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설쓰기였습니다. 한때 그 소설제목을 필명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있었던 작품이랍니다. 이후 인터넷매체의 발달로 온라인상으로 글을 보내기도
했지요. 그외에도 관심을 가진 분야는
시사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인터넷신문 시민기자로 기고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개재했듯이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선천성인데 말투가 어눌하고 몸이 너무 약한 것 외에는 그다지 사회생활에 불편을 느낄정도는 아닙니다.
몇해 전 뇌성마비 1급이었던 송명희 시인도 무리하게 사역을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에는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사역입니다. 물론 어렸을때의 우선순위는 열차승무원일때가 있었드랬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만 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답니다. 따라서 나처럼 편견을 받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위해 복지재단의 이사장의 청탁을 받아 책을
내기도 했고요. <에덴
장애인 복지론>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 내었는데 상업적인 목적이라기보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부심을 주기
위함이었지요.

 

어제
에스더기도 운동본부를 방문했습니다. 1년 전 북한선교학교 수강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인연으로 문서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타 학교나 단체에서 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유명작가들은 집필활동 외에도 강연을 통해 더 폭넓은 독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개그맨
서경석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꿈을 가지고 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꿈이라고 할 수 없는 직업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농사와 선교입니다.
이 두 직업은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이 아닌인류가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농사일이, 신약시대에는 선교일이 인류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물며 인류의 삶의 우선순위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죄악이 됩니다. 인류에게는 다양한 꿈이 있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될 순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 대부분이
연예인이된다면
먹거리는 누가 구합니까. 모내기를 하고 그것을 추수할 수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요즘들어
무척 바쁜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목표를 이룰수 있습니다. 이러한 글을 올리면
세인들에게 이와 같이 비판받을지도 모릅니다. ‘네까짓게 뭔데 감히 송명희 시인과 비교를 하느냐’며 발끈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 장애인의
예를
든 것 뿐 절대 그도 장애인이니까 동등하게 평가해달라는 취지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듯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꿈을 통해 목적의식을 갖는것도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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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병 중의 망국병 시기심

우리나라는
무수히 많은 망국병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은 남녀노소할 것 모든 이들에게 파고 들어가며,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의 속담 가운데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병폐는 상당히 오랜
악습중 하나였습니다. 시기심은
기존 망국병인 지역감적이나 남녀차별, 신흥 망국병인 인종차별을 합친것을 견제하고도 남습니다.
한 사람이 60억을 먹여살릴 수 있고 한 사람으로 인해 60억 인류가 멸망당할 수 있는 것은 시기심이 좌우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높은지위를
얻고도 만족하지 않는 한없는 욕망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우주제일의 망국병인 시기심이 소득 2만불, 코스피지수 2천선, 수출
400억불,외환보유액
2500억불시대의 선진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태초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던 것이랍니다. 

 

때문에
후세로부터 ‘나라가 망해도 싸다’고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과거 지도층의 시기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답니다. 이처럼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풍토는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파생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무한경쟁의식이 낳은 자본주의의 병폐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에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봅니다. 전재시대에도 그러한 시기심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무슨
이데올로기로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역적으로 몰렸습니다. 물론 역사는 이들을 간신이라 기록했지만 선조의 입장에서 볼때 그들은 충신이라고 생각했들
겁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이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형을 받았듯이 선조시대의 명장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 바리새인들로 부터 모함을
받고 칼을 차야만 했던 것입니다. 

 

일제시대
시기심의 절대자로 불린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일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따로있었고 보천보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김일성이 해방 이태 전 의문사하자 본명이 김성주였던 그는 죽은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한 것입니다. 그는 암울하던 시절 다방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자였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나, 전술면에서나, 기능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의 선친은
빈농출신이었으나 피나는 노력과 알뜰함으로 당시 평양에서 제일가는 거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자기보다 뭔가 잘해서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못견뎌했다고 합니다. 보천보전투에서 김일성이 만주군을 섬멸한 후
조선인들에게 명예를 얻고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성주는 김일성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멀어 그는
평생동지였던
공산주의자 박성식이 일본군 6천 명을 물리친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내막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이상과 영화를 위해 양심도
저버린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김일성은 시기심으로 인해 큰 죄에 빠지게 된 케이크입니다. 종교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던 김형직-강반석
부부와 교인들의
총애를 독차지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한 마디 화두를 던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듯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청하였고 입가에서는 그의
탁월한 언변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37년 경에 연세 지긋한 장군 한 명이 혜성처럼 나타나더니 국내언론에 그의 얼굴과 이름석자가
집채만하게 개제되면서 조선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의 전과가 알려지면서 천만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입니다. 그의 소식 이후 김좌진 장군의 암살로 인해 위축되었던 독립운동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평양교회 교인들 사이에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가 되었고(독립군 김일성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고 함) 때문에 김성주는 교인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던 것이랍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조선팔도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그의 이름이 퍼져나가는 만큼 김일성에 대한 성주의 시기심은
불길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적으로 볼때 유난히 지도자 한사람의 시기심이 인류역사를 송두리째 체인지해놓았던
무시무시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사울 왕이 자기의 신하를 시기했음을 보면서 시기심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존재해왔음을
느낌니다. 시기심은 누구라도 삼킬 수 있는 큰 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떤 대단한 존재라도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불과 40년 전,
우리는산업화라며
농경지 파헤쳐 시멘트 붓고 아스팔트 깔고 콘크리트 세우고 산림을 휘저어 터널 뚫고 골프장
만들던 시절에 5천 년의 가난을 벗어났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럴까요? 왜 지금보다 국토도 넓고 경작지도 지금보다 많았고(남북이 하나였고 도시화가 안되던 시절) 한때 광개토대왕의 기상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일부가 우리땅이던 그때 그시절보다 오늘날이 더 맛있는 게 많아졌을까요! 당시는 일인지배체제로 절대군주 한 사람이 모든것을 좌우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던 시절 수확한 곡식들은 모두 소수의 지배계층의 몫이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길같은 시기심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또라이 한 명으로 인해 백성들, 나아가 인류 전체가 고통과 파멸을 겪게됩니다. 시기심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김일성은 우주만물을 다 가진 것 같았어도 나름대로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당시 평양교회교인들
중에도 김일성일가에 견줄만 한 명문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긴 주일학교 학생들도 없지않은 건 사실이고요. 심지어 대놓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비할까하는데 그럼에도 적반하장겪으로 자신을 시기하던 자들을 숙청한다는 취지하에
해방 후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평양교회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교인들을 학살했으며 6.25남침으로 많은 양민들을 마치 앙갚음하듯 했던 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심은 현실정치판에서도 드러나곤 합니다. 현실정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당과 야당이 원수지간을 훨씬 능가하는 정도의 싸움질과 정쟁을 일삼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못하면 못한다고 으더터지지만 잘하더라도 야당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기때문입니다. 잘하면 야당의 입장으로는 불리해질 것이고 차기선거에서 또다시 잘하는 대통령이 정당에 몰표가 갈 수 있을것이라는 우려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만년 야당신세를 벗어나지 못할것이라는 위기의식으로 인해 어떻게해서든지 대통령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 방해공작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재산의 사회환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야당측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뒷거래설과 투기설을 퍼뜨러 이마저도 의혹대상으로 심어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같이
경제살리라고 찍어주었는데 경제를 이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다며 탄핵까지 거론하였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동안 만죄의 근원인 시기심을 버리지 못하면 살아생전의 있을때보다 더한 격차를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시기심은 망국병중에 망국병임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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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기회주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별의 별 이야기들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살 수 있는 일이 있는 반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존경받아야 할 존재는 지도층입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듯이 국가 지도자이건 교계
지도자이건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황금만능풍조에 포위되어 계층을 불문하고 자신을 망각하는 경우를
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리를 좇아야 할 기독교 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닌가봅니다. 최근 평양의 세워진 과학기술대학교정에
김일성 영생탑이 위용처럼 세워졌는데 설립자들 중 다수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라는 것에 아연질색 했던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좌파가 없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통우파로 알려졌던S교회
K목사가 설립을 주도했다는데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측이 현장에서 노골적으로 반미선동을 했다니 그야말로 완벽한 각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상
나라가 패망한 것은 기회주의자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중국의 국공내전때도 월남전때도 6.25때도 그러한 사람들이 임약했기때문에 승산이 보였던
전쟁을 패배로 이끌었던 것이랍니다.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좌우연타를 맞고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북한이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며 발악을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탈레반의 도전을
받고있습니다. 그런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단합하여 악의 세력을 물리치려해도 될까 말까한데 현실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운명이 갈데까지
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우기 K목사의 행위가 사실로 알려진 상태에서 여전히 그를 옹호하는 듯 한 단체가 있는 것
같기때문입니다.

 

북한이
아니더라도 국내에 투자할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해외 여러나라에 파송되어 빛과 소금을 감당하려는 우리의 선교사들이 환율
상승으로 자살을 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은 처참할 지경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상기하면 차마 얼마나 도움이 될지 희박한 곳에 돈을 투자하는 일은
마땅히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탈북자들과 지교회를 무시한 채 전대미문의 악인에게 영생을 기원하는 탑을 무려 5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세웠다는 것은 90년대 중반
대아사기간에 세워진 금수산궁전을 지은 행위보다 더
천인공노할 행위라고 봅니다. 이는 탈북자들과 S교회 부역자출신 목회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개재한 내용입니다. 남한인사들이 지원한 자금을 받아든
김정운이 도끼눈에 송곳니를 드러내고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생각하십시오.

 

물론
송자문이 국민당의 군사정보를 공산당에 보내어 돈을 받았습니다. 월남 대통령은 월맹군에 군수물자를 팔아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과연 북한정부에서
남한교회에게 돈을 지불할것이라 생각할까요. 북한공산당은 은혜를 원수로갚는 족속들입니다. 과거 남로당출신의 박헌영과 항일유격대출신의 김두봉이 그런
희생양들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독교인사들에게 사례비를 줄 것이라 생각할것으로
착각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탈레반의 위협을 받고있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을 견제하기 위해 깨어나야 합니다. 구한말 열강은 잠자고있는 우리나라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을때에도 우리는 깨어나지 못했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던 것입니다. 이로인해 우리민족은 일제식민지에 이어 남북분단이라는 혹독한 역사가 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사정은 100년 전 구한말의 상황과 흡사합니다. 대망의 10년대가 시작되는 내년은 한일합방 100주기가 되는 햅니다. 경술국치라고도 불리는데
국가의 치욕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러한 뜻이 있는 해에 경인국치를 초래할 수는 없습니다. 결코 김정운이 이어도(제주도 최남단)까지 통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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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불 심판은 몇 가지 이유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 성경대로, 곧 세상끝에
불 심판에 대해서도 성경대로 되어 질 것이란 말씀이다. 그러므로 불 심판이 있을
이라는 예언은 100% 가능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사람들이 불 심판이라는
혹독
한 내용만
관적으로 보는데, 오늘 날 인류의 죄악상은 노아시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노아시대에 인류의 죄에대한 심판이 물이었다면
오늘날의 죄는 불로 인한 심판이다
.
재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죄는 노아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라면
부모
형제도
죽이는 사탄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행위가 만연하고
순간쾌락을 위해서라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상을 향해 외치면 당장 구급차가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징조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상초유의 겨울가뭄은 지구촌
전체를 휩쓸고 있
으며 호주산불과 금년여름은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 예상된다는 기상전망을
볼 때 묵과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
이러한 현상에대해
무신론자들은
작금의
자연재해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개발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인간들에 의해 초래된
재난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기상이변이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믿는 게
현실이다
.
물론 산업화로 인한 공해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은 곧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거나 그만큼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해 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는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인공강우기술과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파이프를
개발하였다. 노아시대에 기술로 하나님께
대적하려했다면 오늘날에는 과학으로
하나님께 대적하려는 인류의
진보한 욕망이다. 노아시대의 홍수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한 당시
인류는하나님과 대적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

 

지금도 류는 당시와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미국의 한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오는
2045년경에는 인간이
죽지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신약이 개발될 것이라고 했다
. 알약 속에 마이크로 로봇이 노화를
방지시키고
병을 일으키는 세포를 치유하게 되어 모든 인류는 꿈에 그리던(?) 불로장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빠르면
2029년부터 개발된다니 하나님과의
대적을 위한 인간의 몽상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거대한
이상을 실현하기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모든 인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노아시대에는 특정인들에게만 심판을 내렸지만 현재는 글로벌화 되어
전 인류가 불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따라서 노아의 여덟 식구들처럼 방주에 올라 살게 되는 구원이 아닌 사후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태초의 인류는 죽지 않는
존재였다
.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우리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존재와
신앙관을 부정하고
사단의 전략에 포위된 인류는 어디까지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려는지 오래살고 볼일이다
.
일 인류의 그러한 바램이 실현되어
영원히 나그네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만큼 삶이 풍요롭고 윤
택하게 되니 경제적인
원인을 들먹여 하나님을 거부한 세력도 자숙할 것이라는 논리도 없지
않다
.
어쩌면
오히려 거만해져 지금보다

큰 죄를 지으면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 이것
은 인간들이 명예와 욕망을 하늘 끝까지 채우고
싶은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바벨탑이 실패했듯이 인류의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
비록 인간의
로 저주를 받긴 했지만
하나님이 보기 좋다고
하셨던 ‘땅’이라는 피조물은 인
간이 든 ‘경제’로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하지만 나는 이 땅에서
어떠
한 생각을
하고있는지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피조물이 고대
하는‘
그날을
해 지금부터라도 땅의 회복에대해 고민하며 행동할 때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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