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탓인지 지하철 안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말쑥한 정장차람의 신사도 있고, 씩씩한 목소리의 여성도 있고, 키가 무척 큰 노신사도 있습니다. 너무 멋진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절대 지하철에서 물건 팔러 돌아다닐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어서 지하철 장사를 시작하셨겠지요.
한동안 신발 밑창이나 옷걸이, 수세미를 많이 팔았던 것 같고, 흘러간 팝송전집은 여전히 가장 많이 팔고 다니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물건은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팔러 다니는 것이겠지요. 저도 가끔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삽니다. 오늘은 두 가지 물건을 샀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일안 돋보기

40대 후반,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정장차림의 안경 쓴 남자분이 팔던 물건입니다.
‘어르신들, 노안 때문에 커다란 돋보기 들고 다니기 불편하셨죠? 여기 작고 휴대하기 편한 돋보기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남성분 여성분 어떤 분이 쓰셔도 편리합니다. 이렇게 편리한 돋보기를 특별히 홍보용으로 1000원! 단 돈 1000원에 모십니다!’라고 외치더군요. 아무리 홍보용(?)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외치려면 목이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며칠전 장수풍뎅이를 사서 열심히 관찰하고 기르고 있는 둘째에게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샀습니다. 크기가 작으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식물이나 곤충을 관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노안에만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지요.
바르기만 하면 반짝거리는 가죽구두액체약

바르기만 하면 반짝거린다는 구두약도 샀습니다. 점퍼 차림의 피부가 거칠어 보이는 중년남자가 팔고 있었습니다. 반짝거리는 검은 구두를 왼손에 끼우고 오른손에는 구두약을 들고 열심히 설명을 하더군요.
‘검은 색 구두, 갈색 구두, 여러 선생님들 바쁜 출근 시간에 살짝 발라만 주세요.
오래 보관해야 하는 가죽점퍼…그 어떤 가죽 제품이라도 발라만 주세요. 1000원 1000원입니다’
마침 제가 신고 있는 가죽 스니커즈가 너무 지저분한 것 같아 하나 샀습니다. 어차피 지저분하게 신는 신발이라 구두약에 문제가 있어도 신발을 망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1000원짜리를 들고 주저하고 있었더니 단숨에 달려와서 물건을 건넵니다.
‘쓰신 다음 뚜껑을 꼭 닫아 보관하셔야 합니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전철칸에서 유일하게 저만 사는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와 사용해 보니 신발에 윤이 반짝반짝 납니다. 단점은 반짝임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기름기가 많아 손에 묻는다는 것. 왁스가 발라져 있는 스펀지가 덜렁거린다는 것. 장점은 색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는 건. 집에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호랭이 아내로부터 틀림없이 또 쓸데없는 것 샀다고 한마디 들을 것 같은뎅.(P.S. 퇴근후에 진짜 한마디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아끼는 회전 지압펜

이 품목은 오늘 산 물건은 아니지만 제가 지하철에서 즐겨 사는 물건입니다. 판매하는 분 본인이 직접 발명해서 실용신안 특허까지 획득했다고 합니다. 평범한 가장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과 가족사진을 코팅한 안내지를 들고 다니며 무릎 위에 올려 두고 가는데 물건이 생각보다 좋습니다. 보통 0.5mm 굵기의 하이테크 펜 가격이 2000원 정도이니, 지압까지 되는 얇은 펜이 1000원이면 싼 가격이 맞습니다. 얇은 선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 때나 메모를 할 때 감촉이 부드러워 즐겨 씁니다. 가끔 잉크 똥(?)이 나와서 번지는 느낌이 있지만, (선생님한테 공책 검사 맡을 일도 없으니까^^) 상관없습니다. 단점이라면 잉크가 약간 빨리 닳는 기분이어서 금방 서운해진다는 점. 그럴 땐 아쉬움을 달래며 손바닥을 지압하면 됩니다. 손바닥을 간질간질하며 미친 척 혼자 웃기에는 아주 그만입니다. 동국대학 한의과대 겸임교수 이**님이 검증한 제품이라고 펜 옆면에 씌여 있습니다. 한번 굳게 믿어 봅니다.
어느 시인이 그러더군요. 세상 모든 밥벌이는 숭고하다고. 요즘 지압펜 파는 아저씨가 안 보여서 걱정입니다. 사 둔 지압펜이 두개 밖에 안 남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