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광화문에 있다보니 출퇴근길 점심시간이면 툭하면 외국인 관광객을 마주칩니다. 그들 손에는 여러 종류의 관광가이드가 들려있죠. 저 사람 일본인일까 중국인일까 긴가민가 할때는 관광가이드를 살짝 쳐다보곤 합니다. 언어로 구분하는 것이죠.
관광가이드북을 들고 있는 외국인을 가장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청계천 주변 그리고 동화면세점 주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동화면세점 주변의 분식집은 언제 지나가도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조금 의아했습니다. 광화문 생활 5년째인 저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분식집들에 외국인이 있다는게 제 눈엔 신기한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미식가가 아니지만 주변에 미식가가 많아 광화문 인근 맛집은 거의 다 가봤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분명 맛집을 알아보고 여행을 왔을텐데, 한국에서는 유명하지도 않은 분식집에 앉아있는 외국인들. 대체 어디에서 정보를 입수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한 선배가 답을 알려주시더군요. 분식집이 관광가이드에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하더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순간 일종의 안타까움, 한쪽에서는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외국여행을 할 때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광가이드북 아니겠습니까. 저 또한 외국을 방문할 때 관광가이드북을 보고 볼거리를 찾고 먹을거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맛집이라고 소개된 음식점이 현지에선 인기가 없는 곳이라면 엉뚱한 음식만 잔뜩 먹게 되는 것 아닐까요. 관광가이드 믿고 방문했다가 낭패를 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분식점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 때 한국을 소개한 외국 가이드북을 한 번 찾아보자는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마음만 먹고 책을 보지는 못하다가 최근 ‘Seoul’이라는 관광가이드북을 보게 됐습니다. 저자는 로버트 쾰러 씨. 1997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영어 강사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외국인이었습니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직접 살아본 외국인이 쓴 관광가이드북엔 어떤 정보가 담겨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책을 구입했고, 저자 인터뷰 일정도 잡았습니다.

‘Seoul’은 460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입니다. 서울을 지역별로 구분하고 관광명소 음식 숙박 등 정보를 빼곡하게 실었습니다. 흔히 서울을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하죠. 이 책을 읽어보니 그 느낌이 확실해 졌습니다. 광화문 일대를 소개하며 경복궁, 북촌, 정부종합청사와 고층빌딩이 늘어선 시청 주변을 함께 소개합니다. 시간에 쫓겨 광화문 일대만 방문해야 하는 외국인들도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느낄 수 있게 배려했다는 느낌입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식점 추천한 것을 봤더니 대부분 제가 가본 내국인들에게도 맛집이라도 알려진 곳을 잘 골라 담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내국인입장에서 외국인을 위한 관광안내서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서울을 좀 더 알게되고 공부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들어보지 않았던 역사 이야기를 책에서 다시 만납니다.
책을 겨우 다 훑어보고 저자를 만났습니다. 개량한복을 입은 쾰러 씨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한국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내공이 느껴집니다. 그는 서울을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워지는 도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나 상징물이 없기 때문에 볼거리가 없다고 오해받기 쉽다고도 말했습니다. 한국 건축물들은 화려함이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는, 인간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별 것 아니어도 실상 경험해보면 그때서야 놀랍고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고 하네요. 한옥만 해도 겉보기엔 그냥 집이지만 살아보면, 경험해보면 그 때서야 가치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워지는 도시’라고 표현한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부터 서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출퇴근길에만 마주치는 문화유산이 몇 개인데 지나가면서만 봤지 설명이 써있어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조차도 서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저자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자는 ‘한 번 제대로 된 영문안내서’를 내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내국인 입장에서는 적어도 왜곡된 정보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들고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최소한 동화면세점 뒤 분식점을 ‘맛집’으로 알고 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영문 옆에 한글표기법을 병기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Bukchon’ 옆에 한글 표기법 ‘북촌’을 함께 쓰는 식이죠.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글로만 써 있을 경우 읽지 못할테고, 눈 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테니까요.
아, 이 책은 국내 주요 서점에서도 판매되고 있지만 외국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문안내서인만큼 아마존닷컴과 미국 오프라인 서점 곳곳, 영국, 독일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혹시나 리뷰가 있을까 싶어 아마존닷컴을 검색해보니 ‘Finally, Seoul gets a guidebook that matches its magnificence’ 로 시작하는 리뷰가 있습니다. 괜히 흐뭇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