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당명 변경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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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내는 민주당 당명((黨名)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난해 11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관훈토론회에서 당명 변경과 관련된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지난해 3월, ‘안철수 신당’과 민주통합당이 합당을 선언하면서 당명은 우여곡절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60년 동안 야당의 이름이었던 ‘민주당’에 대한 향수가 강한데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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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마을'의 진실은…

‘학동마을’이라는 제목의 그림 한점으로 일주일 내내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사건기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일주일을 학동마을에 매달렸습니다.

 

 

##누구요??

사건의 발단은 월요일 아침.

“국세청장 부인이 선물로 받은게 한두가지겠어”라는 심드렁한 마음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사건이 이리 커질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채…

 

실마리는 ‘학동마을’이라는 그림 이름과 ‘평창동에 있는 G갤러리’ 두가지 뿐.

몇 군데에서는 “우리 아닌데요” 라고 했습니다.

한 군데에서 드디어 “관장님께 물어보실래요” 라고 했습니다.

(보통 ‘어디어디가 문제가 되었다더라’라는 소문은 해당 업계에서는 정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닌데요’라는 말이 나오는거죠)

 

밑져야 본전. 문제의 ‘G갤러리’(그때는 이름을 알아낸 상태였죠)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시죠? 학동마을 때문에 그런데요”

“예…어떻게 아셨네요.. 이00 씨께서 팔아달라고 한 것 맞아요. 근데 잘못된 것도 있어요”

“예…뭐가 잘못되었죠? 정확히 확인을 해야 저희도 잘못된 기사를 안쓰죠”

“그거 뇌물 아니에요. 한상률 청장이 선물이라고 준거에요”

 

누구?? 한상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상률 청장. 이제는 ”전” 국세청장이군요>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은 소위 ‘4대 기관’으로 불립니다.

정부의 핵심중의 핵심 포스트이기 때문이죠.

사실 여부를 떠나 4대 핵심 포스트 수장 중 한명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은 엄청난 뉴스입니다.

 

기자실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채 통화를 하다가 황급히 기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아..그래요…언제 받으신거래요?”

“몰라요. 제가 들은바로는 한 청장님이 차장 시절에 선물로 줬다고 그러시던데요”

 

몇가지 추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10시 30분, 이미 아침 발제 시간은 지났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부랴부랴 발제문을 만든 뒤 캡에게 메신저를 날렸습니다

“한상률이랍니다”

“뭐?”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다?

동아일보 사건팀의 월요일 아침은 평온했지만

오전 10시 30분 이후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을 만나러 가고

해당 그림이 어떻게 전시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당시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림이 누구손을 거쳤는지도 파악해봐야 합니다.

 

컴퓨터에 앉아 기사검색을 해봐도 별 내용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문제의 ‘학동마을’을 전시했던 K갤러리가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세무조사는 2004년. 당시 담당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 당시 4국장은 한상률 청장.

 

별 관련성이 없는 사실들이지만

또 나름 연관성을 가지고 추측해보면 몇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 사실들입니다.

의심은 커져 갑니다.

하지만 의심이 의심으로 끝이 날지, 의심이 사실로 확인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런 와중에 후배 기자가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집에 있는데 한 청장의 부인이 잠깐 집에 들르겠다고 하더라. 그거라고 했더니 선물이라며 그림을 하나 가지고 왔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받아서 놔뒀다”

 

이제 이정도면 충분히 기사를 쓸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그래도 세부적인 내용으로 더 촘촘히 기사를 채우기 위해 취재는 계속됩니다.

 

한 청장의 부인은 자택을 비우고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K갤러리의 관장은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수차례 추가 전화통화에서도 그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며 의혹들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일본에 출장중인 한 청장은 동아일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는 희한한 구도가 펼쳐진 셈입니다.

 

 

 

##부인들의 권력투쟁?

취재에 들어가면서 의외의 정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한상률’이라는 이름을 언급했던 G갤러리 관장은 현 국세청 고위 간부의 부인.

공교롭게도 그 고위 간부는 참여정부시절 승승장구하다가 한 청장 부임 이후에 인사에서 소위 ‘물’을 먹었습니다.

 

“한 청장의 부인이 그림을 건네며 K 씨의 이름을 언급하며 아웃 시켜줄 것을 요구했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이에 대해 G갤러리 관장은 “이번 건은 나와 관계 없는 일이다. 남편의 일은 내 프라이버시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K 씨는 “내가 왜 언급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한상률 청장의 부인, 국세청 고위 간부의 부인.

세 명의 여성간의 연결고리가 서서히 드러났고

그림하나로 시작된 사건이

국세청의 인사 싸움까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국세청 출입 선배의 기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4대 기관 중의 하나인,

기업하는 사람들이 벌벌 떤다는 국세청이

국가의 기본이 되는 ‘세정’을 펼친다는 사람들이

설마 이런 치졸한 인사 투쟁을 벌이며 살아왔었을까 싶었습니다.

 

 

 

##‘10호’의 인기

‘사람’의 취재와 함께 문제의 ‘그림’에 대해서도 취재를 해야 합니다.

 

2007년, 신정아 사건 당시 확보했던 취재원들의 전화번호를 다시 찾았습니다.

1년여가 넘게 연락한번 없다가 대뜸 전화해 “최욱경 화백을 아시나요?” “학동마을을 아시나요?”라고 물어보기가 참 민망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가릴때가 아닙니다.

 

물어물어 해당 전시를 담당했던 큐레이터와 통화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작품 선정을 맡았던 교수와의 통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동마을이라는 그림은 분명히 기억이 나지만, 누구의 소유였는지, 전시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한편 ‘10호’가 왜 인기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호‘는 작품의 크기를 뜻하는 말이고 10호는 38×45.5cm 사이즈입니다.

상상해보면 아실텐데요, 딱 벽에 걸기 좋은 일반적인 그림 사이즈입니다.

이에 대해 한 미술 전문가는 “통상적으로 그림을 선물하면 10호를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큰 작품을 개인에게 선물할 수 있겠어요? 그런건 건물 외벽에다 걸만하니 기업이나 단체에게 선물하는거고….개인들끼리 선물하기에는 10호가 딱 좋. 그래서 10호 인기가 좋아요. 뇌물까진 아니지만, 보통 선물할때는 주는 사람도 부담 없고 받는 사람도 받아서 집에 쉽게 걸어놓을 수 있는 10호를 선호하죠”

 

 

 

##‘학동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은 누구?

화요일, 여전히 상황은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쉽사리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속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한 청장이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던 기자들을 인근의 식당으로 불렀다”는 수습 기자의 보고에

야근자인 선배가 급하게 일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폭탄주가 몇잔 돈 뒤에도

한 청장은 “전혀 본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전날 남편을 면회하고 온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은 집을 비운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전 전 청장의 자제들만이 뻗치기하는 기자들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준 사람은 없고, 받은 사람은 있는 이상한 구조.

결국 문제의 그림이 흘러간 경로를 파악해야 합니다.

 

고 최욱경 화백은 독신으로 살다 45살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이후 최 화백의 작품 관리는 여동생인 최모 씨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수소문 한 끝에 수요일, 여동생 최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쉽게 만나줄리는 없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인터폰을 통해 “할말이 없다, 돌아가시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무작정 기다리는겁니다.

칼바람이 부는 복도식 아파트 10층에서 벨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주는 정말 추웠습니다. 덕분에 기자들은 덜덜 떨어야만 했죠…)

 

다른데도 아니고 집 앞에 서 있는 것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함입니다.

(사건기자 생활을 좀 하다보니 이런 요령만 늘어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려가서 따뜻한 캔커피라도 하나 사가지고 올라올까’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 무렵 문이 반쯤 열렸습니다.

“대체 왜 나를 찾아온건가요?”

 

최초 학동마을 유통의 시작이 최 씨라고 짐작을 하고 갔었지만

짐작이 어긋나버렸습니다.

최 씨는 “그 그림은 언니가 죽기 전 알아서 처분한 것 같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그림이 이런식으로 논란이 되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 우리에게 물어볼게 아니라 주고 받았다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어디서 났는지”

맞는 말입니다.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림의 유통 경로를 유추해볼 수 있는 최초 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갔었지만

오히려, 경로는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고,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10여년 전 최욱경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었던 갤러리들에 문의를 해 보아도

학동마을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결국 공은 검찰의 손에…

이 와중에 수감중인 전 전 청장은 변호인을 통해 “그림을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전 전 청장의 부인은 “있는 걸 말하는데 왜 그러느냐”며 눈물을 쏟았다는 사실도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각종 소문은 점점 불어납니다.

하루하루 소문의 양이 불어나는 것이, 마치 산 정상에서 굴러내려오는 눈덩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꼴과 같습니다.

 

“그림이 5점이라더라”

“개인이 준게 아니고 한 기업에서 국세청에 전달했다더라”

확인되지도 않은 ‘카더라’ 통신들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의혹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이 의혹을 낳는 형국인 셈이죠.

 

드디어 “한 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아니다. 안했다”는 헤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한 청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진사퇴가 문제의 종착점이 될 수는 없는 노릇.

무수한 의혹들은 여전하고

검찰에서는 관련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결국 일주일간 시끄러웠던 ‘학동마을’ 소동의 전말은 검찰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사회부에 있는 동안 두 명의 국세청장이 사법처리 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은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로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었습니다.

덕분에 국세청이 1966년 개청한 이래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현장 검증이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이주성 전 청장은 서부지검의 수사를 통해 결국 구속수감되었습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사석에서 만나“예전엔 통장과 현금카드를 건네는게 나름 혁신적인 수법이었는데, 이 전 청장에 비하면 그건 완전 구식중의 구식”이라며 “이런 수법으로 뇌물을 받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혁신적이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만약 한 청장마저 사법처리가 된다면

‘국세청장의 수난 삼대’는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한 청장의 말처럼, 음해와 사실무근의 헛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것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물론 “한 청장이 그림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다”라고 결론이 내려진다면

위의 모든 가정과 의혹들은 의미없는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국세청이 건강한 조직이라는 것이 입증만 된다면

위에 줄줄이 써 내려간 내용들의 의미없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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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양주가 뭐길래…

가짜 양주 마신 2명 사망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2130116

 

저도 처음에 보도자료를 보고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가짜 양주야 처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사람까지 죽는다니..

 

●인터넷 카페 제보가 수사의 시작

이번 사건은 서울 서대문경찰서 조직폭력팀 이대우 팀장이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수습 때 처음 이 팀장을 보고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었습니다.

강력반에서만 잔뼈가 굵은 이 팀장은 한 방송국의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도 나온바 있습니다.

알아주는 강력, 조폭 범죄 전문 형사죠.

 

어쨌든, 1년 전 이 팀장이 운영하는 ‘범죄사냥꾼’ 카페에 한 중년 여성이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 남편이 술을 마시고 바가지를 뒤집어 쓴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어 150만 원을 냈다는데, 머리가 아프고 한 것이 가짜 양주 같다. 심지어 이들은 돈을 못낸다는 남편을 폭행까지 했다”

이 글에 ‘나도 당했다’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수사는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수사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 팀장의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3개월 넘어가면 장소를 옮겨요. 예를 들어 그 일대에 있는 6개 업소가 손을 잡고 가짜 양주를 팔아. 3개월이 딱 되면 가게는 그대로 두고 종업원들만 옆 가게로 옮기는거야. 왜나구요? 손님이 항의하러 오잖아. 손님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겠어. 분명 이 가게가 맞는데 종업원들은 얼굴이 다 바뀌어있거든.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손님은 바가지는 바가지대로 뒤집어쓰고 그냥 돌아가는거죠. 단속도 힘들어요. 자주 옮기는데다 한쪽에 단속이 뜨면 다른 업소들이 귀신같이 문을 닫아버리니까”

 

<이들은 절대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지 않습니다. 가게를 계속 바꾸조. 동아일보 자료사진>

 

어쨌든 이 팀장과 팀원들은 밑바닥부터 훑기 시작했습니다.

관할이 서울 서대문인 팀원들은 수원 인계동 일대를 수십차례 탐문했습니다.

 

●모텔에서 숨진 피해자…당시 왜 수사가 안됐을까?

두 명의 피해자(A, B 씨라고 하겠습니다)는 지난해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

분명 변사인데, 당시 경찰은 수사를 안했던 것일까요?

 

물론 당시 경찰은 부검은 물론 주변 수사를 했습니다.

이번에 적발됐던 종업원들도 경찰 조사를 받았죠.

하지만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이 손님이 취해서 술집에 왔더라. 술을 달라고 해서 줬는데, 너무 취해서 우리보고 모텔에 데려달라고 해서 데려다 준 것 뿐이다”고 진술했습니다.

 

여기에 별다른 외상도 없고, 옷도 입고 있었고, 반항의 흔적도 없어 경찰입장에서는 변사 처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A 씨와 함께 술을 마셨던 A 씨의 선배도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1차에서 함께 술을 마신 두 사람은 삐끼의 손에 이끌려 술집에 들어갔는데 A 씨가 먼저 들어가고 선배는 뒤늦게 들어갔습니다.

 

종업원들은 “그 손님은 먼저 가셨다. 혼자라도 싸게 해드릴테니 드시고 가시라”며 선배를 이끌었고, 선배 역시 수백만 원의 술값을 뒤집어 썼습니다.

 

하지만 그 선배는 경찰조사에서 사실대로 진술 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성매매를 했기 때문이죠.

종업원들을 술에 취한 선배를 인근 모텔로 데려가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했고, 선배는 “우리가 시킨대로 하지 않으면 성매매 혐의로 함께 처벌받도록 하겠다”는 협박에 어쩔수 없었던 것이죠.

 

두 번째로 숨졌던 B 씨 역시 경찰이 조사를 했지만 역시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가짜 양주의 무서움

으레 ‘가짜 양주’하면 공업용 알코올 등 위험한 물질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취재를 해보니 의외로 사람이 못 먹는 음료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우선 도매가로 3000원 정도, 시중에서 만 원 미만에 판매되는 국산 양주(상표 이름은 밝힐 순 없지만…과거 군대 PX에서 팔았던 술을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삽니다.

그리고 자양강장제(약국에서 파는 건강음료…아시죠?)와 이온음료(물보다 흡수가 빠르다는…운동한 다음에 마시는 음료수)를 섞습니다.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 조합이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납니다.

“세잔 정도 마신 뒤에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가짜 양주를 마신 피해자들의 진술입니다.

 

왜냐하면 고급 양주가 아닌데다, 흡수가 빠른 이온음료 덕분에 알코올이 체내에 스며드는 속도가 그냥 양주를 마실 때보다 몇 배는 빠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경찰에 적발된 가짜 양주. 이 때는 공업용 알코올을 썼지만 요새는 아니랍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여기에 종업원, 혹은 동석한 여자 종업원들이 계속해서 술을 권합니다.

그 종업원들은 안취하냐구요?

 

“걔네들이 가짜 양주인지 뻔히 아는데 마시겠어요. 빈 캔에 뱉거나 휴지에 뱉거나 하는 식으로 절대 안마시는거지. 그러면서 계속 권하는거야. 딱 석잔이면 끝이지”

 

숨진 두 사람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각각 0.37%와 0.42%였습니다.

음주운전 면허취소가 혈중 알코올 농도 0.1%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죠.

 

결국 흡수가 빠른 가짜 양주+계속 들이킨 가짜 양주 가 더해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셈입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무서운 수치인지, 삼성서울병원 이정권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0.3%가 넘어가면 의식이 상실되고,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나을 수도 있죠. 0.4%를 넘어가면 깊은 마취상태가 됩니다. 뇌가 접히는 셈이죠. 그리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혼수상태로 접어드는 겁니다”

 

왜 가짜양주가 위험한지도 물어봤습니다.

“이건 주량하고 상관이 없는거에요. 순식간에 알콜이 스며드는데, 평소의 주량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원래 발포성 탄산이 들어가면 술이 엄청나게 빨리 취합니다. 술 마실 때 콜라, 이온음료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에요. 공업용 알코올 등 그냥 위험한 물질이 없다고 해도 조합이 위험한 조합인 셈이죠”

 

 

<맥주를 섞어마시는 폭탄주도 알코올의 흡수가 엄청 빠른 술이라고 합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결국 급작스럽게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오면서 호흡곤란, 심부전증 등의 증세가 오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이 팀장이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나마 가짜 양주 먹이고 모텔에라도 데려다 놓으면 나은거지. 피해자 가운데 ‘길에 정신을 차렸다’ ‘깨보니 편의점 앞이더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밖에서 몇 시간씩 방치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짜양주, 그리고 삐끼

이 팀장이 팀원들과 해당 술집을 덮쳤을 때, 그 술집의 주방에는 스카치블루 발렌타인 17년 산 등의 빈 병이 수십개 발견됐습니다.

 

가짜 양주를 따는 수법은 여러분들이 아는 그대로입니다.

술에 취한 손님 앞에서 종업원이 새로 양주를 여는 것처럼 속여서 따는 것이지요.

그래서 삐끼들은 1차에서 술을 어느정도 마신 사람만을 골라 호객행위를 한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가짜 양주를 파는 것은 돈 때문입니다.

원가 3000원 도 안되는 가짜 양주를 이들은 25만 원 씩을 받고 팔았습니다.

경찰은 “못 벌어도 한달에 몇천만 원 씩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삐끼는 통상적으로 자기가 데리고 간 손님이 마신 술값의 50%를 받는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영업해서 삐끼에게 절반 주고 가면 남는게 있겠어요? 결국 돈 더 벌려고 그러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어요”

또 이번 경찰 수사에서는 술집 주인, 종업원 외에 인근 조직폭력배도 함께 검거가 됐습니다.

경찰은 “보통 이런 술집은 조폭과 손을 잡고 술집, 성매매업주, 카드깡 업주가 함게 활동한다”고 밝혔습니다.

술집에서 손님을 꼬셔 가짜 양주를 팔고, 성매매업주를 통해 불법 성매매를 알선한 뒤 술값은 카드깡을 통해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셈이죠.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이 팀장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삐끼를 안따라가면 됩니다. 삐끼가 유혹하는 곳은 무조건 피하는 수 밖에 없어요”

 

그도 아니라면, 직접 양주를 개봉하는 것이 가짜 양주를 막는 방법이라고 이 팀장은 덧붙였습니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입니다.

지인들과 즐겁게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술이 너무 과해 안좋은 일을 당하면 절대 안되겠죠.

 

 

*이 포스팅은 동아일보 사건팀 팀블로그(blog.donga.com/teamdnp)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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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는 말로 덮기엔…

최근 들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절대 좋은 일이 아닌데 말이죠…

 

여러분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계신대로,

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서..

 

믿어지십니까?

 

한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지르고,

준비하고 있던 칼을 휘두르고.

게다가 당시 몸에는 두 자루의 과도와 가스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전 지금도 안믿겨집니다.

그건 정말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경찰서로, 현장으로, 병원으로 기자들이 곧바로 투입됐습니다.

<참사가 벌어진 논현동 d고시원의 모습. 사진=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오후에 있었던 형사과장 브리핑 역시 카메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브리핑이 끝나도, 기사 마감을 해도, 취재는 해야 합니다.

 

뭐…몇몇 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휴대전화를 들고 경찰에게 "이거이거는 왜 그런거죠?" "아..그건요 뭐냐면요.." 라거나.

경찰이 조사 자료를 즉각 즉각 기자들에게 넘겨준다거나.

 

그런거 절.대. 없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경찰은 형사과 사무실에 기자들의 출입을 막습니다.

뭐, 기자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이해가 가는 조치입니다.

기자들이 들락날락 거리면, 조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강남서 역시 마찬가지.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냥 그 앞에서 기다리는겁니다.

그러면서 안면 있는 형사 나오면 쪼르르 쫓아가서 몇마디 듣습니다.

또 기다리다가 다른 형사 나오면 쪼르르 쫓아가서 몇마디 듣습니다.

그리고 들은 내용을 조각맞추기 하듯이 맞춰봅니다.

(이보다 더 몸으로 때우는 ”귀대기”라는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취재방식도 있습니다)

 

20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밤 11시 30분이 넘은 시간.

1층 로비에서 만난 안면있는 형사가 몇가지를 알려줬습니다.

"마지막까지도 망설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불이 붙어버리니 본인도 당황한 것 같다.

 진술은 잘 하고 있다. 초반에는 놀라고 해서 (조사가) 잘 안되다가 밤이 되고 하니 잘 된다

 메모나 이런게 있으면 우리도 좋은데, 불이 난 곳이 그 방이잖아. 다 탔어"

 

20여분 뒤,

담당 팀 형사가 담배를 사러 경찰서 앞 편의점으로 나가더군요. 함께 걷습니다.

"말하는거 보면 정말 모르겠어. 그래도 말은 하는 편이야. 그런데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

 인정하지. 인정 안할 수가 있나"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우발적 범행은 아닌것 같아 보였습니다.

20cm가 넘는 칼과 가스총을 몇 년 씩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궁금해졌습니다.

"죽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불을 지르고 사람까지 죽인 뒤에도 숨어 있다가 경찰에 잡힌 이유가.

(사실은 창고에 숨어있다가, 소방관이 구조해줬고 복장을 의아하게 여긴 경찰에 의해 1층 현장에서 잡힌겁니다)

 

2차 브리핑 때 물어봤습니다.

자해 흔적이 없답니다.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았을텐데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맞지만, 당시에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럼 자신은 죽을 생각이 없었지만 사람을, 아니 사람들을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걸까요.

거기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의 심경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6명의 여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유가족은 부검에 반대하며 "어제는 칼에 찔려 죽더니 오늘은 배를 가르네"라며 통곡했습니다.

 

<강남서에서 20일 오후 언론에 공개한 조사 장면입니다. 사진=한상준>

 

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쏟게 한 장본인이지만

기자들의 들은 그의 육성은 "죄송합니다" 뿐이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덮기엔

흩뿌려진 피와 눈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

8월에도 홍제동에서도 "묻지마 살인"이 있었습니다.

똑같았습니다.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형사과장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는 진술 외에는 동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기사를 쓰면서도, 또 다른 묻지마 살인 취재를 이렇게 금방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사건이 더 빈번히 일어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었습니다.

제발 잘못된 예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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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서, 3일의 기록.

원래 그날은 오프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11시경 걸려온 휴대전화.

바이스(사건팀에서 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를 지칭하는 말. 팀 서열 2위..)의 전화.

손이 딸리니 일해야 한다는 급한 호출.

 

"누가 죽었다구요?!!"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그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모두가 똑같지 않았을까요.

 

##첫째날

 

서초경찰서는 이미 북새통이었습니다.

 

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건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현장에 방송사 중계차가 얼마나 와 있느냐 여부입니다.

당일 서초경찰서 주차장에는,

제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모든 방송의 중계차가 와 있었습니다.

 

난리도 아니었지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노련한 서초서 양재호 형사과장은 이미 2명의 의경을 형사과 입구에 배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걸 막으려고..

<서초서 양재호 형사과장. 큰 사건을 많이 해본 노련한 형사입니다>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정보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제 집 드나들듯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형사과 사무실도 못들어가고

다른때는 전화를 잘 받아주던 형사들과 통화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강남 라인을 출입 할때

차도 얻어마시고 담배도 피며 이런 저런 수다도 함께 떨었던 양 과장이지만

이날은 얼굴 조차 볼 수 없더군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형사과 사무실에 들어가

몇개의 팩트를 찾아냈고, 그렇게 기사를 막았습니다.

 

기사를 마감 하는 내내 메신저가 그야말로 폭주했습니다.

"정말 자살 맞는거야""왜 그런거래?""믿을수가 없어"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주위 사람들은 사건 기자가 형사만큼이나 사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기사 쓰기 좋겠습니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나도 못믿겠다”를 중얼거리며 일단 노트북만 두들겼습니다.

 

 

##둘째날

 

역시나 예상대로 모든 신문은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날 여기저기서 모은 팩트들과, 선배의 큰 특종 덕분에  부담감은 전날보다 덜 했습니다.

(그런 현장에서도 물 먹이고, 물 먹을걸 걱정하는게 기자입니다. 변태들이죠…;)

 

둘째날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대충 분위기는…

<브리핑이 있었던 2층. 이 사진에 과연 몇대의 카메라가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제가 참석했던 경찰 브리핑 중

가장 많은 취재진이 몰렸던 브리핑이었습니다… –;;

 

이날,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포털에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올라왔습니다.

맞는 내용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최진실 씨 숨지기전 몸무게 31kg”라는 식의 다소 황당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만난 양 과장은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 31kg가 말이 돼”라며 일축했죠)

 

일단 둘째날도 사건 스트레이트 중심으로 기사를 막았습니다.

 

최진실 씨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 처음부터 끝이 너무 명확한 것이었습니다.

한 형사는 "(자살이 너무나 명백해) 일반인이었다면 부검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죠.

 

기사에는 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나갔지만,

더 정확히 들여다 보면

”사인”과 관련된 부분은 형사과에서, ”사채업 루머”에 관한 부분은 수사과에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사인이 너무나 명백한 탓에

관심은 수사과에서 하고 있는 사건으로 옮겨가고 있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백 씨를 수소문 해봐라”는 지시가

현장에 있는 기자들에게 하달 되기 시작했죠.

 

서초서에 마련된 임시 기자실은 2층에 있는 회의실이었습니다.

기자회견도 회의실에서 진행이 됐구요.

 

둘째날, 밤 9시.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던 회의실은 너댓명의 기자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그곳에서 마감을 한 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최진실 씨의 미니홈피를 찾아 봤습니다.

 

대문에 걸려 있는 사진 보셨나요?

두 아이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

 

나는 이틀동안 무엇을 취재한 것일까.

사진속의 이 사람은 정말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셋째날

 

신문사는 토요일에 쉬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사건 발생 넷째날이죠.

전날 영결식이 있었고,

쉬는날 집에서 본 케이블 tv 채널은 이번 사건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은 서초경찰서는

사건 발생 첫날에 비하면 눈에 띄게 한산해져 있었습니다.

형사과 입구를 지키고 있던 카메라들도 사라졌고

덕분에 의경도 없었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정말 빠르게 불타올랐다가 빠르게 식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좀 당황스럽더군요.

 

양 과장은 오전에 잠깐 서에 들렀다가 퇴근했고

담당인 형사 5팀 소속 형사들도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확 줄어서, 이번 사건 담당 형사들과 좀 깊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나눴던 모든 이야기를 이곳에 옮길 수는 없지만,

(기사화 할 수도 없는, 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죠)

 

사건 초기 최진실 씨의 집에서 정밀감식 단계부터 참여해온 그는

"단연코 메모에는 사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사채업 루머때문에 힘들어하는 내용은 나온다.

 남자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톱스타는 괜히 톱스타가 아니다. 정말 자기 관리를 잘 해온,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첫날 슬쩍 본 조서에 첨부된 메모의 복사본에 담긴 최진실 씨의 필체는

(제가 알고 있는)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밝고, 명랑한 필체였습니다.

 

저는 그 형사의 말을 믿고 있으며,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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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는 첫날 이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너무나….절묘한 사진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슴아픈 사진이기도 하구요.>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잘 안믿기는게 사실입니다.

최진실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게.

직접 취재를 했으면서도…

 

최진실 씨를 생전에 직접 본 적도 없고, 그녀와 관련된 기사를 쓴 적도 없습니다.

참 어이없게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녀와 관련된 취재를 한 셈이죠.

그런 취재를 하는게 사건 기자겠죠…

 

그래도, 사람의 죽음을 취재하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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