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육아 오지랖’을 사양합니다.

“낳는다고 다 엄마가 아니야… 그럴꺼면 애를 낳지 말지 그랬어” 그리고 이어지는 쯧쯧쯧.

 

워킹맘이 되고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입니다. 잊을만 하면 들리고, 잊을만하면 또 들립니다.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길 마주친 낯선 어르신이 툭, 인터넷에 올린 글에 악플이 툭. 생채기가 툭툭 납니다. 그리고 생채기가 투두둑툭툭 동시다발적으로 생길 추석이 다가옵니다.

 

돌이켜보면 마냥 즐거웠던 명절은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입니다. 상위 1%는 아니었지만 SKY 대학을 목표로 삼을만큼의 성적은 유지했습니다. (결국 SKY 대학은 가지 못 했습니다 ‘_’)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공부 잘 한다는 이야기 들었다. 열심히 해라’ 어깨를 토닥이셨습니다.

 

대학생이 되니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취업 준비는 잘 되어가니’로 시작된 잔소리는 취업을 하니 ‘남자친구는 있니, 뭐하는 사람이니. 결혼 해야지’ 결혼했더니 ‘늦기 전에 애부터 낳아라’ 애를 낳았더니 ‘하나는 외로워. 둘은 되어야지. 둘째는 언제 낳을꺼니’

 

평생 독신이신 어르신도 자식만 다섯인 어르신도, 각양각색 인생을 사신 어르신들이 모두 ‘사회적 시계’에 맞춰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네. 둘째까지 낳았습니다. 그것도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조합 ‘아들 하나 딸 하나’ 입니다. 이제 어르신들 잔소리에서 해방입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지난 설날. 친척들이 모였습니다. “너 회사 다닌다며? 애엄마가 욕심도 많다…”

 

앗. 기습공격입니다. ‘취직해야죠’ ‘결혼해야죠’ ‘둘째 낳아야죠’ 모범답안도 없습니다.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 생각하시는 어르신들께 통할 말은 없습니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며? 남는 건 있어? 집에서 애들 키우는 게 돈 버는 거야.”

“김서방 벌이가 시원치 않니? 회사가 불안해?”

“엄마가 집에 없으니 애가 곯았잖아. 저봐라. 삐쩍 말라서 뼈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

 

‘육아 오지랖’입니다. ‘조금이지만 남는 거 있어요. 그리고 맞벌이 하지 않으면 마이너스거든요!’ ‘김서방 회사 탄탄하고 인정받는 직원이에요!!’ ‘결이가 마르긴 했지만 곯진 않았어요. 보세요. 지금도 양 손에 먹을 것 들고 있잖아요. 워낙 활발해서 살이 붙질 않아요.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뭐라고 하셨을 거잖아요!!!’ 따박따박 답하고 싶지만 머리만 긁적입니다.

 

듣기 싫은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웅이의 잔기침에 “아이고, 저봐라. 남의 손에 크니까 자주 아프지.” 결이가 안아달라고 두 팔 뻗으니 “지 엄마만 저렇게 따라다니는 것을 두고… 쯧쯧쯧” 웅이 결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워킹맘인 제 탓입니다.

 

불편했습니다. 어른인 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속은 상하지만 나와 다른 세대를 사신 분들이니까, 그분들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웅이 결이도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듣는 건 싫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잘못된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웅이 결이 귀를 막고 싶다 싶었는데 웅이랑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엄마, 우리 놀이터 가자”

 

서둘러 웅이 결이 옷을 입혀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놀이터에 앉아있으니 ‘이제 명절이면 저 참견을 계속 듣겠구나’ 한숨이 나왔습니다. 매번 놀이터로 피신할 수는 없을터. 대처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1단계. 친정엄마/시어머니 방패삼기

 

명절이고 어르신입니다. 따박따박 대꾸했다가는 또다른 ‘쯧쯧쯧’을 부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나서서 방어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 저번에 그 어르신이 또 내가 일한다고 뭐라고 하시면 애들 듣는다고, 애들 앞에서 부모 나무라는 거 아니라고 이야기 좀 해줘요. 내 자식 가장 잘 아는 것도 부모,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도 부모라고, 부모가 어련히 알아서 잘 키울텐데 괜히 감놔라 배놔라 할 필요 없다고 말이야.”

 

 

 2단계. MSG 치기

 

방어가 통하지 않으면 공격입니다. 침 꿀꺽 삼키고 웃으며 MSG 살짝살짝 쳐가며, 말대답도 하렵니다.

 

“남는 거 있어요. 어르신 생각하시는 것 보다 저 많이 벌어요. 노후도 준비해야지요. 늙어서 웅이 결이한테 손 벌리긴 싫어요.” (‘노후대비’가 어르신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합니다)

“웅이 보세요. 제가 회사다니고 얼마나 어른스러워졌는데요. 결이도 잘 챙기고 엄마 힘드니까 쉬라고 집안일도 거들어요.” (사실 웅이는 자기 장난감 정리도 버거워 합니다)

“저도 그만두고 싶죠. 그런데 회사에서 제가 꼭 필요하다고 놔주질 않네요.” (음… 그럴리 없습니다. 어르신들이 믿으실까, 싶긴 합니다)

 

 

 3단계. 무조건 피하기

 

1단계 방어, 2단계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3단계는 피하기입니다. 지난 설날처럼 웅이 결이 데리고 놀이터든 어디든 피할 겁니다. 어르신 눈치보다가 내 자식 상처줄 순 없습니다.

 

언젠가 한 커뮤니티에서 “나는 초보엄마다” 말고 그냥 “내가 이 아이의 엄마다”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초보엄마라 흔들리고 불안한 순간은 많지만, 초보여도 고수여도 이 아이의 엄마는 결국 나니까, 엄마인 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물론 저는 초보엄마라 어르신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애정없는 참견은 조언과 다릅니다. 뒤돌아서면 무슨 말을 했더라 기억나지도 않을 말은 오지랖입니다. 조언 아닙니다.

 

 

언젠가 웅이 손을 잡고 결이를 안고 걸어가는데 벤치에 앉아 계시던 한 어르신이 “저기 애기엄마, 이리 와봐요” 부르셨습니다. 결이가 맨발이라고, 웅이 모자 씌우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시려나… 조마조마하며 다가갔는데 부채질을 해주십니다. “잠깐 앉아서 바람 좀 쐬고 가. 애들이 둘 다 어리네. 힘들지? 큰 일 하고 있는거야” 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큰 일, 더 잘해내고 싶어졌습니다.

 

어르신들, 당신 손주들이 잘 자라길 바라시는 마음은 압니다. 그렇다면 ‘육아 오지랖’은 거둬주세요. 그리고 이번 명절에는 ‘선배 엄마’ 어르신들의 경험이 담긴 진짜 조언을 들려주세요. 귀 쫑긋 세우고 스펀지처럼 흡수하겠습니다.

aykim 에 대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 aykim@donga.com 애둘 엄마이자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다. 어렸을 때부터 30살에 결혼해 32살, 34살에 아이를 낳고 4인 가족을 완성해 행복하게 살겠다고 계획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획없이 살기가 계획이다. 포대기와 단동십훈을 즐기고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내가 워킹맘이라니… 하늘도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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