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과 문단의 착각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이 새로운 한류를 이끌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드라마와 음악 등으로 세계를 풍미한 한국 문화가 분명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번역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당한 얘기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같은 공용어가 아니니 한국어로 쓰인 작품은 누군가가 번역해 주어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근저에는 한국 문학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데 제대로 된 번역자가 드물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내용이나, 구성이 훌륭하면 그걸 표현하는 문장도 훌륭해야 하는 법이다. 훌륭하기까지는 아니라도 큰 결함은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누리사랑방(블로그)의 ‘글쓰기 반면교사’를 읽은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우리 작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엉터리 한국어를 훌륭한 외국어로 번역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글쓰기 반면교사’를 써 오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에서 ‘봄이면 밭고랑엔 감자씨를 모종하고’라고 했는데 이 엉터리 대목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하는 것이다(http://blog.naver.com/3springs/220548671046 참조). 번역자가 알아서 훌륭하게 번역했을까, 엉터리 표현을 그대로 따라 엉터리로 번역했을까. 또 김애란이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갑자기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우르르 달려오더라. 마치 썰물처럼’(http://blog.naver.com/3springs/220627502287 참조)이라고 한 것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제 글은 엉터리로 써 놓고 번역은 훌륭하게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작가들은 한국어 제대로 하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는 혜안이 있었다. 한국어를 배운 지 7년밖에 되지 않는 젊은 영국인이 한국 문학 작품을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는 것이 놀랍다. 거기에 더하여 그 많은 작품 가운데 하필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택했기에 혜안이 있다는 것이다.

한강의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을 읽은 후, 10여 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접했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한 뒤다. ‘몽고반점’이 ‘채식주의자’의 연작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됐다. 늘 야근을 하는 나의 독서는 그만큼 지지부진하다. ‘채식주의자’를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기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아직 두 번째 수록 작품인, 그리고 이미 예전에 읽었던 ‘몽고반점’에 머무르고 있다. 전체를 읽지 못하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한강의 한국어는 내가 접한 작가들 가운데 단연 최고다.

요즘 나는 소설을 소설 자체로 즐기는 것 이상으로 ‘글쓰기 반면교사’를 쓸 소재 찾기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에서는 소재가 될 만한 것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해서 기뻤다. 절반쯤 읽은 ‘몽고반점’에서는 두어 개 찾았다. 그 두어 개도 다른 작가들의 엉터리와는 차원이 달라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아, 이런 작가도 있었구나’ 하고 그의 팬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내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말이다.

스미스는 엉터리 표현의 진의가 뭔지를 고민해야 할 다른 작품의 번역 작업과는 달리 오로지 원작의 표현을 제대로 옮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훌륭한 번역을 해낼 수밖에. 그런 점에서 다른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더라도 스미스 못지않은 훌륭한 번역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단이나 출판계 사람들이 훌륭한 번역가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착각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한국어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2011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 도서]  

 

2010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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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과 문단의 착각

  1. mikeryu says:

    나는 바른 말 타령하는 사람들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세상이 바른 말이 어디있는가? “이것은 바른 말이다.” 라고(규정) 하는 순간 그것은 박제가 되고 마는 거다. 문법이 좀 틀려도, 토씨가 틀려도, 맞춤법이 좀 틀려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글을 쓰는 게 무지무지 중요하다. 바른 글, 표준 글 쓰는 사람보다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더 찾기 힘들다. 화려한 표현력, 문체에 골몰하는 글보다 식견을 갖춘 글들이 더 찾아 보기 힘들다. 이번 번역가는 그녀 스스로 문학에 빠진 여자로 누군가가 단서만 던져주면 주옥같은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번 공은 순전히 그녀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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