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오늘 우리의 긴 여정이 끝날 것이다. 이틀째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레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대구에서 군 생활을 하는 친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해 오고 나의 무모한 계획을 들은 몇 안 되는 친구들은 간혹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방해가 될까 봐 문자 메시지로 격려를 해 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해발 520m의 진부령은 백두대간의 동서를 잇는 최북단의 고개다.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 같은 재보다는 높지 않지만 재의 맨 위부터 끝까지 하천을 끼고 길이 나 있어 경치가 좋은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 고성군 간성읍 흘리이다. 내 고향 땅인 셈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바로 간성 읍내니까. 그러고 보니 간성읍은 동서로 40여 km나 되는 셈이다. 어제 어둑어둑해질 때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용대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간성읍 경계로 들어왔는데 앞으로도 30km는 족히 가야 읍내에 닿을 수 있다. 읍내를 빼면 거의가 산지이기도 하다.

오늘 걸을 거리는 이정표 상으로 38km이다. 아마도 여드레의 일정에서 가장 많이 걸어야 할 듯하다. 다행히 가장 긴 진부령 구간이 내리막이니 걷기엔 편할 것 같다. 내리막이라고는 해도 등산할 때의 하산 길처럼 급경사가 아니니 쿠션이 좋지 않은 샌들을 신었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게다가 비가 억수로 쏟아져 길이 아니라 물 위를 걷는다. 물이 훌륭한 쿠션 구실을 하니 샌들의 딱딱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늘은 작달비를 퍼붓고 계곡은 붉덩물을 토해 낸다. 비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데다 연방 천둥번개가 치고 빗소리에 계곡의 물소리까지 진동하니 귀마저 먹먹하다. 이레 동안 빗속을 걷고 있지만 어제까지 내린 억수 같았던 비는 오늘에 비하면 비도 아닌 듯이 느껴진다.

전화도 받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누가 전화를 한다. 할 수 없이 상체를 숙여 가며 전화를 받으니 서울에 있는 친구들한테 연락 받았다며 고향 친구들이 환영하러 오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 없다며 이따 도착하면 소주잔이나 기울이자고 했더니 이 친구들 이번엔 플래카드를 걸겠다고 한다. 못 말릴 녀석들이다.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광고할 일도 아니니 제발 참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자 물러선다.
고향의 품은 늘 아늑하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여유가 생기는 건 이 힘든 여정이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가 고향 산천이어서 그럴 거다. 간성은 지도에서 보면 바닷가인 듯하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지역이다. 바로 북쪽에 있는 거진읍은 어업이 발달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갯내가 풍기지 않는다. 내가 어릴 적에도 내 고향이 바닷가 마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소풍 때나 되어야 바닷바람을 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산촌이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너른 들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뒷동산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이다. 남과 북에는 각각 하천이 흐른다. 진부령과 나란히 흐르고 있는 하천은 바로 북천이다.
간성은 ‘3정(井) 4지(池) 5목(木)’의 고장이다. 세 개의 우물, 네 곳의 못,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는 고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물터와 한 그루의 나무만이 남아 있다. 내가 아이디로 쓰고 있는 ‘3springs’는 바로 ‘3정’에서 따온 것이다. 우물을 영어로 ‘well’이라고 하지만 대개 우물이라는 것이 샘을 파서 나오는 것이라 샘을 뜻하는 ‘spring’을 쓴 것이다. 봄이란 뜻도 있으니 뭔가 샘솟고 희망찬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소원이 들어 있기도 하다. 예전에 아이들이 유니텔에 가입하게 됐을 때 큰아이에게는 ‘fourpond’를, 작은아이에게는 ‘fivetree’를 아이디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바로 ‘4지’, ‘5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녀석들은 그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젠 쓰지 않는다.
그제부터 아프던 왼쪽 무릎이 재를 내려가려니까 더욱 신경 쓰인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엊그제 거니고개에서 배수로에 처박힐 때 무릎에 충격이 갔나 보다. 이틀 동안은 특별히 내리막을 걸은 적이 없어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제법 아파 자꾸 절뚝거리게 된다. 발바닥은 물집 잡히고 무릎마저 성치 않으니 최악의 상황이다.
여태까지는 차를 마주 보고 걸었지만 오늘은 반대편으로 걸었다. 길의 오른쪽에 갓길이랄 수는 없어도 약간의 여유가 있는 데다 왼쪽은 길을 내느라 산을 깎아 내는 바람에 생긴 절벽이 이어져서 언제 돌이라도 굴러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부령을 거의 다 내려와 광산리를 지날 때 길 건너 비닐하우스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부른다. 세찬 빗속이라 뭐라는지 알 수 없다. 걸음을 멈추니 옥수수를 들고 흔들며 먹고 가라신다. 쉬었다 다시 출발하려면 발이 더 아프니 그냥 가기로 한다. 아주머니에겐 고맙다고만 소리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대리에 이르니 북천 너머 남쪽으로 멀리 간성읍내가 보인다. 지금은 들를 여유가 없다. 아쉽지만 북쪽으로 향한다. 오른쪽으로 검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간성, 대진, 속초에서 자랐다. 모두 바다와 산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다. 이보다 더 좋은 자연환경이 어디 있으랴. 고향에서 보낸 세월보다 서울에서 보낸 세월이 훨씬 길지만 느낌은 항상 그 반대다. 아마 고향의 추억이 세파에 찌들어 사는 나날의 어려움이 낳은 기억보다 강렬하기 때문이지 싶다.
거진 어귀를 지나니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화진포 호수를 지나지만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화진포는 숫자 8과 같은 형태로 생겼는데 둘레가 16km에 이르며 자연호로는 남한에서 가장 크다. 예전엔 군사지역이라 호수의 남쪽 부분은 폐쇄돼 있었다. 광복절이나 돼야 하루 제한적으로 개방해 주곤 했다. 지금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곳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 별장이 있고 6·25전쟁 전 세워진 김일성 별장도 있다. 당대의 권력자들 별장이 몰려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하고 남으리라.

화진포 호수의 북쪽 부분. 호수 수면의 왼쪽 중간쯤에 있는 구조물이 이승만 별장으로 향하는 다리다.
다리가 있곳이 숫자 8처럼 생긴 호수의 가장 잘록한 부분이기도 하다.
바닷가에 깎아지른 듯 솟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김일성 별장은 ‘화진포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공개되고 있다. 8자형 호수의 잘록한 부분의 건너편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이승만 별장은 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산 중턱의 하얀 건물이 바로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별장이다.
산과 호수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게다가 망망대해까지 펼쳐져 있다. 이 수려한 그림의 마무리라도 짓듯이, 바다엔 한 점의 자그만 섬이 외로이 떠 있다. 더 무얼 바랄 것인가. 지금은 이 아름다운 곳을 감상도 못 한 채 어둠 속을, 빗속을 걷고 있으니 그게 섭섭할 따름이다.

화진포 앞바다에 자리잡은 무인도 금구도(金龜島)이다.
그러나 요즘의 화진포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해수욕장 편의시설이 자연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양박물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앞에 넓게 펼쳐진 주차장은 정말 꼴불견이다. 백사장이던 곳에 아스팔트를 깔아 주차장을 만들다니 어이없다. 그 너른 백사장을 없애 가면서 바다 바로 앞까지, 호수 옆구리까지 차를 끌고 오도록 주차장을 만들어야만 할까? 기왕 자연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 고운 화진포 백사장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백 번, 천 번 낫다는 생각이 든다. 100~200m 차를 타고 편히 오는 것과 마치 눈밭인 듯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곱디고운 모래밭을 걷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관광객에게 화진포를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일인지를 정녕 모르는 걸까?
어쨌든 화진포를 지나, 밤바다를 끼고 30분여를 더 걸어 드디어 우리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자그만 고개를 오른다. 이 언덕 위에는 우체국이 있다. 안도현의 시 ‘바닷가 우체국’처럼. 우체국에서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앞 길 건너편에 서면 저 아래로 쪽빛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언덕을 지나 내리막에 우리의 목적지인 고향집이 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의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선다. “어매야, 야가 누구니? 어떻게 된 거니? 손님이 온다더니 야네구나.”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어머니 눈이 휘둥그레지신다.
어제 도착한 여동생 내외는 시치미를 떼고 오늘 저녁에 손님이 올 테니까 맛있는 음식을 좀 해 놓아야 한다고 했단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어떤 손님인데 밤 9시가 넘도록 오지 않느냐며 조바심을 내셨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손자 녀석이 빗속에서 불쑥 나타났으니 놀라실밖에. 그것도 서울서부터 걸어서 왔다니.
이리하여 8월 2일 오전 7시에 시작된 우리의 긴 여정은 9일 밤 9시 30분에 끝을 맺었다. 여드레 만이다. 비 때문에 제대로 보고 느끼고 즐기지는 못했지만 길고 긴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오늘은 모두 5만6932걸음을 걸었다.
#기선(其線)?
진부령자락, 그러니까 간성읍내와 거진 대진으로 길이 갈라지는 대대리 근처에 이르자 좀 생소한 표지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몰라도 교통과는 관련이 없는 표지판이라 눈길조차 준 기억이 없다.

한글과 한자, 로마자까지…. 국제화가 아주 잘된 표지판이다. 그런데 한자 표기가 영 이상하다. ‘其線’이 문제다. 사실 한글만으로는 ‘기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한자가 이해를 도와줘야 할 텐데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其’는 ‘그 기’니까 ‘其線’은 ‘그 선’이라고 옮길 수 있다. ‘간성 그 선’이라. 도대체 어떤 선이란 말인가. ‘토지조사사업 그 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 줄 영어를 보니 드디어 의문이 풀린다. ‘Base Line’이란다. 그러니까 ‘기준선(基準線)’이란 뜻이다. 기준선을 줄여서 ‘기선’이라고 하려면 한자는 ‘基線’이라고 해야 할 테다. 그걸 세워 놓은 주체가 어느 기관인지 알 수 없으나 하루빨리 바꿔 주면 좋겠다. 기선이란 말이 측량 관련 전문용어로 쓰이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한글 표기는 일반인이 알기 쉽게 ‘기준선’ 정도로 해 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