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3?

한번은 맛을 위해
두 번은 깨끗한 오늘을 위해
세 번은 깨끗한 아침을 위해…

대나무숯으로 3번 걸러 깨끗한 소주…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도 애주가가 계시겠죠? 애주가의 반열에 오를 정도는 아니어도 저도 술을 조금 좋아하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소주 광고에 눈길이 가더군요. 위에 옮겨 놓은 글은 ‘두꺼비 잡는다’는 말을 낳았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의 소주 광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뭔가 이상한 부분이 보이세요? ‘한번, 두 번, 세 번’을 합하면 분명히 여섯 번이라야 맞을 텐데 ’3번’이라고 했군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건 ‘번’과 ‘번째’를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횟수를 나타내는 말 ‘번’으로 ‘차례’를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위의 글은 ‘한 번은…/한 번은…/한 번은…’ 하고 ‘한 번’을 반복하거나 ‘첫 번째는…/두 번째는…/세 번째는…’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됩니다.

한 가지 더 지적하여 보죠. 개중에는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위에 옮겨 놓은 글에서는 ‘한번’을 붙여 썼는데 제가 쓴 글에서는 ‘한 번’이라고 띄어 쓴 점이 눈에 띄죠? ‘한번’이라는 말은 때에 따라 붙여 쓸 수도 있고, 띄어 쓸 수도 있습니다. ‘번’이 차례나 횟수를 나타낼 때는 띄어 쓰고 그 외의 경우에는 붙여 씁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붙여 쓰는 경우
우리 한번 해 보자.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세요.
한번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낼 뻔했다.

○띄어 쓰는 경우
우리 한 번만 해 보자.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해 보겠다.

이렇게 쓰이는 것이죠. 그래도 헷갈리는 분은 이렇게 ‘한번’ 해 보세요. ‘한번’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세 번’으로 바꿔 보는 겁니다. ‘우리 두 번 해 보자.’ ‘우리 집에 세 번 놀러오세요.’ ‘두 번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낼 뻔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바꿔놓고 보니 좀 어색하죠? 어색하다면 차례나 횟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므로 붙여 쓰면 됩니다.

‘두꺼비’ 속을 좀 긁어 놓았으니 오늘은 ‘두꺼비를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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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받침을 찾아 주세요

 항국, 함반도 암보, 항글, 잉기도, 삼불, 성거사범,황경부, 이름바(所謂), 점뭉가 함마디, 팜매원, 미굼부대 광계자, 광광 항국, 시밍권, 겅강보험, 정과3범, 잉간성, 선징국, 잉간성, 대웡군, 섬명회 검물, 3념만에, 5첨맘명, 무슴말씀 함마디, 혐모양처, 염방줌비위, 함 범만에, 충궁기, 5공 싱굼부, 영금공단,
등등 끝이 없습니다.

우리 말의 접음(接音)법칙으로는, ‘신라’가 ‘실라’로, ‘국민’이 ‘궁민’으로 발음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ㄴ’받침의 다음에 ㄱ, ㄲ, ㅁ, ㅂ, ㅃ, ㅍ등의 닿소리에, ‘ㄴ’받침이 실종(失踪)되어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불결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어느 지방의 얼버무리는 발음습관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만, 라디오, 테레비의 아나운서, 앵커, 출연자, MC 등 심지어는 국어학자들까지, ‘ㄴ’받침을 완전히 무시하고 발음하는 것을 듣노라면, 우리 말의 오염(汚染)이 마치 우리 국민정신의 오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리 말을 아끼는 분들이 나서 주세요. KBS, MBC에도 얘기를 했는데, 별로 달라 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 바른 말, 고운 말, 우리 말조차 우리가 지금 지키지 않으면, 나라마저 망해 버리지나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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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명과 천자문의 경우

광화문 네거리에서 유명한 북어국집(터줏골)을 가다보면 서울시 무교동 1번지에 자리잡은 효령빌딩(1989년 5월 개관)을 지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효령(孝寧)… 양녕(讓寧)·효령(孝寧)·충녕(忠寧: 世宗)·성녕(誠寧)…

>>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앞 글자에 받침이 없을 때’에는 무조건 ‘령’으로 발음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이죠. 이때 ‘고유명사’는 논의의 대상에서 빼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어령(李御寧)’씨도 있고 ‘김수녕(金水寧)’씨도 있으니까 말입니다.(여규병 님 글에서)

일본 인명의 경우를 찾아보았습니다.(角川 漢和辭典 부록 인명한자요람 참고.)

美寧子 미네코(mi-ne-ko) cf. 一水 가즈미(kazu-mi)
武寧 다케야스(take-yasu)

‘寧’의 일본 한자 음독은 ‘네이’(nei)만 있군요.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1804, 순조 4년)에는 ‘寧 편안 녕; 차라리 녕; 어찌 녕; 어조사 녕’(이하 풀이는 요즘 맞춤법으로 고침). 그런데 (1583, 선조 16년)에는 ‘편할 령’, (1575, 선조 8년)에는 ‘안령 령’. 특히 에서 ‘안녕’이 ‘안령’이라고 씌어 있는 것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재밌군요.

문득… 1919년 일본의 대학에서 사학 공부를 마치고 온 국사학계의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1896~1989)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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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해설위원이 사용한 `지는 문화`라는 말

logoseeker님의 글을 보고 제가 얼마나 타성에 젖어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향락문화’니 ‘음주문화’니 하고 ‘문화’를 아무 말에나 붙여 합성어로 만들어 쓴 글들을 보고도 아무런 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깊은 자괴감을 느낍니다.
logoseeker님의 지적을 보고 다시 생각해 보니 ‘향락풍조’ ‘음주풍조’ 정도가 훨씬 적절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화’라는 낱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외식문화, 놀이문화, 번역문화, 생활문화, 교육문화, 식문화, 찍개 문화, 음식문화, 음주문화, 고백문화, 향락문화’ 같은 것들이 뜻풀이 및 용례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외식, 놀이, 번역, 생활, 교육, 식, 찍개, 음식, 음주, 고백, 향락’은 문화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 다시 말해 ‘문화’의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상위개념으로 쓰였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logoseeker님이 지적하신 ‘지는 문화’라는 말은 더더욱 쓸 수 없는 말일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문화라는 말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
>>문화(文化)[명사]
>>1.인지(人智)가 깨어 세상이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
>>2.철학에서,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를 이르는 말. [학문·예술·종교·도덕 따위.] (비슷한말)문명.
>>3.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끎.
>>¶문화 정책을 펴다.
>>
>>그런데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해설위원이 나와 각 정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자가 깨끗이 승복할 줄 아는 ‘지는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어쩌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이 뿐만이 아니라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문화라는 접미사를 너무나 쉽게 아무 데나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언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보아야하는지 아니면 부적절하고 천박한 언어생활의 만연으로 보아야하는 것인지 이 곳 운영자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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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王名) 바꾸기

1990년대 초반까지 중고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武寧王’‘무녕왕’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국사 교과서에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1991년까지는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무령왕’으로 바뀐 것이죠. 이유가 뭘까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만 한글맞춤법에서 그 실마리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한글맞춤법 제52항의 규정을 보면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음으로 나는 것으로는 ‘안녕(安寧)’을, 속음으로 나는 것으로는 ‘의령(宜寧) 회령(會寧)’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을 일부에서 확대 해석하여 앞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녕’으로, 받침이 없으면 ‘령’으로 발음한다는 원칙(?)까지 만들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받침이 없는데도 ‘녕’으로 발음하면 이것이 예외라고 한 글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武寧王도 앞 글자인 ‘武’에 받침이 없으니 ‘무령왕’이라고 표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1990년대 초반까지 교과서 등에서 ‘무령왕’을 ‘무녕왕’으로 잘못 적었던 것일까요? 저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武寧王은 ‘본음’이 바른 발음이었던 것이죠. 교과서뿐만 아니라 1980년대 말에 ‘우리 문화를 집대성’했다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펴냄)에서도 ‘무녕왕’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이 ‘무녕왕’으로 써오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무령왕’으로 바꾼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앞 글자에 받침이 없을 때’에는 무조건 ‘령’으로 발음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이죠. 이때 ‘고유명사’는 논의의 대상에서 빼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어령(李御寧)’씨도 있고 ‘김수녕(金水寧)’씨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선 ‘무령왕’으로 표기하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귀녕(歸寧)’이라는 말이 보입니다. ‘=근친(覲親)’으로 풀이하고 ‘갑례가 첫 귀녕을 한 것은 이듬해 이른 봄이었다.’라는 예문까지 함께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밖에 여러 자전(字典)에서는 ‘고녕(告寧:휴가), 무녕(無寧:오히려), 보녕(保寧:편안하게 함), 여녕(予寧:喪中에 있음)’ 같은 낱말들이 보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한 가지 예밖에 찾지 못하였습니다만 위의 여러 낱말들을 보면 받침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령’으로 발음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왕명(王名) 바꾸기’는 앞 글자에 받침이 없으면 무조건 ‘령’이라고 해야 한다는 오해에서 누군가 교과서를 고쳤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벌써 10여 년을 교과서에 ‘무령왕’으로 표기해 왔으니 이제 와서 다시 바로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武寧王’은 이제 ‘속음으로 나는’ 사례에 포함되어 ‘본음’으로 표기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바로잡아야’(?) 할 형국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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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해설위원이 사용한 `지는 문화`라는 말

국어사전에 의하면 문화라는 말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文化)[명사]
1.인지(人智)가 깨어 세상이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
2.철학에서,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를 이르는 말. [학문·예술·종교·도덕 따위.] (비슷한말)문명.
3.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끎.
¶문화 정책을 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해설위원이 나와 각 정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자가 깨끗이 승복할 줄 아는 ‘지는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어쩌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문화라는 접미사를 너무나 쉽게 아무 데나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언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보아야하는지 아니면 부적절하고 천박한 언어생활의 만연으로 보아야하는 것인지 이 곳 운영자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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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에서 소리가 난다고요?

하늘이
하늘을 헛디딘
하늘 끝
하늘에는
밤에도
낮에도
발자국이 울린다
내 뒤꿈치가 멍멍하다

동아일보 2002년 2월 2일자 ‘책의 향기’ 섹션 ‘아침의 시’에 실린 아주 짧은 시입니다. 제가 이 시의 전문을 옮긴 이유는 이 짧은 시에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발자국이 울린다’라는 표현이죠.

흔히들 ‘발자국 소리’라고 하죠. 그런데 발자국에서 소리가 날까요.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눈밭을 걸어 볼까요. 뽀드득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나겠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나죠. 그리고 그 뒤에 남는 것이 나의 ‘발자국’이죠. 가만히 뒤로 돌아 귀기울여 보십시오. 내가 남긴 발자국에서 소리가 나는가요? 물론 상상의 세계에선 가능할 수도 있겠죠. 더군다나 위의 시에서 시인은 시각 현상을 청각의 표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발과 관련된 몇몇 낱말을 헷갈려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낱말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발자국’‘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을 의미하죠. 또 사전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걸음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기도 하고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을 만들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와 같이 쓰입니다. 동물의 발자국은 ‘발자귀’라고 해 놓은 사전도 있는데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발자귀는 ‘발자국의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우리말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에 따르기로 하죠.

그럼 소리가 나는 것은 어떤 낱말일까요? 그야 간단합니다. 발과 소리가 합쳐지면 당연히 ‘발소리’가 되는 것이죠.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다.”처럼 쓰면 됩니다.

흔적이나 업적을 나타낼 때는 ‘발자취’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제격입니다. “인촌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이 산에서 발자취를 감췄다.” “백범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발자국’이 사전에 따라 ‘걸음을 세는 단위’로 풀이되기도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모든 사전에서 ‘걸음을 세는 단위’라고 한 낱말은 ‘발짝’입니다. 걸음의 수효를 말씀하실 때에는 이 낱말을 쓰시도록 추천하는 바입니다. ‘발자국’은 그냥 ‘자국’일뿐 아니냐는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모든 사전이 그렇게 풀이하였으니까 말입니다.”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처럼 쓸 수 있죠. 아, 그러고 보니 ‘발’이라는 낱말 자체로도 ‘한 발, 두 발’ 하는 것처럼 발짝과 같은 뜻으로 쓸 수 있겠군요.

‘발을 옮겨서 걷는 동작’‘발걸음’이라고 하죠. “발걸음을 재촉하다.” “그는 우리집엔 발걸음도 않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같은 표현이 있죠.

‘발’과 관련된 헷갈리는 표현이 꽤 여럿 되죠?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자국이 남으면 발자국이요, 소리가 나면 발소리요, 걸어가는 동작은 발걸음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만 기억해 두면 나머지야 그리 헷갈릴 것도 없을 것 같군요.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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