.

 

제자 이창호에게 밀리며 끝난줄 알았던 조훈현이 6관왕으로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월간바둑 막내기자가 된 김정민군이 ‘김성준배 어린이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군요.

 

당시 입단인터뷰에서 박성수는 최철한을 “옆에서 불러도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한쪽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최철한에 대한 오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력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2살연상 이세돌은 동문후배인 최철한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생활에서도 바둑에서도…바둑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라이벌로 성장할 물건임을 알아본 이세돌이 초장부터 기죽이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평가를 합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세돌도 대단한 사람이죠. 그 혜안이라니…

 

■천재의 대물림

 

올초 바둑동네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합천대회’였습니다. 정식대회명이 「합천군초청 2013 새로운 물결 영재 정상 바둑대결」

대회명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을 대표하는 정상3인(이창호․이세돌․최철한)과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 3명(변상일․신민준․신진서)이 대결한다는 기획입니다.

 

신민준과 신진서는 한국기원이 야심차게 마련한 영재입단대회 제1기생입니다.

2012년 13살과 12살의 나이에 프로가 된 전도유망한 어린이들이지요. 양신(兩申)으로 불립니다.

성이 같은 입단동기일뿐 남남입니다. 조훈현-조치훈이 형제가 아닌것과 같습니다.

 

‘영재입단대회’는 지난해 신설됐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갈수록 상향화되는 입단연령대를 낮추자는 고육책입니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에서 살펴봤듯이 「10대초반입단=성공」의 공식은 바둑동네의 상식입니다.

 

인공적으로 연령을 끌어내리는 것이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냐는 의문은 있습니다.

“형들도 못 이기면 어찌 영재라 할수있냐”는 이세돌의 말은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참가연령을 제한한 ‘영재입단대회’는 어쩌면 또 다른 차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신’이 한국바둑의 희망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재입단대회는 이 두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고 까지 합니다. 또래에서는 당할자가 없습니다.

 

신민준은 ‘대왕의꿈’ 연출자로 유명한 신창석 PD의 장남입니다.

2011년 ‘제11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대회’ 우승자입니다. 9회우승자가 이동훈이고 7회는 나현이 우승했습니다.

두 눈을 꿈뻑거리며 딴청을 부리다가 무심결에 착점하는 자세가 특이합니다.

 

신진서는 김영환-최철한으로 이어지는 부산출신신동의 계보를 잇습니다.

나이는 민준이보다 1살 어리지만 대한생명배 우승은 오히려 1년 빠릅니다. 그해 정현산배, 이창호배등 각종 어린이 대회를 싹쓸이했지요. 10살때요.

입단대회에서도 신민준을 누르고 1등을 차지했습니다.

전문도장에서 수업하지 않고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고독한 어린 사무라이입니다.

 

1997년생인 변상일은 ‘양신’보다 6개월 앞서 입단했습니다.

영재입단대회가 아닌 일반인대회를 통해 프로가 되었습니다. 양신보다 더 험한 코스를 거친겁니다.

 

영재VS정상대결은 바둑TV의 민완PD 오승석군의 기획입니다.

정상측은 이세돌-박정환-최철한이, 영재편은 신민준-신진서-이동훈이 출전한다는 내용이었죠.

 

한국기원에서는 박정환을 이창호로, 이동훈을 변상일로 교체했습니다.

박정환은 랭킹2위의 강자이지만 아직 10대 청소년입니다.(지금은 생일이 지나 성년이 됐군요) 관록을 갖춘 정상프로기사가 한국바둑의 미래를 이끌어준다는 대회콘셉트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랭킹은 14위로 상당히 떨어졌지만 상징성과 흥행폭발력을 갖춘 이창호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동훈은 변상일보다 1살 어립니다. 1998년 생이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가 재작년에 13살의 나이에 입단하던 날, 우리 승민이는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혼이 났습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승민이가 뒤통수를 한 대 맞고나서는 그 이유가 이동훈과 자신의 나이가 같다는 것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황당해 하더군요.

승민이는 억울했겠지만 승민애비도 나름 할 말은 있습니다. 뭐 프로기사로 키울 생각은 전혀없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독서라도 하고 있었으면 신경질은 덜 났겠지요.

아무튼 ‘영재’발굴이라는 취지에는 한 살 어린 이동훈이겠지요.

 

그런데 대회직전에 이동훈은 한국바둑리그 최종결승에서 소속팀 한게임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최종주자로 출전해 ‘신안천일염’의 한상훈을 잡았습니다.

국내최고의 대회에서 팀우승을 이끈 선수를 신인영재쪽에 포함시키는게 어색했습니다. 한마디로 ‘덩치가 커진 것’이죠.

 

영재명단에서 소속팀의 이동훈이 빠진 것을 확인한 차민수 감독이 기원사무국에 항의전화를 했었죠. ‘왜 동훈이가 빠졌냐’고요.

설명을 들은 차감독은 “우리 동훈이가 많이 컸구나”며 허허 웃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영웅과의 조우

 

1월 11일 이창호와 신진서가 바둑판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25살차이입니다.

 

신진서가 태어나던 2000년, 이창호는 기성(棋聖)전을 8연패(連覇)했습니다.

훗날 전설이 되는 농심신라면배 첫 번째 대회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서봉수를 누르고 왕위전 5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한중천원전에서 ‘밥’ 상호(常昊)를 4년연속 누르고 우승했습니다.

조훈현을 완봉하고 명인전 3년연속 우승을 이뤘습니다.

65승13패로 승률1위(83%)에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돌부처의 부동심에도 금이가게 만듭니다.

존경하는 영웅을 이긴 신진서의 소식은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할 정도의 일반인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둑동네 사람들은 ‘윤회’를 떠올리면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기괴한 소년 신민준은 시종일관 최철한에게 고전했습니다.

아무리 촉망받는 영재지만 ‘중천의 태양’에게는 안되는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이세돌에 이어 자신에게 프로데뷔 두번째 패배를 안긴 상대입니다. GS칼텍스배 예선. 완패였지요. 정상권프로의 매운맛을 톡톡히 봤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느긋하게 TV로 관전하던 승민애비는 기운 승부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잠시 후 휴대전화 문자에는 반대의 결과가 떴습니다.

 

「신민준, 최철한에 백으로 2.5집승」

 

그 바둑을 어떻게 이겼을까 의문이 갔습니다.

전성기의 이창호가 수없이 보여준 그 기술. 민속씨름 전성기 ‘털보’ 이승삼 장사의 특기. 바로 ‘뒤집기’였습니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깊이모를 ‘꿍심’을 감춰둔 소년. 그가 신민준이었습니다.

 

1월 13일 합천으로 자리를 옮긴 마지막 대국에서 이세돌은 제자 변상일에게 반집을 이겼습니다.

랭킹1위의 신승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두터운 반집’이었습니다. 프로사이에서는 뒤집히지 않을 승부. 이세돌의 완승으로 정상들은 간신히 체면을 세웠습니다.

 

변상일은 영재3인간의 대결에서 꼴찌를 한데 이어 정상과의 대결에서도 패배했습니다. 맏형으로서 각오가 대단했을텐데…

그러나 풀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중학생 상일이의 공식전적표에는 이미 원성진이, 이창호가, 목진석이 패자로 기록돼있습니다.

280명의 프로기사 중 이 소년보다 상위랭커는 16명밖에 없습니다.

 

한국사람보다 실력을 더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중국바둑계에 스카우트 돼 올해부터 ‘중국바둑리그’에서 뛴다는군요.

아 갑자기 또 승민군 뒤통수를 때리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동훈(15), 변상일(16), 신민준(14), 신진서(13) 그리고 오유진(15), 최정(16).

한국바둑계는 10대 초중반의 이들에게 미래를 맡겼습니다. 성급한 판단일까요. 아니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연구생만의 입단대회를 강행해 이창호를 발굴해낸 ‘혜안’의 재판일까요.

 

적어도 초대영재입단대회 출신 신민준․신진서의 활약여부는 향후 이 대회의 존속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겁니다.

합천군대회 기념사진을 보면서 문득 ‘천재도 대물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훈현이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였듯이…

 

상일이, 민준이, 진서는 천재대선배와 대결할 기회를 준 합천군에 감사해 할까요.

 

승민애비는 합천군에 매우 감사해합니다. 설날에 군수님이 보내주신 한우모둠세트를 맛있게 구워먹었거든요. 게다가 승민애비와 이름이 같은 합천군바둑협회 안동환 회장님이 부쳐주신 한과를 맥주에 곁들여 먹는 맛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흐흐…

 

두 번째 대회도 재미나게 잘 만들어야 할텐데… 오늘 오승석PD와 만나기로 했는데 술마시면서 잘 좀 부탁해놔야겠습니다.

댓글(2) “이창호 이기고 이세돌도 위협…13살의 바둑천재들”

  1. 운영자 2013-03-06 at 10:00 am #

    저널로그 운영자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닷컴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2. 언죽번죽 2013-03-08 at 10:57 am #

    글 잘쓰문 모하겠노 합천 소고기 꾸묵겠지…소고기 꾸묵으면 모하겠노 승민이 머리 혹만 늘어나긋지…혹 늘어나문 모하겠노 또 한과로 찜질하긋제… ㅎㅎ 결국 오늘의 소고기와 한과를 위해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워야 되고 이소룡은 열쉬미 뒷발차기를 해야되고, 바둑 천재들이 계속 나와야 된다는 말씀? 기사로 선정될 만하네요~ 잼난 글 맛있게 읽고 갑니데이~ 쫌 자주 올리소 마…느무 뜸해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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