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하는 철학자를 구워 삶는 29가지 방법

 

 번역제목 탓에 빛을 못본 듯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이 다소 싼티(?)나게 달려서 눈길이 가지 않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무척 유머러스하면서 세련된 책입니다. 원제는 MANUEL DE SURVIE DANS LES DINERS EN VILLE.

 

  이 책은 철학이 얼마나 유행에 민감한 학문인지를 재치있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교양있는 사교모임에 나가서 역시나 교양 있다고 자부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잘난척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철학자들에 대해 알려주는,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실용적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장르로 분류하자면 철학실용서 쯤 될까요. 우선 이 책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을 살펴봅시다. 이들을 몰라서는 어디가서 잘난척하기 힘들다는 것을 반드시명심해야합니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책들을 발표하는 까닭에 문화 이론의 앨비스란 별명을 얻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 플라톤 이래 서구철학의 음성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 해체를 주장했던 자크 데리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선구적인 에세이를 발표한 매체이론가이자 문예비평가인 발터 벤야민 등을 숙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아는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일상적인 상황과 이들의 이론을 접목시켜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언어유희를 선보여야 소기의 목적(즉, 잘난척…)이 달성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예시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대해 알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을 때는 집을 수리한 경험을 끄집어 내면 됩니다. 예정보다 늦어지는 작업, 시시때때로 자리를 비우는 설비기사들, 예산보다 훨씬 초과 돼 나오는 비용 등 수리와 관련된 모든 짜증스러운 일들을 데리다가 내세웠던 이항대립항들의 무력화, 여분의 논리 등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용무기고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벤야민의 “내 연구에 있어서 인용은 길에 숨어 있는 강도들과도 같다. 무장을 한 채로 갑자기 나타나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을 붙잡아 그의 확신을 모조리 빼앗아 가는 강도 말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면, 얼른 쇼펜하우의 말을 인용해 “인용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지만 독창성은 희생시키고 만다”라고 되받아쳐줘야 합니다. 또는 매일 길가의 도랑에서 소변을 보다 어느 날 자동차에서 일을 해결하기 시작한 자신의 애완견을 향해 ‘상황주의 견’이란 애칭을 붙이며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에 대해 숙지하고 있음을 좌중에 각인시킬 수도 있습니다. 참, 저자들은 상황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절대로 ‘상황주의자(situationniste)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선수들끼리 쓰는 용어로 상황주의자는 ’시튀‘(situ)라고 줄여 말해야합니다. 만약 풀네임을 다 말한다면 초보자임이 금방 티가 나버리니까요.

 

  보시다시피, 시종일관 키득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는 책입니다.  여기서 흥미진진하게 습득한 ‘잘난척하는 29가지 기술’을 사교 모임에 나가서 실전 활용한 뒤 반응을 기다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 책에서는 그런 이들을 ‘주르나소프’라는 꽤 그럴듯하고 멋진 별칭으로 소개해줍니다. 설명해보자면, “철학을 조금 공부했으나 철학자는 아니며, 저널리스트라는 칭호는 단호히 거부하나, 라디오 방송 뉴스 기사를 담당하거나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그런 이들”입니다. 이들은 폴록 식의 그림을 세계화와 관련지어 설명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결지어 설명하며, 말할 기회가 주어질 경우 결코 자제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주르나소프를 은근히 경멸하고 무시하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선망과 질투 역시 동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갈고 닦아, 진정한 주르나소프로 거듭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일정 경지에 오르기전까지, 주변친구들을 잃을 각오는 해야겠지만요.

 

카테고리 : Book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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