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의 사생활

  

  <M사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에서 사회부 여기자 역할을 맡았던 손예진>

 

  최근 한 여기자의 미니홈피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입사이후 얻은 것-직업, 돈, 술살” “입사이후 잃은 것-친구랑 밥먹을 시간, 재밌는 글 쓸 권리, 주말 계획을 짜는 설렘, 긍정적인 사고방식, 가족과 함께할 시간, 편안한 잠자리, 자신감” 이 글을 보고 매우 공감(혹은 통감)했습니다. 저에게  ‘입사이후 잃은 것’의 목록을 작성해보라고 한다면 저 끝에 ‘기타 등등’을 덧붙이겠습니다. 

 

   기자들과 밥 약속을 잡게 되면 뜻하지 않은 일로 바람을 맞을 때, 혹은 터무니 없이 오래 기다려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게 될 때마다 저나 제 주변 기자들은 “이래서 사람들이 기자친구를 싫어하는군”하고 새삼 깨닫습니다. 기자인 자신도 막상 그런일을 당하면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과 별개로)짜증이 엄습하거늘, 기자 주변의 사람들은 얼마나 싫겠습니까. 그래서 시간이 흐를 수록 주변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사생활은 나날이 빈곤해지며 어느날 주변을 둘러보면 드글대는 사람들이라곤 역시나 친구가 없어서 쓸쓸해하는 기자들뿐임을 직시하게 되면서…저렇게 잃은것들의 목록을 작성해보게 됩니다.

 

  그런던 중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연재중인 ‘근대 100경’ 시리즈 중에 제가 써야할 꼭지가 ‘여기자의 활약’이어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다가 1920년대 ‘장안의 명물’이었던 여기자의 삶이 어땠는지를 당시 동아일보 기사로 접하게 됐답니다. 한국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 기자 인터뷰인데, (최은희 기자는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습니다) 기사를 살펴보다 웃고 말았습니다. 기사 제목은 ‘기자의 생활, 부녀기자 최은희양’인데 일단 소제목이 이렇습니다. “숙려후에 입사” “여유업는 생활” “몸은 날로 허약” 이것은 입사후 일어난 현대 여기자의 일련의 변화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피튀기며 입사->여유없는 생활->날로 피폐해지는 몸과 마음”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언제나 밧분” 여기자의 1920년대 중반의 생활(당시에는 ‘부인기자’란 호칭을 썼습니다만) 을 잠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출처는 동아일보 1925년 3월 11일자이며 당시 표기법을 최대한 살려 옮겨썼습니다.)

 

<부인기자 최은희 양 인터뷰 기사에 함께 실린 사진입니다>

 

 “매일아침이면 일찍이 일어나서 밥도 뜨는 듯 마는 듯 마치고는 동으로 서로 아는 집 모르는 집으로 장안이 좁다하고 도라다니게 됩니다. 그리하야 추은날이던지 더운날이던지 한결가치 집에 앉아 있는 사이 없이 도라다니며 여러 가지 사회상을 대할 때마다 각별한 느낌을 엇게된답니다.”

 

 기자가 굴욕을 느끼는 순간이나 어려움들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혹 어떤곳에는 찾아가면 만날 사람이업고 혹어떤 곳에서는 사양하며 보기 조흔 거절을 당하야 그저 돌아설때에 그 마음 가운데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됨니다.”

 

  기자생활이 건강에 해로운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듯 합니다.

 

 “건강에 많은 해를 밧게 된답니다 그 까닭은 제 시간대로 음식을 시간 맞추어 먹지 못하고 이때 저때 불규칙하게 먹게 됨으로 자연히 몸이 쇠약하여 짐니다 밤에도 여자단체에서 모임이 있으면 집에도 도러 갔다가도 또다시 피곤한 몸을 이끄러 그곳에 참석하여야만 됩니다”

 

  흥미진진한 인터뷰의 말미, 동아일보 기자(당시에는 바이라인이 없어서 누가 쓴 기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가 최은희 기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압흐로도 기자생활을 계속 하실터임닛까?” 이 질문에 최은희 기자가 대답합니다. “네, 저도 기왕부터 취미를 가졌던 직업이므로 앞으로 될 수있는데까지 열심히 이 직업에 종사하려고 합니다.”

 

   아무리봐도 “기왕부터 취미를 가졌던 직업”이라는 이 표현이 멋진 것 같습니다. 달관과 초월의 어떤 경지가 느껴진달까요. 때마침 블로그 올릴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한 여기자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사이비종교단체에서 “프레메이슨의 음모로 곧 지구가 종말할것”이라며 “선착순 여덟명에게만 강의를 하겠다”고 제보메일을 보냈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왜 하필 여덟명일까요.) 저는 흥미로운 주제긴 하지만 괜찮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기자가 말했습니다.  “멸망시점이나 좀 알려좋겠어. 단독으로 쓰고 싶거든.”  글쎄요, 그건 단독이 아니라 특종이겠죠.  인류 역사상 마지막 특종기사. 그 여기자는 “우리는 지구가 멸망해도 ‘후속스트+박스’를 발제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듣고보니 설령 지구가 멸명한다 할지라도, 기자들은 ‘내일 지구 멸망’이란 스트기사와 각계반응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일이지 않습니까…. 기자들이 숫한 굴욕과 비애, 갈등과 위기의 상황 속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도 결국엔 “기왕부터 취미를 가졌던 직업”이기 때문이겠지요?

카테고리 : Tori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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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6) 여기자의 사생활

  1. daeyk says:

    ㅎㅎㅎ. 그런데 어디 여기자분들만의 경우 뿐이겠소???

  2. 운영자 says:

    blogmaster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닷컴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3. 육각수 says:

    여기자가 술살이라?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하십시오.
    여자는 남자보다 유전적, 체질적으로 술이 거개 다 약합니다.
    그런데 글쓴 분은 남자같은데…?

  4. 안주열 says:

    어재 토론토에 어학 연수 온 여기자의 의문의 자살 사건
    속 이야긴가 해서 들어 왔읍니다.

  5. 세계경제 says: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6. 미티엄마 says:

    ㅋㅋ 이글을 매우 잼나네 동아닷컴 베스트 글로 뽑힐만 하군 저널로그에서 계속 승승장구하길

  7. 앞집여자 says:

    캬~ ‘언제나 밧분’ ‘날로 허약’ ‘여유가 업는’ 등 고개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구나~ 맘에 쏙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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