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윤석민, 평범한 선수로 사라질 뻔했다”…윤석민의 고교시절 비하인드 스토리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 윤석민의 올 시즌 피칭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50에 가까운 직구와 140에 육박하는 커터성 슬라이더는 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전성기에 접어 들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윤석민의 피칭은 강력합니다. ‘대한민국 No.1 우완에이스’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2008년 기록한 14승5패 2.33보다 나은 성적이 기대됩니다.

 

윤석민은 16일 현재 7승2패 2.88 80K의 시즌 성적을 기록중입니다.

 

이쯤에서 글을 읽는 분들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투수로 성장한 윤석민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요? 윤석민은 고교시절에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초고교급 투수였을까요?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평범한 선수에서 특급 에이스로 우뚝 선 윤석민의 지난날을 소개합니다.

 

창단 첫 해부터 15년째 야탑고를 맡고 있는 김성용 감독, 윤석민을 지명했을 당시 스카우트였던 조찬관 현 KIA 전력분석원, 그리고 윤석민 선수를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140대 파워피처가 즐비한 야탑고 마운드… “윤석민, 등판 기회가 없었다”

 

구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윤석민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야탑고에 진학했습니다. 야탑고는 1997년에 창단한 신흥 명문 팀입니다.

 

투수로 입학한 윤석민은 2학년 때까지 좀처럼 마운드에 오를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팀에 좋은 투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팀의 네 번째 투수인 석민이는 마운드에 자주 오르지 못했습니다. 당시 우리 팀에는 140이 넘는 빠른 직구를 던지는 파워피처가 많았어요. 김성준, 배우열, 백자룡 등 구위가 상당한 에이스급 투수가 여럿 있었습니다. 투수들의 기량이 좋아 대부분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을 정도였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에는 석민이의 기량이 저 선수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습니다.”

 

야탑고 김성용 감독이 말한 당시 야탑고의 마운드입니다. 곧바로 윤석민의 기량이 어느 정도였기에 저 선수들에게 밀린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1, 2학년 때 석민이는 정말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직구최고구속이 131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변화구와 컨트롤이 괜찮은 투수였지만. 직구의 대부분이 120대인 투수를 토너먼트 대회에 자주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는 투수가 아닌 2루수로 뛰게 했습니다. 방망이는 나쁘지 않았어요. 동대문야구장에서 홈런을 때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2루수를 맡기에는 수비가 좋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발이 너무 느렸습니다. 2루수는 빨라야 되잖아요.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당시에는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물론 대학가서 잘 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선수로 뛰다 사라지는 게 아닌가라고…”

 

김 감독의 대답입니다.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윤석민이 이렇게 큰 투수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윤석민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야구 못했습니다. 구속도 안 나오고 평범했습니다. (웃으며) 제가 감독이라도 저 같은 선수 마운드에 안 올립니다.”

윤석민도 자신의 기량이 많이 부족했던 것을 시원하게(?) 인정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환골탈태’…평범했던 윤석민에게 어떤 일이?

 

2학년 때까지 평범했던 윤석민은 3학년이 되면서 ‘환골탈태’합니다. 120대 직구를 던지던 투수가 불과 5개월 뒤에 140대 직구로 타자들을 압도합니다. 다른 투수들을 밀어내고 팀의 에이스를 맡게 됩니다. 도대체 윤석민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김 감독과 윤석민이 달랐습니다.

 

먼저 김 감독의 분석입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예상하지 못한 석민이 어머니 이야기를 먼저 꺼내더군요.
 

“석민이가 대투수가 됐으니 이젠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놔도 될 것 같네요. 석민이는 어머니한테 늘 감사해야 됩니다. 석민이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건 석민이 어머니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석민이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당시 석민이 어머니가 야구부 총무를 맡으셨어요. 대단하신 게 구리에서 분당 학교까지 매일 오셔서 학생들이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석민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까지 아들처럼 생각하셨어요. 이런 석민이 어머니를 볼 때면 석민이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게 ‘투수로 끝장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2루수로 내보내면 당장 주전으로는 뛸 수 있지만 발이 느려 프로나 대학진학이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계속해왔던 투수로서의 기량을 더 끌어 올려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감독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윤석민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수업을 받기 시작한 석민이에게 변화가 나타난 것은 동계훈련 때였습니다. 대만에서 한 달 가량 훈련을 했는데 정말 많은 훈련량을 소화했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많은 공을 던졌고 런닝도 많이 했습니다. 놀라웠던 게 자고 나면 구속이 빨라졌습니다. 전혀 다른 선수가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석민이가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습득능력이 월등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영리함과 성실함을 갖춘 선수였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윤석민의 대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신체조건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2루수를 7개월 정도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야수를 한 뒤로 구위가 부쩍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KIA는 왜 검증이 필요했던 윤석민을 지명했을까?

 

2학년 때까지 팀의 네 번째 투수였던 윤석민은 3학년이 되면서 단숨에 고교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합니다. 혜성처럼 나타나 스카우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전혀 주목 받지 못했던 선수가 갑자기 위력적인 공을 던졌기 때문에 스카우트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이런 선수가 나타나면 스카우트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대게 상위지명이 유력한 선수들은 일찍 결정되거든요. 윤석민은 눈 여겨 보던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윤석민처럼 경험이 적고 보여준 게 부족한 선수를 상위픽으로 지명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게다가 2004년에는 1차 지명부터 좋은 투수가 많았습니다. 2차 지명에도 조정훈, 오승환 등 재능 있는 투수들이 많아 윤석민을 선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과만 보면 KIA가 선택을 잘 했고, KIA 코칭스태프가 잘 키웠다고 볼 수 있죠.”

 

수도권에 있는 한 프로야구 팀 스카우트의 당시 윤석민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스카우트가 말한 것처럼 2005년 드래프트에는 오승환, 조정훈, 양훈 등 각 팀의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좋은 투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KIA는 다른 선수들을 제쳐두고 윤석민을 2차 1번으로 지명했을까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석민이는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명 가능한 투수리스트에 없었습니다. 우수 선수 뿐만 아니라 하위라운드에 뽑힐 수 있는 선수들도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거든요. 석민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구위가 좋아져 관심을 갖게 됐고, 6월 무등기대회 때 무조건 뽑아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무등기는 KIA의 홈구장인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리는데 이 때 석민이가 위력적인 공을 씩씩하게 던졌습니다. 재능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미래의 홈구장에서 잘 던지는 투수라면 지명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용운이와 비슷합니다. 용운이도 무등경기장에서 씩씩하게 던지는 걸 보고 2차 1번으로 뽑았었거든요.”

 

KIA의 스카우트였던 조찬관 현 전력분석원의 설명입니다. 무조건 2차 1번에서 뽑을 계획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투구폼이 참 예뻤습니다. 입단 했을 때부터 스카우트팀과 코칭스태프 모두 투구폼 만큼은 수정하지 말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투구폼이 좋은 선수여서 기량 발전도 빨랐고 우리의 기대대로 좋은 투수로 성장했습니다.”

 

조찬관 전력분석원이 말한 윤석민의 성공 이유입니다. 예쁜 투구폼과 윤석민의 영특함이 그를 큰 투수로 만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한 번도 최고였던 적이 없었던 윤석민, 이번에는…

 

평범한 선수로 사라질 뻔했던 윤석민은 본인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습니다. 베이징올림픽과 제2회 WBC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기도 했고, 2009년에는 소속팀 KIA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국내 프로야구에서 최고였던 적이 없습니다. 최고의 투수를 이야기 할 때 윤석민의 이름은 늘 포함됩니다. 하지만 매 시즌 성적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적이 없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류현진, 김광현 등 라이벌들을 꺾고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을지 결과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윤석민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야탑고 3학년 때의 인터뷰를 남깁니다. 2004년 6월 30일에 있었던 인터뷰입니다. 제58회 황금사자기 8강에서 경동고를 상대로 콜드게임 승리를 따내고 했던 인터뷰입니다. 이날은 2005 프로야구 드래프트가 열린 날이기도 합니다. 윤석민이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을 때 KIA는 2차지명 전체 6순위로 윤석민을 선택했습니다.

 

-야탑고 3학년이었던 2004년 6월 인터뷰(동아닷컴 고영준 기자)

 

[야구/스타포커스]야탑고 윤석민 ‘생애 최고의 날’

 

‘주자가 있을때 120%로 던진다’

 

야탑고 윤석민(3학년)의 모자 안에 씌여있는 글귀다. 주자가 있을때 흔들리는 약점을 고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써넣었다.

“평소엔 괜찮다가 주자만 나가면 많이 얻어맞았거든요. 지난 무등기 대회때부터 이 모자를 쓰고 있는데 효과가 있네요”

 

30일 열린 제5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야탑고-경동고의 8강전.

 

선발등판한 윤석민은 이날 ‘120%’로 던질 필요가 없었다. 경동고 타선을 4이닝 1피안타로 꽁꽁 묶어 버린것. 윤석민의 호투를 발판삼아 야탑고는 경동고를 13-1, 5회 콜드게임승을 거두며 3연속 콜드게임승이라는 괴력을 뽐내며 4강에 진출했다.

 

“직구위주로 자신감있게 빠른 승부를 펼쳤어요” 최고구속 147Km를 뽐내는 ‘파워피처’다운 대답이었다.

 

3회 타석에서는 좌월 2점홈런을 때려내며 자신의 전국대회 첫 홈런의 기쁨도 누렸다. 팀도 여유있게 앞서있는 상황에서 노리던 직구가 들어와 힘껏 받아쳤다는게 윤석민의 설명.

 

팀의 4강진출 못지않게 이날 윤석민을 기쁘게 한 것은 또 있었다. 경기가 진행중일때 열렸던 2005년도 프로야구 신인선수 2차지명에서 전체 6순위로 기아 타이거즈에 지명된 것.

 

지명소감을 묻자 “평소 좋아했던 팀이라 매우 기뻐요. 기아 투수 강철민 선수를 닮았단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대면할 수 있겠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자세히보니 몸매 등 전체적인 외모가 강철민 선수와 너무나 흡사했다. 게다가 배번도 같은 27번.

 

윤달중(43)-김정열(43)씨의 2남중 장남. 야구는 초등학교 4학년때 시작했다. 구리시 리틀야구단 선수 출신. 183cm 77kg의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선수는 두산의 박명환. “스타일이나 폼 등 그대로 따라배우고 싶은 저의 우상이에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무등기때 준우승에 머물러 아쉬웠는데 다시 또 4강에 올랐으니 그때의 한을 꼭 풀어야죠”

 

팀승리와 프로구단의 지명 등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날’로 기억될법한 윤석민의 발걸음이 경쾌해 보였다. 

 

 

엠엘비파크  aro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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