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무수히 많은 망국병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은 남녀노소할 것 모든 이들에게 파고 들어가며,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의 속담 가운데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병폐는 상당히 오랜
악습중 하나였습니다. 시기심은
기존 망국병인 지역감적이나 남녀차별, 신흥 망국병인 인종차별을 합친것을 견제하고도 남습니다.
한 사람이 60억을 먹여살릴 수 있고 한 사람으로 인해 60억 인류가 멸망당할 수 있는 것은 시기심이 좌우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높은지위를
얻고도 만족하지 않는 한없는 욕망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우주제일의 망국병인 시기심이 소득 2만불, 코스피지수 2천선, 수출
400억불,외환보유액
2500억불시대의 선진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태초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던 것이랍니다.
때문에
후세로부터 ‘나라가 망해도 싸다’고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과거 지도층의 시기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답니다. 이처럼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풍토는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파생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무한경쟁의식이 낳은 자본주의의 병폐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에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봅니다. 전재시대에도 그러한 시기심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무슨
이데올로기로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역적으로 몰렸습니다. 물론 역사는 이들을 간신이라 기록했지만 선조의 입장에서 볼때 그들은 충신이라고 생각했들
겁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이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형을 받았듯이 선조시대의 명장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 바리새인들로 부터 모함을
받고 칼을 차야만 했던 것입니다.
일제시대
시기심의 절대자로 불린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일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따로있었고 보천보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김일성이 해방 이태 전 의문사하자 본명이 김성주였던 그는 죽은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한 것입니다. 그는 암울하던 시절 다방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자였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나, 전술면에서나, 기능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의 선친은
빈농출신이었으나 피나는 노력과 알뜰함으로 당시 평양에서 제일가는 거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자기보다 뭔가 잘해서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못견뎌했다고 합니다. 보천보전투에서 김일성이 만주군을 섬멸한 후
조선인들에게 명예를 얻고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성주는 김일성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멀어 그는
평생동지였던
공산주의자 박성식이 일본군 6천 명을 물리친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내막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이상과 영화를 위해 양심도
저버린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김일성은 시기심으로 인해 큰 죄에 빠지게 된 케이크입니다. 종교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던 김형직-강반석
부부와 교인들의
총애를 독차지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한 마디 화두를 던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듯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청하였고 입가에서는 그의
탁월한 언변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37년 경에 연세 지긋한 장군 한 명이 혜성처럼 나타나더니 국내언론에 그의 얼굴과 이름석자가
집채만하게 개제되면서 조선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의 전과가 알려지면서 천만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입니다. 그의 소식 이후 김좌진 장군의 암살로 인해 위축되었던 독립운동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평양교회 교인들 사이에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가 되었고(독립군 김일성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고 함) 때문에 김성주는 교인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던 것이랍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조선팔도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그의 이름이 퍼져나가는 만큼 김일성에 대한 성주의 시기심은
불길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적으로 볼때 유난히 지도자 한사람의 시기심이 인류역사를 송두리째 체인지해놓았던
무시무시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사울 왕이 자기의 신하를 시기했음을 보면서 시기심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존재해왔음을
느낌니다. 시기심은 누구라도 삼킬 수 있는 큰 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떤 대단한 존재라도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불과 40년 전,
우리는산업화라며
농경지 파헤쳐 시멘트 붓고 아스팔트 깔고 콘크리트 세우고 산림을 휘저어 터널 뚫고 골프장
만들던 시절에 5천 년의 가난을 벗어났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지금보다 국토도 넓고 경작지도 지금보다 많았고(남북이 하나였고 도시화가 안되던 시절) 한때 광개토대왕의 기상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일부가 우리땅이던 그때 그시절보다 오늘날이 더 맛있는 게 많아졌을까요! 당시는 일인지배체제로 절대군주 한 사람이 모든것을 좌우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던 시절 수확한 곡식들은 모두 소수의 지배계층의 몫이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길같은 시기심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또라이 한 명으로 인해 백성들, 나아가 인류 전체가 고통과 파멸을 겪게됩니다. 시기심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김일성은 우주만물을 다 가진 것 같았어도 나름대로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당시 평양교회교인들
중에도 김일성일가에 견줄만 한 명문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긴 주일학교 학생들도 없지않은 건 사실이고요. 심지어 대놓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비할까하는데 그럼에도 적반하장겪으로 자신을 시기하던 자들을 숙청한다는 취지하에
해방 후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평양교회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교인들을 학살했으며 6.25남침으로 많은 양민들을 마치 앙갚음하듯 했던 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심은 현실정치판에서도 드러나곤 합니다. 현실정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당과 야당이 원수지간을 훨씬 능가하는 정도의 싸움질과 정쟁을 일삼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못하면 못한다고 으더터지지만 잘하더라도 야당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기때문입니다. 잘하면 야당의 입장으로는 불리해질 것이고 차기선거에서 또다시 잘하는 대통령이 정당에 몰표가 갈 수 있을것이라는 우려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만년 야당신세를 벗어나지 못할것이라는 위기의식으로 인해 어떻게해서든지 대통령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 방해공작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재산의 사회환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야당측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뒷거래설과 투기설을 퍼뜨러 이마저도 의혹대상으로 심어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같이
경제살리라고 찍어주었는데 경제를 이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다며 탄핵까지 거론하였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동안 만죄의 근원인 시기심을 버리지 못하면 살아생전의 있을때보다 더한 격차를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시기심은 망국병중에 망국병임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