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관찰기2. 가사분담의 진화

결혼 13년차 선배께 청첩장을 드렸을 때 대뜸 물으셨습니다.

 

“가사 분담은?”

“분담 할 것도 없어요. 예비신랑이 다 한데요. 저는 요리만 하래요.”

“결혼 전에는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 말을 ‘현실’로 만들려면 일단 엉덩이가 무거워야 해.”

“엉덩이요?”

“집안일은 못 참고 일어나는 사람이 하게 되더라. 보통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있을 때 참지 못하는 것도 여자. 먼지가 굴러다닐 때 참지 못하는 것도 여자야. 매번 네가 먼저 일어나는 게 반복되면 가사 분담은 물 건너가는 거지.”

 

생각해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남편은 ‘빨래는 내가 할게’ 합니다. 그리곤 잠잠. 지켜보는 저는 조바심이 납니다. ‘언제 하려나, 저러다 까먹는 거 아니야? 스트레스받느니 내가 해버리자.’

 


 

가출시위를 한 (그러나 전혀 통하지 않은) 다음 날. 그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남편이 할 때까지 기다려. 언젠간 해. 그러니까 기다려.”

 

다시 엉덩이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가사를 분담한다는 건, 가사를 믿고 맡긴다는 뜻이랍니다. 설거지가 남편 담당이라면 설거지를 점심 먹고 할지, 저녁까지 먹고 한꺼번에 할지, 밀가루로 할지 세제로 할지, 고무장갑을 끼고 할지 맨손으로 할지는 모두 남편이 정할 일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래. 엉덩이가 정말 무거워서 쉽게 일어나지 않아. 그래서 넌 속 터지지? 그럴 땐 물어 봐. 지적하지 말고 언제 할껀지 계획을 묻는거야. 빨리 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상의 해.”

 

가출할 게 아니라 묻고 의논했어야 한답니다. 특히 남편의 경우 말을 곧이곧대로 듣습니다. 남자의 특성이라고 하던데, 그 특성이 유독 강한 남자입니다. 제가 엉엉 울면서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입니다.

 

일단 퇴근하고 집에 와서 냉전을 종료했습니다. (저에겐 그날이 우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이지만 남편은 남편답게 아직도 제가 그 날 화가 났었다는 것도 모릅니다)

 

 

저녁을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옮깁니다. 남편은 어제처럼, 설거지 할 생각이 없습니다. 계획을 물어봅니다.

 

“설거지는?”

“해야지.”

“지금 할꺼야?”

“배부르니까 조금 쉬고.”

“언제? 오늘 생선 구워서 그냥 두면 계속 냄새 날 것 같아서.”

“음… 그럼 뉴스만 보고 할게.”

 

같이 뉴스를 봤습니다. 뉴스가 끝나면 정말 할까? 궁금했습니다. 진짜 일어나더군요. 남편은 설거지를 했습니다. 물론 밥 먹자마자 하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남편이 했다는 게, 남편이 할 때까지 제가 기다렸다는 게 중요했습니다.

 

 

가사분담 1단계 : 부분 전담제

 

가사 분담은 조금씩 명확해졌습니다. 제가 세탁기를 돌리면 남편이 널었고, 제가 먼지를 제거하면 남편이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남편이나 저나 집안일에 능숙하지 않다보니 ‘완전 전담제’ 보다는 ‘부분 전담제’가 편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분 전담제’에서는 항상 제가 먼저 “이제 우리 빨래하자” “청소하자” 나서야 남편이 움직인다는 겁니다. 이 말은 제가 없으면, 남편은 가사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성들은 평일에도 남성이 부재할 때 혼자서 가사노동을 수행하지만,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훈련’받고 ‘가르침’을 도움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이 존재할 때 한다. (조주은 기획된 가족, 조주은 서해문집)

 

‘부분 전담제’에서는 가사일이 여전히 저의 주도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거지를 계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남편에게 맡겼듯 청소 빨래도 ‘완전 전담제’로 바꿔 봅니다.

 

 

가사분담 2단계 : 완전 전담제

 

청소 설거지는 남편, 빨래 요리는 저. 이렇게 나눴습니다.

 

일단 남편은 ‘부분 전담제’로 가사일에 거부감이 없었고. 같이 해왔기에 어떻게 하는지 압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청소하기 전엔 창문 얼룩, 협탁 위 서재 먼지부터 닦아야 해. 바닥에 있는 물건들은 다 제자리에, 아니면 소파나 협탁 위로 올린 뒤에 청소기를 돌리는 거지.”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닦은 창문에는 얼룩이 그대로, 청소기를 밀었는데도 머리카락이 굴러다닙니다.

 

“창문 얼룩은 입김 불어가며 지워야지”

“저 액자 밑은 닦았어?”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나씩 말합습니다. ‘알겠어’ ‘알겠어’ 하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씩 구겨집니다. 잔소리로 들리나 봅니다. 음… 그렇죠. 땀 뻘뻘 흘리며 청소했는데 ‘할 꺼면 제대로 해’ 핀잔을 받으니 남편에게 집안일은 ‘해도 욕먹고 안해도 욕먹는’ 일입니다.

 

‘그래,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자’ 조용히 창문을 다시 닦고 머리카락을 주웠습니다. ‘현명해. 아주 잘했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선배들은 이번에도 아니랍니다.

 

“남편이 담당하는 부분은 끝까지 남편 몫이야. 남편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니까 다시 하지 마.”

 

제가 마무리하면 남편은 청소했는데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발견할 일이 없고, 그건 남편이 발전할 기회를 뺐는 것이랍니다. 끙.

 

다들 그런가 봅니다. 저같이 남편에게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지시하고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지적하는 걸 일컫는  말도 있습니다. ‘문지기 행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지기 행동을 하는 아내가 가사 노동에 들이는 시간은 협력하는 아내보다 주당 5시간 많았습니다. 가사 분담에 득이 아닌 실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문지기 행동’을 하면 서로 기분이 상합니다.

 

 

가사분담 3단계 : 권한까지 위임하기

 

문지기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저라는 문지기를 거치지 않고 가사일에 직진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렵습니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은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 ‘마음연구소’에 얼마전 ‘아이들에게 자유를,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자’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자는 글이지만, 남편은 우리집 큰애기니까, 남편에게 적용합니다) 글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네가 알아서 해보라고 말한다면, 그 말 안에는 스스로 하다가 잘못되어도 괜찮고 실수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내 결심이 들어있어야 한다. (중략) 실수와 잘못을 웃으면서 받아들이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그 답답한 과정을 지켜보고,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 내 통제 욕구를 끝까지 누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맞습니다. 지시하지 않는 건 지시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려웠습니다. 머리와 마음이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도 자율적 의지가 발생하기까지 1주일,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까지 2주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머리도 마음도 딱딱한 성인인 남편은 아직까지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제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아이니까 기다리고 지켜보는 게 당연하지만, 남편은 성인이기에 기다리기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지켜보는 동안 저도 조금씩 기준을 낮췄습니다. 남편에게 설거지 청소를 맡겼다는 건, 남편에게 권한까지 위임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내 기준이 아닌 남편 기준으로 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청소를 했으면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건 내 기준. 설거지를 했으면 행주로 싱크대 물기까지 닦아야 한다는 것도 내 기준이니까요.

 

남편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면, 저도 ‘그래’ 하기로 했습니다. 깨끗한 집에서 다투느니 좀 덜 깨끗한 집에서 알콩달콩 살기로 했습니다.

 

+ 사실, 아직도 가사분담을 두고 남편과 냉전을 하고 혼자만의 기싸움을 합니다. ‘남편 눈엔 괜찮은데 제 눈엔 엉망이어서’가 원인입니다. 그럴 때면 “대체 이것도 살림이라고 하고 사냐. 내가 너를 딸이라고 낳고 미역국 먹은 게 부끄럽다”는 친정엄마를 떠올립니다. 제 눈엔 괜찮은데 엄마 눈엔 항상 저의 살림이 엉망이거든요. 저도 울엄마 눈높이에 못 맞추고 사는데, 남편이라고 제 눈높이에 맞추겠습니까. 평생 못 맞춥니다. 인정!

aykim 에 대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 aykim@donga.com 애둘 엄마이자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다. 어렸을 때부터 30살에 결혼해 32살, 34살에 아이를 낳고 4인 가족을 완성해 행복하게 살겠다고 계획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획없이 살기가 계획이다. 포대기와 단동십훈을 즐기고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내가 워킹맘이라니… 하늘도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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