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마을’이라는 제목의 그림 한점으로 일주일 내내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사건기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일주일을 학동마을에 매달렸습니다.
##누구요??
사건의 발단은 월요일 아침.
“국세청장 부인이 선물로 받은게 한두가지겠어”라는 심드렁한 마음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사건이 이리 커질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채…
실마리는 ‘학동마을’이라는 그림 이름과 ‘평창동에 있는 G갤러리’ 두가지 뿐.
몇 군데에서는 “우리 아닌데요” 라고 했습니다.
한 군데에서 드디어 “관장님께 물어보실래요” 라고 했습니다.
(보통 ‘어디어디가 문제가 되었다더라’라는 소문은 해당 업계에서는 정말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닌데요’라는 말이 나오는거죠)
밑져야 본전. 문제의 ‘G갤러리’(그때는 이름을 알아낸 상태였죠)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시죠? 학동마을 때문에 그런데요”
“예…어떻게 아셨네요.. 이00 씨께서 팔아달라고 한 것 맞아요. 근데 잘못된 것도 있어요”
“예…뭐가 잘못되었죠? 정확히 확인을 해야 저희도 잘못된 기사를 안쓰죠”
“그거 뇌물 아니에요. 한상률 청장이 선물이라고 준거에요”
누구?? 한상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상률 청장. 이제는 ”전” 국세청장이군요>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은 소위 ‘4대 기관’으로 불립니다.
정부의 핵심중의 핵심 포스트이기 때문이죠.
사실 여부를 떠나 4대 핵심 포스트 수장 중 한명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은 엄청난 뉴스입니다.
기자실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채 통화를 하다가 황급히 기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아..그래요…언제 받으신거래요?”
“몰라요. 제가 들은바로는 한 청장님이 차장 시절에 선물로 줬다고 그러시던데요”
몇가지 추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10시 30분, 이미 아침 발제 시간은 지났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부랴부랴 발제문을 만든 뒤 캡에게 메신저를 날렸습니다
“한상률이랍니다”
“뭐?”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다?
동아일보 사건팀의 월요일 아침은 평온했지만
오전 10시 30분 이후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을 만나러 가고
해당 그림이 어떻게 전시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당시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림이 누구손을 거쳤는지도 파악해봐야 합니다.
컴퓨터에 앉아 기사검색을 해봐도 별 내용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문제의 ‘학동마을’을 전시했던 K갤러리가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세무조사는 2004년. 당시 담당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 당시 4국장은 한상률 청장.
별 관련성이 없는 사실들이지만
또 나름 연관성을 가지고 추측해보면 몇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 사실들입니다.
의심은 커져 갑니다.
하지만 의심이 의심으로 끝이 날지, 의심이 사실로 확인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런 와중에 후배 기자가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집에 있는데 한 청장의 부인이 잠깐 집에 들르겠다고 하더라. 그거라고 했더니 선물이라며 그림을 하나 가지고 왔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받아서 놔뒀다”
이제 이정도면 충분히 기사를 쓸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그래도 세부적인 내용으로 더 촘촘히 기사를 채우기 위해 취재는 계속됩니다.
한 청장의 부인은 자택을 비우고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K갤러리의 관장은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수차례 추가 전화통화에서도 그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며 의혹들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일본에 출장중인 한 청장은 동아일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는 희한한 구도가 펼쳐진 셈입니다.
##부인들의 권력투쟁?
취재에 들어가면서 의외의 정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한상률’이라는 이름을 언급했던 G갤러리 관장은 현 국세청 고위 간부의 부인.
공교롭게도 그 고위 간부는 참여정부시절 승승장구하다가 한 청장 부임 이후에 인사에서 소위 ‘물’을 먹었습니다.
“한 청장의 부인이 그림을 건네며 K 씨의 이름을 언급하며 아웃 시켜줄 것을 요구했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이에 대해 G갤러리 관장은 “이번 건은 나와 관계 없는 일이다. 남편의 일은 내 프라이버시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K 씨는 “내가 왜 언급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한상률 청장의 부인, 국세청 고위 간부의 부인.
세 명의 여성간의 연결고리가 서서히 드러났고
그림하나로 시작된 사건이
국세청의 인사 싸움까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국세청 출입 선배의 기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4대 기관 중의 하나인,
기업하는 사람들이 벌벌 떤다는 국세청이
국가의 기본이 되는 ‘세정’을 펼친다는 사람들이
설마 이런 치졸한 인사 투쟁을 벌이며 살아왔었을까 싶었습니다.
##‘10호’의 인기
‘사람’의 취재와 함께 문제의 ‘그림’에 대해서도 취재를 해야 합니다.
2007년, 신정아 사건 당시 확보했던 취재원들의 전화번호를 다시 찾았습니다.
1년여가 넘게 연락한번 없다가 대뜸 전화해 “최욱경 화백을 아시나요?” “학동마을을 아시나요?”라고 물어보기가 참 민망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가릴때가 아닙니다.
물어물어 해당 전시를 담당했던 큐레이터와 통화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작품 선정을 맡았던 교수와의 통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동마을이라는 그림은 분명히 기억이 나지만, 누구의 소유였는지, 전시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한편 ‘10호’가 왜 인기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호‘는 작품의 크기를 뜻하는 말이고 10호는 38×45.5cm 사이즈입니다.
상상해보면 아실텐데요, 딱 벽에 걸기 좋은 일반적인 그림 사이즈입니다.
이에 대해 한 미술 전문가는 “통상적으로 그림을 선물하면 10호를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큰 작품을 개인에게 선물할 수 있겠어요? 그런건 건물 외벽에다 걸만하니 기업이나 단체에게 선물하는거고….개인들끼리 선물하기에는 10호가 딱 좋. 그래서 10호 인기가 좋아요. 뇌물까진 아니지만, 보통 선물할때는 주는 사람도 부담 없고 받는 사람도 받아서 집에 쉽게 걸어놓을 수 있는 10호를 선호하죠”
##‘학동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은 누구?
화요일, 여전히 상황은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쉽사리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속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한 청장이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던 기자들을 인근의 식당으로 불렀다”는 수습 기자의 보고에
야근자인 선배가 급하게 일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폭탄주가 몇잔 돈 뒤에도
한 청장은 “전혀 본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전날 남편을 면회하고 온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은 집을 비운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전 전 청장의 자제들만이 뻗치기하는 기자들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준 사람은 없고, 받은 사람은 있는 이상한 구조.
결국 문제의 그림이 흘러간 경로를 파악해야 합니다.
고 최욱경 화백은 독신으로 살다 45살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이후 최 화백의 작품 관리는 여동생인 최모 씨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수소문 한 끝에 수요일, 여동생 최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쉽게 만나줄리는 없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인터폰을 통해 “할말이 없다, 돌아가시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무작정 기다리는겁니다.
칼바람이 부는 복도식 아파트 10층에서 벨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주는 정말 추웠습니다. 덕분에 기자들은 덜덜 떨어야만 했죠…)
다른데도 아니고 집 앞에 서 있는 것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함입니다.
(사건기자 생활을 좀 하다보니 이런 요령만 늘어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려가서 따뜻한 캔커피라도 하나 사가지고 올라올까’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 무렵 문이 반쯤 열렸습니다.
“대체 왜 나를 찾아온건가요?”
최초 학동마을 유통의 시작이 최 씨라고 짐작을 하고 갔었지만
짐작이 어긋나버렸습니다.
최 씨는 “그 그림은 언니가 죽기 전 알아서 처분한 것 같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그림이 이런식으로 논란이 되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 우리에게 물어볼게 아니라 주고 받았다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어디서 났는지”
맞는 말입니다.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림의 유통 경로를 유추해볼 수 있는 최초 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갔었지만
오히려, 경로는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고,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10여년 전 최욱경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었던 갤러리들에 문의를 해 보아도
학동마을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결국 공은 검찰의 손에…
이 와중에 수감중인 전 전 청장은 변호인을 통해 “그림을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전 전 청장의 부인은 “있는 걸 말하는데 왜 그러느냐”며 눈물을 쏟았다는 사실도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각종 소문은 점점 불어납니다.
하루하루 소문의 양이 불어나는 것이, 마치 산 정상에서 굴러내려오는 눈덩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꼴과 같습니다.
“그림이 5점이라더라”
“개인이 준게 아니고 한 기업에서 국세청에 전달했다더라”
확인되지도 않은 ‘카더라’ 통신들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의혹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이 의혹을 낳는 형국인 셈이죠.
드디어 “한 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아니다. 안했다”는 헤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한 청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진사퇴가 문제의 종착점이 될 수는 없는 노릇.
무수한 의혹들은 여전하고
검찰에서는 관련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결국 일주일간 시끄러웠던 ‘학동마을’ 소동의 전말은 검찰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사회부에 있는 동안 두 명의 국세청장이 사법처리 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전군표 전 청장은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로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었습니다.
덕분에 국세청이 1966년 개청한 이래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현장 검증이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이주성 전 청장은 서부지검의 수사를 통해 결국 구속수감되었습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사석에서 만나“예전엔 통장과 현금카드를 건네는게 나름 혁신적인 수법이었는데, 이 전 청장에 비하면 그건 완전 구식중의 구식”이라며 “이런 수법으로 뇌물을 받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혁신적이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만약 한 청장마저 사법처리가 된다면
‘국세청장의 수난 삼대’는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한 청장의 말처럼, 음해와 사실무근의 헛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것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물론 “한 청장이 그림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다”라고 결론이 내려진다면
위의 모든 가정과 의혹들은 의미없는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국세청이 건강한 조직이라는 것이 입증만 된다면
위에 줄줄이 써 내려간 내용들의 의미없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