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관찰기1. 아이는 넷 낳자던 남자

“웅이 아빠는 원래 가정적이었어?”

“네? 그럴리가요.”

“글 보면 굉장히 좋은 아빠 좋은 남편 같아.”

 

‘그런가? 내가 남편을 너무 미화했나? 역시 남편 몰래 글을 쓰길 잘했다. 너무 으쓱하면 곤란해.’ 큭큭 웃음이 납니다.

 

인정합니다. ‘지금’의 남편, ‘지금’의 웅이 결이 아빠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이랬습니다.

 

 

“나 고등학생 때 수업시간에 각자 장래가족계획 이야기를 했었어. 그때 내가 아이 넷을 낳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미개하다더라.”

“아이를 넷? 설마 지금도 그 생각인 건 아니지?”

“여전해. 가능하다면.”

 

반면 저의 장래가족계획은 성별 구분없이 무조건 둘이었습니다. (제가 딸-딸-아들 삼남매 중 둘째 딸이거든요)

 

“그럼 나는 임신을 4번 해야 하고, 그 말은 4년간 배가 불러있어야 한다는 거네? 자신없는 걸. 그리고 낳는다고 끝이 아닌데, 어떻게 키우려고?”

“당신 있는데 뭘.”

“나? 넷을?”

 

아이는 넷을 낳고, 엄마가 있는데 뭘 걱정하냐는 남자. 말하지 못하는데 살아있는 건 무섭다며 집안에 화분 들일 생각도 말라는, 딱 한 명 있는 조카 따뜻하게 한 번 안아 준 적 없는 남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툭하면 저한테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여자는 엄마가 되면 아이들 챙기느라 남편은 뒷전이라며?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 1순위는 항상 나야. 알겠지?”

 

‘남자는 애나어른이나 같다더니… 아빠되면 달라지겠지’ 생각했지만 겉으론 “그럼, 오빠가 1등이지~” 웃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긴장됐던 결혼식은 ‘이것만 끝나면 신혼여행간다’는 기대로 버텼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죠. 여자 인생은 결혼 전후로 나뉜다더니, 결혼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순간 ‘이 옷들은 집에 돌아가면 모두 빨랫감이구나’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웃었습니다. 내 남자는 다르니까요. “빨래도 설거지도 청소도 모두 내가 할게. 당신은 요리만 해” 약속했거든요. 빨래 걱정은 내 몫이 아닙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 짐을 정리하며 “오빠 빨랫감은 여기에 모아둘까?” “어” …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빨랫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입니다.

 

저녁을 차리고 있으니 청소를 하겠답니다. 1. 먼지를 제거하고 2. 바닥에 있는 물건을 모두 올리고 3. 청소기를 돌리고 4. 물걸레질을 할 줄 알았는데 “나 청소할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윙- 진공청소기를 돌리네요.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면서요. 대학시절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한 남편의 ‘살림 신공’은 물건 피해 청소하기인가 봅니다.

 

저녁을 먹고 상을 치웁니다. 이제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남편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습니다. “오빠 설거지…” “어. 배부르니까 조금 쉬었다 할게” …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계속 쉽니다. 찝찝합니다. 음식 냄새가 코끝에 맴돕니다. 혼수로 장만한 예쁜 그릇들에게 미안합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신경쓰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맙니다.

 

■ 우먼센스 2015년 9월호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 둘 중 한명이 ‘가사 문제로 남편과 싸운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 2014년 사회조사 결과(가족 분야)에 따르면 기혼 남녀의 47.5%(남성 42.7%, 여성 52.2%)가 “가정에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사를 공평하게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남편의 16.4%, 아내의 16.0% 였습니다. 기혼 남성의 절반은 가정에서 아내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경우는 16%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가사일의 축이 서서히 저에게 기울고 있던 어느 주말 오후, 점심을 먹고 빨래를 접고 있는데 싱크대에 쌓인 그릇이 보입니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 이 남자는 설거지를 언제 하려나. 요리만 하라더니 요리도 내가 하네’ 버럭 화가 납니다. 피슝 피슝 컴퓨터게임 속 적에게 총을 쏘고 있는 남편 뒷통수를 향해 “차라리 한다는 말이나 말지. 대체 설거지를 하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연애 7년간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는데, 결혼한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버럭 소리 지르고 집까지 나와버렸습니다. 내 남자는 다를 줄 알았는데 이 남자도 똑같습니다.

 

버럭 소리 지르고 집을 나오며 생각했습니다 ‘조금 있다 들어가면 설거지가 되어 있겠지. 내가 화 난 이유를 남편도 알겠지.’ 한참을 걷다가 미안한 마음에 소고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거지거리가 그대로입니다. 더 허무한 건 “어디 갔다 왔어?” 남편이 태연하게 물었다는 겁니다. 소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썼습니다.

 

일회성 일이면 ‘좋은 게 좋은거지’ 눈감고 넘어갈테지만 가사 분담은 매일 반복될 일상입니다. 가출이라는 나름의 극약처방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방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결혼하기 전 “가사 분담을 하려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던 선배의 조언이 생각났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2편. 가사분담의 진화에서 이어집니다)

aykim 에 대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 aykim@donga.com 애둘 엄마이자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다. 어렸을 때부터 30살에 결혼해 32살, 34살에 아이를 낳고 4인 가족을 완성해 행복하게 살겠다고 계획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획없이 살기가 계획이다. 포대기와 단동십훈을 즐기고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내가 워킹맘이라니… 하늘도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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